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88
청풍표국 최강식객 188화
188화. 사천으로(3)
다음을 기약하고 상문극이 나가고 아미파의 혜윤 사태가 들어섰다.
무척 초췌한 표정이었다.
“혜윤 사태를 뵙습니다.”
임요성이 먼저 인사를 했다.
상천십좌라는 명성을 얻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무림의 선배에 대한 예의였다.
“…듣기는 했습니다만 생각보다 아주 어리시군요. 아, 그렇다고 공자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단지 최연소 상천십좌에 올랐으며, 파천황이라는 광오한 별호를 가지신 분치고는….”
“하하. 예, 그런 얘기 많이 듣습니다. 별로 신경 쓰지 않으니 편히 앉으시지요.”
혜윤 사태도 초면에 쓸데없는 말을 한 게 아닌가 싶어 횡설수설하다가 부드러운 임요성의 표정을 보고는 안심하고 의자에 앉았다.
“이번에 많은 곤욕을 치르셨다고요.”
“예… 후우….”
혜윤 사태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호흡을 골랐다.
임요성은 그런 그녀를 배려하며 아무 말 없이 찻물을 데웠다.
어느 정도 감정이 가라앉았는지 그제야 혜윤 사태가 차를 따르는 임요성을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대단하구나….’
아마 이런 일이 없었다면 평생을 마주치지 않았을 사람이다.
지금은 죽고 없는 자신의 언니인 금정 신니가 상대했어야 할 거인이다.
나이는 자기보다도 한참 어리지만 중원 전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초강자.
강호팔문에 속하며, 사천의 패자를 자처하는 아미에선 왜 이런 젊은 고수가 나오지 않았을까.
자신들의 교육 방식에 문제가 있었을까.
아니면 여자라는 게 장애가 되었을까.
이런저런 상념을 하는 그녀를 임요성의 담담한 말이 일깨웠다.
“이제 감정이 가라앉으셨는지요?”
“아, 예. 미안해요. 잠시 지난 생각을 하느라….”
“제가 가져온 건 아니지만 차향이 괜찮더군요. 사실 전 차도 술도 잘 하진 않지만.”
“아직 성혼 전이시라 들었는데… 술도 여자도 아니라면 도박에?”
혜윤 사태가 장난처럼 물었다.
“하하. 도박은 손도 대본 적 없습니다.”
“그럼 어디에 마음을 두시나요? 역시 무공에?”
“아직 그런 생각을 해볼 정도로 여유가 생긴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요. 차차 생각해 보죠, 뭐.”
담담하지만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표정에서, 젊지만 여유가 느껴졌다.
왠지 이 사람이라면 기대어 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탁이 있어서 왔어요.”
“부탁이요?”
“네. 아시겠지만 사실 우리 아미파는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어요. 다행히 그 정기가 끊어지기 전에 탈출해서 명맥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지만요.”
아미파는 1차 전투가 끝나고 무림맹으로 와서 지내고 있었다.
내성 안에서는 생활하기 어려워 외성 외곽에 있는 빈 건물을 빌려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공짜일 수는 없다.
이 모든 호의는 언젠가 갚아야 할 것들이다.
제자들을 무보수로 무림맹 무사로 일하게 하든, 그들의 의뢰를 들어주든.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아미파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들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가장 중요한 건 아미파의 뿌리가 되는 아미산의 본산 건물을 되찾는 거예요. 하지만 그 일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지금 강남이 저리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도 자기 앞가림에 바쁜 것만 봐도 예상할 수 있죠.”
임요성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을 탓할 생각도, 탓해서도 안 되겠죠. 이 일은 우리 힘으로 해야 하니까.”
“…….”
“사천으로 가신다고 들었어요.”
“예. 아무래도 운신이 좀 편한 사람이 저밖에 없더군요.”
단지 운신이 편해서일까.
혜윤 사태는 이 젊은이가 영웅의 길을 걷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도 같이 움직이고 싶어요.”
그녀의 말에 임요성이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아미파에서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눈에 뜨일 텐데요?”
“알아요. 사천에 들어갈 때까진 따로 움직이는 걸로 하죠. 저희는 사천으로 들어가는 샛길을 알고 있어요. 아미파의 무인들만 알고 있는 길이죠.”
“아미파를 되찾으시려는 겁니까?”
“네. 하지만 당장은 어렵다는 건 알아요. 그래도 지금 우리가 스스로 되찾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면 나중에 전쟁이 끝나서 어떻게 우리 것이라 주장할 수 있겠어요?”
“훌륭하신 생각이군요.”
빈말이 아니라 진짜 그렇게 느꼈다.
아미파는 지금은 힘든 시간을 겪고 있지만 언젠가는 일어설 것이다.
이것이 명문의 힘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천의 반은 당가가, 반은 아미가 장악하고 있었죠. 지금 당가는 완전히 혈궁에 포섭되었다고 들었어요. 그럼 저희가 아미파의 속가 문파들을 찾아다니며 세를 모아보겠어요. 그리고 결정적일 때 그들의 뒤통수를 치는 거죠.”
“음…. 그런데 그게 쉽게 되겠습니까? 지금 개방도 정보를 모으는데 힘들 정도로 빡빡하게 통제한다던데?”
혜윤 사태도 동의한다는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물론 힘들겠죠. 하지만 뭉쳐 다니지만 않으면 오히려 더 눈에 띄지 않는 게 저희 아미파의 제자들이죠.”
아미파와 항산파와 같은 무림 문파에 속한 여승들은 머리를 삭발하지 않았다.
평상복을 입으면 그냥 일반인처럼 보인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럼 그냥 들어가시면 될 일인데, 저를 찾아오신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임요성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천에 얼마나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속가 문파를 찾아다닐 때 동행을 부탁드리고 싶어요.”
“동행이라….”
임요성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말씀은 그러니까….”
“맞아요. 지금 저희 아미는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어 그들에게 믿음을 주기 힘들어요. 하지만 파천황께서 우리와 함께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한마디로 얼굴 좀 빌려달라는 말이에요.”
혜윤 사태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의 미소에 임요성이 난처한 듯 볼을 긁적였다.
그 말은 파천황이라는 뒷배를 이용하겠다는 말이다.
“당연히, 공짜로 부탁드리는 건 아니에요. 그런 너무 염치가 없는 짓이죠. 만약 저희를 도와주시면 청풍표국이 사천에 분국을 세우는 데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어요. 다른 속가 문파들에도 말해서 앞으로 청풍표국의 사천 활동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드리라고도 얘기해 둘께요.”
그렇게 말한 혜윤 사태가 잠시 숨을 골랐다.
“물론, 이건 공자께서 저희를 도와주시는 데 대한 작은 성의고, 제가 내밀 수 있는 최강의 패로서 준비한 건… 바로 금정옥로예요.”
“…금정옥로?”
임요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혜윤 사태가 빙긋 웃었다.
“이런 말을 제 입으로 드리긴 뭣한데, 중원 5대 영악에 속하는 최상급 영약이에요.”
소림의 대환단(大還丹), 무당의 태청신단(太淸神丹), 화산의 자하신단(紫霞神丹), 그리고 사천당가의 만독보정(萬毒寶精), 마지막으로 아미파의 금정옥로(金頂玉露)가 중원 5대 영약이었다.
그제야 임요성은 강호 백서에서 다섯 영약에 대해 읽은 기억이 났다.
대중에 잘 알려진 대환단, 태청신단, 자하신단과는 달리 오히려 무림인들이 더 안달 내는 것이 바로 금정봉의 옥이슬이라는 아미파의 금정옥로와 만독불침을 만들어주는 당가의 만독보정이다.
“아실지 모르지만, 금정옥로는 오히려 무림인들이 더 환장하죠. 왜냐하면 일정 단계의 내공이 들어차면 그 이상 내공을 늘리는 건 외부의 힘으로는 거의 불가능하죠. 하지만 이 금정옥로는 얼마나 내공을 가지고 있든 1갑자의 내공 상승이 가능해요. 그리고 불문의 영약답게 마인들이 쓰는 마공에 면역이 있죠. 일종의 항마의 능력이 있다는 거예요.”
여기까지 듣고 나니 임요성도 마음이 살짝 동했다.
현재 자신의 내공은 5갑자.
아마 천무삼신 선배들과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혁련희의 10갑자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경지에서도 밀리는데 내공에서도 한참 수준이 떨어지니 사실 내공에 대한 갈증이 없다면 거짓말일 터.
비슷한 경지라면 내공의 차이가 곧 승부를 가른다.
“금정옥로는 금정봉의 이슬을 채취해서 만드는 영약으로 십 년에 겨우 작은 호리병을 채울 정도라고 들었는데, 그걸 저를 주셔도 괜찮겠습니까?”
임요성이 강호 백서에 읽었던 것을 기억해내며 물었다.
그의 말대로 금정옥로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깊은 동굴에서 수천 년 동안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공청석유에 착안해 만들어진 영약이다.
아미산의 주봉인 금정봉에서 우연히 공청석유를 발견했던 아미파의 역대 조사 가운데 한 명이 그 장소를 활용해 인위적으로 금정봉의 이슬을 받아서 만든 것이다.
물론 인위적이라 공청석유만은 못했지만, 단숨에 무림 5대 영약이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임요성의 의문에 혜윤 사태가 피식 웃었다.
“지금 아미파의 사정이 어떤지 아시잖아요? 이대로라면 아미파는 먼 훗날 문헌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사라진 문파가 되겠죠. 금정옥로야 우리만 건재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요. 이 정도가 아니라면 어떻게 파천황을 움직일 수 있겠어요?”
어지간한 일이라면 임요성도 대가 없이 도움을 주겠지만, 이번 일은 자신의 이름을 파는 대가였다.
아무리 금정옥로라도 쉽사리 결정하기 힘들었다.
고민하는 임요성에게 혜윤 사태가 물었다.
“혹시 내공의 증진에 있어서 동물의 영단이나 다른 방법을 취하지 않으셨나요?”
임요성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습니다. 그건 어떻게 아셨는지요?”
임요성의 내공은 혈담에서의 교룡의 영단과 혈강마검에 있던 정기였다.
그런데 그걸 혜윤 사태는 바로 꿰뚫어 본 것이다.
“훗. 무공은 당연히 공자께서 저보다 뛰어나시겠지만, 저희같이 수행을 겸하는 불문이나 도문의 제자들은 상대가 가진 내공의 성질에 민감하답니다. 지금 공자께서 가진 내공의 성질은 굉장히 흉포해요. 솔직히 이렇게 평온한 얼굴로 절 대하는 게 신기할 정도예요.”
임요성이 대답 없이 그녀를 쳐다봤다.
사실 그도 느끼고 있는 사실이다.
자신의 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내공이 얼마나 많은 피를 원하고 있는지를.
“아마 그만큼 정신력이 대단하신 거겠죠. 아무튼 그렇다면 이 금정옥로가 큰 도움이 되실 거예요.”
혜윤 사태가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중원 5대 영약 중 대환단과 함께 가장 항마력이 깊고 안정성이 높은 영약이라 공자의 내공이 가진 흉포함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줄 거라 확신해요. 그리고 이미 경지에 다다른 무인에게 있어서 가진바 내공의 융합이 가장 잘 어우러지는 게 바로 금정옥로에요. 그건 5대 영약 중 최고지요. 그래서 무림인들이 기를 쓰고 금정옥로를 원한답니다. 지금 화경의 단계시죠?”
“…….”
“아무튼 혹시 앞으로 더 올라가시려면 내공의 양보다는 질을 더 신경 써야 할 거예요. 왜 현묘할 현을 써서 현경(玄境)이라고 하겠어요?”
거기까지 말하자 임요성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사양치 않고 받겠습니다.”
임요성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개인적으로도 성취를 얻을 수 있고, 사천 내에 청풍표국의 분국을 편하게 개설할 수 있는 기회다.
얼굴 몇 번 내밀어주고 그 정도면 남는 장사다.
혜윤 사태가 그제야 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
이렇게 해도 거절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고마워요.”
혜윤 사태도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나가고 임요성은 홀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스스로 뭔가 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표국의 발전을 생각해 이런 번거로운 일에 흔쾌히 응하는 것을 보면.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임요성이 차를 마시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푸른 하늘에 유유히 떠가는 구름이 꼭 자신처럼 느껴졌다.
이제 겨울이 지나가고 아직 때 이른 봄바람(靑風)이 불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