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26
청풍표국 최강식객 026화
26화. 먹빛 하늘 아래 (3)
그렇게 임요성은 묵천군의 모든 절학을 이어받았다.
탈혼검법은 극쾌의 검술을 기반으로 한 살수무공이었는데, 묵천군의 스승이 살수무공을 개량해 이 탈혼검법을 탄생시켰다는 말만 들었다
그리고 5년 뒤 황자의 난이 발발하고, 정확히 2년 뒤 임요성이 스무 살이 되던 해, 묵천군은 이 황자가 고용한 백여 명에 이르는 살수단을 홀로 막아내고 어느 이름 모를 산에서 목숨을 잃는다.
“허억!”
“헉!”
임요성이 두 사람이 깨어나는 기척에 과거의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두 사람이 깜짝 놀라 일어섰다.
“이, 이것은 탈혼! 천군의 탈혼검 제삼초식! 저, 정녕 공자께서 천군의 후계란 말입니까?”
묵천군에게 수없이 맞으며 몸으로 체득한 탈혼검의 느낌과 똑같았다.
그리고 처음엔 몰랐지만, 천천히 기도를 방출하는 임요성의 몸에선 묵천의 살수들이 늘 수련하는 비혼결의 기운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묵천 강소지부장 구용식이 당대의 천군을 뵙습니다!”
“묵천 강소지부 소속 매영옥이 천군을 뵙습니다!”
이제야 모든 의심을 버린 구용식이 오체투지를 하며 인사를 올렸고, 그 모습에 옆에 있던 농인이라던 여인까지 직접 말을 하며 오체투지를 했다.
그 모습에 임요성이 곤란한 듯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요즘 왜 이렇게 자기 앞에 무릎을 꿇는 이가 많아지는지….
“음. 난 천군이 될 생각은 없는데….”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천군의 절학을 모두 이으신 후계이시고, 천군의 묵패를 가지고 계시니 응당 당대의 천군이 되시는 게 옳습니다. 만약 공자께서 다음 대 천군이 되는 걸 원치 않으셨다면 귀… 천하신 천군께서도 그 패를 공자께 드리진 않았을 겁니다.”
임요성이 탁자 위에 놓인 묵패를 쳐다봤다.
거기에 그런 뜻이 있었나?
사실 받을 땐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았다. 그냥 제자니까 주는 줄 알고.
그런데 이런 깊은 뜻이 있었다니. 애당초 천군을 떠넘길 생각이었구나. 영악한 사부 같으니라고.
임요성은 그러면서도 사부의 안배를 느낄 수 있었다.
사부는 아마 자신이 강호에 나가게 되면 이들과 어떻게든 연결이 될 것이고,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예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남기고 온 이 조직이 임요성을 중심으로 새롭게 피어날 거라고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피식 웃은 임요성이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둘을 보며 물었다.
“그럼 아직 묵천은 정보원 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저처럼 따로 다른 신분을 만들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번 황자의 난에서 빠져나온 이들을 상대로도 더 이상의 정보를 캐지 못하면 묵천을 해체할까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천군을 뵈었으니 다시 부활시켜야겠지요.”
그의 말에 따르면 묵천군의 4대 절학을 모두 이은 이가 묵천의 천군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장로들마저도 검법을 제외한 다른 3가지 무공은 익혔으나 탈혼검법은 초반 3초식만 익히고 후반 3초식까지 계승한 이가 아무도 없었다.
묵천군의 실종이 10년이 넘어갈 때쯤엔 그냥 다 집어치우고 어떤 무공이든지 강한 자가 묵천의 수장에 오르자는 천도들의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묵천군의 전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가 수장에 오른다면 그건 묵천이 아니라며 차라리 다른 정보 조직에 흡수되는 게 낫다는 장로들의 거센 반발에 지금에 이르고 있었다.
그리고 한계에 다다른 지금, 묵천군의 진전을 이은 후계가 나타났으니 제대로 부활시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구용식을 보며 임요성이 고개를 저었다.
임요성은 굳이 지금은 잘살고 있는 이들을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전 이렇게 인연이 된 두 분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천군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저 같은 이들이 수두룩합니다. 아마 이 일이 새어나가면 그들에게 얼마나 원망을 들어야 할지… 부디 그런 말씀은 거두어 주십시오. 모두 오늘 같은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구용식의 생각은 달랐다. 너무나도 강경한 그의 태도에 임요성이 난처한 듯 입맛을 다셨다.
“흠. 그럼 잘살고 있는 이들에게 강요는 하지 마시고, 생각 있는 이들만 모으도록 하죠.”
굳이 이렇게 나온다면 이들을 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임요성은 강호에 나와 청풍표국에 오기까지 여러 일들을 겪으며 정보라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정보를 쥐고 있는 자가 곧 세상을 쥘 것이다.
개방의 풍림개가 자신을 좋게 보고 여러 가지 조력을 하긴 했지만 개방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결정적일 때 수족처럼 부릴 수 있어야 하는데 개방은 그것이 힘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자신을 좋게 보고 있다고 해도, 무슨 일이 터지면 또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것이 강호의 일이다.
그래서 지나가는 생각으로 자신만의 정보단체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그게 이렇게 빨리 실현될 줄이야.
임요성의 말에 구용식이 고개를 조아렸다.
“존명! 조만간 장로들과 대주들, 그리고 주요 천도들을 모으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리고 이제 말씀은 편하게 해주십시오. 저희가 듣기 민망합니다.”
부복한 구용식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임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불량인 시절 황자와 사부 말고는 말을 높여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평대였다.
하늘의 새도 떨어뜨린다는 환관 조직 동창의 수장인 공공에게조차 그는 평대를 했었으니.
“음… 알겠네. 그럼 그러도록 하지.”
그리고 임요성이 문득 떠오른 생각에 구용식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차피 이리된 김에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네.”
“부탁이라니요. 말씀을 거두어 주십시오. 하명이라고 하시면 됩니다.”
“음. 좀 개인적이면서도 불법적인 일이라….”
“묵천에 있어 천군의 존재는 묵천 그 자체입니다. 천군의 개인적인 일도 묵천에 있어서는 공적인 일입니다.”
“그럼 적절한 신분 하나만 새로 만들 방법을 좀 찾아보게.”
“신분 말씀입니까?”
“음. 대략 마흔 언저리의 나이에 아들이 있는 정도의 깨끗하면서도 별로 주목받지 않을 신분이면 좋겠군.”
임요성은 유산홍의 신분을 새로 만들어주려는 것이다.
이는 그도 동의한 것으로 살수라는 직업은 은퇴 이후에는 오히려 복수의 대상이 되는 곤란한 직업이다.
그가 전처럼 새로운 살수문을 세워 계속 살수 일을 한다면 모르겠으나, 자신에게 의탁하기 위해선 새로운 신분을 가지는 것이 훨씬 이롭다.
그리고 이번 태안에서의 일을 토대로 은혈비도라는 살수가 죽었다는 소문을 내달라고 풍림개에게도 부탁을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대한 빨리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소식이 있으면 청풍표국으로 기별을 주게.”
그렇게 일어서려는 임요성을 보며 구용식이 말했다.
“그리고 이 아이를 데려가십시오.”
“음?”
임요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구용식을 쳐다봤다.
그의 표정과는 달리 구용식은 담담히 말했다.
“농인 연기가 굉장히 능숙하니 개인 시비로 옆에 두고 쓰시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겁니다. 그리고 저와의 연락책도 필요하니까요. 일류고수의 실력을 갖추고 있으니 천군의 발목을 잡을 일도 없을 겁니다.”
임요성이 그의 말에 물끄러미 매영옥을 쳐다봤다.
확실히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자신의 거처에 있는 이들은 청풍표국, 그것도 강 부인이 장악 아래 있는 곳의 시비들이다.
한마디로 내 편이 없다는 말. 그런 곳에 매영옥을 옆에 둔다면 말은 많을지라도 훨씬 마음이 놓일 것이다.
그리고 구용식과의 연락책으로도 쓸 수 있고.
“그리하지.”
임요성이 허락하자 매영옥의 붉은 입술이 활짝 열렸다.
“성심껏 천군을 모시겠습니다. 낮이건 밤이건 가리지 않고….”
“크흐흠. 그만.”
매영옥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구용식의 말에 의하면 그녀의 나이는 현재 스물여섯이었다.
일곱 살 때 즈음 소주의 부랑아로 떠돌던 그녀를 거둔 것이 우연히 소주를 지나던 묵천군에 의해 묵천 소속이 되었다.
그가 사라지기 전 가장 마지막으로 거둔 이로써 회(會)에서도 묵천군 스스로에게도 의미가 깊은 아이였다.
이후 그녀는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묵천의 일원으로서 훌륭히 성장했고, 몸을 사리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오히려 동료들이 말릴 정도였다.
그만큼 그녀에겐 부랑아로 떠돌다 죽을 자신의 인생에서 묵천군과 묵천회의 존재는 컸다.
“알겠다. 그런데 더 이상 농인 연기를 할 필요는 없어. 중요한 순간 그게 발목을 잡을 수도 있으니까. 그냥….”
임요성은 문득 좋은 생각이 스쳤다.
“우선 개인 호위로 하지. 저잣거리에 나온 김에 호위 하나 구했다고 둘러대면 되니까.”
이번 표행으로 두혜련의 호위가 죽어 현재 그녀는 호위가 없었다.
같은 여인이고 하니 그녀에게 호위로 붙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매영옥이 그렇게 말하고 다시 나왔을 땐 영락없는 호위무사의 복장이었다.
“좋군. 무기는 비수를 쓰나?”
아무런 무기가 없는 모습을 보며 임요성이 물었다.
“그러하옵니다. 여인의 몸으로 최대한 방심을 유도하면서 기습에 유리한 것으로 비수가 가장 잘 맞았습니다.”
묵천군은 비수를 기가 막히게 사용했는데, 그에게 사사한 임요성 역시 사실 비도술의 달인이었다.
불량인 시절에는 몸 곳곳에 비도를 숨겨 다녔으나 지금은 딱히 소지하고 있지는 않았다.
임요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섰고, 그 뒤를 매영옥이 따랐다.
그리고 그의 뒷모습을 보며 구용식은 숨길 수 없는 희열을 느껴야 했다.
‘저 나이에 이미 절정에 이른 나의 기감을 월등히 뛰어넘을 정도라니…. 실로 묵천의 세상이 도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야!’
그동안 원망만 해왔던 묵천군이었는데 오늘에 와서는 오히려 이런 멋진 후계를 보내주어 감사할 지경이었고, 굳어진 지 오래되었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 * *
“기다리다가 눈 빠지겠… 어? 옆에 이분은 누구…?”
풍림개가 지부장의 배웅을 받으며 나오는 임요성을 보며 투덜거리다 임요성 옆에서 다부진 기도를 뿜어내는 여인을 보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매영옥은 어느새 전장의 특급고객을 상대하는 요염한 접대부에서 유력 후기지수를 호위하는 호위무사로서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임요성조차 실로 천변만화의 얼굴을 가진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부터 제 호위를 할 사람입니다. 천하전장에서 귀빈 우대 차원에서 할인된 금액으로 지원해준다는군요.”
임요성의 설명에 전장에서 그런 일도 해주나 싶은 표정의 풍림개였지만 그렇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어… 그, 그래.”
그리고 어리둥절해 있는 그에게 임요성이 전낭 하나를 통째로 건넸다.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든 풍림개가 전낭 안을 확인하고는 입이 벌어지도록 놀랐다.
“아니 이, 이건 뭔가?”
“뭐 부탁드릴 때마다 계산하는 것도 번거로우니 그냥 선불로 드린다고 생각하시죠.”
그렇게 말한 임요성이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
“극락관이라고 했죠? 그리로 갑시다.”
임요성의 말에 풍림개의 입이 귀에까지 걸렸다.
오늘은 이래저래 횡재하는 날인가 보다 생각하며 부리나케 임요성 옆에 붙으며, 신나게 소리쳤다.
“날 따르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