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219
청풍표국 최강식객 219화
219화. 짊어진 자들(4)
“잘 왔네.”
탁. 탁.
임요성이 초췌한 몰골의 팽원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친구의 얼굴을 본 팽원호의 눈이 붉어지더니 이내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직 친구 앞에서만 보일 수 있는 눈물.
그가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임요성은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이미 팽원호의 주위에는 무림의 명숙들이 모여 있었다.
잔잔한 어투로 처음을 시작한 그의 목소리는 끝날 때쯤에 살짝 떨려 왔다.
“고생이 많았겠군. 일단 좀 푹 쉬시게. 황제께서 시간을 벌어두셔서 당분간은 쉬어도 될 거야.”
임요성의 말에 팽원호의 눈에 독기가 흘렀다.
“선봉. 그 새끼와의 전투에는 무조건 나를 선봉에 세워주게.”
이를 뿌드득 가는 그를 보며 임요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가서 쉬게나. 자세한 건 다시 얘기하세.”
그렇게 팽원호가 도착하고, 이후로도 노준경의 활약에 힘입어 도처에서 무림인들이 힘을 보태기 위해 달려왔다.
그리고 무림맹에서는 혹시 모를 전투를 대비해 상시 전투 태세로 돌입했다.
그들은 남경 쪽으로 합류하지 않았다.
여차하면 북경을 바로 칠 수도 있었고, 남경을 공격하는 그들의 뒤를 들이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임요성은 공청 진인과 법장 대사에게 수련을 받고 있었다.
이미 그들은 천외천의 강자들이었다.
대련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공청 진인과 법장 대사는 무당파와 소림파에서 읽는 도경과 불경들을 한 아름 갖다주었다.
“…이게 뭡니까?”
“허허. 경전이지 뭐겠나? 소림도 그렇고 우리 무당도 그렇고, 무공의 심법에는 각각의 경전의 핵심이 녹아 있네. 경전의 핵심 구결을 확장시켜 무리(武理)로 녹여낸 것이지. 한마디로 경전을 이해하지 못하면 벽을 뛰어넘는 건 불가능하네.”
공청의 설명에 법장이 덧붙였다.
“지금 자네는 우리와 대련 한 번 하는 게 중요한 단계가 아닐세. 무공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때이지. 자네 정도 수준이라면 딱히 우리의 해설이 필요치 않겠지. 아니 오히려 우리의 해설이 독이 될 수도 있어. 이제 당분간 바깥일은 우리에게 맡기고 편안하고 느긋하게 홀로 침잠해 들어가게.”
두 노 사부들이 부드럽게 웃은 다음 멀어져 갔다.
그들의 뒤에 대고 고개를 숙인 임요성이 바로 경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 경전 구절이 무공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를 알아내려 애썼다.
하지만 읽다 보니 그런 건 뒷전이 되었다.
단지 세인의 존경을 받는 조사들이 인간을 구원하고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어떤 고뇌를 했는가, 어떤 심정으로 경전에 나오는 말을 했는가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 * *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종비연 장주께서 오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종비연의 방문.
집무실에 가니 이미 종비연이 앉아 있었다.
“수상한 움직임이 있어서 왔어요.”
임요성 그녀가 내미는 서찰을 살펴보았다.
“음…. 뭔가 있긴 있군.”
“네. 예전에 갑자기 사라졌던 혈궁의 무사들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임요성이 턱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강남 일대에서 패악을 부리던 혈궁의 군사들이 갑자기 사라졌던 일.
그런데 종비연이 가져온 정보에 그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임요성은 곧바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강남의 여섯 번왕들이 몰래 군사를 일으켜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임요성의 선언에 좌중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특히 주천웅의 얼굴은 일그러질 데로 일그러졌다.
다른 이들 역시 설명을 구하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운남의 평서왕, 복건의 정남왕, 광주의 평남왕, 광서의 정강왕, 사천의 촉왕, 그리고 호북의 초왕 등 여섯 번왕이 지금 군사를 몰아 남경으로 향하고 있다는 첩보입니다.”
임요성이 손에 들고 있는 자료를 보며 설명을 하자 주천웅이 팔걸이를 내려쳤다.
“미친! 그들이 군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내 이미 그들에게서 군권을 모두 빼앗았거늘!”
“제 생각입니다만….”
모두의 시선이 임요성에게 향했다.
“아마 혈궁의 무사들일 겁니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 치켜 떠졌다. 그들의 표정은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공통된 것은 경악이었다.
“허허….”
공청 진인이 탄식을 터트렸다.
“혈궁의 무사라…. 그럼 이번에 갑자기 자취를 감춘 이들이 번왕의 밑으로 들어갔던 것이란 말인가?”
모용천이 가라앉은 표정으로 물었다.
“맞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조상연과 혁련희가 어떤 밀약을 주고받았는지는 모르나, 혁련희의 죽음이 알려지자마자 그들의 모습이 자취를 감춘 것을 보면 분명 번왕들과 모종의 거래를 했을 겁니다.”
“확실한 건가?”
주천웅이 물었다.
임요성의 분석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황당했기 때문이다.
혈궁의 무사들이 군졸을 가장하여 번왕 밑으로 들어가다니.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십 할의 확률로 보고 있습니다. 보고서만 보더라도 그들의 진격 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일반적인 군사들의 이동 속도가 아닙니다. 통상 모든 이들이 기병으로 구성된 기마단, 그것도 저 북방 유목 민족들의 기마 속도에 필적합니다. 그런데 말을 타고 있다는 보고는 없으니 도보로 이동하고 있다는 말인데, 이건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속도지요.”
주천웅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음. 이제 어쩌면 좋겠소? 그들이 남경으로 들어오면 현재의 군사들로는 그들 전체를 막을 여력은 없을 듯한데….”
“제 생각엔 우선 이곳에서 성을 지키면서 싸우는 것은 불리합니다. 괜히 무고한 백성들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무차별적으로 도륙을 할 수 있지만 우린 그렇게 할 수가 없지요. 차라리 그들의 전력이 집결하기 전에 넓은 평야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각개격파를 해야 합니다.”
이번에 무림맹 주력 무사대 중 하나인 철갑 기마단 청룡단과 함께 남경으로 내려온 제갈연이었다.
제갈백규는 맹주가 없는 무림맹을 지휘해야 했기에 남았고, 대신 그녀가 내려온 것이다.
“지금은 철저한 무림의 전투라고 봐야 합니다. 이곳에서 저들을 맞이하면 고수들이 제대로 힘을 쓸 수 없지요. 차라리 각기 따로 맞이한다면 고수들이 그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고, 큰 어려움 없이 그들을 격퇴할 수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무림의 저력을 보여줄 때인 것 같습니다.”
제갈연에 이어 화산의 검선 연화자가 나섰다.
“사실 이번 혈궁의 일도 그렇고 임 공자가 아니었다면 무림은 그 정기를 잃었을지 모릅니다. 후기지수에 모든 걸 맡기고 무림의 명숙이란 자들은 뒤로 빠져 있었으니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러니 이번엔 우리 중원 무림의 힘을 제대로 보여야 할 때인 듯합니다.”
말은 무림의 힘을 보여주자고 했지만 실은 임요성을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그가 황제와 중간에서 무림과의 연결고리가 되고 있기에 그의 면을 세워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이 봉사하겠다는 건 아니다.
이번에 황제를 도와 역모를 막아낼 수 있다면 과거 태조 시절과 같은, 무림의 전성기를 다시 한번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해주어 고맙소. 만약 무림에서 짐을 도와 저 역도들을 처단하는 데 힘을 실어준다면 나중에 황위에 올랐을 때 최대한 그대들의 편의를 봐주도록 하겠소.”
주천웅도 명숙들의 발언에 시의적절하게 화답했다.
이건 그만큼 이번 사안이 중요하다는 뜻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주천웅의 성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역시 명분보다는 실리를 중요시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허허. 아닙니다. 황제께서 굳이 그럼 말씀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무림이라 한들 나라와 동떨어진 것이 아닌 것을요. 조상연이 무공을 익힌 무림인으로 무림과 제국을 동시에 핍박하는 마당에 저희도 한 손 거드는 게 당연하지요.”
법장 대사가 염주 알을 굴리며 말했다.
“맞습니다. 최초 관무불가침이란 말이 나온 것은 서로 존중을 해준다는 의미에서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견원지간처럼 되어 서로를 무시하고, 도외시하는 결과가 되어 씁쓸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화산의 검선, 연화자가 덧붙였다.
“그러니 이번 참에 그 관계를 개선하고 서로 좋은 방향으로 협력을 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천웅도 화답했다.
회의가 그렇게 마무리되려 할 때 임요성이 제갈연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조상연이라면 이 상황을 그냥 지켜보고 있을 것 같진 않군. 아마 때를 같이 해서 치고 내려올 것 같은데…. 그렇지 않소?”
그의 말에 제갈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도 그 부분이 좀 걸리긴 했어요. 하지만 저들도 번왕을 움직이는 걸 보면 북경의 금군을 움직이는 것에는 다소 부담을 느끼는 걸 거예요. 아마 친위대 정도만 이끌고 기습을 하려는 것 같은데….”
“그 기습은 내가 막아보겠소.”
번왕들의 공세는 다른 무림 세력에서 맡아주겠지만, 황제의 곁은 자신이 지켜야 했다.
“흘흘흘. 너무 혼자 짐을 짊어지려 하지 말게나.”
공청 진인이 수염을 쓸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미타불. 번왕들의 세력은 우리 제자들만으로 충분하오.”
법장 대사의 말에 화산의 연허자도 나섰다.
“화산도 매화검수들만으로 충분합니다. 저도 남겠습니다.”
이어 공동의 구궁자, 황보세가의 황보웅 역시 남기로 했다.
“맹주인 나를 빼놓으면 섭섭하오. 내 그의 무위를 직접 확인해야겠소.”
사실 현경에 올랐다는 조상연을 만난다는 것은 죽음을 예약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천십좌의 그 누구도 그 사실에 겁을 내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오랜만에 가슴이 뛴다며 다들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임요성이 가만히 훑어보았다.
과거 흑표로 있을 당시 대부분의 무림 세력들은 일 황자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대 세력 대부분이 자신의 편이 되어 싸워 주고 있었다.
무림의 명숙들도, 그들의 후기지수들도, 말은 무림맹 회의를 따른다고 하고 있지만, 사실은 모두 임요성 때문이었다.
사천 대첩을 승리로 이끈 그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과 향후 중원 무림계를 이끌어 갈 거인과 함께한다는 자부심.
여러 요인이 합해진 결과였다.
하지만 그 모든 건 그가 강호에 나와 맺은 인연이 빚어낸 결과였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흑표 시절엔 동료를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꼭 이들을 지킬 것이라 다짐했다.
* * *
임요성은 성루에서 서서 말없이 저 멀리 달려가는 중원 무림의 무사들을 바라봤다.
전과는 달리 승리에 대한 자만이 아닌 확신, 전공에 대한 갈망이 아닌 중원 무림과 제국을 위한 협을 행한다는 의기가 함께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기분이 좋은 긴장감이 서렸다.
그리고 그들은 남경으로 달려오던 각지의 번왕들과 맞닥뜨렸다.
“뭐야, 저 땡중들은?”
갑주를 걸친 마상 위의 중년인이 심드렁하게 말하자 옆에 있던 혈궁의 무사 중 한 명이 살짝 긴장한 말투로 답했다.
“소림의 무승들 같습니다만…?”
“뭐? 소림사? 무림인들은 관에 관여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 아닌가?”
“그건 노납이 설명해드리겠소.”
“큭! 뭐야! 저 멀리서 어떻게 우리가 하는 말을 알아들은 거야!”
중년인은 항렬 상으로 주천웅의 숙부다. 하지만 피 한 방울 안 섞인 자로, 호북의 무창을 영지로 하는 초왕을 맡고 있었다.
가장 가까웠기에 가장 먼저 도착했고, 또 자신은 몰랐지만 가장 먼저 죽을 위기에 처했다.
겨우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거리에 있는 선두에 법장의 사제인 법운 대사가 합장했다.
“그대가 군졸로 둔갑시킨 이들이 모두 혈궁의 무사라는 걸 알고 있소. 혹시 순순히 역심을 품은 데 대한 오라를 받을 생각이 있다면 그대의 목숨을 살려주겠소.”
“무슨 시답잖은 소리를. 이미 우리가 군사를 일으킨 것부터 목숨을 내놓았다는 말씀이야.”
눈앞에는 겨우 100여 명 남짓한 승려들이 한눈에 봐도 약해 보이는 목봉을 들고 서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혈궁 군대는 천여 명이 넘어갔다.
초왕은 전혀 위기감이 들지 않았다. 자신과 함께하고 있는 이들도 전부 무림인이다.
그것도 강호에서 치를 떤다는 그 독한 마인들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그들이 바로 소림에서 가장 유명한 백팔 나한들이라는 것을.
“역시. 노승도 그냥 한 번 해본 소리요. 노납도 명색이 불도를 추구하는 승려로서 살계를 열기 전에 권유는 해봐야 했던지라.”
한 마디 한 마디 귀에 콱콱 박혀 드는 것이 보통 경지가 아니었지만, 초왕이 그런 걸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혈궁도들 중에는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는 이들이 하나둘 생겼다.
“제자들을 듣거라.”
쿵!
백팔 나한들이 일제히 봉으로 땅을 내려찍자 지축이 흔들렸다.
“기이한 사술로 백성들을 현혹하고, 앞으로 수많은 이들을 도탄과 죽음에 빠뜨릴 역도이자 마인들이다. 모두 지옥에 보내어 그 죗값을 받도록 수고를 해주어라.”
쿵! 쿵! 쿵! 쿵!
봉 끝으로 땅을 계속 내려찍자 지진이 끝없이 이어질 듯 울렸다.
그리고….
백팔 나한이 천 명이 넘는 혈궁도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광경은 다른 곳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화산의 매화검수, 공동의 탕마검대, 황보세가의 벽력권풍대 등 강호 최정상 무사대가 각자의 상대를 맞아 그 힘을 발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