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41
청풍표국 최강식객 041화
41화. 국주패를 가진 식객 (2)
간밤에 일어난 참사로 표국 곳곳이 시끄러웠다.
무공도 모르는 일반 하인들이나 쟁자수들은 그 참사에서 한 발 빗겨나 있었기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없었으나, 앞으로 표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국주가 위중했고 딸은 아직 경험이 일천했다.
3개의 표사대 중 2개가 전멸했고, 그나마 홍국헌 쪽 표사들이 열 명 넘게 살아남긴 했으나, 그들도 지금 부상을 당해 운신이 힘든 상태였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지금 표국에는 이 위기를 책임지고 타개할 만한, 그리고 그들이 믿고 따를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랬기에 여길 떠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말들이 슬금슬금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절망의 기운은 다른 곳에서도 이어졌다.
하룻저녁에 참사가 벌어지고, 아버지가 위중한 상태에 놓이자 두혜련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국주전 후원에서 아버지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원림을 바라보는 두혜련의 곁으로 임요성이 다가왔다.
“내 불찰이오.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여야 했는데….”
그의 말에 두혜련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공자님 덕분에 그나마 아버지와 제 목숨이 붙어 있다는 건 누구라도 알 거예요. 오히려 제가 고마워해야죠. 단지….”
“단지?”
“이런 추악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게 너무… 부끄럽네요.”
“나는 개의치 않소. 내가 있던 곳에서는 이보다 더한 것들을 많이 봤으니.”
임요성의 말에 고개를 돌린 두혜련의 눈은 생기가 빠져나간 듯 멍했다.
“공자님께서 계시던 곳이 어딘지 궁금해지네요. 이보다 더한 것들을 겪으셨다니….”
“언젠가 말할 때가 올 거요.”
“휴우… 네. 공자님 말씀대로 이 정도는 거뜬히 이겨내야죠.”
미소 짓는 두혜련의 얼굴은 어떤 감정도 없었다.
눈이 가늘어지던 임요성이 고개를 저었다.
“대범한 척, 강한 척할 필요 없소. 힘들면 힘들다고, 슬프다고 소리치고, 우는 게 더 낫소. 슬픔을 가슴에….”
임요성의 말을 자르며 두혜련이 고개를 숙였다.
“왜… 지금 그런 말을 해요…?”
“음? 지금 뭐라고…?”
“왜 그렇게 말하냐구요! 왜! 왜!”
두혜련이 임요성의 가슴을 툭툭 쳤다.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데, 왜 그렇게 힘 빠지는 말을 해요! 왜!”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흐느끼던 그녀의 울음소리는 더 커져만 갔다.
가만히 서서 그녀를 바라보던 임요성이 천천히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고, 두혜련은 살짝 움찔하긴 했지만, 임요성의 팔에 이끌려 가만히 그의 품에 안겼다.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우시오. 슬픔은 가슴에 담아두면 독이 되는 법이오.”
그리고 두혜련의 울음은 오열이 되어 언제 그칠지 모를 것처럼 이어졌고, 이윽고 천천히 그녀의 어깨가 잦아들었다.
훌쩍.
천천히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은 아찔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런 일을 겪은 직후인데 이런 생각이 들어도 되나 죄스러운 생각에 임요성이 고개를 털었다.
“흠. 이제 괜찮소?”
두혜련이 고개를 저었다.
임요성이 속으로 자책했다. 괜찮을 리가 있겠는가. 괜한 마음에 찔려 내뱉은 말이 괜찮냐니.
요성아, 요성아. 이게 무슨 추태냐.
그런 임요성을 고개를 들어 다시 쳐다본 두혜련이 반짝이는 두 눈을 곱게 흘기며 말했다.
“여자 울리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다른 여인한테도 이러셨나요?”
“음? 아, 아니… 그건 아니고….”
당황하는 임요성을 보며 두혜련이 살포시 미소 지었다.
“헤에―. 농담이에요. 그나저나 생각해보면 공자님은 참 대단해요.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한 걸 보면….”
두혜련의 농담에 잠시 당황하던 임요성이 다시 얼굴을 굳혔다.
“과거의 경험은 늘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참고가 되오. 그건 소저도 마찬가지. 과거 한 번 겪었던 강 부인의 해코지를 상황과 맞물려 예상해본다면 이번 표행에서 뭔가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걸 예상했을 거요.”
“그렇군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씁쓸하네요. 결국 늘 의심을 하고 있으란 말이잖아요?”
“음…. 사람은 믿되 상황은 믿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소.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해 상황이 그렇게 몰아붙일 수 있는 것이니.”
“아무튼 사람을 완전히 믿지 못한다는 거잖아요. 혹시… 저도 못 믿으시나요?”
“…믿고 싶소.”
믿고 싶다? 믿는다, 안 믿는다가 아니라 믿고 싶다?
고개를 갸웃하던 두혜련이 활짝 미소 지었다.
“무슨 뜻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뭔가 느낌은 좋네요. 오히려 믿는다고 말했다면 입에 발린 말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고마워요, 공자님. 저도 공자님을 믿고 싶어요.”
그리고 믿어요….
두혜련은 뒷말은 삼킨 채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임 공자께서 국주패를 받으셨으니 알아서 좀 하세요. 곧 긴급회의가 열릴 테니 공자께서도 참석하세요. 그동안 공자님 말씀처럼 전 좀 쉬어야겠네요.”
비록 만난 지 두어 달 남짓 되는 임요성이었으나, 두혜련은 모든 걸 그에게 의지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적어도 지금은….
툭.
임요성의 가슴을 작은 주먹으로 가볍게 친 두혜련이 국주전으로 향했다.
쉬더라도 아버지 근처에서 쉬려는 그녀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임요성이 조용히 읊조렸다.
“걱정 마시오. 모든 게 다 잘될 거요.”
* * *
어수선한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 청풍표국의 국주전에 위치한 회의실에는 현 표국을 이끌어가는 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내당총관 이천호, 그 아래로 재정부장 고염, 감찰부장 양현탁, 집사부장 하인택이 왼쪽에 자리했고, 오른쪽에는 제일, 제이 표사대의 표두들이 모두 죽는 바람에 표두 중에는 홍국헌이 유일하게 온몸에 붕대를 두른 채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총관 이천호는 쟁자수로 위장해 있던 암영의 수하들에 의해 구류되어 있다가 구용식이 이끄는 묵천도들에 의해 풀려났다.
이번 일에 힘없이 당한 자신의 바보같음에 이천호는 눈을 감은 채 자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그 옆으로 나이 든 남녀 중년인이 앉았다는 것이다.
여인은 그나마 좀 깨끗해 보였으나, 남자는 후줄근한 몰골로 연신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들은 각각 시녀장 오연희와 상자수 감천식이었다.
표국의 특성상 표사들이 호위와 경비 임무 등을 분담한다면, 표국의 쟁사수들은 따로 표행을 나가지 않을 때는 집안의 허드렛일을 도왔다.
그랬기에 집안의 여자 하인들을 총괄하는 시녀장과 모든 쟁자수들의 최고참인 상자수를 부른 것은 그만큼 이번 사안이 중하다는 뜻이기도 하거니와 이번 일을 기점으로 보다 내실을 기하기 위한 포석도 깔려 있었다.
“크음.”
“큼.”
재정부장과 감찰부장이 하인들과 같이 회의실에 앉은 것을 마땅찮은 표정으로 둘을 노려봤으나, 시녀장은 시종일관 눈을 감고 다소곳이 앉아 있었고, 상자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쩔쩔매고 있었다.
“두혜련 임시국주님과 임요성 공자님께서 드십니다.”
문을 열며 들어선 매영옥의 말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혜련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고, 그 뒤를 임요성이 뒤따랐다.
그리고 중앙의자에 두혜련이 앉고, 그 옆에 임요성이 앉자 다른 이들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식객이 집안 회의에 들어온 것도 황당한 일이었으나, 이번 강연화 사건을 해결한 이가 그였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두혜련과 나란히 앉는다니? 이건 자신들보다 높은 자리라는 것을 뜻했다.
“일단 앉으세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두혜련이 표정을 보고는 대충 생각을 짐작했고,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다들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앉긴 했으나 표정이 좋진 않았다.
두혜련 역시 경황이 없었으나, 일단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기에 지휘선을 정리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이다.
두혜련이 옆에 앉은 임요성을 쳐다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난 임요성이라 하오. 여기 계신 두혜련 공녀께서 나를 영입해서 이 표국의 식객이 되었소. 아마 오며 가며 얼굴은 마주친 적이 있을 거요.”
다들 두진호가 젊은 시절부터 함께 표국을 이끌어 온 이들이라 임요성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다.
그러나 임요성은 평대를 함으로써 처음부터 기 싸움을 벌였다.
아니나 다를까 총관을 빼고는 다들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크음. 거참 식객 주제에 이거 참 이래도 되나 모르겠군.”
감찰부장이 운을 떼자 옆에서 앉은 재정부장이 거들었다.
“아무리 큰 공을 세웠다 하나 자리에 앉은 위치부터가… 에잉.”
집사부장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표했으나, 총관만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갑작스런 국주의 변고 시, 임시국주의 자리를 물려받기 위해서는 가솔들의 동의가 있어야 하거늘….”
툭.
재정부장이 말하는 중에 탁자 위로 뭔가가 날아들었다.
임요성이 그들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국주패요.”
“헉!”
“구, 국주패를!”
말 많던 두 사람이 깜짝 놀라고, 집사부장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소란에 총관마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앞에 놓인 국주패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그도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사실 세 명은 이미 강연화에게 포섭되어 이번 일을 묵인한 이들이었다.
그들의 위치상 적극적으로 돕지는 않았으나, 일이 성공하면 강연화를 중심으로 표국을 이끌어가기로 이미 합의된 상태였다.
그러나 거사가 실패하자 그들은 살길을 궁리했고, 철저히 거리를 두기로 서로 말을 맞췄다.
소주검문이 몰락했다는 소문도 큰 몫을 했다.
소주검문만 건재했어도, 다시 일을 벌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들도 몸을 사려야 할 때였다.
그래서 아직 천지 분간도 못 할 두혜련을 적절히 받들면서 두혜련의 힘이 될 임요성을 제거할 논의를 하다가 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그런 임요성이 국주패를 던진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정녕 국주패를…?”
감찰부장이 떨리는 눈으로 두혜련을 쳐다보자 두혜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버지께서 쓰러지시기 전에 임 공자에게 모든 전권을 맡기셨어요. 전 그 증인입니다. 이제 임 공자 역시 국주의 권한을 가지게 되었으니 모두 그의 말을 잘 따라주세요.”
쾅!
“하! 이런 말도 안 되는!”
감찰부장이 탁자를 내려치며 일어서자 임요성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앉으시오.”
“흥! 싫다면? 어디서 근본도 없는 식객이! 나는 이곳에서 지금의 국주님과 같이 이 표국을 일군 일등 공신이야! 네놈이 나설 자리가 아니란 말이다!”
임요성의 무위가 상당하다는 사실은 감찰부장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삼촌, 삼촌 하며 따르던 두혜련이 그를 편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크으윽!”
임요성의 시선을 받은 감찰부장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부들부들 떨며 주저앉은 감찰부장의 코에서 피가 나오기 시작할 때가 돼서야 임요성은 기도를 거둬들였다.
실로 가공할 공력이었다. 전방위적으로 기도를 개방해 중인들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만을 특정해 기파를 날린 것이다.
섬세한 공력의 운영과 압도적인 내공 차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감찰부장. 지금 내가 장난하는 것처럼 보이시오? 어젯밤 강 부인의 측근인 암영으로부터 모든 걸 자백받았소.”
암영을 통해 모든 자백을 받은 임요성은 지금 눈앞에 있는 세 명의 부장들이 모두 강 부인에게 붙었다는 걸 알아내었다.
임요성은 당장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가솔까지 죽여버려 후환을 없애려 했으나, 아직 아버지가 병상인 와중에 더 이상 피를 보고 싶지 않다는 두혜련의 부탁에 최대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쉰 감찰부장은 임요성의 턱짓에 부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재정부장과 집사부장의 얼굴은 그야말로 밀가루처럼 하얗게 변했다.
딱 봐도 이미 모든 걸 알고 부른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그의 무위에 두 사람의 가슴은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옆에 있는 두혜련의 표정을 보니 이미 모든 걸 임요성에게 맡긴 듯 미동도 없었다.
“두진호 국주님께 직접 국주패를 받은 이 임요성이 말하노니, 지금부터 임시국주로 두혜련 공녀를 임명하도록 한다. 이의 있소?”
두혜련을 임시국주로 지정한 임요성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하자 그의 분위기에 짓눌려 아무도 반기를 드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재정부장 고염, 감찰부장 양현탁, 집사부장 하인택. 그대들은 표국을 집어삼키려는 강연화의 계략에 동조하여 국주 두진호를 비롯한 표국의 식솔들이 위기에 처하는 것을 방관하였소. 허나 적극적인 가담이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여, 지금 이 시간부로 표국에서 제 발로 나가는 것으로 그대들의 죄를 사한다는 것이 두혜련 임시국주의 결정이오.”
“뭐, 뭐라고…? 이런 미친! 말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