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23
청풍표국 최강식객 023화
23화. 아버지와 딸(3)
임요성과 두진호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배탈을 핑계로 빠져나온 강연화는 서둘러 자신의 처소로 복귀했다.
“암영!”
그녀의 말에 어디선가 한 줄기 바람이 불더니 한 흑의 인영이 바닥에 부복했다.
“일을 어떻게 처리한 거야!”
퍼억!
그녀의 발길질을 못 피할 암영이 아니었으나 고스란히 맞아주었다.
다시 자세를 고쳐잡은 암영을 보며 강연화가 표독스럽게 소리쳤다.
“은혈비도가 왜 저기 있어! 또 윤찬은 왜 뒈져버린 거야!”
앙칼진 그녀의 말에 암영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군요. 다른 표사들은 살아 있는데 윤찬만 죽은 것도, 그리고 저 은혈비도를 살려서 같이 동행하는 것도. 혹 저들이 눈치챈 것은 아닐까요?”
탕!
“젠장!”
앞에 놓인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아직 배후를 밝힌 것 같지는 않아. 그러니 당장 그 은혈비도인지 뭔지를 제거해야 하는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낼 수도 없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강연화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은밀히 물었다.
“사천에서 소식은 왔어?”
“예. 조만간 구해서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일단 그게 도착해야 뭔가 일을 꾸며도 꾸밀 수 있어. 일단 그 임가 놈이랑 살수 늙은이 동태를 잘 감시하고 있도록.”
“존명!”
그리고는 다시 한 줄기 바람과 함께 그녀 앞에서 암영이 사라졌다.
원래 계획은 두혜련을 표행에서 죽이고, 두진호에게도 독을 써서 외부에는 딸을 잃은 충격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것으로 꾸미는 것이었다.
지금 사천에 은밀히 부탁한 독이 바로 그 흉수가 되어줄 것이었다. 남편이니 그렇게 꾸미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그런데 그 운 좋은 년이 살아 돌아왔으니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그 임가라는 놈이 표국이 탐이나 국주를 독살하는 것으로 꾸미고, 두혜련은 자신이 데려온 식객이 아비를 죽였다는 죄책감과 충격으로 마음을 못 잡고 방황하다가 주점 뒷골목에서 강도를 만나 죽는 게 가장 그림이 그럴듯하다.
여기까지 생각한 강연화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후우―. 조금만 더.”
이제 두 걸음 남았다.
한 걸음, 그리고 다시 한 걸음이면 이 청풍표국은 자신과 후아의 것이 된다.
자신의 아들, 두원후가 스무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날, 이 표국을 선물로 줄 것이다.
‘흥! 그러게 왜 그런 말을 해서는.’
두혜련의 작년 생일 때 두진호가 말한 내용에 자신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모두 당신이 자초한 거야.’
자신을 이렇게 만든 건 모두 두진호 때문이라 생각하는 강연화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탐욕이 떠올랐다.
두혜련은 설마 아버지까지 죽이겠냐고 생각했었으나, 이미 강연화는 계획을 진행 중에 있었다.
실로 비정한 강호의 세계였다.
* * *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끝낸 후 두진호와 임요성이 풍광이 수려한 작은 인공 숲을 거닐었다.
산책이나 가자는 그의 말에 따라나선 것이다.
“내가 어릴 적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이 뭔지 아나? 바로 이 원림일세.”
원림(園林)은 일종의 휴양림으로 인공적으로 조성한 커다란 정원이라 보면 된다.
주로 고관대작들이나 돈 많은 갑부들이 만년에 휴양과 손님 접대 등을 목적으로 만드는 곳으로, 황가의 원림은 어지간한 산 하나의 풍경을 통째로 옮겨올 정도의 규모였다.
수상도시로 그 풍광이 뛰어난 소주에도 이름난 원림이 많았는데, 두진호는 어릴 적 그런 원림을 많이 보고 자라서 자신도 크면 저런 아름다운 원림을 갖고 싶었다고 했다.
“다른 이름난 거부들의 원림에 비하면야 턱도 없는 수준이지만, 이 작은 원림은 나에게 삶의 증명과도 같지.”
시원한 바람이 대나무숲을 흔들었고, 쏴아 하는 소리가 두 사람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두진호가 그런 죽풍(竹風)을 맞으며 아무 말 없이 걸었고, 그의 곁을 임요성도 묵묵히 지켜주었다.
조금 더 가니 크기는 작지만, 운치가 있는 인공호수가 나왔다.
인근 강의 지류에서 끌어와서 물도 맑았고,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도 보였다.
그 옆에 작은 정자가 있었는데, 이미 작은 다과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 호수를 보면서 먹는 술 한잔이 또 일품이지. 지금은 아침이니 술은 못 하지만 차라도 한잔하세.”
두진호의 이끌림에 임요성이 말없이 따라주었다.
“자네 북창삼우라는 말을 아나?”
임요성이 고개를 저었다.
“옛 시인이 노래하길 북쪽 창가에 앉아 한가롭게 노닐기를 세 벗과 함께하니, 그 세 벗을 일러 거문고와 술과 시라고 했지.”
두진호가 차를 내려놓고 잔잔한 호수를 바라봤다.
“그가 노래한, 거문고를 뜯다가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다 시를 읊는 것. 말년에 모든 걸 훌훌 놓아버리고 이 원림에서 그렇게 한가롭게 사는 것이 꿈이라네.”
두진호의 특별한 것 없는 이야기들이 이어졌고, 이후로도 편안히 차를 마시고, 다과를 먹으며 자신의 어린 시절과 두혜련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임요성에게 물어왔다.
“아, 자네 바둑은 둘 줄 아나?”
“모릅니다.”
“음… 장기는?”
“못 둡니다.”
“…오목은?”
“…….”
“…낚시는 할 줄 알겠지?”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하릴없이 앉아 있는 거라서요.”
“크으음. 보기완 좀 다르군. 자네도 참 세상 재미없게 사는구먼. 딱 보니 여자도 술도 취미가 없는 듯하고.”
임요성도 마땅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호위에만 모든 것이 집중된 삶. 취미 생활은 사치였고, 어불성설이었다.
“어떤 이들이 왜 사는 게 재미없다고 하는 줄 아는가? 바로 재밌게 사는 방법을 몰라서네. 삶은 가만히 있다고 재미를 내려주진 않거든. 적극적으로 재밌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
“그런 뜻에서 당분간 나랑 노세. 내가 노는 법을 알려주지. 푸헐헐헐.”
“…….”
“단, 기루에는 가지 말게. 거긴 마녀들이 있어 자네의 몸과 마음, 영혼을 물어뜯어서 잘근잘근 씹어 먹어버리거든. 아주 무서운 곳일세. 절대고수라도 얄짤없네.”
말없이 듣던 임요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가봤던 기루랑은 다른데?
불량인은 늘 긴장감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런 이들이 휴가랍시고 나와봐야 갈 곳은 뻔했다.
임요성도 한동안 기루에 몰려다니며 동료를 잃은 슬픔과 사선을 넘나드는 긴장감을 해소하곤 했다.
그나마도 스승이 죽고 나자 미친 듯이 무공에만 열중하며 다니지 않게 되었다.
어찌 보면 그 일이 전화위복이 되어 마지막까지 그를 살게 한 이유일지도 몰랐다.
다시 두진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렇다고 련아 때문에 그런 것은 절대 아닐세. 원래 기루는 안 좋아. 흠흠.”
그런 두진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임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요.”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은 지켜봐 주는 게 답일 듯했다.
일부러 강 부인, 두혜련의 이야기를 피하는 걸 보니 아직은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듯했다.
자신의 생각으론 빨리 결정하는 것이 맞았으나, 가족에 대한 경험이 없는 그로서는 두진호의 마음을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혹여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겠지.
임요성의 승낙에 환하게 웃은 두진호가 옆에 있던 바둑판을 끌어당겼다.
“자, 바둑은 말일세. 무공과 비슷한 면이 많네. 일단 기본공을 익힌 다음 초식을 외워야 하네. 자, 이것 보게.”
“…반상 위의 절대 초식?”
“그렇네. 이건 나중에 보고, 일단 바둑이란 말이지….”
두진호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두진호는 임요성을 붙잡고 바둑의 기초란 무엇인가에 대한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었으나 점차 그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왔다.
피와 살육이 난무하던 아수라장을 겪어온 그에게 사람 사는 냄새를 전해주는 국주가 싫지 않았다.
평소 그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자세로 바둑판 위에 돌을 올리는 임요성과 흐뭇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두진호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버들가지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 * *
그렇게 표면상으로는 별다른 소요 없이 며칠이 지나던 어느 날 임요성이 소주의 번화가를 거닐고 있었다.
가는 길에 펼쳐지는 소주의 경치에 절로 발걸음이 느려져 시내로 들어가는 데 한참이 걸렸다.
유산홍은 오랜만에 아들과 놀아주라며 떼놓고 왔다.
호법이 떨어질 순 없다며 고집을 피우는 걸 명령이라고 말하며 겨우 혼자 나설 수 있었다.
강호백서에 하늘엔 천당, 땅에는 소주와 항주라는 말이 적힌 것이 떠올랐다.
운하와 수로가 얽힌 아름다운 풍경에 오밀조밀하게 조성된 정원과 나무들이 운치를 더했다.
삭막한 황궁에만 있던 임요성에게 물의 도시, 수향(水鄕)이라 불리는 소주의 풍경은 온몸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혈향을 씻어주는 듯했다.
소주의 미경(美景)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 식사 때가 훌쩍 넘어가 있었다.
황제가 만들어준 구좌에서 돈을 좀 찾을 생각으로 지나가는 행인에게 천하전장 지점을 물으려던 그때 한 거지가 코를 후비며 나타났다.
“흐흐흐. 공자. 나를 알아보겠나?”
“하북에서…?”
“그렇다네. 풍림개일세. 다시 만나 반갑군. 가세. 강소의 분타를 이곳으로 옮겼으니 집들이는 해야지.”
갑자기 나타난 풍림개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다리 밑의 한 움막이었다.
“…이곳이 개방의 강소분타입니까?”
“흠흠. 그럼 거지들의 분타가 뭐 이렇지. 으리으리한 전각이라도 생각했는가? 자, 들어오게.”
“…….”
“뭐 하나? 들어오지 않고.”
“…경치가 좋군요. 밖에서 얘기하죠.”
임요성이 작은 개울가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아닌 게 아니라 경치는 진짜 좋았다. 아니 소주는 어딜 가나 이런 미경을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쳇!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닐세. 그래도 분타를 옮기고 첫 집들이 손님으로 자네를 데려온 걸세. 저기 자네 주려고 아침에 동냥해온 식은 밥도 있지 않나.”
풍림개가 투덜거리며 옆에 있는 다른 바위에 털썩 앉았다.
“뭐, 집은 구경했으니 집들이는 한 셈으로 치죠.”
“끙.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이거나 받게.”
풍림개가 종이 뭉치를 툭 던져 주었다.
“이게 뭡니까?”
“곧 소주에서 개최될 신성대연에 대한 자료일세.”
“신성대연요?”
“그렇다네.”
신성회는 일 년에 한 번씩 장소를 정하여 신성대연이라는 연회를 여는데, 그들의 뒷배경과 미래를 본 온갖 상인들과 무관, 표국 등 그들에게 조금의 줄이라도 대려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번 신성대연이 이곳 소주에서 열리거든. 보통 진천구성들이 자신이 관할하는 성에서 돌아가면서 여는데, 이번이 강소 단목세가의 단목룡이 이곳 소주에서 열기로 했지.”
임요성이 종이를 이리저리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규모가 상당하군요.”
“당연하지. 그들 후기지수들의 손에서 좌지우지되는 물량이 어마어마하네. 자신들의 후계들에게 미리 권력을 이용하는 법을 체험해보라는 뜻이겠지.”
임요성이 자료를 보며 새삼 놀랐다.
신성대연에 참가하는 가문과 그들 후기지수들에 대한 정보, 그리고 그들의 기호까지도 파악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정보를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흐흐흐. 앞으로 잘해보자는 의미일세. 원래 개방의 강소분타는 강소의 패자인 단목세가가 위치한 양주(揚州)에 있었지만, 이제부턴 여기 소주가 개방 강소 분타가 되었네.”
임요성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마치 다 너 때문이니까 앞으로 잘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정보란 건 필요할 때 딱 하고 생기는 게 아니거든. 잡다한 정보를 주워듣다 보면 적당한 때가 되었을 때 딱 떠오르는 걸세. 따로 또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주게. 이제 우리는 한배를 타지 않았나?”
씨익 웃는 풍림개를 보던 임요성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말 나온 김에 기녀 한 분을 좀 찾아주십시오.”
“기녀?”
“예. 기녀로 활동했던 시기는 얼추 30년 전은 될 거고 홍연이라는 기명밖에 모릅니다. 당시 제법 이름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포목점 주인을 만나 한 10년은 평범하게 살았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흐음. 30년, 기녀 홍연, 포목점…. 알겠네. 나도 아직 이쪽은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했으니 시간이 좀 걸릴걸세. 근데 그 여인은 왜 찾는 것인가?”
“…친우의 모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