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69
청풍표국 최강식객 169화
169화. 파죽지세(2)
“큭! 헉! 헉!”
온몸에 새겨진 검흔에서 피가 줄기줄기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젠장. 나이가 드니 몸이 예전 같지 않구먼.”
노준경이 피로 얼룩진 얼굴을 닦아내며 투덜거렸다.
“흥. 이봐 거지왕. 나이로 따지자면 자네나 나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균천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씨발. 노상에 구르며 먼지나 마시는 나랑 좋은 곳에서 영약이나 처먹는 너네랑 같겠냐?”
“후후. 째진 입이라고 말은 잘하는구나.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이제 죽거라.”
균천이 검을 겨눴고, 옆에 있던 양천 역시 끊임없이 노준경을 괴롭히던 투척용 도끼를 들어 올렸다.
‘젠장!’
노준경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동귀어진.
이 중에 한 놈을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선천진기를 끌어올리려 할 때였다.
콰앙!
수십 명의 인영이 그들을 둘러쌌다.
“뭐지?”
뭔가 기척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 방향이 이쪽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후우! 균천 영감. 오랜만이오.”
“음? 너는 수라궁의 군사 사마현이 아닌가?”
“그렇소. 당신들을 찾느라 좀 헤맸소. 하지만 기대하시오. 지금부터는 재밌을 테니.”
“쥐새끼처럼 숨어있지는 못할망정 이리 죽여달라고 목을 내밀다니. 구양 놈의 죽음으로 머리가 굳어버린 게냐.”
“흥. 중원 각지에 통문을 돌려 수라궁의 모든 궁도를 모았소. 당신들과 맞설 수는 없겠지만 중요할 때 당신들의 발목을 잡을 수는 있겠지. 바로 지금처럼.”
사마현이 곁눈질로 노준경을 쳐다봤다.
[저희가 시간을 끌 테니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저들을 잡는 데 도움을 주시지요.]돌아가는 사정으로 누군지를 안 노준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라궁을 무력으로 흡수한 혈궁의 소식을 들어 알고 있다.
아마 사마현이라는 저 수라궁의 군사는 자신이 모시던 주군의 복수를 하려는 것일 터.
어차피 적의 적은 아군이다.
특히 이런 전쟁에서 조금이라도 힘이 되면 손을 잡는 것이 맞다.
한 발 쓱 뒤로 물러섬과 동시에 수라궁의 궁도들이 두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수라궁이 중원에 심어두었던 비밀 전력.
그들의 무위는 하나같이 초절정 아니면 절정의 고수들이었다.
쉽게 당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 역시 노준경과의 격전으로 어느 정도 힘이 빠진 상태.
내력을 회복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달려드는 수라궁도들의 모습에 균천과 양천 두 사람의 마음이 급해졌다.
콰아앙!
경지가 낮은 이들이 먼저 뒤로 처박혔고, 다른 이들 역시 점점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방주님!”
풍신개와 함께 여덟 명의 취팔선들이 장내로 날아들었다.
“이 이놈아! 여기 오지 말고 총군사한테 가라고 했잖아!”
노준경이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쳤다.
“당연히 그쪽으로도 사람을 보냈습니다. 중간에 장로분들을 만나 그 혈궁 늙은이도 죽이고, 여기로 같이 온 겁니다.”
콰아앙!
풍신개의 보고에 균천이 검풍으로 수라궁도들을 뒤로 날리며 소리쳤다.
“뭣이? 호천이 죽었다고?”
“아, 그 양반 이름이 호천인가? 뭐 아무튼 그렇게 되었고. 그리고 당신들도 곧 그렇게 되겠지. 흐흐.”
얄미운 풍신개의 웃음과 함께 취팔선들이 죽봉을 세게 움켜쥐었다.
“후우. 씨발. 그럼 좀 빨리 오던가.”
노준경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제는 편히 구경 좀 해도 되겠다 싶었다.
* * *
팡―! 팡―! 팡―!
이백의 용봉대와 삼백의 청풍단, 도합 오백의 인원이 엄청난 속도로 산과 강을 건너며 남하하고 있다.
임요성이 가장 앞에 있었고, 그 뒤를 묵풍조가 바짝 뒤쫓았고, 진천성과 청풍단, 그리고 나머지 후기지수들이 뒤를 받쳤다.
중경의 임시 지휘부를 나설 때만 해도 큰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거리는 벌어졌고, 귀주의 홍풍검파에 도착할 때쯤엔 임요성과 묵풍조 장로들 말고는 아직 신형이 보이지도 않았다.
“후우우.”
급히 오느라 흐트러진 호흡을 정돈한 임요성이 홍풍검파라는 현판 앞에 멈췄다.
“음….”
침음성을 흘리는 임요성의 뒤에서 일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군. 아무래도….”
“그런 것 같소.”
임요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문파 내에 아무런 생명 반응이 없었다.
‘이렇게 서둘렀는데도 늦었단 말인가.’
어두운 눈으로 문을 밀자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힘없이 거대한 대문이 밀려 나갔다.
마치 문파의 분위기를 나타내듯.
드러난 광경은 참혹했다.
곳곳에 널린 시체.
이미 피가 개울을 만들었고, 어디선가 까마귀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굳은 얼굴로 살피던 임요성의 눈에 한줄기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타닥.
급히 달려간 곳에는 곧 숨이 끊어질 듯한 중년인이 있었다.
나무 기둥 아래 기대어 있는 그의 시선이 임요성을 향했다.
“임…공자….”
“문주님….”
임요성이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영주에서 오황자의 탈출을 저지할 때 도움을 주었던 괴량의 모습은 날카롭게 벼려진 검과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빛은 생기를 잃어 흐릿한 회색빛이었다.
탄탄하게 단련된 몸은 난자된 칼에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후우. 죄송…합니다. 좀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흐… 아닐세… 쿨럭! 사랑하던 제자들과 식솔들이… 죽은 모습을 보며 죽어가던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어…. 너무 힘들었거든….”
“…….”
“지금쯤… 광서의 계림파, 광동의 불산황가… 모두 내 꼴이 났을 게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점창의 소식은… 들었나?”
“예. 점창을 멸문시키고 동북쪽으로 이동했다는 소식에 여기로 달려온 겁니다.”
“그렇군… 쿨럭!”
한 움큼 피를 토한 괴량의 눈에 살짝 빛이 돌아왔다.
회광반조의 현상이었다. 그래서인지 말투가 좀 더 또렷해졌다.
“후우. 얼핏 듣기로 점창에서 세 갈래로 나뉘어 이동한 것 같더군. 한 갈래는 이쪽으로, 나머지 두 갈래는 광서와 광동으로. 그들의 무위를 봤을 때, 자네가 굳이 갈 필요는 없을 걸세.”
“음….”
임요성의 얼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들은 아마 호남으로 가서 언가와 서문세가를 공격할 걸세.”
“그럼 지금 바로 그쪽으로….”
“아닐세. 그게 아냐. 좀 미안한 얘기지만 자네들이 지금 당장 쫓아간다고 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순 없어. 지금처럼 뒤나 쫓다가 끝나겠지.”
“그럼…?”
“무당으로 가게.”
“무당 말씀입니까?”
“그래. 지금 당장 북쪽으로 전력으로 달려 무당파로 가게. 무림맹을 가기 위해서는 무당파를 거쳐야 하므로 필시 그들은 무당파를 지우고 가려 할 거야. 지금 공청 진인이 없는 무당파는 그들이 가면 속절없이 당할 걸세. 자네가 해줘야 해. 자네밖에 없네.”
“…알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이제 눈이 무겁구먼.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더니….”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은 그의 고개가 옆으로 스러졌다.
스륵.
그의 몸을 옆으로 뉘어준 임요성이 차가운 얼굴로 일어섰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어느새 쫓아온 후기지수들이 충혈된 눈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운기조식을 한 뒤 전력으로 무당으로 갑니다.”
임요성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널찍한 땅에 언뜻 봐도 수천의 무인이 모여 있었다.
총군사 제갈백규는 한중으로 넘어오는 길에 주작단을 척후로 쓰면서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했다.
그리고 그 뒤를 철갑기마단인 청룡단이 도우면서 만일을 대비했다.
하지만 그런 일련의 노력이 무색하게 저들은 아무런 기습도, 계략도 짜지 않았다.
“푸하하. 너무 생각이 많은 것 아니더냐? 듣자 하니 무슨 돌다리 두들기듯 왔다고 하던데 무인들끼리의 싸움에 그런 잡스러운 계획이나 세울 것 같더냐?”
혈궁주가 맨 앞에 나서서 내공을 실어 소리치자 백여 장 앞에 모인 무림맹 무인들의 귀를 사정없이 때렸다.
백여 장이라고는 하나 많은 인원이 모인 터라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무인들.
안법을 돋우니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혈궁주.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중원을 침공한 것이오? 곤륜의 옛터에 자리를 잡아도 묵인해 주지 않았소? 그럼, 거기서 조용히 살면 될 것을, 굳이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오?”
“흥. 구석 얌전히 처박혀 입 닥치고 살아라? 너희는 비옥한 중원에서 좋은 음식 먹으면서 우리더러는 척박한 청해에서 굶어 죽으라?”
이죽거리는 혁련희를 보며 모용천이 고개를 저었다. 보다 못한 제갈백규가 나섰다.
“그럴 리가 있소? 곤륜은 원래 곤륜파가 자리했던 곳. 그들은 얼마 되지 않는 지역민과 긴밀한 공조를 이루며 풍부한 자원과 지역특산품으로 서역이나 중원을 상대하는 상단을 지원하여 중원의 대문파 못지않은 부를 이루었소. 당신들도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도 없었을 텐데?”
“흥. 너희들은 편히 앉아 보호세나 받아 처먹는 주제에 말은 잘하는구나.”
발끈하려는 제갈백규를 모용천이 말렸다.
“놔두시게. 저자는 그냥 시비를 걸지 못해 안달하는 것뿐. 더 말해봐야 소용이 없지.”
“크흐흐. 잘 아는구나. 전쟁을 왜 하던가? 당연히 남이 가진 좋은 걸 뺏기 위함이 아닌가.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산다면 그건 인간의 본능을 무시하는 처사지.”
혁련희의 말을 흘려들으며 전장을 살피던 제갈백규가 고개를 갸웃했다.
상대방 무인들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맹주님, 저들의 표정이 뭔가 이상합니다. 마치… 실혼인같은….”
모용천도 사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은 진즉에 느꼈다.
“오호. 눈치가 빠르구나. 역시 잔머리를 쓰는 놈이라 그런가. 잘 봤다. 이들은 내가 특별히 만든 고독으로 이지(理智)를 상실시킨 이들이다. 너희들을 위한 특별맞춤 무인들이지.”
입꼬리를 올리는 혁련희가 손을 들었다.
“더 말해 뭐하겠느냐? 맛을 봐야 알지. 자! 눈앞의 적들을 모두 죽여버려라!”
혁련희가 손을 내리며 명령하자 뒤에 선 이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앞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철갑기마단 앞으로! 저들의 중앙을 뚫어라!”
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철갑기마단이 앞으로 내달렸다.
저들을 둘로 나눈 다음 무림맹 주력 무사단인 청룡단이 들이칠 것이다.
그리고 좌익과 우익에 걸쳐 나뉘어 있던 각 세력의 무사대가 포위하는 식으로 공격할 계획이었다.
전형적이면서도 무림의 전투에서는 꽤 효율적인 전략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패인은 저들이 실혼인이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목숨을 도외시하고 철기단에게 달려들었다.
채재재쟁!
“큭! 이, 이게 뭐야! 막아! 막아라!”
아귀처럼 달려드는 그들의 저력도 저력이었지만, 두 번째 패인은 그들이 모두 사천당가의 무인들이었다는 점이었다.
혈궁이 당가를 접수했다고 하여 당가의 무인들이 모두 죽은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실혼인들은 모두 당가의 무인들.
실혼인을 만들기 위해 따로 저들을 모아두었다.
바로 지금 같은 때를 위해서.
날아드는 암기와 퍼져나가는 독.
전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혹시나 해 하급의 피독단을 먹긴 했지만, 이미 자신의 목숨은 생각하지 않고, 악랄한 독들을 던지는 그들에 의해 사람과 말 모두 피부가 벗겨지고, 숨을 헐떡거리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안 되겠소, 맹주! 지금 우리가 나서야겠소!”
보다 못한 공청 진인이 나섰다.
아무래도 저들보다는 무공의 경지가 높은 자신들이 독에 대한 내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전략이고 뭐고 지금은 적의 예봉을 꺾어야 했다.
“부탁드립니다.”
모용천이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맹주라는 직책상 이런 혼전에 자신이 나간다는 것은 큰 위험을 짊어지는 것이다.
혹여 자신이 여기서 큰 상처라도 입는 날에는 아군의 사기가 급격히 꺾일 것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우리가 나설 때요!”
좌익을 맡은 공청 진인, 우익을 맡은 팽극환, 그리고 중앙의 법장 대사가 정예만 데리고 전장에 참전했다.
천무삼신의 등장이었다.
아무리 저들이 실혼인에다가 암기와 독을 미친 듯이 뿌리는 당가의 무인이라고 해도, 천무삼신 세 명의 참전은 금세 승기를 가져오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세 번째 패인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