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8
청풍표국 최강식객 018화
18화. 이 또한 강호의 일 (3)
“강호백서 말이 틀리지 않군. 강호인들은 싸우기 전에 사설이 길다는 말이.”
“강호백서? 그게 뭐지?”
유산홍이 의아한 얼굴로 묻자 임요성이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런 게 있소. 긴말할 것 없고, 빨리 끝냅시다. 빨리 자고 내일 또 표행을 해야 하니.”
임요성을 빤히 쳐다보던 유산홍이 불쑥 물었다.
“음… 자네 이름은 무엇인가?”
“임요성.”
“임요성이라… 처음 들어보는군.”
“뭐, 처음 보니 당연히 처음 들어보겠지.”
“후후. 그게 아니라 자네 정도의 무위를 가진 자가 아직 무명이라는 것이 놀라워서 그러네.”
그리고는 이제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아들을 쳐다보더니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공을 세워 새 삶을 살아보려 했더니, 여기가 나의 무덤이 될 수도 있겠군…. 어려운 부탁인 줄 알지만 내 부탁이 있다. 내가 만약 죽는다면 아들을 살려주지 않을 텐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임요성의 눈이 가늘어졌고, 뒤에 서 있던 두혜련과 홍국헌, 그리고 표사들 모두를 놀라게 했지만, 가장 놀란 건 옆에 있던 아들이었다.
“아, 아버지!”
한 번도 누군가에게 목숨을 구걸한 적이 없던 아버지다. 자신에게 있어서는 하늘과도 같은 존재.
호랑이도 무서워한다는 무림맹주보다도 아버지가 셀 거라고 은연중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아버지가 고개를 조아리며 부탁을 하는 모습에 소년의 어깨가 의기소침하여 축 처졌다.
그리고 그 이유가 자신 때문이란 걸 알기에 더더욱.
두 부자를 쳐다보던 임요성이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것참 뒷맛이 씁쓸한 부탁이군. 당신을 죽이고 저 소년을 살려둔다면 훗날 저 아이가 나에게 복수하기 위해 찾아올 텐데?”
“후후. 그게 또 강호 아니겠나. 강호는 복수와 복수가 얽혀야 또 그 맛이 살지.”
“제멋대로인 양반이군.”
“내가 좀 그런 면이 있지. 어쩌겠나 내 부탁을 들어주겠나?”
유산홍은 짐짓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은 타들어 갔다. 아들만은 살리고 싶었다.
그래. 욕을 해도 좋다. 아들을 이런 자리에 끌고 온 것 자체가 욕먹을 일이란 걸 안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게 그들의 삶인 것을.
올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정보 자체가 틀렸다.
앞의 사내는 자신이 어찌해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자신은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아들이라도 살리고 싶었다.
유산홍을 보던 임요성이 옆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대창이라 불린 아이를 쳐다봤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후우.’
잠시 고민하던 임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지.”
사실 그는 소년을 살려둘까 말까를 고민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소년은 살려둘 생각이었다. 어찌 후환이 두렵다고 아이마저 죽여버리겠는가.
그의 말에 유산홍이 아들을 바라보며 인자하게 웃었다.
“고맙네. 대창아, 은인께 인사를 올리거라.”
이번엔 임요성도 내심 놀랐다. 자신을 죽일 사내를 은인이라고 소개하다니!
“아,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허! 너에게 삶의 기회를 준 은인이시다. 생명의 은인으로 대하거라! 어서!”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던 유대창은 서릿발 같은 아버지의 서슬에 놀라 움찔하고는 임요성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차츰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꽉 말아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제 자신도 안 것이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감… 사합니다.”
소년의 인사에 임요성이 고개를 저었다.
“이 무슨 해괴한 짓거린지….”
“후후. 과거는 언제나 미래에게 자리를 내어줄 뿐이지. 나의 죽음이 저 아이의 양분이 되어준다면 그것이 최고의 유산 아니겠는가. 이 또한 강호의 일일 테지.”
그리고 눈짓을 하자 유대창이 핏발 서린 눈을 임요성에게서 떼지 않은 채로 뒤로 물러났다.
“전력을 다해주겠나?”
임요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산홍이 품에서 두 자루 비도를 꺼냈다.
처음 계획은 광혼대 삼 조가 기습을 하는 사이 정신이 없는 틈을 타 암습을 하는 것이었다.
살수는 은밀한 암습에 특화된 무공을 지니고 있었고, 일대일 결투에서는 살수로서의 능력에 비해 다소 손색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산홍 역시 암습이었다면 임요성을 해칠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일대일 결투.
전력을 다해도 이기리라 장담하기 힘든 상대였다.
두 사람의 대치에 다른 이들도 이젠 살짝 기대감이 어린 얼굴로 그들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악명높은 하북성의 혈루쌍괴를 손쉽게 지워버리고, 진천구성이라는 최강의 후기지수, 팽원호마저 꺾어버린 임요성이 이번엔 사천 무림의 최강살수라는 사내를 상대로 어떤 무위를 보여줄 것인가.
임요성이 흑아를 빼 들었다.
우웅.
“대단하군. 단지 도병을 잡는 것만으로도 도명을 토해내게 만들다니. 좋은 도와 좋은 주인이 만났음인가….”
유산홍이 은은한 묵빛이 감도는 소소도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보통의 패검보다 한 뼘 정도 짧은 중도. 살수는 아니라고 했지만, 이자가 익힌 무공은 자신과 비슷한 류의 무공이 아닐까 생각했다.
‘대단하군.’
실로 예리하게 단련된 살기. 그 살기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털이 다 올올히 곤두설 정도였다.
빈틈 하나 보이지 않는 모습에 임요성이 제대로 마음을 먹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적어도 방심을 하다가 자신에게 어이없이 빈틈을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길 확률이 더 줄었다 생각한 유산홍의 얼굴은 오히려 더 편안해졌다.
한 호흡. 그리고 또 한 호흡.
유산홍의 비수가 소리 없이 날았고, 일순 검은 바람이 유산홍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유산홍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멋진 무공이야…. 실전에 최적화된 무공이군. 강호의 무공은 아닌 듯하고… 군부인가…?”
묵묵히 서 있는 임요성을 보며 유산홍이 눈을 한번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이 초식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건 가르쳐 줄 수 있겠지…?”
“탈혼(奪魂).”
“혼을 빼았는다라… 멋진 이름이군…. 멋진… 승부였네….”
그 말과 함께 유산홍의 목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털썩.
“아버지―!!!”
유대창이 뛰어가 쓰러진 유산홍의 몸을 흔들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임요성이 천천히 다가가 유대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만하고 다시 보거라. 네 아버지는 죽지 않았다.”
“…흑… 예…?”
임요성이 유산홍을 보며 턱짓을 하자 다급히 아버지의 심장에 귀를 댄 유대창이 멍한 얼굴로 임요성을 쳐다봤다.
멍청한 얼굴로 쳐다보는 유대창의 뒤통수를 살짝 툭 친 임요성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목은 그냥 살짝 긋기만 한 거다. 저기 보거라. 피가 솟구치지 않지? 난 그냥 기절만 시킨 거라고.”
“…….”
아들 앞에서 어찌 아버지를 잔혹하게 죽이겠는가.
임요성은 탈혼이란 수법을 통해 기절만 시킨 것이다.
‘아직 나에게도 이런 감정이 남아있었던가….’
임요성이 씁쓸한 표정으로 둘을 쳐다봤고, 상황 파악을 못 한 유대창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에휴, 잠깐 비켜보세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유대창을 보던 두혜련이 임요성을 밀치며 다가가 다정하게 소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괜찮아. 아버지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는구나. 조금만 있으면 깨어나실 거야. 걱정 많이 했지?”
그녀의 따뜻한 말에 점점 눈시울이 붉어지며 조금씩 흐느끼던 소년이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흐윽… 흑… 아버지…! 으아앙!”
그런 소년을 두혜련이 측은한 눈으로 안아주었다.
갑작스레 바뀐 두혜련의 기세에 임요성이 입맛을 다셨다.
“하하. 아가씨도 여자는 여자군요. 아이를 보니 모성이 발현되나 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홍국헌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웃음 뒤로 두혜련이 유대창을 달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래. 속 시원히 울거라. 저 아저씨가 보기엔 그래도 마음은 따뜻하시거든. 그냥 겁만 주신거야. 아버지는 살아계시니까 안심하려무나.”
“흐윽, 흑, 히끅….”
소년의 울음소리만이 별채 후원의 적막을 가득 채웠다.
* * *
촤악!
“크아악!”
“아버지!”
유산홍의 눈의 모든 실핏줄들이 터져나가 마치 혈광이 폭사하는 듯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곳이 발각되었는가! 살문을 열기 위해 몇 달을 사전답사를 통해 절대 발각되지 않을 곳이라 여겼거늘!
하지만 이미 일은 터졌고, 아내와 어머니가 죽는 광경에 이미 정신이 날아갈 지경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남은 부친마저 치명상을 입은 것이다.
“홍아… 난 이미 가망이 없다… 대창이만이라도 살려서 비밀통로로 나가거라…. 내가 통로를 닫겠다….”
“어, 어떻게 아버지를 두고 갈 수 있단 말입니까!”
“멍청한 놈! 아비라는 녀석이…! 이제 너도 부모다…. 아들을 두고 어찌 허망하게 목숨을 버리려느냐…. 이미 난 틀렸다. 괜한 복수심에 대창이까지 죽는다. 어서….”
그렇게 말한 유정환이 강한 힘으로 유산홍의 팔목을 붙잡았다.
유산홍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몸은 생각보다 빨랐다.
아들을 등에 업고 달리는 그의 뒤에서 기관이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비가 죽음으로 발동시킨 기관으로 일각 정도의 시간은 벌 수 있을 터.
이미 살문 내의 모든 이들은 다 죽은 상황.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문도들의 복수를 하며 장렬히 산화하려 했으나, 아버지의 말처럼 아들을 살려야 했다.
탈출의 과정은 처절했다. 온몸에 수많은 검이 스쳐 지나갔고, 옷은 피로 흥건했다.
그렇게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도주한 결과, 어찌어찌 그들의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으나 이제 사천 땅에 그가 발을 붙일 곳은 없었다.
자신에게 해를 입은 이들이 모두 작당을 한 것이리라. 어떻게 정보가 흘러갔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내부의 배신자가 있었겠지.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지만, 이 상황을 알지 못하고 해맑게 웃고 있는 아들을 보며 차마 그러지 못했다.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삶의 이유…. 구차한 목숨이라도 연명하며 살아야 했다.
* * *
“끄아악!”
비명을 지르며 일어난 유산홍.
“이, 이게…?”
짐마차 위에 약간 공간을 내어 눕혀두었던 유산홍이 깨어난 것이다.
습격을 당하는 그 날의 악몽을 꾸다가 깬 유산홍이 멍청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쟁자수들보다 앞에 가는 임요성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싶어 천천히 일어나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으나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자, 잠시만!”
뛰어가 보니 두혜련의 말 뒤에 아들이 같이 타고 있었다.
“아버지!”
두혜련이 말을 멈추자 유대창이 뛰어내려 유산홍의 품에 안겼다.
우는 아들을 달랜 유산홍이 임요성을 쳐다봤다.
“이게 어찌 된 것인가?”
그의 목소리는 쓰러지기 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괜히 남한테 짐 넘기지 말고 당신이 직접 아들을 직접 보살피시오. 나 또한 악역을 떠맡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허어….”
유산홍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가시오. 살려줄 터이니.”
임요성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유산홍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