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85
청풍표국 최강식객 185화
185화. 대협의 길(2)
며칠 후 모용천과 함께 임요성은 무림맹으로 향했다.
이번엔 경공을 펼치거나 하지 않고 마차를 타고 편히 이동했다.
또 떠나는 거냐며 아쉬워했지만, 전쟁 중이라 어쩔 수 없다는 걸 자신도 알고 있기에 그사이 짧게 쌓은 추억으로 만족해야 했다.
스윽.
두혜련이 자신의 앞에 있는 목각인형을 만지작거렸다.
“닳겠어요, 아가씨.”
매영옥이 차를 가지고 오며 말했다.
그녀는 이제는 거의 두혜련의 시비의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표국 내에서까지 호위에 집중할 필요는 없었기에, 매영옥은 시비처럼 붙어있다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자신이 직접 자잘한 일을 하기도 했다.
매영옥이 맞은 편에 앉다 두혜련이 피식 웃었다.
“신기하지? 어떻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이렇게 비슷하게 조각했을까?”
“그러게요. 뭐, 매화자들이 말하는 걸 듣고 조각했겠죠. 매화자들이 뻥을 섞긴 해도 외모나 옷, 어떤 무기를 쓰는지 이런 건 또 제법 정확하잖아요?”
두혜련이 고개를 끄덕이며 임요성 인형의 코를 꽉 쥐었다.
“얄미운 사람. 이렇게 또 가슴을 설레게 해놓고 떠나시다니요.”
하지만 그녀의 눈은 부드럽기만 했다.
두혜련과 임요성은 그가 다시 무림맹으로 가기 전날 잠시 외출했다.
노리개나 사러 가자는 것이었다.
가는 길에 청풍객잔을 들러 주인장의 뻘소리를 들으며 웃기도 했고, 추운 겨울이라 임요성이 건네어 주는 장포에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저잣거리에 나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다른 휘황찬란한 장신구가 아닌 목각으로 조각된 파천황 인형이었다.
소주를 찾는 강호 초출이 가장 많이 찾는 인형이라나.
희한하게도 외모가 비슷했다.
두혜련은 바로 그 인형을 샀다.
임요성이 옆에서 그런 건 뭐하러 사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두혜련은 그 인형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매우 잘한 결정이라는 게 지금 생각이 들었다.
그가 없는 허전함을 그 인형이 대신해주고 있었으니까.
몇 가지 자세를 잡은 인형의 한 질이 총 여덟 개였다.
복(福)이라는 발음과 비슷한 숫자 여덟을 좋아하는 중원인다운 행동이었다.
그리고 두헤련의 방에는 그 여덟 개의 인형이 모두 놓여 있었고, 그 인형을 바라보는 두혜련의 눈빛은 임요성을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사랑스러웠다.
* * *
모용천과 임요성이 마차를 이용해 보름 정도를 타고 도착한 무림맹은 적막했다.
자신의 가문이나 문파가 있는 이들은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역의 낭인들은 모두 그 지역에 소속된 곳의 의뢰를 받아 이곳까지 올 사람들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무림맹이 한산해진 것이다.
“이거 참 큰일이로군. 빨리 방책을 강구해야겠어.”
모용천이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복귀가 바로 전 무림맹 내로 퍼졌고, 이내 원탁회의가 소집되었다.
비원주와 의각주는 아직 자리가 채워지지 않아 기존 회의 인원인 15명에서 2명이 빠진 13명이 무림맹 측 인사였다.
그리고 임요성은 이번 전쟁 때문에 특별히 신설된 용봉대의 대주 자격으로 회의에 함께했다.
“일단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소. 임 총사, 아니 임 대주. 말씀해보시오.”
젊은 나이인데다가 대주급 인사였지만, 여기서 누구도 그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임요성의 눈이 내성 수비대주 신창문의 얼굴에 잠시 머물렀다.
묵천의 하남지부장인 신창문.
이미 묵천의 눈은 무림맹 원탁회의에까지 미치고 있었다.
“예. 우선, 제가 겪은 일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약 한 달 전쯤 녹림 황산채의 채주인 충소광이라는 자가 절 찾아왔었습니다.”
그렇게 임요성의 설명이 이어졌다.
왜 찾아왔는지, 어떤 제안을 했는지, 그리고 비무를 나눴던 것까지도.
“흠. 그것참 당돌한 자로군.”
제갈백규가 미간을 찌푸렸다.
감히 자신의 세력을 인정해달라는 흑도라니.
숨어지내도 모자랄 판에.
“어쩌다 우리 백도가 산적 나부랭이한테 업신여김을 당하도록 무너졌단 말입니까.”
감찰각주 계두청(計兜靑)이 씩씩거렸다.
이게 보통의 백도 무림인의 반응이다. 흑도랑은 상종을 안 하는 것이니까.
“흥! 그럴 필요 없습니다! 괜히 빌미를 줄 필요가 없지요! 우리 힘으로 충분히 혈궁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맹호단주 복양(伏梁) 역시 씩씩거렸다.
복양은 무림맹 맹호단주라는 직책에 무척이나 큰 자부심을 가진 무인이었다.
무림맹의 주력 타격대이자, 철갑기마단인 맹호단.
그들은 무림맹의 위용을 드높이는데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번 혈궁과의 전투에서도 가장 최전방에서 그들을 뚫고 들어갔다.
물론 중간에 후퇴를 해야 했지만, 그들은 그 전투에서 모두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한 이들이었다.
오히려 장렬히 전사하지 못한 것에 분통을 터뜨리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그들의 성정은 과격했다.
그런데 뭐?
산적 나부랭이들과 손을 잡자고?
자신의 눈에 흙이 들어와도 그럴 일은 없다.
웅성웅성.
벌집을 건드려놓은 듯 서로 옆에 있는 이들과 의견을 교환했다.
대체로 그들의 생각은 비슷했다.
어떻게 저급한 흑도의 무리와 연합을 구축한다는 말인가.
임요성은 말없이 그들을 쳐다봤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필요하면 그 누구라도 손을 잡는 관료 세계나 황궁과는 달랐다.
이들은 자신이 백도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진 자들이었고, 명예에 죽고 사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강호에 나와 본 것은 보여주기식 명예였다.
남이 보면 명예를 지켰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온갖 더러운 일을 일삼았다.
한마디로 그들이 말하는 건 일반적으로 말하는 명예가 아니었다.
바로 체면이었다.
체면을 구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곳에서는 체면을 차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일은 체면을 차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안 그런 이들도 있겠지.
하지만 극히 드물었다.
‘흠.’
임요성이 내심 답답함을 느낄 때였다.
“잠깐. 내 생각을 먼지 이야기하리다.”
모용천이었다.
“우선 나는 그들의 제안에 긍정적인 편이오.”
“맹주님!”
맹호단주 복양이 발끈했다.
“들어보시오. 그들은 호랑이요. 일단 당장 목숨을 위협할 호랑이는 몰아내야 하지 않겠소? 호랑이를 쫓기 위해 늑대 무리와 잠시 손을 잡을 뿐이오. 호랑이를 몰아내고 나서 늑대들은 충분히 우리가 처리할 수 있소.”
“하지만 맹주님. 아무리 급하다고 하나 그런 저급한 무리와 손을 잡는다니요. 강호의 동도들이 비웃을까 두렵습니다!”
역시 복양이 강하게 반발했다.
다른 이들도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그 모습을 보며 임요성이 살짝 한숨을 쉬었다.
패기만만한 충소광이 생각이 났다.
그는 흑도를 통일하는 데 한 달을 봤다.
그리고 지금 그 시간이 다 되었다.
‘과연 통일을 완수했을까?’
임요성도 드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자만이 아닌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실력도 충분했다.
그리고 그런 이라면 따르는 무리도 있을 것이고, 그들의 실력도 대단할 것이다.
그는 백도와 손을 잡지 않더라도 자기네들끼리도 혈궁과 맞서겠다고 했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
흑도는 몸을 사리지 않는다.
맹주의 한마디면 불나방처럼 혈궁에 달려들 것이다.
그리되면 전쟁이 끝난 후 민심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제갈백규가 나섰다.
“제 말씀을 들어보시죠. 꼭 흑도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전 북해빙궁과 야수궁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갈백규의 말에 다른 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북해빙궁과 야수궁, 그리고 포달랍궁은 새외 백도에 속하는 무리다.
“흠. 뭐 흑도보다는 새외라도 백도가 낫지.”
복양도 지금 이대로는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흑도라면 살이 떨렸다.
새외라도 백도라는 어감이 훨씬 편하게 다가왔다.
‘같은 땅에서 부대끼는 흑도보다, 새외 오랑캐라 볼 수 있는 백도가 낫다는 말인가.’
임요성은 내심 실소가 흘렀으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자신에게는 중원보다는 청풍표국이 중요했고, 표국을 지키는 거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포달랍궁은 지금 내분에 휩싸여 손을 벌리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하지만 야수궁과 북해빙궁은 다르지요. 3군사각주에 의하면 혈궁의 사자로 보이는 이들이 두 곳에 이미 들렀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지요.”
“허어. 그게 무슨 이유랍니까? 사실 백도라고는 하나 그들도 끊임없이 중원의 옥토를 탐내왔지 않습니까?”
감찰각주 계두청이었다.
“그건 알 수 없지만, 아마 마인들과 손을 잡는다는 걸 꺼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을 어찌 끌어들이자는 말이오?”
격하게 반대하는 이들에게 착잡한 마음을 느끼던 모용천이 물었다.
이 일은 자신도 억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길이 있다면 따라야 한다.
“그들은 중원의 풍부한 물자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과의 교역을 늘리고, 부족한 물자를 지원해주는 쪽으로 교섭을 해보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제국도 근처 소국들을 달래기 위해 적절히 물자를 지원해주지 않습니까? 저희도 그런 방법을 쓰자는 거지요. 우선 무림맹 사자를 보내 의견을 타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갈백규의 말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자 모용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럼 그건 군사께서 알아서 처리해주시오.”
제갈백규가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혈궁의 움직이오. 그들이 무림맹 지단들을 몰아내면서 정보의 공백이 생기지 않았소?”
“맞습니다. 어찌어찌 노 방주님께서 방도들을 다독여 가며 공백을 메우고는 있지만, 꽤 힘든 상황으로 알고 있습니다. 혈궁도들이 개방으로 보이는 거지만 봤다 하면 죽어라 팬다더군요. 그래서 중요한 정보는 얻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모용천이 눈을 감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게 제일 문제이긴 한데….”
그때 임요성이 나섰다.
“사천에 제가 한 번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음?”
모용천이 눈을 번쩍 뜨며 그를 쳐다봤다.
“정말인가? 임 대주가?”
“예. 사천은 이미 혈궁에 의해 장악이 된 상태지요. 아마 혈궁도들이 곳곳을 지키며 수상한 무림인들을 감시할 겁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 쪽 정보원들이 제대로 진입도 못 하고, 기존의 정보원들도 힘을 쓰지 못하는 형편이지요.”
제갈백규가 씁쓸한 얼굴로 덧붙였다.
“그래서 제가 가겠다는 겁니다. 다른 가주나 문주님들은 각자 영역을 지키기도 바쁘실 테니까요.”
“하지만 그건 임 대주 쪽 상황도 마찬가지 아니오?”
공석이었기에 제갈백규가 반공대를 하며 물었다.
“저희는 좀 다릅니다. 이번에 황궁과의 직접 거래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관군들이 저희 표국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혈궁의 행보를 봤을 때 관군을 건드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호. 그것참 다행이구려. 임 대주께서 나서주신다면야 걱정이 없을 것이오. 임 대주야말로 진정한 대협이시오!”
제갈백규의 얼굴이 밝아졌다.
임요성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대협이란 큰 협을 행하는 자. 저는 그리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일에 대한 대가는 충분히 가져갈 것이니까요.”
임요성의 말에 모용천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임 대주, 아니 임 총사. 그대 말대로 대협은 큰 협을 행하는 자일세. 하지만 그 협이란 것이 대가 없는 희생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 큰 협을 행할 배포와 용기, 그리고 의지가 있는 자라면 그는 대가의 유무를 떠나 대협이라 불릴 충분한 자격이 있네. 아무리 관군이 지키고 있다고는 하나 모두가 몸을 사리는 이때 나서주는 임 총사의 행위는 분명 대협이라 칭송받아 마땅하네.”
모용천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고, 그 자리의 모든 이들이 시선이 임요성을 향했다.
대협이 힘을 가진다면 그건 영웅일 것이다.
임요성은 이미 영웅의 길을 걷고 있었고, 다시 대협의 길까지 아우르려 하고 있다.
그래서 나이는 어리지만, 존경의 마음(敬)이 들었다.
그리고 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임요성은 어쩌면 자신들이 어찌할 수 없는 곳까지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그래서 두려운 마음(畏)이 들었다.
그렇게 그들의 눈에 경외(敬畏)가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