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6
청풍표국 최강식객 016화
16화. 이 또한 강호의 일(1)
“도련님! 제가 누.누.히!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렇게 무턱대고 비무를 신청하다가 잘못될 수도 있다구요. 이번에도 보십쇼! 그분이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바로 도련님은….”
“참나, 알았다니까 그러네. 이번엔 정말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어. 어찌나 가슴이 쿵쾅거리던지. 다른 진천성들이랑 붙을 때도 이렇진 않았다니까? 그리고 결과는… 내 생각이 맞았다는 걸 확인했지. 그자는 보통 사람이 아냐. 강호 초출? 흥.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게 침착하고 실전 무술을 쓰는 이가 강호 초출? 설사 강호에 나온 게 처음이라고 해도, 그는 보통 아수라장을 거쳐온 게 아닐거야.”
팽원호는 그가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몇 년을 산속에서 은거기인에게 절세신공을 전수받으며 수행만 하다가 내려와도 그리될 수는 없었다.
정제된 기도와 필요할 때만 힘을 쓰는 배분 능력, 그리고 압도적인 실전형 무술.
‘분명 군부나 황실에서 나온 사람일 거다.’
팽원호는 그가 모종의 임무를 띠고 강호로 온 사람이거나, 아니면 이번 황자의 난 때 다른 황자 편에 섰다가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 쫓겨났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눈을 빛내는 팽원호를 보며 강천이 피식 웃었다.
“그러면 뭐 해요? 그분은 이미 소주로 가셨는데.”
“후후! 이미 아버지께 신청서를 올렸어.”
“…예? 무슨 신청서를?”
“원행신청서. 나도 소주로 가려고.”
“아아….”
강천은 또 팔자에도 없는 소주 나들이를 가기 위해 짐을 싸야 했다.
그렇게 하북의 작은 호랑이도 약속의 땅, 소주로 출발했다.
* * *
“지금부터 표행 간에 행가한다! 행가는 표행의 아침! 행가시작! 하나, 둘, 셋, 넷!”
표두인 홍국헌의 선창 아래 표사들과 쟁자수들이 어울려 신나게 노래를 불러 젖혔다.
동이 트는 새벽꿈에 고향을 본 후
표물 싣고 말을 타면 맘이 새로워
거뜬히 검을 메고 나서는 아침
눈 들어 눈을 들어 앞을 보면서
물도 맑고 산도 고운 이 강호 위에
서광을 비추고자 표행이라네
하북성 하간부에서 강소성의 소주부까지는 적어도 한 달 이상은 잡아야 하는 거리다.
보름째에 접어든 지금, 임요성과 표행단 일행은 꽤 친해진 상태였다.
전날 노숙을 했던 단원들은 아침 일찍 밥을 해 먹고 다시 표행을 시작했다. 그러다 표사들과 쟁자수들이 서로 눈을 맞추더니 표행가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 즐거워 보이는군요.”
행렬의 선두에 선 임요성이 뒤를 힐끗 보며 말하자, 두혜련이 설핏 웃으며 말했다.
“모두 임 공자님 덕분이지요.”
“그게 무슨 뜻이오?”
임요성의 물음에 이번엔 홍국헌이 답했다.
“아가씨의 말씀이 맞습니다. 공자님의 합류에 모두 안도감을 가지는 거지요. 사실 이번 표행은 별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소금의 운송을 하청받아 짐마차 열 대 분 정도만 북경에 운송해주고, 올 때는 북경의 귀부인들이 사용했던 패물들과 옷들을 받아오기만 하면 되는 거였지요. 그러면서 아가씨의 경험도 쌓고.”
홍국헌이 여기까지 하고 슬쩍 두혜련을 쳐다봤으나 달리 제지하는 느낌이 없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우리가 싣고 가는 물건을 노리고 악명높은 혈루쌍괴가 출현했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하지만 공자께서 그들을 손쉽게 해치우고, 표행에 합류했으니 모두 안심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모두 신나 있는 겁니다. 어지간해선 목숨은 건졌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홍국헌의 설명에 임요성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제 존재가 그리 도움이 되었다니 저로서도 기분은 좋군요.”
아닌 게 아니라 임요성 역시 살짝 고양되긴 했다.
불량인 시절에는 자신이 누굴 죽였다는 사실조차 비밀에 부쳐야 했기 때문에 이렇게 누군가의 선망 어린 시선을 받을 일도 공치사를 받을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한적한 관도를 내려오던 그들이 산동성의 태산 근처를 지날 무렵이었다.
눈앞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화북평야에 옆으로는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태산을 옆에 두고 관도를 따라 걷다 보니 없던 호연지기도 생길 정도였다.
황궁의 답답한 곳을 벗어나 이런 평야 지대를 지나며 임요성은 표사로서의 삶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혜련이 태산을 바라보며 감상에 빠진 임요성을 힐끗 보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따로 행선지가 없으시다면 당분간은 저희 표국에서 지내시는 건 어떠실까요?”
두혜련의 목소리에 태산의 풍광을 넋 놓고 구경하던 임요성이 옆을 쳐다봤다.
“청풍표국에서 말이오?”
“예. 딱히 부담가지실 필요는 없고, 행선지가 정해지실 때까지 객잔 같은 곳에서 지내시는 것보다는 저희 표국에서 식객으로 지내시는 게 더 편하시지 않을까 싶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음….”
“저희도 공자님 같은 고수를 식객으로 초빙해둔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구요.”
보통 식객은 그 집안의 힘에 기대어 자신의 값어치를 높이는 것이 보통이나, 그 반대로 식객의 힘을 이용해 가문의 세를 늘리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청풍표국은 많은 식객을 거느릴 정도의 명성과 규모는 되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인연이 된 임요성을 잡아둔다면 아주 큰 힘이 될 거라고 두혜련은 확신했다.
‘그리고 꼭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표국의 식객이라면 어떤 일을 하오?”
임요성의 관심에 두혜련이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답했다.
“대개 임시 표사로서 많이 활동하시죠. 표행을 나갈 때 호위 임무를 맡으시는 겁니다. 표행의 기본적인 일은 기존의 표사들과 쟁자수들이 다 하고, 공자님께서는 한마디로 무력만 빌려주시는 거지요.”
“음….”
임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력을 빌려주는 것에 있어서는 세가의 식객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단지 세가는 주요 인물의 호위나 분쟁이 벌어지면 힘을 보태는 정도의 일이라면, 표국은 주로 표행 일에 힘을 보탠다는 차이일 뿐.
그런데 갑자기 임요성의 얼굴이 굳어지자 두혜련은 자기가 너무 성급했나 자책했다.
하지만 두혜련의 말 때문에 얼굴이 굳어진 게 아니었다.
임요성도 딱히 목적지도 없었으니 그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낙의 답을 말하려던 순간에 관도 옆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어떤 사내가 아들로 보이는 소년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모습이 보인 것이다.
“무슨 일이오?”
행렬의 선두에 있던 홍국헌이 나서서 물었다.
그의 물음에 사내가 공손히 손을 모은 채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아, 이 아이는 제 아들놈인데 길을 걷다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쓰러지지 뭡니까? 아까 길가에 있는 열매를 잘못 먹었는지…. 여기서 다음 도시까지는 한참을 더 가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배만 쓸어주고 있었지요….”
사람 좋아 보이는 사내의 말에 홍국헌이 의심 없이 다가갔다.
바닥에 누워있는 소년은 열 살이나 되었을까, 배를 부여잡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음. 내가 좀 보겠소.”
표행단에서 표두 노릇을 하려면 어지간한 설사나 급체, 간단한 식중독 정도는 고칠 수 있어야 했다.
표행에서 특히 많이 걸리는 병 중의 하나가 장염인데, 홍국헌이 보기에 소년의 증상도 딱 장염이었다.
“노인장 말대로 애가 뭘 잘못 먹은 것 같소. 마침 우리 표행단에 속을 달래주는 약재가 좀 있으니 나눠드리리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가만있어보자….”
사내가 자신의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사례라도 하려는가 보다 생각한 홍국헌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소. 이 정도야 서로 돕고 살아야지.”
이에 옆에 두혜련이 다가와서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괜찮아요. 그리고 여기서 그나마 의원이 있을 만한 큰 마을이 나오려면 한참을 더 가야 하니 거기까진 같이 가시죠? 저희도 어차피 거기서 하루 묵고 가려 했으니. 약재야 임시 처방이니 도시로 가서 의원한테 한 번 보여줘야 할 거예요.”
두혜련의 말에 사내가 눈물을 글썽이며 허리를 조아렸다.
“아아… 얼굴도 예쁘신 분이 마음씨도 고우시군요. 감사합니다. 염치없지만 애가 아파서 신세 좀 지겠습니다. 대신 저도 전장에 돈이 조금 있으니 도시고 가면 꼭 돈을 찾아 사례를 해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어차피 저희도 가는 길인 걸요.”
“허어… 이리도 고마울 때가….”
사내와 두혜련이 말을 나누는 사이 표사로부터 약재를 받은 홍국헌이 아이에게 환약을 먹여주었다.
“약효가 퍼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 저 뒤쪽에 빈 짐마차에 아이를 좀 눕히죠?”
“아이고 그래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사내가 연신 허리를 조아렸다.
그렇게 사내와 그의 아들이 표행에 합류했고, 표행단은 뭔가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에 모두 뿌듯한 얼굴이 되었다.
“후우, 기구한 제 사연을 한 번 들어 보실랍니까? 제가 말이죠….”
가는 길에 들으니 자신을 장씨라고 소개한 이 사내는 원래 사천성에서 포목점을 꽤 크게 하다가, 강도들에게 부모님과 아내를 잃은 후 그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사천을 떠나왔다고 했다.
정착할 곳을 찾아 이곳저곳 떠돌다 보니 어느덧 산동성까지 오게 되었고, 마침 기분 전환도 할 겸 산동성의 성도인 제남에 들러 이름난 대명호를 구경하고, 태산까지 보고 오는 길이라 했다.
“아들이 나이가 어려 천천히 유람 중인데, 이렇게 다니다 마음에 드는 마을이 나오면 정착할 생각입지요.”
장씨가 짐마차 위에 누워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따스한 눈길을 지었다.
그의 모습에 아무도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오직 임요성만은 굳은 표정으로 장씨와 따로 말을 섞지 않았다.
두혜련은 그냥 낯선 사람이라 경계하나보다 생각했을 뿐 큰 의심을 하진 않았다.
이후로 장씨는 이런저런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풀었고,
“그래서 말인데….”
“뭐요? 푸하하! 어찌 그런 일이….”
그의 입담에 금세 오랜 여행을 같이한 사람처럼 친해졌다.
표행단의 표사들이나 쟁자수들은 그런 그에게 호감을 품었고, 아들이 빨리 낫기를 빌어주었다.
그들의 바람 때문인지 조금씩 차도를 보이기 시작한 소년이 대화에 끼어들자 더욱 호감도가 높아졌다.
꽤 귀하게 자란 듯 하얀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크면 뭇 여인의 마음깨나 흔들 얼굴이었다.
게다가 아이임에도 어찌나 예의가 바르고, 싹싹한지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도 표행단 일행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았다.
그리고 산동성의 태안(泰安)이란 곳에 도착했다.
태산 남쪽 기슭에 있는 도시로 태산을 오르려는 사람들과 기존 마을을 구성하는 사람들로 꽤 성황을 이루는 곳이다.
두혜련은 태안의 중심지에 도착하자 소년을 위해 먼저 의원을 수소문해 주었다.
다행히 홍국헌이 처방한 약재가 효험이 있어 장염으로 인해 지친 기력을 보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장씨는 고맙다고 하며 자신이 표행단의 숙박비와 식대를 계산하겠다고 했고, 처음엔 반대하던 이들도 너무 간곡한 부탁에 결국 허락하게 되었다.
작은 객잔의 별채를 통째로 빌려 표행단원들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에 더욱 좋은 감정을 갖게 된 표행단은 밤늦게까지 장씨와 같이 밥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마저 드시오. 난 생각할 게 좀 있어서….”
임요성이 먼저 자리를 뜨려 하자 두혜련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물었다.
“혹시 저희가 불편하게 해드린 점이 있는지요? 그러시다면….”
“전혀 아니니 걱정할 필요 없소. 단지 강호에 처음 나와 좀 어색할 뿐이니 괘념치들 말고 좋은 시간 보내시오.”
임요성의 말에 다른 이들도 더 이상은 캐묻지 않았다. 그냥 표행에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을 뿐.
그런 임요성의 뒷모습을 장씨가 표나지 않게 유심히 살폈다.
‘저자가 혈루쌍괴를 죽이고, 팽가의 삼 공자를 꺾은 젊은 고수란 말인가.’
장씨가 의아한 눈으로 생각했다.
‘기도는 평범해 보이는데…. 상대한 이들이 소문만큼 대단치 않거나, 무공을 숨기고 있군.’
그의 눈에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다. 장씨는 사실 이들을 죽이고 물건을 탈취하기 위해 온 사천성 출신 살수인 은혈비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