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59
청풍표국 최강식객 159화
159화. 강호팔문의 자격(2)
임요성 일행이 조상연의 안가로 출발하고 일각도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청풍표국의 대연무장 옆에 있는 작은 정자에서 두 노인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크어! 좋군.”
“당연히 좋지. 몸에 좋은 건 다 넣어서 만든 특제 술인데.”
노준경이 수염에 묻은 술을 소매로 닦아내며 씨익 웃었다.
“좋은 건 원래 같이 먹어야 맛이 배가 되는 법. 그나저나 맹주는 잘 치료되었나?”
“음. 다행히 그 녀석이 구해온 것이 내가 말했던 원고시가 맞더라고.”
“다행이군.”
“흥. 천운이지. 아무리 찾으려도 노력해도 그 존재조차 모르던 걸 떡 하니 시의적절하게 찾아냈으니 맹주의 목숨이 아직 남았다는 증거 아니겠나.”
“후후후. 하긴. 그런데 의각주는 어떻게 된 건가?”
노준경은 의각주와 비원주가 짜고 맹주를 암살하려 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직책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은 그야말로 무림맹의 대들보였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맹주를 암살하려 했다니.
물론 자세한 내막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는 노준경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맹주가 섭혼고에 중독될 수 있도록 미리 판을 짠 것이 두 사람이란 것을.
내부에서 호응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당가의 가주라 해도 그를 중독시키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게 무에 대단한 일이라고. 정치판이 다 그렇지 않나.”
“그렇긴 하지만…. 자네도 좀 씁쓸하겠군. 그래도 자네한텐 사제 아닌가?”
“재능이 너무 뛰어난 것도 문제야. 적당한 재능이면 적당히 수긍하고 살 텐데, 너무 뛰어나다 보니 자신보다 높은 이를 용납하지 못하는 거지.”
“…자네를 말함인가?”
“…….”
백운학이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노준경은 그 침묵이 긍정을 뜻한다는 걸 알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절대적인 재능을 지닌 사형 앞에서 능위평은 좌절했을 것이다.
그렇게 뛰어나면서도 아래로 내려가 힘없고 돈 없는 백성들과 함께했으니, 세인의 존경까지 그가 가져가 버렸다.
그러다 보니 명예, 권력 등에 집착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깊이 빠져버렸을 것이다.
“이번에 제자를 들였다면서?”
백운학의 물음에 노준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가? 쓸만한가?”
“우직해.”
“제일 중요한 걸 가지고 있군.”
“그래서 들인 거지. 어차피 백도 무공은 시간이 가고 노력이 더해질수록 빛을 발하니까. 그때까지 꾸준히 노력하고 익힐 수 있는 게 바로 백도가 요구하는 재능이지.”
“그런데 나이가 좀 많지 않나?”
보통 무공에 입문하는 시기는 10세 전후였고, 아무리 늦어도 15세 전후였다.
하지만 노준경이 제자로 들인 엄충식은 이미 스무 살에 근접한 나이.
백운학이 의문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뭐, 적당히 두들겨 패주고 있네.”
노준경이 말하는 것은 추궁과혈(推宮過穴)이었다.
보통 추궁과혈은 혈도나 경락에 적절한 자극을 통해 신체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방법이다.
하지만 개방은 타구봉법이라는 희대의 단봉술이 있었고, 이 타구봉법을 추궁과혈의 묘리로 풀어내면 범인도 천재로 만든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추궁과혈을 시전하려면 엄청난 내공과 극도로 섬세한 내기의 운용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시전자도 매우 힘든 수법이었기에, 적전제자나 혈육에게나 쓰는 방법이었다.
“음. 나이 들어서 고생이 많군.”
“늘그막에 제자를 들인 업이지. 하지만 우직한 만큼 잘 버텨주고 있네.”
“그렇…. 음….”
“왔군.”
“기도가 상당한데…? 감출 생각도 없이 아예 대놓고 사방으로 내뿜고 있군. 괜찮겠나?”
“후후후. 아직 제자 놈 가르쳐야 할 게 많아. 여기서 무너질 순 없지.”
“그런데 잡스러운 기운도 많이 섞여 있군.”
“낭인들인가 보지. 남은 건 불청객들을 정리하고 와서 먹세나.”
“음.”
노준경과 백운학이 일어서는데 위현보가 다가왔다.
“스승님. 이것 가져왔습니다.”
“음?”
위현보의 손에는 백팔염주 세 줄이 들려 있었다.
“…나더러 삼백 명이나 조지라고?”
“흐흐. 뭐 빗나갈 수도 있으니까요.”
“미친 녀석. 그럼 난 제자 녀석과 함께 따로 움직이겠네.”
노준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운학과 위현보가 경공을 펼쳐 지붕 위로 올라갔다.
“방주님.”
그리고 늘어선 여덟 명의 중년 거지들. 바로 노준경의 호법이자 개방의 순찰장로인 취팔선들이었다.
“가지.”
노준경이 앞서자 취팔선들이 그 뒤를 받쳤다.
* * *
“혈천 님. 들어가시죠.”
“음.”
칠 척에 달하는 거한이 자신의 가슴께에 올 만한 오 척 단신의 사내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가 바로 무룡, 조상연이 키운 팔부신장 중 한 명이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조아리는 단신의 사내가 혈천.
혈천의 등에는 자신의 키만 한 도가 매어져 있었다.
바로 수로채주에게서 빼앗은 위지도(緯地刀)다.
그리고 칠 척 거한인 무룡은 박투술의 달인이었고, 그의 몸에는 녹림채주에게서 빼앗은 현무신갑이 걸쳐져 있었다.
둘 다 강호십대병기에 속하는 귀하디귀한 물건.
육대귀왕이 수거한 세 개의 신물 중 두 개가 이 둘에게 돌아간 것이다.
“크흐흐. 우린 따로 움직이면 되는 겁니까?”
두 사람 뒤에 있던 붉은 머리 장한이 다가왔다.
이번 거사를 위해 낭인시장에서 특별히 수급한 마적단인 광마단(狂馬團)이었다.
혈천이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서 무룡이 덧붙였다.
“마음껏 날뛰어 주게. 그리고 적당히 재미를 봤다 싶으면 알아서 빠지면 되네.”
“흐흐흐. 파천황만 없으면야 이런 작은 표국 정도는 찜 쪄 먹을 수 있지요. 아예 다 몰살시켜 버리면 안 됩니까?”
“후후. 그렇게만 된다면야 좋겠지만 혹시 파천황이 돌아올 가능성도 생각해야 하네. 우리의 목표는 국주와 소국주만 잡으면 된다는 것을 명심하게. 굳이 피해를 키울 필요는 없으니까.”
“크크큭. 그렇게 생각해주시다니 감사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자, 들었지? 마음껏 날뛰랍신다. 가자!”
광마단주 냉소천이 거대한 박도를 치켜들고 소리치자 백 마리의 말이 거센 투레질을 하며 콧김을 뿜어냈다.
두두두두두!
곧이어 지축이 흔들리는 굉음과 함께 광마단이 청풍표국으로 질주했다.
마치 그대로 앞에 있는 모든 걸 지워버리겠다는 듯이.
“뭐, 뭐야!”
청풍표국을 지키던 수문위사가 놀란 토끼눈을 치켜떴다.
“문을 열어라!”
옆에 있던 무인이 소리치자 거대한 정문이 그대로 열렸다.
“서, 선배님, 그렇게 문을 열어도 괜찮습니까?”
“흥! 상관없다. 이미 그렇게 전갈을 받았으니. 우리도 들어가자!”
어리버리한 표정을 짓고 있는 후배의 뒷덜미를 급히 낚아챈 선배 위사가 안으로 들어가자 열린 정문으로 그대로 광마단이 쏟아져 들어왔다.
“크하하하! 이건 말로만 듣던 무혈입성 아닌가?”
하지만 그 웃음은 지속되지 못했다.
슈슈슈슉!
“뭐, 뭐야?”
갈고리들이 사방에서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뾰족한 갈고리들이 말의 몸에 찍혀 말들이 몸부림치거나, 말 위에 있던 무사들이 옷에 갈고리가 걸리자 두세 명이 달려들어 잡아당겼고, 속수무책으로 말 위에서 끌어 내려졌다.
“흥! 겨우 이 정도냐!”
하지만 그들 역시 악명 높은 마적단이었다.
이 정도 변수는 상시 고려 대상일 뿐.
팡!
말에서 떨어지거나 자의로 말에서 솟구친 마작단원들이 양손 박도를 휘두르며 흉귀처럼 달려들었다.
차자장!
이미 말을 타고 싸우는 건 불가능해진 상황, 광마단은 말을 버리고 난전에 돌입했다.
나윤천이 이끄는 수비대원들 역시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맞부딪혔다.
그들의 태생은 거친 흑도.
지금 이렇게 얌전하게 훈련을 받거나 표국의 수비를 하고 있었지만, 천성은 어디 가지 못했다.
위기에 몰리자 숨겨뒀던 본능이 터져 나왔다.
“뭐, 뭐야 이 새끼들. 백도 놈들 아니었어?”
자신들보다 더 아귀처럼 달려드는 표국의 무사들을 보며 광마단원들이 움찔했다.
“죽여! 대가리를 터트려 뇌수를 갈아 마셔주마!”
“개새끼들! 모가지를 뽑아버릴라!”
“척추를 뽑아내 널뛰기를 해주마!”
거칠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광마단 역시 지지 않고 어우러지자 차마 눈 뜨고는 보기 힘든 난전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런 이들의 머리 위를 조용히 지나가는 두 명의 인영이 있었으니 바로 혈천과 무룡이었다.
그들은 난전이 벌어진 외원을 넘어 내원으로 소리 없이 날아갔다.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시나?”
혈천과 비슷한 키였지만, 무기는 그와는 반대로 작은 봉을 든 노인.
노준경이었다.
“음…. 개방주?”
“그렇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네.”
“후후. 어차피 당신과 만날 거라 생각하고 있었소.”
“그래? 그럼 날 상대하기 위한 게 자네란 말인가?”
“그렇소. 그러니 잘 어우러져 봅시다.”
노준경이 혈천을 자신의 앞에는 취팔선이 막아서자 무룡의 얼굴이 굳어졌다.
“혈천 님. 이거 우리 생각과는….”
[걱정 마라. 이미 이럴 때를 대비한 안배가 되어 있으니.]혈천의 전음에 무룡이 씨익 웃으며 취팔선을 쳐다봤다.
“후후. 그럼 맘 편하게 즐기면 되려나?”
우둑. 우두둑.
담담한 혈천의 말에 손가락과 목을 꺾으며 소리를 내는 무룡을 보며 노준경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상황을 예상했다는 건 또 다른 뭔가를 준비했다는 말인데….’
“또 뭘 꾸미는 건가?”
노준경의 물음에 혈천이 어깨를 으쓱했다.
“꾸미는 거야 늘 윗사람이지. 우린 손발이 되어 움직일 뿐. 아니 그렇소?”
스윽.
혈천이 등에서 거대한 칼을 꺼내 들었다.
칼날이 마치 짐승의 이빨처럼 뾰족하게 만들어진 거치도였다.
상대의 살과 근육을 찢어발기는 무시무시한 흉도.
“그건… 설마 수로채주가 가지고 있던 위지도?”
“하하. 맞소. 알아보는군.”
“…그렇군. 너희들이었어. 수로채, 녹림채, 그리고 대야막주를 죽이고 강호십대병기를 빼앗은 놈들이.”
노준경이 혈천에 이어 무룡을 쳐다봤다.
무룡의 팔뚝과 종아리를 비늘 모양으로 감싼 호신구는 현무신갑의 일부였다.
상체를 감싸고 있는 것은 옷 속에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무룡이 현무신갑을 입고 있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왜 그랬나? 그들은 비록 도적의 무리이긴 하지만 일정 선을 넘지 않기에 특별히 백도에서 우내십존임을 인정해준 것일세. 악독하기만 했다면 십대마두에 들었겠지. 그런데 그들을 죽임으로써 강호가 상당히 어지러워졌네. 비어 있는 우두머리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말일세.”
“하하하. 그러니 내 말하지 않았소. 그런 것들은 윗사람들이 시키니 할 뿐이라고. 그 이유를 우리 같은 이들이 알 필요가 있소?”
“흠.”
툭툭.
노준경이 개방주의 신물인 타구봉을 손바닥으로 치면서 말했다.
“하긴 개새끼들이니 주인의 말을 듣고 짖는 것 말고는 할 게 없겠지. 그 개새끼들을 갱생시키려면 쥐어패는 게 최고지.”
노준경의 말에 혈천의 얼굴이 굳었다.
“나름 강호의 선배라고 대접해주려 했더니 거지새끼가 돼서 그런지 영 말투가 상스럽군.”
“몽둥이찜질은 더 상스럽게 하니 기대하게나!”
오 척 단신의 노준경과 혈천이 그대로 맞붙었다.
콰아아앙!
2척 길이의 타구봉과 5척 길이의 위지도가 맞부딪히자 굉음과 함께 터져 나온 기파에 옆에 있던 아름드리나무가 꺾어질 듯이 휘었다.
“우리도 시작해볼까?”
무룡이 취팔선이 서 있는 곳으로 난입했다.
퍼버버벙!
각각 죽봉을 든 취팔선들의 현란한 봉격을 맨손으로 받아내는 무룡의 신위는 하늘의 신장과 같았다.
하지만 내원에서 벌어진 난전을 은밀히 빠져나가는 그림자가 있었으니, 아무리 노준경이라도 비슷한 경지의 무인과 생사를 건 싸움을 하는 중이라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 그림자는 내원을 지나 국주의 집무실이 있는 중앙전각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