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81
청풍표국 최강식객 181화
181화. 혼돈의 시대(3)
강소성 양주의 한 거대한 장원.
황궁만큼 거대한 장원의 깊은 내부, 한 노인이 자신의 손자보다도 어리게 보이는 젊은 사내 앞에 부복하고 있다.
“황자마마, 이렇게 다시 뵙게 되니 이제 더는 여한이 없사옵니다.”
전직 사례감 장인태감이었던 환관 완후겸(阮厚謙)이었다.
그는 황자의 난 발발 이전 이미 양주로 낙향하여 거대한 장원을 지어 말년을 유유자적 보내고 있었다.
그의 아비는 휘주 출신으로 종이 장사를 해서 이름을 날렸고, 양주에 정착하여 그를 낳았다.
그가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아들 완후겸을 거세하여 환관으로 들여보낸 이후였다.
아비의 바람대로 승승장구한 완후겸은 결국 사례감 장인태감이 되어 아비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
그렇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완후겸도 당시 이인자였던 엄석대와의 파벌 싸움에 밀려 낙향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그의 집안은 상업으로 큰 성공을 이룬 뒤라 사실 큰 불만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이상한 소문을 듣는다.
오황자를 황제로 복귀시키려는 세력이 있다는 말.
그리고 오황자를 빼돌리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어온다.
권력의 맛은 죽기 전까지는 잊을 수 없다던가.
완후겸은 자신이 다시 복권할 길이 보이는 듯했다.
은밀히 사람을 풀어 접촉을 시도했지만, 관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찾는 중이라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찾아왔다.
온통 흑색 옷을 입은 사내.
그를 통해 의견을 교환하다가 결국 이런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태감…. 반갑소…. 내가 어릴 적 보고 오랜만에 보는구려.”
“예, 마마, 실로 장성하신 모습을 뵈니 눈물을 가눌 길이 없사옵니다.”
완후겸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
사실 거세를 당하고 나면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마음이 연약해진다.
그래서 눈물이 많아지고, 사소한 일에도 상처를 받게 된다.
보통 황자들이 어릴 적부터 봐온 환관들을 냉정히 쳐내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허구한 날 눈물을 줄줄 흘려대니 사람인 이상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황자 주겸도 자신 앞에서 늙은 환관이 이렇게 눈물을 줄줄 흘려대니 콧날이 시큰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신이 내쳐질 때 누가 이렇게 울어준 적이 있던가.
쓸쓸한 귀양길에 들리는 것은 새로운 황제를 추대하는 만세 소리뿐이었다.
그러니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환관이 그리 애틋할 수 없었다.
“태감. 그대는 정말 충신 중의 충신이오. 그대와 함께라면 지옥 길인들 외롭지 않을 것이오.”
주겸이 완후겸의 어깨를 쓰다듬자 그가 아예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래고 같이 울며 회포를 푼 그들이 조상연과 함께 셋이서 앞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럼 황궁에서 남아있는 지사들이 호응해주기로 했단 말이오?”
완후겸이 조상연에게 물었다.
두 사람도 이미 알고 있는 사이였다.
완후겸이 사례태감으로 있을 때 조상연도 문화전 대학사로 있었기에 자주 마주쳤고, 충돌도 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둘 다 야심가였기에 어떨 때는 죽이 맞아 충신을 내치는 데 힘을 모으기도 했다.
그들에겐 영원한 벗도, 영원한 적도 없었다.
지금은 다시 벗이 된 것이다.
지사(志士)란 국가를 위해 큰 뜻을 품고 행동하는 이들을 말하지만, 그들에겐 오황자를 도와 역모를 꾸미는 이들이 곧 지사였다.
“예. 아직 환관들과 내각, 황궁 친위군 쪽에 이전 세력들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그 위세가 자못 대단한 삼황자를 어찌 끌어낸단 말이오? 그가 금의위를 대대적으로 개편해서 거의 자기 사람으로 채웠다던데?”
권력의 중심에서 물러난 지 오래였지만 아직 완후겸의 정보력은 죽지 않았다.
“맞습니다. 대신 끊임없이 기회를 보고 있습니다. 단 한 번의 기회만 이뤄진다면, 삼황자를 의식불명 상태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사이….”
“우리가 황자마마를 모시고 황궁으로 진입하면 되겠구려.”
“맞습니다. 그리고 금의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그들도 어차피 수많은 황궁 친위대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날이 오면 금의위가 주로 경계를 서는 오문(午門 : 황궁의 남문) 쪽이 아닌 동문을 열어 줄 겁니다.”
“음. 좋소. 그럼 우리가 준비할 것은 뭐가 있겠소?”
“우리 편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요. 태감께서는 과거 인연이 있던 이들을 포섭하여 세력을 키워두시면 됩니다.”
“후후후. 그거야 문제가 될 것이 없소. 비록 내가 지금 낙향하여 있긴 하지만, 내 양아들이 직전감 내관으로 있소. 상황을 봐서 미혼향이나 다른 독향을 설치할 기회가 많다는 것이오.”
직전감(直殿監)은 환관 조직 중 주로 황제가 집무를 보는 편전이 기타 황구의 처소를 청소, 관리하는 곳이다.
당연히 마음만 먹는다면 나쁜 짓도 가능하다.
“오오. 과연. 진작 태감을 만났더라면 수고를 덜었을 텐데요.”
“후후. 이리라도 만났으니 일이 되려고 그러는 게지요.”
잠시 차를 홀짝이던 완후겸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들며 물었다.
“혹시 번왕들 쪽에서는 우리 계획에 가담한 이들은 없었소?”
“안 그래도 지금 황제에 불만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몇 번 의견 타진을 해봤는데 돌아오는 답이 없더군요.”
“아쉽군. 그들이 받쳐주면 일이 훨씬 수월할 텐데.”
“얼마 전 주왕을 암살하려다 실패해서 도리어 역풍을 맞았지요. 자신이 신임하는 곳에는 군사권을 주고, 그렇지 못한 곳에는 그대로 두는 바람에 오히려 위축되었습니다.”
“흠. 그럼 그 지역의 도지휘사를 구워삶아야 한다는 결론이군.”
“그렇게만 되면 좋지요. 명분은 번왕을 통해 만들고, 힘은 도지휘사를 통해 충당하면 되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완후겸을 향해 조상연이 넌지시 말했다.
“이번에 새외 무림 세력이 중원 무림을 침공했습니다.”
“알고 있소.”
“그래서 말인데, 그 새외 무림 세력이 지금 터를 잡은 곳이 사천입니다.”
“촉왕부를 움직이자는 말이오?”
“맞습니다. 그를 움직여 새외 무림과 손을 잡아 반란을 꾀하면 군사를 사천 쪽으로 집중시켜야 하지요.”
“그 순간을 노리자?”
“예.”
“흐음. 좋소. 아직 그쪽과 연이 닿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번 해봅시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흐뭇하게 들으며 오황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마치 제갈량과 사마의를 옆에 둔 상황이 아닌가 말이다.
이 둘만 있으면 모든 상황이 일사천리로 해결될 것만 같았다.
자신의 눈앞에 보좌가 보이는 듯했다.
* * *
오황자를 알현하고 나온 완후겸이 째진 눈을 빛내며 조상연에게 물었다.
“대학사. 혹시 나한테 뭐 숨기는 건 아니겠지요?”
“태감.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을.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대가 그 이혼대법이니 뭐니 하는 무림의 기이한 사술을 실험 중이란 말을 들었소.”
그의 물음에 조상연의 가슴이 철렁했다.
이 노괴가 안 그런 척하면서 모든 상황을 다 꾀고 앉아 있었나 보다.
여기서 괜히 어설프게 시치미를 뗀다면 주요한 아군을 잃을 수 있을 터.
“흠흠. 태감께서 그리 말씀하시지 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지요. 사실 이 이혼대법이란 것은 아직 확실히 그 성공 여부가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괜찮으니 말해보시오.”
“사실 우리가 이제 제대로 오감의 즐거움을 느끼며 살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저보다는 태감께서 조금 더 위 연배시지만 길어야 일이십 년이면 바스러질 몸뚱이지요.”
“그래서요?”
“음. 이 이혼대법이란 것이 성공하면 우린 젊은 사람의 몸에 의식이 빙의될 수 있습니다.”
안 그래도 찢어진 완후겸의 눈이 더 찢어지도록 부릅떠졌다.
“그, 그게 정말이오?”
“후후. 그렇습니다. 만약 이 사술이 부작용 없이 성공하는 것이 확실해지면, 우린 우리의 모든 권력을 새로운 ‘우리 자신’에게 이양할 방책을 만들어 둔 다음…?”
거기까지 얘기한 조상연이 말없이 그를 쳐다봤다.
꿀꺽.
완후겸이 목울대가 꿀렁였다.
뒷말은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짱짱한 젊은 사람의 몸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파릇파릇한 몸으로 수십 년을 살게 되는 것이다.
아니지.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이 저주스러운 환관의 몸을 벗어던지고, 제대로 된 청년의 몸을 가진 후 궁중의 미녀들을 취할 수 있다.
자신의 권력이라면 멀쩡한 사람을 환관으로 둔갑시켜 궁으로 들이는 것은 일도 아닐 터.
완후겸의 굳어있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대학사…. 그대는 정말…!”
완후겸이 조상연의 손을 움켜쥐었다.
“우리 끝까지 갑시다!”
“이를 말입니까.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백세를 누려야지요.”
조상연이 늙은 내시의 얼굴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9할의 진실에 1할의 거짓을 섞는 것. 그게 정치의 기본이다.
* * *
그들이 모의를 꾸미는 동안 강소성과 절강성 일대의 소요는 빠르게 진압되었다.
절강성의 경우, 무림맹주가 친히 본가로 내려와 지휘하니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번 일로 희생된 가족들에 대한 보상도 넉넉히 이뤄졌고, 장례도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정중하게 치러졌다.
결원은 빠르게 메워졌고, 자경단도 순식간에 채워졌다.
그들의 훈련 겸 이뤄진 혈궁도들의 토벌도 순조롭게 이뤄졌다.
강소성은 더했다.
복귀한 청풍단은 한껏 몸이 달아 있었다.
뭔가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중원을 한 바퀴 돌고 온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용세가에서는 묵풍조 장로들, 그러니깐 자신들의 대주들이 거의 다 처리해버리는 바람에 자신들은 손맛도 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청풍단의 각 대주를 중심으로 파견된 곳곳에서 미친 듯한 신위를 보여주면서 청풍(靑風)이 아닌 혈풍(血風)단이 아니냐는 말까지 돌 정도였다.
하지만 강소 무림인들의 반응은 무척 좋았다.
오히려 과거 단목세가가 패자로 군림할 때보다 더 빠르고 정확한 대처에 칭송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여기 그 칭송의 주인공을 만나러 갔다가 허탕을 치는 바람에 심기 언짢은 사내가 있다.
“끄음.”
도지휘사사 내의 석계명이 침상에서 눈을 뜨고는 잠시 목을 문지르다 일어났다.
그러다 문득 청풍표국의 임 총사라는 자가 생각났다.
“흥. 건방진 놈. 지가 그렇게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다 이 말이지.”
그날도 밤늦게까지 기다렸지만 결국은 만나보지 못하고 아무 소득 없이 나와야 했다.
분명 자신이 기다리다가 돌아갔다는 말을 들었을 텐데 지금까지도 찾아오지 않는다니.
그때였다.
후릅.
“누가 그렇게 건방지다는 말이오?”
“허억!”
석계명이 침상에서 펄떡 뛰다가 급히 아래로 내려왔다.
햇빛이 비치는 창가에서 차를 마시는 모습은 차라리 그가 이곳의 주인이라 해도 될 정도로 평온했다.
“누, 누구요?”
암살하려고 했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일을 처리하고 돌아갔을 정도의 고수.
‘무림의 일과 엮인 적은 없다. 누구지?’
석계명의 머리가 그 어느 때보다 빨리 돌아갔다.
지금 누군가를 부른다는 건 우책(愚策)이다.
아니 이 정도 소란에도 자신의 처소를 지키는 병사들이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것은….
‘기막인지 뭔지, 그걸 친 거다.’
한마디로 초고수.
꿀꺽.
“어, 어느 고인분께서 보내셨소?”
혹시나 누군가가 보낸 전령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더 놀라운 것이었다.
“육선문주라고 하오.”
쉬익!
텁!
자신의 얼굴로 날아드는 황금패를 받아든 석계명의 눈이 세차게 떨렸다.
주왕의 암살을 막아내고 당시 하남부의 지부의 비리를 캐내어 결국 자살로 몰고 간 자.
황제의 암검!
“저, 저, 전 역모에 가담한 적이 없습니다!”
석계명이 곧바로 부복하며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