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2
청풍표국 최강식객 002화
2화. 목은 두고 가게나 (1)
타닥. 타닥.
어느 작은 대장간 마당에 모닥불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바라보는 흑의 사내가 있었으니.
무심한 눈은 용의 그것을 연상케 했고, 짙은 눈썹에 각진 턱이 인상적이다.
한 일 자로 꾹 다문 입술에 듬직한 인상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굳건한 무인의 기풍을 풍기도록 만들었다.
육 척에 이르는 키에 호리호리하지만, 꽉 짜인 근육이 무복을 입고 있음에도 그 단단함이 겉으로 드러났다.
과거 그를 일컫는 흑표라는 별호가 그를 위해 존재하는 단어인 것처럼.
이제부터 자신의 이름은 임요성(林曜星)이다.
무림이라는 숲에서 밝게 빛나는 별이 되라는 뜻에서 황제가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
그전까지 흑표(黑豹)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불량인으로서의 별호는 모두 내려두었다.
황제는 이제 흑표라는 자는 죽었다고 측근들에게 말할 것이라 했다.
그와 함께 흑표라는 불량인으로서 이루었던 모든 것들은 과거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될 것이라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법. 이제는 새롭게 황제의 측근이 된 금의위가 그의 곁을 지켜줄 것이다.
적일 때는 가장 힘든 상대였던 만큼, 한편이 되었을 땐 가장 믿음직한 아군이기도 하다.
어차피 자신도 그게 좋았다.
새롭게 강호에서 시작하는 지금, 흑표라는 신분에 얽매이는 것은 자신도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구의 어머니가 소주에 있다고 했던가.’
황제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불량인 시절 몇 명의 동료들끼리 자신들이 죽으면 누군가 이 일이 모두 끝나고 살아남는 이가 있으면 가족들을 찾아가서 소식을 전해주기로 한 일이 있었다.
108명으로 이뤄졌던 불량인은 거의 대부분 고아 출신이었고,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몇몇 동료들은 집이 있는데도 가난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불량인을 모집하는 이에게 넘겨진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늘 시간이 남을 때면 가족들에 대한 얘기를 하곤 했다.
모두 어릴 적에 들어왔기에 했던 말을 계속 되풀이했지만, 가족이 없는 다른 이들은 그들의 말을 아무도 지겨워하지 않고 들어주었었다.
곽구. 자신과 제일 친한 이였다. 불량인 중 타격대이자 암살대 소속이었던 그의 어미는 소주에 있는 기루의 기녀였다고 한다.
그러다 좋은 남자를 만나 애가 생겼고, 그렇게 기녀를 그만두고는 자신을 낳고 한동안은 잘 살았는데, 도박과 술에 빠진 아비로 인해 집안이 엉망이 되고, 급기야 자신이 아비의 손에 팔려 왔다는 그냥 흔한 얘기였다.
지금에 와서는 증오나 원망보다는 그 누구보다 다정하고 따뜻했던 어머니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은 게 다라며, 아련한 눈으로 말을 하던 그였다.
혹여 자신의 어미를 만난다면 자신은 한 번도 당신을 원망해본 적이 없었다고, 낳아줘서 고마웠다고 그 말만 전해주길 바랐다.
자신이 죽고 임요성이 살게 된다면 한번 찾아가서 그 말을 전해달라고,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그녀를 조금만 살펴달라고.
단지 그것뿐이었다.
20년이나 지난 지금 별 의미가 있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게 안심이 되었다.
그것마저도 없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너무 무의미할 뻔했으니까.
털썩.
“결국 떠나는 거냐?”
잠시 상념에 젖어있던 임요성의 옆에 키 작은 노인이 앉았다.
“…그냥 가려는 사람 왜 불렀습니까?”
그는 황자의 곁에서 그동안 수많은 무기를 만들어 오던 천하제일의 야장(冶匠)이라 불리는 황석환이었다.
“흥. 매정한 놈 같으니. 그동안 쌓인 정이 있는데 그리 못되게 말해야 속이 편하겠냐.”
“그냥 조용히 떠나려 했는데 굳이 불러서 싱숭생숭하게 만드니 그렇지요.”
이별의 어색함을 피하려 말없이 떠나려 한 임요성이 결국은 맞닥뜨린 어색한 상황에 괜스레 투덜대자 황석환이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면 네 녀석이랑 본 지도 벌써 20년은 되었군. 그사이 너나 나나 많이 변했어.”
그 말은 고향에서 떠나와 아들을 못 본 지도 벌써 20년이 되었단 말이었다.
그동안 버는 족족 돈은 부쳤기 때문에 돈 걱정은 안하리라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너무 오래 보지 못해 이제는 오히려 앞에 있는 청년이 더 아들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많은 것이 변했죠…. 무엇보다 그 많던 불량인들이 다….”
황석환이 임요성의 말을 끊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그만하면 됐다. 얼마나 더 마음에 짐을 지려 하는 게냐.”
“…저마저 잊어버린다면 누가 있어 그들을 기억해주겠습니까.”
“…….”
두 사람은 말없이 타오르는 모닥불만 응시했다.
그때 황석환이 뭔가를 불쑥 내밀었다.
“갈 때 가더라도 이거나 가지고 가거라.”
그가 내민 것은 칼이었다.
“이건…?”
임요성의 눈이 반짝였다.
“녀석. 칼을 보니 눈빛이 달라지는구나. 네 녀석이 평소 잘 쓰던 형태로 너한테 맞게 새로 만들어봤다.”
황석환이 내민 칼을 임요성이 물끄러미 쳐다봤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그리고 목숨을 지켜준 칼을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 * *
“인석아! 또 부러뜨렸어?”
“너무 뭐라 하지 마, 노야. 훈련과 실전은 확실히 다르더라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임요성이 투덜댔다.
“…많이 힘든 게야…?”
노인, 중원 최고의 야장이라 불리는 황석환이 측은한 눈길로 임요성을 바라봤다.
지옥 같은 수련을 마치고 이제야 불량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스무 살, 아직은 솜털이 남아있는 청년.
얼마 전 스승을 잃고 더 목숨을 도외시하고 날뛰는 그였다.
이 청년을 볼 때면 황 노야는 늘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후우. 그래서 말인데, 좀 다른 검을 만들어 줄 수 없을까?”
“…그게 뭔 말이냐?”
“우린 수가 적은데 적은 압도적으로 많으니 일대 다수로 싸우는 경우가 많이 생기네. 그리고 갑작스러운 습격도 많고. 그래서 검 하나로는 부족해. 그렇다고 두 개를 들고 다니자니 너무 눈에 띄고, 소지하기에도 불편하고.”
“비수는 뒀다가 뭐하냐?”
“에이, 비수야 기본으로 갖고 다니지. 그런데 뭔가 허점을 팍! 하고 찌를 수 있는, 뭐 그런 거 있잖아? 에이, 그런 건 노야가 생각해야지. 그리고 검을 좀 빨리 뽑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내가 하는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투덜거리며 일어난 임요성이 뒤로 돌아서며 손을 흔들었다.
“암튼 다시 올 테니 만들어 둬.”
“하! 이 미친놈이!”
황 노야가 뒤에 대놓고 욕설을 날렸지만, 곧바로 눈이 가라앉았다.
‘허점을 찌를 수 있으면서도, 검이 하나인 것을 보완할 수 있는…. 그리고 발검의 속도를 높일 수 있다면 금상첨화.’
황 노야는 이후 한동안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임요성도 그를 방해하지 않고 평소 쓰던 검을 썼다.
그리고 몇 달 뒤.
“자.”
바닥에 툭 던져지는 검. 전체 길이는 대략 두 척 반 정도로 평범한 검보다는 한 뼘 정도 길이가 짧았다.
스릉.
맑은 소리를 내며 빠져나오는 것은 쭉 뻗은 중도(中刀)였다.
“어? 길이가 좀 짧네? 게다가 검이 아니고 도?”
임요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검을 쓴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황 노야가 검이 아닌 도를?
검(劍)과 도(刀)는 민간에서는 굳이 구분하지 않고 쓰기도 했지만, 강호에서는 외날은 칼, 즉 도(刀)로, 양날은 검(劍)으로 엄격하게 구분해서 썼다.
“그래. 당태도(唐太刀)라고, 옛 왕조에서 군부의 지휘관이나 황실에서 쓰던 칼이 있었어. 검처럼 날렵하면서도 쭉 뻗은 직도의 형태였지. 그걸 조금 길이를 줄여봤다. 길이가 짧으면 아무래도 발도에 도움이 되지.”
“흐응.”
임요성의 얼굴이 시큰둥하게 살짝 찌푸려졌다.
“크음. 더 들어봐. 니가 부러뜨려 오는 검을 보면 대충 너의 습관이 보여. 넌 검을 쓰더라도 찌르기보다는 베는데 특화되어 있어.”
“맞아. 아무래도 빨리 상대를 베고 다른 적을 맞아 싸워야 하니까.”
임요성이 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대꾸했다.
사실 검으로도 벨 수 있고, 칼로도 찌를 수 있으나, 굳이 둘을 구분하자면 검은 찌르는 용도였고, 칼은 베는 용도였다.
검은 찌르고 다시 빼내어 상대를 공격하는 데 있어 그냥 베면서 나아가는 칼보다는 다소 연속동작에서 느릴 수밖에 없다.
즉 빠르게 베어 나가며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데는 칼이 검보다는 낫기에 군에서는 주로 칼이 많이 이용되었다.
그러나 근거리에서는 베기보다는 빠르게 찌를 수 있는 검이 선호되어 일대일 결투나 비무가 많은 강호에서는 주로 검을 이용했다.
물론 강호에서는 백일도, 천일창, 만일검이라 부르며, 도는 백일, 창은 천일, 검은 말일 수행해야 제대로 다룰 수 있다고 검을 만병지왕으로 높여 부르긴 했지만, 그건 검을 사용하는 자의 자부심에서 나온 말일뿐 무기란 사용하는 사람의 실력 문제지 무기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물론 고수들의 세계에서는 큰 차이가 없으나 이제 시작하는 임요성에게 그 차이는 컸다.
“그래서 당태도에서 착안해 칼이면서 찌르기도 검에 못지않은 직도로 만들어봤어.”
황 노야는 임요성의 습관인 베기에는 칼이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근거리에서 적을 빨리 찌를 수 있도록 검처럼 쭉 뻗은 직도, 그리고 발도에 유리하도록 도신을 짧게 제작한 것이다.
“그리고 칼집의 윗부분을 이렇게 잡아 빼면….”
황노야의 손에 의해 칼집에서 작은 소도가 빠져나왔다.
약간 시큰둥하게 있던 임요성의 얼굴이 그제야 활짝 펴졌다.
“오옷! 바로 이거야 노야!”
하나의 칼집에 중도 한 개와 그보다 더 작은 소도를 모두 품고 있는 형태였다.
중도를 사용하다 칼이 부러지거나 이번처럼 그 기능이 봉쇄되었을 때, 또 하나의 소도를 빼내어 적의 허점을 찌르거나 비도처럼 날릴 수 있었다.
그리고 칼집의 끝부분은 강철을 덧대어 뾰족하고 날카롭게 다듬어져, 유사시 또 한 번의 반전을 노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임요성만의 독특한 칼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임요성이 다른 불량인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
그의 활약에 다른 이들도 똑같은 칼을 써봤으나 임요성만큼 잘 쓰지는 못했다.
즉 임요성에게 특화된 무기였던 것이다.
특히 임요성은 스승으로부터 배운 검법에 실전을 겪으며 검법에서 도법의 초식만을 따로 발전시킴으로서 도법이면서도 검법 같고, 검법이면서도 도법처럼 보이는 그만의 특별한 검법, 아니 도법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는 일대종사나 할 수 있을 무공의 변형이라기보다는 살기 위해 터득한 실전 무공으로의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보는 것이 옳았다.
다른 보통의 칼들보다 짧기에 보다 빠른 보법으로 상대에게 다가서야 했고, 그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했는데, 그게 그의 적성에 맞았다.
남들보다 재빠른 몸놀림, 대담한 성격, 그리고 과감한 손속.
그렇게 임요성은 빠르게 성장했고, 결국 황자의 수신호위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흑표라는 별호를 얻게 되었고, 그가 쓰는 무기는 흑표의 이빨과 발톱이라는 뜻의 흑표아조(黑豹牙爪)로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