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74
청풍표국 최강식객 174화
174화. 한산사 별 밝은 밤에(1)
한편 임요성이 용봉대를 이끌로 무당산으로 진입할 무렵 황제는 은밀히 자신의 세력을 포섭하고 있었다.
“수보. 난 환관들을 정말 싫어하오. 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 바로 환관들 때문 아니오?”
황제가 궁 내에서 조용히 머리를 식히고 경치를 감상하게 되어 있는 황제의 정원인 궁후원(宮後苑)에 불려온 내각의 수장인 내각수보(內閣首輔) 장윤수(張尹秀)가 머리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산서상방연합주 장만철의 당질인 장윤수는 산서상인의 압도적인 지원 아래 전 정권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인 내각수보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웬걸, 자기 뜻을 펼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생각은 산산이 부서졌다.
환관으로 구성된 조직 24아문의 수장 격이라 할 수 있는 사례감(司禮監)의 장인태감(掌印太監)인 엄석대가 모든 국정을 총괄하다시피 한 것이다.
장인태감은 인장을 관리하는 태감으로 특히 더 권한이 막강했다.
이전 황제는 궁녀들에게 둘러싸여 연일 얼굴이 화끈거리는 음행을 벌였다.
황제는 엄 태감의 말이 곧 나와 같다는 말을 하여 그에게 무소불위의 힘을 실어준 것이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그런 그의 권세도 정기가 쇠한 황제의 급작스러운 붕어와 이어서 터진 황자의 난을 통해 삼황자가 득세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장윤수는 그 과정에서 내각의 대학사 중 유일하게 삼황자의 편을 들었고, 이후 정권이 바뀐 후에도 그 자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에 주왕을 암살하려 한 일에 산서상인이 연루됨으로써 처지가 매우 곤궁해져서 극도로 몸을 사리는 중이었다.
지금도 저 뒤쪽에서 뻔히 환관들이 서 있는데도 저런 말을 하니 가슴이 덜컹했다.
“후후. 수보. 긴장할 것 없소. 저들은 우리 말을 듣지 못할 것이오.”
“예? 무슨 말씀이시온지….”
“우리는 기막으로 둘러싸여 있어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밖으로 새어나지 못하게 되어 있지. 그렇지 않나 호위장?”
“그렇사옵니다.”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리자 장윤수가 몸을 흠칫 떨었다.
‘황제가 자신의 별도 조직을 두고 있다더니 정말이었구나.’
누군가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 말은 자신의 목 역시 쥐도 새도 모르게 떨어질 수도 있다는 뜻.
등에 식은땀이 주룩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궁중에는 여인들과 환관 외에는 상주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지만, 그 말을 입 밖에 꺼낼 용기는 없었다.
“자자. 긴장하지 말고 들으시오. 짐은 그래서 저 능글능글한 환관들을 내각에서 적절히 견제해주었으면 하는 것이오.”
“내각에서 말씀입니까?”
장윤수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내각은 사실 황궁 내 장서각을 관리하던 학사들로 된 조직이었다.
그러던 것이 점차 중신들이 겸직하면서 권한이 강해졌다.
국정에 대한 자문역할을 하면서 대학사들의 수장인 수석 대학사, 즉 내각수보는 과거 재상과 같은 힘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직접 황제와 부대끼는 환관에 밀려 지금은 그 힘이 줄어든 상태였다.
그런데 지금 황제의 저 말은 자신들에게 힘을 다시 실어주겠다는 말이었다.
“이게 뭔지 아시오?”
황제, 주천웅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장윤수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보니 손바닥 위에 작은 주머니가 있었다.
“이번에 사례태감이 진상한 여덟 명의 궁녀들이 갖고 있던 사향주머니오. 그런데 이 사향은 평범한 사향이 아니었소. 바로 미혼향이 담긴 사향이었지.”
장윤수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동안 전대 황제들께서 왜 그렇게 여인들의 치마폭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는지, 그 이유가 여기 있는 셈이지.”
주천웅이 들고 있는 것은 그 효과가 실로 극악하여, 살짝만 맡아도 음심을 참을 수 없는 최상급 미혼향이었다.
주천웅도 무공을 익혀 내공으로 미혼향을 몰아내지 못했다면 꼼짝없이 환관들의 마수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대단하지 않소? 동창, 서창, 내행창의 환관들 절반 이상을 죽였소. 그리고 그나마 온건파에 속하는 이를 사례태감에 앉혔음에도 아직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다니. 쯧.”
주천웅의 미간이 거칠게 좁혀졌다.
“그러니 내가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소? 이번 산서상인의 일은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 지으려 하니 장 수보께서는 너무 심려치 말고 날 좀 잘 보필해주시오.”
“다, 당연한 말씀이옵니다. 신하가 임금을 보필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옵니다.”
“하하하. 그렇게 말해주어 고맙소.”
장윤수가 물러가자 주천웅의 얼굴은 다시 밀랍처럼 굳어졌다.
황제가 되고 일 년.
그동안 주천웅은 최대한 몸을 낮추고 있었다.
힘으로 쟁취한 황좌이긴 했지만,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자신 역시 엄청난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한마디로 믿고 의지할 이들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리떼 같은 환관들과 명분에 매몰된 중신들, 호시탐탐 자신을 죽이려고 기회를 엿보는 전대 왕권의 잔당들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황제가 되긴 했지만, 당신들과 손을 잡겠다는 생각을 흘리며 은인자중하던 세월.
하지만 이번 주왕의 암살 실패를 통해 반격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황실 종친들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주천웅을 지지하는 번왕들에게 군권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산서상인들의 세력을 약화함으로써 내각수보와 그를 따르는 중신들을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황궁을 장악하고 있는 세 무리 중 하나라도 흔들 수 있다면, 그때부턴 쓸 수 있는 패가 많아진다.
지금처럼 말이다.
“폐하. 금의위 견무정 지휘사가 도착했습니다.”
“음. 들라 하라.”
궁후원에 들어선 지휘사는 장대한 기골을 가진 이전 금의위 대한장군 출신이다.
대한장군은 금의위에서 가장 실무를 많이 수행하는 이들이다.
이번에 황자의 난으로 북진무사가 실각하고, 남진무사인 유재희와 그를 따르던 이들이 황제의 암검(暗劍)이 되자, 그 빠진 자리를 그만두었던 대한장군들이 채웠다.
전 정권 때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사례태감이 동창을 통해 금의위를 통제했다.
그렇게 동창의 개처럼 되어버린 금의위를 많은 이들이 이탈했다.
사실 말이 금의위지 예전에는 후궁의 친인척과 관료들, 환관들의 지인들의 집합소였다.
그들에게 직책을 남발하여 무공을 모르는 이들이 배나 두드리며 자리만 지키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주천웅은 이번에 대대적인 혁신을 통해 그런 자들을 모두 쳐냈다.
그리고 삼황자 시절 봐두었던 이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금의위에 다시 들어오길 부탁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바로 이번에 금의위 총지휘가 된 견무정(甄武淨)이다.
“폐하. 부르셨나이까.”
한쪽 무릎을 꿇으며 지휘사 견무정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하하. 견 지휘. 그만 일어나시오. 그래, 조직은 어찌 되어가고 있소?”
견무정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답했다.
“조직은 이제 제 통제 아래 놓였습니다.”
“음. 좋군.”
주천웅은 별도 권한을 가진 북·남진무사에 때문에 유명무실했던 지휘사에게 대폭 힘을 실어주었다.
북·남진무사들이 모두 지휘사의 통제를 받도록 한 것이다.
이는 황자의 난으로 두 진무사가 모두 공석이 된 것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그렇지 않았다며 이렇게 쉽게 조직을 장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는 지휘도 태감처럼 보고서가 아닌 나와 독대를 통해 구두 보고가 가능하게 만들 것이오. 그리고 사찰 범위를 관리들뿐 아니라 동창들의 환관들까지도 가능하게 할 테니 짐을 많이 도와주시오.”
“폐하의 명을 받드옵니다.”
금의위 지휘사 견무정이 눈을 빛냈다.
이제 동창의 그늘에서 벗어나 그들과 동등한 세력이 된 것이다.
‘환관 놈들. 너희들의 숨통을 죄어주마.’
그동안 얼마나 수모를 당했던가.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들한테 당한 치욕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그 야리야리한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견무정의 눈에 비치는 포악한 기운을 보며 주천웅이 고소를 머금었다.
‘그래. 견제하고 견제해라.’
주천웅은 한 조직에 힘을 실어줄 생각이 없었다.
한 곳에 권력이 쏠리면 바로 폐해가 나타난다.
환관은 구중궁궐의 외로움을 달래주긴 하지만 늘 붙어있기 때문에 자칫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날 수가 있다.
미혼향을 쉽게 들이는 것처럼.
그리고 대신들은 명분에 매몰되어 황제의 목을 죈다.
황제의 뜻은 없어지고, 대신들의 생각대로 나라가 좌지우지된다.
그리고 당파를 만들어 국정을 그들의 입맛대로 움직이려 드니 그 또한 있어선 안 될 일이다.
금의위 역시 마찬가지.
이 첩보조직을 통해 과거 태조께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가.
금의위 지휘사가 물러가고 다시 불려온 이.
그가 바로 황궁 환관의 최고 우두머리 사례감 장인태감인 홍석균(洪錫均)이다.
주천웅은 황자의 난으로 박살 난 환관 조직을 통합하여 동창으로 통일한 뒤 장인태감의 자리에 그를 올렸다.
그나마 국정을 전횡했던 태감 중에서 가장 온건하다 알려진 그였다.
그런데 그 역시 장인태감에 오르고 나니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태감이 보내준 여인들과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소.”
주천웅은 미혼향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자신과 황후, 자식들과 바로 지척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바로 환관들이다.
황궁에 벌어졌던 그 숱한 의문사들.
그 뒤엔 환관이 있다고 믿는 주천웅이다.
확실하게 황궁을 장악하기 전까지는 절대 이들과 척을 져선 안 된다.
“폐하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어 삼세의 영광이옵니다.”
홍석균이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 역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지낸 건 과거 엄석대가 너무 힘이 강했기 때문이지 자신이 야망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 새 황제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어 주무르고 싶은 마음이 홍석균의 심중에 강하게 피어올랐다.
“이 구중궁궐에서 내 의지할 곳이 어딨겠소? 홍 태감이 짐과 황후, 그리고 아이들까지 모두 잘 보살펴 주시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미천한 소인의 목숨을 바쳐 보필하겠나이다.”
눈물을 글썽이는 홍석균을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주천웅.
‘실로 가증스럽도다.’
하지만 속내와는 달리 주천웅은 그 뒤로도 홍석균의 마음을 달래주며 친근함을 가장했다.
“후우. 좀 쉬고 싶군.”
궁후원의 바위에 걸터앉은 주천웅이 궁녀들과 환관들을 멀찍이 물려두고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자신은 황태자가 아니다 보니 궁 밖에서 힘을 키울 수 있었다.
그랬기에 자신의 세력을 만들 수 있었고, 지금처럼 자신의 손발이 되어 움직여 줄 사람이 있다.
하지만 궁중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환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리라.
철들기 전부터 자신의 형이었고, 아버지였고, 누이였고, 어머니였던 환관들과 궁녀들을 어떻게 매몰차게 대할 수 있을까.
주천웅 자신도 자신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황제들은 늘 뭔가에 불안해하고 환관들이 밀어 넣어주는 여인들의 치마폭에서 한평생 방사만 하다가 죽어가는 것이다.
한숨을 내쉰 주천웅이 눈을 떴다.
[다행이야. 그래도 흑표가 틈을 벌어주는 바람에 숨통이 트였어. 다른 소식은 없었나?]주천웅이 전음을 보냈다.
그 역시 절정의 고수였다.
호위장 유재희의 전음이 들렸다.
[지금은 중원 무림을 침략한 혈궁이라는 무리들로 무림 간 전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래? 흑표라면 걱정할 건 없겠지.] [예. 하지만 흑표 역시 이제는 세력을 가진 상황. 인질극을 벌인다면 꽤 곤궁해질 것입니다.] [인질극이라…. 그 청풍표국인가 하는 곳 말이지?] [그렇습니다.] [흠. 내가 뭐 도와줄 건 없을까?] [관무불가침이라고는 하나 상단이나 표국은 어디까지나 관과 무림의 사이에 낀 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분이야 만들면 됩니다.] [예를 들면?] [청풍표국에 황궁으로 들어오는 미곡이나 소금 등의 수송업무를 맡긴다면, 관이 개입할 명분이 생깁니다.] [그렇군. 후후. 그 녀석은 잘 있나?]유재희는 누굴 말함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예. 이제는 제법 태가 나더군요.] [그럼 슬슬 친우를 놀라게 할 때가 되었군. 오랜만에 과거의 친우에게 생색이나 내는 편지나 한 통 써야겠어.]사심 없는 미소를 지은 주천웅이 일어섰다.
가식과 모함이 판치는 이곳에서 순수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건 흑표를 생각할 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