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89
청풍표국 최강식객 189화
189화. 사천으로(4)
무림맹에서 일주일 정도 기다리던 임요성은 더 지체할 수는 없어 사천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때까지도 환희궁 대공녀의 소재는 파악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꼭꼭 숨었을 것이다.
하지만 파천황이 노리고 있다는 소문을 흘렸으니 그녀도 섣불리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아미파는 따로 길을 잡아 이동하기로 했다.
“천하전장을 통해 수시로 알려주시오.”
“알겠습니다.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시길.”
사천으로 향한 이후엔 아마 바로 청풍표국으로 갈 것이다.
신창문은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몰라 인사를 해두었다.
임요성은 그런 신창문의 전송을 받으며 말에 몸을 실었다.
개봉에서 출발하여 서안, 한중을 거쳐 사천의 성도로 들어가는 일정으로 대략 두세 달 정도가 소요된다.
하지만 그렇게 느긋하게 갈 수는 없었다.
지금도 사천의 상황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무림맹 수뇌부들이 있으니.
우선 천하전장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지부마다 말을 바꿔 탈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었다.
임요성과 여산홍, 풍귀는 말을 타고 가다가 경공을 펼치고, 다시 지루하다 싶으면 말을 타는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중간중간 객잔을 이용해서 충분히 몸을 풀어주면서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했다.
사천으로 가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도 했거니와 사람이 소도 아니고, 며칠을 온종일 경공만 펼치며 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열흘 가까이 이동하니 사천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여산홍은 색색의 실로 수놓아진 흰 비단옷에 장포를 걸치고, 옥 동곳으로 상투를 고정했다.
그 모습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딱 소상인으로 보였다.
그 뒤에 임요성이 튀지 않는 무복과 싸구려 철검을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상인의 호위무사였다.
임요성의 파천아조는 풍귀가 등에 메고 은신했다.
그렇게 무사히 사천으로 들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어이! 거기! 거기 잠깐 서보시오!”
아예 대놓고 가슴팍에 血(혈), 등 뒤에 宮(궁)을 새겨넣은 흑의 무인이 다가왔다.
“무인이시오?”
날카로운 눈매의 혈궁도가 여산홍을 아래위로 훑었다.
어차피 임요성은 호위로 분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눈에 비친 여산홍은 겉으로는 일반인처럼 보이나 내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순간 여산홍도 살짝 놀랐다.
자신도 이제 초절정의 영역이라 어느 정도는 기도를 감출 수 있었다.
한마디로 눈앞의 이 혈궁 무인도 꽤 높은 경지의 무인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침착하게, 살짝 어리숙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니오만? 그건 왜 물으시오?”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시오.”
꽤 살벌한 기운을 내뿜자 임요성이 앞으로 나섰다.
“자네는 뒤로 물러서 있게.”
여산홍의 말에 임요성이 마지못해 물러나는 척 뒤로 물러났다.
혈궁도는 임요성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하찮아 피식 콧방귀를 꼈다.
딱 그 정도의 기도만 내뿜었기 때문이다.
“난 무인이 아니라 상인이오만.”
“그런데 느껴지는 기도가 상당한데?”
혈궁도가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그런 얘기 많이 듣소. 하지만 어릴 적부터 부친께서 좋은 영약을 많이 먹여서 내공만 많은 거요. 무림인들에게 꿀리지 말라는 뜻에서 그리하셨지. 난 노주(瀘州) 쪽에서 작은 포목점을 하고 있소.”
“흠. 어디서 오는 길이시오?”
“포목점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워 더 손댈 게 없나 알아보다가 하남의 허창(許昌)에 연초가 유명하다고 해서 한 번 다녀와 봤소. 요즘 연초 피우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말이오.”
“흠.”
“한 몇 달 허창에서 사람들 만나고 오는 길인데, 그동안 분위기가 많이 변한 것 같소. 당신은 누군데 그리 묻는 거요?”
여산홍의 말에 대꾸 없이 혈궁도가 인상을 찌푸렸다.
“됐고, 호패나 한번 봅시다.”
여산홍이 입맛을 다시며 호패를 내밀었다.
호패는 출신지와 그의 이름이 적혀 있다.
사천 노주 출신의 여산홍이라는 글이 새겨진 호패를 볼 때 옆에서 손을 흔들며 한 중년인이 다가왔다.
“여~ 여 점주! 여기서 또 보는군. 허창에 다녀온다더니 일은 잘 봤는가?”
“하하. 안녕하십니까, 천 대인. 몇몇 연초 상인과 안면은 터 두었습니다. 요즘 중원 상황이 뒤숭숭해서 좀 여유가 생기는 대로 다시 찾기로 했지요.”
“아? 그런가? 연초 팔아보고 잘되면 나도 좀 끼워주게.”
“하하, 대인이야 지금도 대단하시지 않습니까?”
“허허. 이 사람. 늘 잘되고 있을 때 안될 때를 대비해야지.”
“하하.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노주야 술이 유명하지 않나. 거기 술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노주 상단과 내가 친분이 좀 있는데. 왜 술을 취급하지 않고?”
“하하. 제가 술을 잘 못 마셔서요. 주인이 술을 못 마시는데 술을 취급해서야 되겠습니까?”
“딴엔 그렇군. 그런데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아, 그게 이분께서 계속 꼬치꼬치 캐묻길래….”
여산홍이 말끝을 흐리며 혈궁 무사를 쳐다봤다.
“아, 이쪽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이오. 난 천가상단의 단주 천주엽(千朱燁)이라 하오만.”
천가상단은 사천의 성도부(成都府) 바로 아래 있는 미주(眉州) 지방에서 꽤 알아주는 상단이었다.
사천에서 제법 이름이 있는 상단이라 혈궁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했소.”
그렇게 고개를 꾸벅 숙인 혈궁 무인이 여산홍을 힐끗 쳐다보고는 뒤쪽으로 멀어져갔다.
살수 출신인 여산홍이 뭘 알겠나.
대충 가진표가 미리 조언해 준 걸 읊었을 뿐이고, 천주엽은 상인답게 적절하게 받아치며 상황을 모면했다.
멀어져간 무인은 다른 사람을 또 그런 식으로 찔러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자신들과 거리가 멀어지자 천주엽이 신호를 주었다.
“자자, 여 점주. 저리로 가서 차나 한잔합니다!”
천주엽이 이끌고 간 곳에는 꽤 큰 마차가 서 있었다.
따로 가지고 온 마차로 보였다.
넓은 내부가 세 명이 들어서도 넉넉하게 남을 정도였다.
“자, 이 마차는 표면에 진법이 설치되어 있어 내부의 소음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어 있네. 편하게 말해도 되네.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은혈비도 자네 살아있었던 건가?”
여산홍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천가 상단은 과거 여산홍의 아버지 덕분에 상단의 위기를 넘겨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여산홍의 살수단이 와해되고, 그를 계속 수소문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천에서 동쪽 끝, 수천 리 떨어진 소주에서, 그것도 이름까지 바꾼 그를 찾을 길은 요원했다.
하지만 여산홍은 아무런 내색도, 생색도 내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이제 살수단의 후예가 아닌 파천황의 호법일 뿐이다.
“감사합니다. 대인. 대인이 아니었다면 꽤 큰 곤욕을 치를 뻔했습니다.”
물론 그 곤욕이란 게 사천에 들어서자마자 사고를 치는 것일 뿐, 생명에는 전혀 위협은 없었을 테지만.
“무슨 말을 그리하나. 자네 아버지와 자네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텐데.”
잠시 머뭇거리던 여산홍이 임요성을 소개했다.
“인사하시죠. 제가 주군으로 모시는 분입니다. 강호에선 파천황이라고 불리는 분이시지요.”
“어… 음? 그… 파천…황?”
어버버거리는 천주엽을 향해 임요성이 포권을 취했다.
“임요성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 말대로 별호는 파천황이라고 하지요.”
“커억! 콜록콜록!”
천주엽이 헛바람을 들이키다 사례가 걸려 기침을 해댔다.
“저, 정말 파천황이시란 말이오? 그, 소주에 있는 청풍표국의 총사로 계신…?”
“맞습니다. 제가 파천황입니다.”
“이, 이럴 수가! 여, 영광입니다. 이런 분을 몰라뵙고….”
천주엽이 어쩔 줄 몰라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하자 임요성이 손을 내저었다.
“너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과거의 인연이지만 잊지 않고 이 친구를 챙겨주셔서 제가 감사드립니다.”
“허허. 이거 참. 서신에 언질이라도 좀 주지 그랬나.”
천주엽이 여산홍을 보며 타박 아닌 타박을 하자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시국이 이래서. 혹여 중간에 탈취라도 당하면 대인께서 더 곤욕을 치르셨을 겁니다.”
“음. 하긴. 그것도 그렇군.”
“그런데 여기 분위기가 왜 이렇습니까?”
“말도 말게. 지금 혈궁도들이 무림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이리저리 찔러보며 귀찮게 군다네.”
“그 정도란 말입니까?”
“그렇다니까. 물론 일반인은 일절 건드리지 않네만, 조금이라도 내공의 흔적이 보이거나 무인처럼 보이는 사람은 괜히 시비를 걸고 있지.”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까?”
둘의 대화를 듣다가 옆에서 임요성이 묻자 그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미는 멸문했고, 당가는 그들의 손아귀에 떨어졌지요. 그리고 청성도 혈궁의 손아귀에 떨어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음….”
이미 들은 이야기긴 했지만 실제로 사천에 와서 들으니 더 실감이 났다.
“휴. 그 흉악한 혈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일 만한 세력이 지금 사천에 없습지요. 관은 일반 백성만 건드리질 않으면 애당초 무림 일에 신경을 쓰지 않으니 무림인들만 죽어납니다. 그나마 저희 같은 중간에 끼인 상단이나 표국, 전장 이런 쪽은 좀 낫지요. 아! 요즘은 거지들 잡는다고 난리도 난리도 그런 난리가….”
천주엽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지말입니까?”
여산홍이 물었다.
“그렇다네. 개방이 무림맹의 정보문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 보니 개방으로 보이는 거지들은 아예 보이자마자 초주검을 만들어버리네. 아니면 보이지 않는 데서 죽여버리는 경우도 많고. 무림인들이야 개방을 신경 쓰지, 일반인 입장에선 거지야 죽어 나가든 말든 신경도 안 써.”
“사천 무림은 완전히 혈궁에 먹혔다고 보면 되겠군.”
임요성이 중얼거리자 천주엽이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무림인들과의 거래는 줄이고, 일반인, 또는 관과의 거래에만 집중하고 있지요. 괜히 나중에 중간에서 저희 같은 상인들만 죽어날 수 있으니까요.”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임요성도 여산홍도 얼굴이 어두워졌다.
“자자, 우선 저희 상단으로 가시죠. 어차피 사천에서 일을 보시려면 성도로 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대인. 그렇게까지 폐를 끼칠 수는 없지요.”
“허허. 서운하네. 그런 말 마시게. 나도 은혜를 갚을 기회는 줘야지.”
“으음….”
여산홍이 난처해하자 임요성이 중간에서 나섰다.
“며칠 정도는 괜찮지 않겠나. 여기서 그냥 내리면 더 이상하게 볼 것 같으니 일단 성도로 가서 다시 거처를 잡든가 하지.”
임요성의 말에 여산홍도 마지못해 따르는 척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며칠만 신세를 지겠습니다.”
“그래, 그래. 잘 생각했네.”
천주엽이 입이 찢어졌다.
그는 여산홍에 대한 의리도 의리지만 파천황과 인연을 맺어두고 싶은 마음이 컸다.
중원과는 멀리 떨어진 사천이나 파천황의 이름값을 무시할 곳은 없다.
차제에 청풍표국의 분국을 만드는 데 일조를 하거나, 아예 자신이 표국도 하나 만드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누가 파천황이 뒤에 있는 표국을 공격하겠나.
물론 혈궁이 물러나고 난 다음의 일이긴 했지만, 지금 이렇게 인연을 맺어두면 분명 후일이라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보게, 성도의 우리 상단으로 가세나.”
“예, 대인.”
마차에 난 쪽문으로 마부에게 말하자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