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94
청풍표국 최강식객 194화
194화. 황묘흑묘(4)
내공이 없음에도 어둠을 뚫고 나오는 시린 안광이 보통이 인물이 아니란 걸 나타냈다.
“음… 전 파천황이라고 합니다. 들어보셨을지 모르겠지만.”
“잠깐, 파천황이라면…? 들은 기억이 나는군. 젊은 나이에 상천십좌에 앉은 강남에 있는 표국의 식객이라는?”
“맞습니다.”
“허허. 이럴 수가.”
그의 등장에 웅성거릴 만도 했지만, 아무도 내색하지 않았다.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 모두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감출 수 없었다.
“혹시 혼자 온 것이오?”
“제 부하랑 같이 왔습니다. 수하가 잠시 시간을 끌고는 있지만 오래 있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와주어서 고맙소. 난 청성파의 장문인 만공이라 하오. 그런데… 어떤 복안이 있어서 온 것이오?”
“아직은요. 이 길로 개방의 노준경 방주님과 논의해 볼 생각입니다.”
“그렇군…. 혹시 아미파는 어찌 되었소?”
“아미파는… 혜윤 사태를 포함한 몇몇 제자를 제외하고는 장문인을 포함, 모든 제자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허어… 신니께서 결국….”
만공 선사가 머리를 짚었다.
“후우. 내 그날 그들을 도우러 가려 했으나 일시에 산공독에 중독되어 갈 수가 없었소….”
그의 얼굴에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아, 이런 얘기가 중요한 게 아니지. 혹시 저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알고 있소?”
“아마,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당가처럼 실혼인을 만들어 정파와의 전투에 선봉으로 세울 생각 같습니다.”
임요성의 말에 모두 얼굴 굳어졌다.
“차라리 그럴 바엔 여기서 죽는 게 낫겠군.”
서슬 퍼런 만공의 말에 임요성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당했다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살아계시니 방주님과 상의를 해서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후후. 말씀만이라도 고맙소.”
그가 내공이 없어 파리하게 야윈 손을 내밀자 임요성이 굳게 잡아주었다.
잠시 눈을 맞춘 임요성이 재빨리 은신술을 펼치며 뇌옥을 나갔고, 만공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제자들은 듣거라. 만약 저 청년이 우릴 구해준다면 좋은 일이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실험체로 끌려가려 할 때 스스로 혀를 깨물어 자결토록 하라.”
실로 섬뜩한 말이었지만 그 안에 있는 모든 제자는 결연히 답했다.
“장문인의 명을 받듭니다.”
그들은 과거 변황대전 때도 가장 선봉에 나서서 싸웠던 구파일방의 한 축이었다.
지금은 그때의 후유증으로 이렇게 고꾸라져 있었지만, 정기마저 잃은 건 아니었다.
만공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 * *
“뭣이! 침입자가 있었다고?”
“예. 하지만 위사들이 빨리 발견하고 쫓아서 별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보고를 하는 혈궁 무사, 혈천단의 단주 명계진이 고개를 숙였다.
“별일이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그자를 잡아야 일이 끝나는 것 아닌가!”
“죄송합니다. 그자의 경공이 워낙 빨라 잡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경공?”
옆에서 구연초가 중얼거렸다.
“아마도 개방의 거지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개방에는 발 빠른 거지들이 많으니까요. 요즘 우리한테 안 걸리기 위해 일반 무복을 입고 다닌다는군요.”
“후우. 그 거지새끼들을 일간 날을 잡아서 싹 죽여버려야 하는 건데.”
짜증을 내는 혁련희 옆에서 구연초가 물었다.
“혹시 인질들이 있는 뇌옥에는 별일 없었소?”
“예. 저도 혹시나 해 가장 먼저 그곳으로 향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하긴 들어갔다면 그냥 나왔을 리는 없으니까. 아무튼 경계가 뚫렸다는 것이니 산문 쪽 대원들에게 좀 더 꼼꼼히 근무를 서라고 해주시오.”
“알겠습니다.”
혁련희는 옆에서 고개만 끄덕일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군사가 있으니 머리 쓸 일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나가고 구연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궁주님. 차라리 이대로 그냥 사천 지방만을 다스리는 것은 어떠신지요?”
“음? 사천만을?”
혁련희가 구연초를 힐끗 쳐다봤다.
“예. 사천 지방은 예로부터 사람이 많고 땅이 기름진데다가 외침을 막기 좋아 수성에는 늘 최고의 입지를 자랑했지요. 차라리 사천을 혈궁의 근거지로 천명한다면 무림맹에서도 쉽게 쳐들어오지 못할 겁니다. 딱 지금처럼 말입니다.”
사실 구연초의 말이 현실적이었다.
이미 당가는 무너지고, 청성과 아미도 털린 마당에 무림맹은 복수 외에는 다른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문파와 세가들이 자신들의 영역 수성에 혈안이 되어 있어 굳이 사천을 칠 무림맹을 도와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러니 사천 무림을 아예 혈궁의 근거지로 선포하고 수성에 힘을 쏟는다면 혈궁은 나날이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혈궁주는 야심가였고, 과거 묘족이 중원 무림인들에게 멸족당한 것을 한으로 삼고 있었다.
겉으로는 천하통일, 중원정벌이 기치를 내걸었으나 실상은 그 자신의 개인적인 은원이 이 전쟁의 가장 큰 동기였다.
당연히 구연초의 말이 들어올 리가 없다.
“그 얘긴 못 들은 걸로 하지. 자네는 지금처럼 어떻게 하면 중원 무림을 초토화할지에만 머리를 쓰면 되네.”
구연초 역시 혁련희의 뜻을 알고 있다.
그래서 혹시 하는 마음에 말을 꺼내 봤지만, 역시 주군의 생각은 달랐다.
하지만 자신은 주군의 생각이 어떻다고 해도 그것을 실현하는 사람이다.
“명을 받듭니다.”
부복한 구연초를 잠시 쳐다본 혁련희가 다시 고독을 만들기 위해 일어섰다.
* * *
임요성이 풍귀와 청성파에 잠입하는 동안 여산홍도 바삐 뛰어다녔다.
천하전장과 묵천의 사천 지부장, 그리고 하오문과 환희궁의 사천 지역 담당을 모두 한자리에 모았다.
다른 사람의 눈에 뜨일 것을 염려하여 아예 천하전장 사천지부의 특실로 그들을 불러 모았다.
어차피 그들에게 있어서 밤은 다른 이들이 낮보다 오히려 바빴다.
“주군을 뵙습니다.”
네 사람이 동시에 임요성을 보며 인사를 올렸다.
임요성의 눈이 세 사람을 지나 가장 옆에 있는 한 여인에게 눈이 닿았다.
“그쪽은…?”
“예. 전 사천의 환희궁도들을 관리하는 환희궁 사천 지역장입니다.”
남색 저고리에 다홍색 치마를 입고, 쪽 찐 머리를 한 그녀는 뭔가 연륜이 느껴지면서도 겉으로는 자신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연배로 보였다.
환희궁이 주안술을 연마한다는 걸 보자면 꽤 나이가 많으리라.
“아, 사천 지역장이 있으셨구려?”
“네. 월향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소공녀 님께 서신을 받았습니다. 적극적으로 공자님을 보필하라는.”
고개를 끄덕인 임요성이 조금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사내에게 닿았다.
“인사 올립니다. 전 성도부에서 창고지기를 하는 하오문 사천 지역장 고달수입니다.”
“음. 고달수 지역장. 이번에 하오문 지부장들이 다 죽고 나서 편제는 어떻게 되었소?”
“예. 우선 천하전장의 지부장이 같이 관리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만 다르고 지금까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가장 위에 정보를 처리하고 분류하는 사람만 바뀐 것이니 혼란은 없을 것이다.
임요성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약간 두툼한 체격에 꽤 있어 보이는 옷을 걸친 사내였다.
“인사드립니다. 천하전장 사천 지부장 당호식입니다.”
“반갑소. 그런데 성이 당씨인데 혹시 당가와 연관이 있소?”
임요성이 묻자 당호식이 끄덕였다.
“맞습니다. 사실 전 10년 전만 해도 당가에서 무사단의 조장을 했었지요. 하지만 대주랑 뜻이 맞지 않아 당가를 나와서 떠돌다가 전장에 들어오게 되었지요. 당시 천하전장의 사천 지부장이 저랑 좀 친했거든요.”
“당가는 꽤 폐쇄적이라고 들었는데. 무공을 전폐 당하거나 하진 않았던 모양이오?”
“예. 사실 대주급 정도 되어야 당가의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울 수 있거든요. 조장급이나 일반 무사들은 나가도 큰 제재가 없습니다. 물론 무기나 이런 것들은 반납해야지요.”
“그럼 언제부터 지부장이 된 거요?”
“대충 삼 년쯤 되었나? 이전 지부장이 큰 상처를 입어서 어쩔 수 없이 제가 물려받았죠.”
이어서 묵천의 사천 지부장 공유단이 인사를 했다.
날카로운 눈매에 날렵한 몸의 소유자였다.
임요성이 보기에 절정에 오른 고수였다.
“그대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소?”
“예. 저는 무림맹 사천 지단 소속 무사대의 대주를 맡고 있습니다.”
“음. 좋군.”
묵천은 이렇게 요소요소에 스며 들어가 있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아마 오랫동안 묵천군이 부재중이라 모두 각자도생 비슷하게 살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래, 요즘 무림맹 지부 소속은 어떻소?”
“아시겠지만,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저번 1차 전투 때 참가해서 반 이상이 죽었고, 조장급 이하 일반 무인들은 그대로 무림맹 본단으로 따라갔지요. 괜히 여기 있어 봐야 잡혀 죽을 게 뻔하니까요. 조장급 이상 저와 부지단주, 지단주는 신분을 숨기고 은신해 있습니다. 가끔 개방의 노준경 방주님과 만나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고 있었지요.”
공유단을 마지막으로 모든 이들과 인사를 나눈 임요성이 서진기에게 들은 사실을 공유했다.
“그렇군요. 잘됐습니다. 어차피 살수 새끼들은 하나라도 없어지는 게 이득이죠.”
라고 반응하는 당호식이 있는가 하면,
“이번 기회에 혈궁의 손발을 잘라낼 수 있겠군요.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라는 공유단도 있었다.
“그동안 사천 살문은 아무리 살문이라도 그 행태가 아주 모질었지요. 살수냐 아니냐를 떠나 그런 이들을 빨리 없어지는 게 사천 무림을 위해 좋을 일입니다. 저희 아이 중에도 그들이 자체적으로 행하는 야유회에 참석했다가 호되게 당해서 이들이 있지요.”
점잖게 말하는 월향이었으나 그동안 맺힌 게 많은 듯한 표정이었다.
하오문의 지역장 고달수는 그냥 묵묵히 듣기만 할 뿐이었다.
어차피 자신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강호에선 늘 입을 열지 않는 것이 좋다는 건 밑바닥 하오문 생활을 하며 지겹도록 보고, 듣고, 겪은 일이었다.
“좋소. 어차피 움직이는 건 나와 일행들, 그리고 살수들이오. 그대들은 최대한 사천 살문의 살수들이 어디에 있는지, 특히 수뇌부들의 소재지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시오. 알겠지만 그들은 하나라도 놓치면 사천에 있는 그대들이 골치가 아파질 테니 하나라도 빼놓지 않고 찾는다는 각오로 움직여 주길 바라오.”
그리고 시선을 당호식에게 옮겼다. 모두의 눈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활동비가 모자란다면 저기 당호식 지부장한테 달라고 하시오. 내 개인 구좌에서 필요한 만큼 빼 쓰면 될 것이오. 아, 그리고 혹시 모르니 광야문의 소문주가 한 말이 사실인지 확실하게 다시 한번 더 조사해보시오.”
“명을 받듭니다.”
네 명이 동시에 인사하고 각자 시차를 두고 천하전장을 빠져나갔다.
전장이란 곳은 어차피 누구나가 들락날락하는 곳이었기에 이렇게 은밀히 만나기에 이곳만큼 좋은 곳도 없었다.
물론 그것은 임요성이 천하전장의 실질적 주인이나 마찬가지인 이유도 있었지만.
그렇게 임요성은 혈궁이 장악하고 있는 사천 무림에 곳곳에 쐐기를 끼우고 있었다.
아주 미세한 틈에 끼워둔 쐐기 하나.
그게 쌓여서 여러 개가 되고, 훗날 쐐기를 통해 거대한 암벽을 쪼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