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21
청풍표국 최강식객 021화
21화. 아버지와 딸 (1)
중간에 잠시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그들의 표행은 차곡차곡 목적지인 소주와의 남은 거리를 지워가고 있었다.
문득 유산홍이 임요성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칼을 맞대고 서로를 죽이려 한 두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편하게 말을 나눴다.
어제의 목표물이 오늘의 의뢰인이 되는 상황을 숱하게 겪었던 살수 출신 유산홍이나,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정쟁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임요성이나 지나간 일은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었다.
“뭘 말인가?”
그사이 임요성은 유산홍에게 말을 편하게 했다.
이미 주종의 관계가 된 그들이었기에 당연하기도 했지만, 유산홍이 적극적으로 그렇게 해달라고 의견을 피력한 탓도 있었다.
처음엔 단순한 살수로 생각했으나 말을 나눠보니 식견과 경험이 풍부해 존중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판단에 평대를 하려 했지만, 절대 안 된다는 유산홍의 말에 그냥 편하게 하기로 한 것이다.
“왜 저와 창이를 살려주셨습니까? 복면인들을 모두 죽인 걸 보면 딱히 저도 살려둘 필요는 없었던 것 같은데요…?”
그의 물음에 다른 이들도 귀를 쫑긋 세웠다.
당시엔 분위기가 무거워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넘어갔지만, 지금 들으니 새삼 궁금해졌다.
“주군을 보니 딱히 의나 협에 목숨을 거는 성격도 아닌 듯한데 말이죠.”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군. 그냥 그러고 싶었을 뿐.”
왜 그랬을까. 자신도 궁금했다.
그의 말대로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유산홍과 아들 둘 다 죽여버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불량인 시절이었다면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 무엇이 자신을 변하게 했을까.
그때 옆에서 둘의 말을 듣고 있던 두혜련이 불쑥 끼어들었다.
“아이 때문 아닐까요?”
옆에 있던 두혜련이 문득 말하자 모두 그녀를 쳐다봤다.
갑자기 집중되는 분위기에 두혜련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 그렇잖아요. 혈루쌍괴라는 흉인들도 점주의 아이를 괴롭히는 걸 보고는 끼어드셨고, 유 무사님의 경우도 아들을 부탁한다는 말에 살짝 흔들리신 게 아닐지….”
자신에 대해 말하는 걸 들으면서도 임요성은 딱히 대꾸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가.’
어릴 적 잡혀 와서 지옥 같은 수련을 버티면서 또래의 아이들과 정을 나눈 것이 어쩌면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측은지심을 느낀 걸지도 모른다.
물론 도와야겠다는 생각은 두혜련의 존재로 인함이 컸지만, 아이로 인해 마음을 굳힌 것도 있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끌려온 불량인들. 그들은 모두 열 살 내외의 소년들이었다.
부모의 품 안에서 한참 응석을 부려야 할 나이에 사람을 어떻게 죽여야 하는지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쩌며 그때의 마음이 다른 아이들에게 투영이 된 것일까.
그런 생각은 못 했지만, 강호에 나오고 나니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느낌이었다.
“강호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들이 세 가지 있지요.”
“노인, 아이, 여성.”
갑자기 내뱉는 유산홍의 말을 임요성이 받았다. 강호백서에 나오는 말이다.
“그렇습니다. 주군께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주군께서 강호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에 그냥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유산홍은 자신과 아들을 살려준 이 사내가 마음에 들었다.
비단 목숨을 살려주었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뭔가 의지가 되는 사내였다.
그래서 부하로서 오지랖 넓게 참견한다고 생각해도 좋다고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이다.
“그런데 전 그게 오히려 좋아 보여요.”
두혜련의 말에 다시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그녀도 얼굴을 붉히지 않고 당차게 말했다.
“어차피 강호인들은 사람을 죽이는 게 일상이잖아요. 사실 거기서 무슨 의와 협, 정과 사, 백과 흑을 찾겠어요? 그냥 나름의 기준을 말하는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가슴 속에 자기만의 기준이 있다는 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고 봐요. 꼭 이념이나 철학 같은 무거운 기준이 아니더라도.”
두혜련의 말은 칼밥을 먹고 사는 표사들과 유산홍을 생각에 빠지게 했다.
그리고 그건 임요성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기준은 무엇인가. 아직은 모르겠다.
처음엔 뭔가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강호였고, 그렇게 도망치듯 나왔으나 오히려 스스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강호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각자의 상념에 빠진 표행단은 이후로 순풍에 돛단 듯 평온하게 무사히 목적지인 소주의 청풍표국에 도착했다.
* * *
표국 앞엔 이미 두진호와 그의 아내 강연화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하하! 어서 오거라! 고생 많았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두진호가 딸 두혜련과 표행단원들을 맞이했다.
표행 중에 있었던 일을 들으면 저 표정이 얼마나 유지될까 생각하던 임요성의 눈에 그의 한발 뒤에 서 있는 중년 부인이 눈에 들어왔다.
“어서 오너라. 얼마나 고생이 심했는지 얼굴이 반쪽이 된 것 같구나. 그러게 여보, 집에서 신부수업이나 받으면 될 아이를 왜 밖으로 돌려서 이렇게 피부가 거칠어지도록 만들었어요.”
두혜련을 반갑게 반기며 청풍표국의 국주이자 한편으로는 자신의 남편인 두진호를 곱게 흘겨보는 그녀, 강연화는 지금 분위기만 보면 세상 모든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보일 정도였다.
“하하! 그래도 표국의 장녀로서 표행 일을 제대로 경험해보는 게 당연하지 않소.”
“이이도 참. 혜련이에게 좋은 신랑을 구해줄 생각을 먼저 해야죠. 피곤하지? 우선 밑에 애들을 시켜 목욕물을 데워줄 테니 얘기는 나중에 나누려무나.”
남편과 말을 나누던 강연화가 미소를 지으며 두혜련을 쳐다봤다.
두혜련은 오는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한 터라 그녀를 보면서도 담담한 표정을 연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두혜련도 표행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터라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고, 얼른 편안한 자신의 욕조에서 몸을 씻고 싶었다.
“네, 어머니. 그렇게 할게요. 아, 그리고 이분들은 표행에서 만난 분들이에요.”
“오호! 젊은 고수가 우리 청풍표국과 함께하고 있다는 소문은 이미 들어 알고 있소. 그대가 소문의 주인공이구려.”
두진호의 말에 옆에 있던 두혜련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소문요? 무슨 소문요?”
“허허. 확실히 발보다 말이 빠르다더니. 인석아, 이미 하북을 일대로 흉명을 떨치는 악인들을 해치운 고수가 우리 표행단에 동행한다는 소문이 벌써 소주에 한 바퀴 돌고도 남았음이야.”
하북에서 시작된 소문은 이미 소주에 도착해서 호사가들의 술안주가 된 다음이었다.
물론 은혈비도의 일은 객잔에서부터 철저히 비밀을 유지했기에 아직 퍼지진 않았다.
이는 암살을 실패한 데다가 암살 대상자와 동행을 하게 된 유산홍을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그러한 사실들은 살수로서의 그의 명성에 오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강연화에게 소식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서, 혹여 일이 실패했다는 걸 안 강연화가 극단적인 수를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이유가 가장 컸다.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하북에서의 소문을 접한 두진호의 임요성을 향한 시선은 무척이나 푸근했다.
“뿐이더냐? 강호 최고의 신성 중 한 명인 팽가의 대공자를 꺾었다는 말에 신성회의 입성은 따 놓은 당상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란다.”
옆에서 강연화가 거들었다.
“어서 그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주지 않겠니? 이거 기다리다 현기증 나겠구나.”
두 사람의 재촉에 두혜련도 살짝 얼굴이 상기되었다.
“알겠어요, 아버지. 우선 이분들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시구요, 자세한 건 씻고 나서 말씀드릴게요.”
약간 지쳐있던 딸이 임요성이 언급되자 다시 활기를 찾는 모습에 두진호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변하며 옆에 선 홍국헌을 힐끔 쳐다봤다.
홍국헌이 헛기침을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알아서 판단하라는 뜻이었다.
“그래. 그렇게 하거라. 우리 청풍표국에 오신 걸 환영하오. 임 공자께서는 좀 있다가 같이 이야기를 풀어주시길 바라겠소. 그리고 얼마나 계실지 모르겠지만 있는 동안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히들 계시오.”
두진호가 딸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얼굴이 낯선 임요성과 유산홍 부자에게 밝게 웃어주었다.
누가 봐도 화목한 가정의 모습.
하지만 그 속에 비정이 숨어있으리라고는 유산홍에게 듣지 못했다면 임요성조차 짐작하지 못했으리라.
가볍게 목례를 한 두혜련이 부리나케 그녀의 처소로 향했다.
심신이 피곤한 것도 있지만 빨리 이 더러운 몰골에서 해방되고픈 마음이 컸다.
물론 그 이유에는 임요성이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인 것은 아직 그녀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혜련이 사라지고 임요성과 유산홍은 하인들의 안내에 따라 손님들이 기거하는 별채로 안내되었다.
작은 연무장이 딸린 별채는 인공 연못과 정원이 조성되어 있어 꽤 운치를 자아냈다.
방도 여러 개 있어 어른 두 명과 아이 한 명이 머물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각자 시간을 보낸 뒤 따로 마련된 별실에 마주 앉았다.
“어찌하실 겁니까?”
“뭘 말인가?”
“어디까지 개입할 생각인가 그 말입니다. 제가 봤을 때 이미 강 부인은 선을 넘었습니다. 누구 한쪽은 피를 봐야 끝이 날 상황이라는 말이죠.”
찻잔을 들다 멈칫한 임요성이 다시 천천히 입가로 찻잔을 가져갔다.
“…글쎄. 딱히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일단 어차피 소주로 와야 할 이유도 있었고 하니 동행했을 뿐이니.”
“쉽지 않은 문젭니다. 강 부인은 두 사람에 대한 확고한 적의를 품고 있지만, 아직 두 사람은 강 부인에 대해 그 정도 감정은 아닌 듯한데, 까딱 잘못하면 원망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음….”
임요성이 찻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의 말이 틀린 건 없었다. 어쩌면 부하로서 주군한테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이제부터 진지하게 생각해 보셔야 할 겁니다. 제가 머물던 강 부인의 친정, 소주검문은 소주 제일의 무가에다가 강소성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무가라고 들었습니다. 결코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지요.”
“…유 호위 생각은 어떤가?”
유산홍은 임요성의 호위가 되기로 했다.
현재로선 딱히 마땅한 지위도 없을뿐더러 자신이 그걸 원했기 때문이다.
살수와 호법은 그 목적은 전혀 반대였지만, 그 성향은 닮은 부분이 많았다.
호위대상을 위해 숨죽이고 참는 것이 호법이라면, 역시 살행을 위해 며칠이고 참고 견디는 것 또한 살수였기 때문이다.
“저는 주군께서 어떤 결정을 내려도 따를 겁니다. 단지 빨리 결정하셔야 할 겁니다. 주군께서 이 일에 끼어든다면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을 생각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서 나가는 것이 집안싸움에 휘말리지 않는 일이겠지요.”
임요성도 고민이 되긴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제 만난 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질 않았다. 이런 일은 끼어드는 순간 끝까지 가야 하는 문제다.
어중간하게 빠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말이었다.
임요성이 찻잔을 놓으며 말했다.
“일단 여기까지 온 이상 국주를 만나보고 판단하겠네. 딸이 겪은 상황을 듣고 어떻게 대응할 건지 들어보고 나도 거취를 정하겠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제 말을 진지하게 들어줘서 감사드립니다.”
“아닐세.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충정 어린 말을 해주게.”
그리고 일어서는 임요성을 향해 유산홍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