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216
청풍표국 최강식객 216화
216화. 짊어진 자들(1)
젊은 승려의 뒤를 따라 걷는 경내는 가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 말고는 고즈넉했다.
서늘한 새벽 공기와 살짝 깔린 밤안개가 운치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궁을 나온 이후 계속 긴장을 하고 있던 주천웅의 굳은 얼굴이 살짝 풀렸다.
“과연. 풍교야박이라고 했던가. 옛사람이 썼다던 시가 생각이 나는군. 그런데 실제 보니 오히려 몇 구절 시구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야.”
새벽의 흥취에 젖은 주천웅의 감정에 임요성도 동조했다.
“이 절뿐 아니라 소주 전체의 풍경이 꽤 볼만합니다.”
하지만 언뜻 보면 별것 없는 그의 말에 주천웅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허. 네 입에서 경치 어쩌고 하는 말이 나올 줄이야. 확실히 많이 변했구나.”
“뭐, 말이 그렇다 그겁니다.”
둘의 스스럼없는 대화에 황제의 심기를 흐트러트리지 않으려고 같이 긴장하고 있던 무인들도 다소 얼굴이 편안해졌다.
하지만 수십의 인원이 움직이는데도 발걸음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긴장은 풀되 경계는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안으로 한참을 들어가자 수도승들이 수행하는 선방들이 나왔다.
그곳을 더 지나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보통의 선방보다는 다소 크게 만들어진 장소가 나왔다.
아마도 고관대작들이 돈을 내고 며칠이나 몇 달씩 휴양하고 가는 곳인 듯했다.
절 내부에서도 울타리도 쳐져 있어 그 경계가 확실했다.
덜컹.
문을 열고 한산사 방장, 법운이 나왔다.
과거 임요성을 봤을 때와는 달리 의관을 정갈하게 갖추어 고승의 풍모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소승, 법운이 황제를 뵙습니다.”
이미 그들을 안내했던 승려는 가고 없었고, 장내에는 황제의 측근들밖에는 없었다.
황제가 살짝 놀란 얼굴을 했다.
“동생. 내가 온다고 말을 했던가?”
“아닙니다. 말도 없이 왔는데…. 대사께선 어찌 아셨습니까?”
임요성도 살짝 놀라 물었다.
“허허. 저 멀리서 거대한 기운을 풍기는 두 용이 다가오는데 어찌 모를 수가 있겠나. 아, 다른 이를 용이라고 표현하면 안 되는 걸까요?”
법운의 말에 주천웅이 웃었다.
“하하, 괜찮소. 이 친구는 나와 형제나 다름없는 사이니. 자자, 밖에서 이러지 말고 어서 들어갑시다. 다른 곤히 주무시는 스님들 깨시겠소.”
주천웅이 앞장섰고, 소탈한 황제의 모습에 법운의 눈에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유재희를 비롯한 호위무사들은 울타리 주위로 경계를 섰고, 여산홍 역시 밖에서 대기했다.
“자네는… 아직도 제대로 방하착을 하지 못했군.”
법운이 함께 방으로 들어서다가 임요성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하하. 제대로 방하착을 하면 제가 속세에 있겠습니까. 이미 다 내려놓고 스님 밑에서 비질이나 하고 있겠지요.”
“쿡쿡. 하긴. 그래도 처음 볼 때와는 달리 표정이 아주 부드러워졌어.”
방에 들어선 황제가 자리에 앉으며 동의했다.
“그건 맞는 것 같소. 나도 이 친구를 오랜만에 봤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지요. 예전엔 잘 벼려진 한 자루 칼과 같았다면, 지금은 거대한 산을 마주한 것 같달까.”
“그렇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지만 그동안 많은 일이 있긴 했죠.”
임요성이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원래 본인의 변화는 본인이 제일 모르는 법이지. 그나저나 대사. 폐를 끼쳐 미안하오.”
“허허,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나저나 북경 쪽의 천기가 불안하더라니…. 어느 정도 짐작은 했습니다만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헌데 북경을 감싸고 있는 기운 자체가 너무 불길하군요….”
어두워지는 법운의 얼굴을 보며 주천웅이 안심하라는 듯 손을 저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나와 이 친구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내일이면 안가를 구할 수 있을 테니, 오늘 하루만 부탁드립니다.”
주천웅의 말이 끝나고 나온 임요성의 말에 법운이 피식 웃으며 농을 했다.
“넌 늘 부탁만 하는구나. 전에 데려다 놓은 강 부인도 있는데 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 부인께서 정신을 차렸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법운이 밝은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강 부인의 아들 되는 이가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가더구나. 비가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두 사람은 잘 된 게지. 그런 일을 겪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 이가 부지기수인데 말이야.”
“예. 그것도 두 국주님의 복이죠.”
임요성은 잠시 멀뚱해 있는 황제에게 그들의 사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정확한 이야기는 모르던 법운도 임요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였다.
“그 친구와 자네 사이에 그런 사정까지 있었던 것은 몰랐군. 그래도 좋게 변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야.”
고개를 끄덕이는 주천웅을 보며 임요성이 말했다.
“우선 밤이 깊었으니 쉬십시오. 전 일단 표국으로 가서 일을 지시하고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그러시게. 확실히 자네와 한창 적들을 누비던 때와는 달라. 많이 피곤하군.”
주천웅에게 인사를 한 임요성과 법운이 방을 나왔다.
“스님. 감사합니다. 늘 신세만 지는군요.”
“그러면 시주나 좀 많이 하던가.”
“하하. 알겠습니다. 법당이라도 하나 지어드릴까요?”
“난 말만 하는 사람은 믿지 않네.”
임요성이 피식 웃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속이 깊은 사람이란 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비단 말뿐이 아니라, 법운이 해준 것들에 비하면 법당을 지어주는 건 오히려 작은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스님 법명이 법운이시고, 소림의 방장 대사께서는 법장이신데 혹시…?”
“그걸 이제야 알았나? 사실 우린 사제 간일세. 법장은 무승(武僧)으로 난 선승(禪僧)으로 길이 갈리긴 했지만.”
“그러시군요. 뭔가 다르다는 것은 느꼈지만 소림 출신이셨었군요.”
아무리 선승이라 해도 소림에 있었다면 굴러다니는 토납법 하나라도 익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처음 봤을 때부터 그 기운이 범상치 않다 느꼈다.
“뭐, 중요한 건 아닐세. 아무튼 어서 가보게. 좀 있으면 우린 아침 예불을 해야 할 시간이라서.”
“잠도 못 주시게 했군요.”
“괜찮네. 난 아침 먹고 또 자면 되니까. 누가 늙은이를 찾겠나. 굳이 찾는 사람이 있으면 그때 나오면 되고.”
사박사박.
그때 한 인영이 다가왔다.
“오랜만이네요.”
강연화였다.
임요성이 그녀를 쳐다보다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몸이 회복되셔서 다행입니다.”
“커험. 난 그럼 이만.”
법운이 분위기를 보며 자리를 피해주었다.
잠시 흐르는 정적.
“고마워요. 임 공자 덕분에 아이가 많이 성장해서 왔더라고요.”
“그 녀석이 잘해준 덕분이죠. 천성이 나빴던 건 아니란 뜻일 수도 있고.”
강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때문에 죽은 식솔들에 대한 속죄는 제가 평생을 지고 가겠습니다. 늘 조석으로 그들을 위해 향을 사르고 있어요. 그리고 이것.”
강연화가 종이를 내밀었다.
“천하전장에 있는 제 개인 구좌예요. 제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임 공자가 오면 내어드리라고 말은 해뒀으니 꺼내서 피해를 본 이들에게 나눠주길 부탁드려요.”
그녀가 내미는 종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임요성이 받아들며 말했다.
“직접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강연화가 피식 웃었다.
“제가요? 후후. 그들은 제 얼굴을 보기도 싫어할 거에요. 그리고 제가 나눠주는 돈을 받기 싫어할 수도 있고. 그러니 임 공자께 부탁드리는 거예요. 이건 아들 녀석한테도 말하지 않은 거랍니다. 제가 소주검문에 있을 적부터 시집와서 청풍표국에서 이렇게 되기 직전까지 모아둔 돈이에요. 그이와 상의하셔서 그들을 위해 잘 써주세요.”
강연화를 쳐다보던 임요성이 물었다.
“혹시 바라는 게 있으십니까?”
그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강연화가 입술을 지그시 씹으며 말했다.
“그 아이… 요즘 열심히 한다고 들었어요. 염치없는 부탁인 줄 알지만, 임 공자께서 많이 이끌어 주길 바라요.”
“제가 굳이 그러지 않아도 잘할 녀석이지만…. 옆에서 잘 지켜보겠습니다.”
강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해요. 그럼.”
멀어져 가는 강연화의 등이 왜소해 보였다.
하지만 발걸음만은 가벼워 보였다.
잠시 자신을 내려다보는 별 무리를 올려다본 임요성이 경공을 펼쳤다.
* * *
이튿날 곧바로 회의가 소집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청림회의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엔 국주인 두진호와 소국주인 두혜련, 그리고 두원후까지도 참석하는 표국 전체 회의였다.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국주와 소국주의 참석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모여야 할 이들이 모두 모이자 구용식이 좌중을 향해 전반적인 상황 보고를 올렸다.
그는 이미 전날 임요성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들은 상태였고, 밤을 새워 회의자료를 작성했다.
이미 황위가 찬탈당한 이후 한 달이 지난 시점이라 북경의 상황은 중인들 모두가 알고는 있다.
하지만 황제가 지금 소주에 들어와 있다는 말에는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종비연이 나섰다.
“이미 새 황제가 등극했다는 포고문이 곳곳에 붙었어요. 그리고 여기 소주부 관리가 전해준 새로운 관보예요.”
종비연이 건네는 관보를 받은 임요성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새 황제의 등극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전 황제가 전횡을 일삼고, 정신이 온전치 못해 수많은 궁인을 이유 없이 죽이고, 백성들을 수탈을 일삼아 오 황자가 올랐다는 내용이었다.
콰직!
임요성이 관보를 거칠게 구겼다.
“조상연이 분명 황제 폐하와 총사님의 관계를 알고 있을 텐데, 이곳도 조만간 감시의 대상이 되지 않겠습니까?”
구용식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는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의 생각과 걱정은 당연하다.
아무리 관무불가침이라고는 하나 황제의 칙령이면 어쩔 수 없다.
당장 청풍표국을 포위하여 핍박한다고 해도 반항할 수 없는 것이다.
임요성이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감시를 붙여둔 다음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놔두겠지. 그리고 황제께서 혹시 이곳으로 온다든지 하는 움직임을 포착하면 달려들겠지.”
“그렇겠군요. 다행입니다.”
구용식의 얼굴에 드리웠던 걱정이 살짝 걷혔다. 그렇다면 바로 손발이 묶일 걱정은 안에도 될 것이다.
“어쨌든 이번 일로 표국에 손해를 끼치게 되어 송구합니다.”
임요성이 상석에 앉은 두진호에 머리를 숙였다.
“허헛! 그게 무슨 말인가. 당장 머리를 거두게. 자네가 아니었다면 이미 나와 련아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터. 사람이 큰일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일에 휩쓸리는 건 병가지상사 아닌가. 우린 걱정하지 말고 소신대로 밀어붙이게. 자네와 황제 폐하는 신분의 차이 이전에 소중한 친구 아닌가.”
이미 임요성과 황제의 관계는 표국의 수뇌부 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두진호의 말에 일검이 나섰다.
“그렇습니다. 주군. 저희는 주군과 함께라면 지옥까지 함께할 수 있습니다.”
이번엔 나윤천이 나섰다.
“주군께서 살펴봐 주셔서 이번에 복수도 멋지게 할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여한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군을 만나지 못했다면 불가능했겠지요. 저희는 상관치 마시고 주군 뜻대로 하십시오.”
왕만철의 도움으로 자신의 집안을 도륙 냈던 강소표국은 이미 쫄딱 망해서 그 주춧돌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 역시 이제는 건강해져서 표국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자신이 할 일을 찾아다녔다.
그런 행복을 가져다준 임요성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었다.
“다들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입니다. 황궁의 일이라서가 아니라 현재 황제를 참칭하는 자의 무위가 고금 제일을 논할 정도입니다.”
그의 말에 좌중의 분위기도 다시 가라앉았다.
“그러니 모두 행동 하나 말 한마디 조심해주십시오. 그리고 일단 자네는 환희궁에 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게. 최대한 빠르게 정보를 얻어야 하네.”
중인들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사천에서 혈궁주부터 이번에 대학사의 일까지 너무 걱정하게 해서 미안하다.”
회의가 끝나고 임요성과 두혜련은 따로 남았다.
“피이. 알면 됐어요. 하지만 무림에서 파천황이라고 불리는 분이라면… 큰 걱정은 안 해도 되겠죠?”
농담을 섞어 말하긴 했지만, 그녀로서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정확히 말을 듣진 못했지만, 황제를 구하러 올라갔을 때, 조상연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 말은 곧 그의 무위가 임요성보다 높을 수도 있다는 말.
하지만 자신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임요성 역시 마음이 불편할 걸 알기에 대수롭지 않은 척하는 것이다.
그리고 화경의 수위에 오른 임요성이 상대의 미묘한 감정을 모를 리 없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려던 임요성은 그냥 말없이 두혜련을 안아 주었다.
두혜련의 눈이 살짝 놀란 듯 떠졌지만 이내 그의 넓은 품 안에 살포시 안겼다.
열 마디 말보다 더 든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