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48
청풍표국 최강식객 048화
48화. 참교육 (1)
챙!
공중으로 날아가는 자신의 거도를 보며 팽원호가 입맛을 다셨다.
“나 참, 어떻게 이렇게 허무하게 깨질 수가 있단 말인가!”
그의 주위에는 조영영과 황보익, 그리고 그의 호위무사인 강천이 둘의 비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팽원호가 패하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요즘 팽원호는 줄기차게 임요성에게 비무를 신청했고, 결과는 지금과 같았다.
팽원호가 임요성이 자신의 청을 받아들이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은 것은 바로 비무 때문이었다.
청풍표국에 둥지를 틀자마자 바로 비무 신청이 이어진 것이다.
한번은 황보익이 물어봤다. 왜 그렇게 임 공자와의 비무에 집착하냐고.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었다.
지는 데 익숙해지기 위해서라나.
자신 같은 천재는 워낙 주위에서 띄워주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실패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었다.
재수 없었지만 나름 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나 많은 강호의 천재들이 자만에 빠져 길을 잃거나 마도에 빠지기도 하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잃지 않았던가.
하지만 무엇보다도 재밌다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덧붙였었다.
다른 문파나 세가의 후기지수들의 무공은 어느 정도 뻔한 구석이 있어도, 이겨도 흥이 나질 않고, 져도 향상심이 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임요성과의 비무는 자신이 잊고 있던 향상심을 일깨워 준다는 것이었다.
팽원호는 그래서 임요성에게 늘 고마움을 느꼈다.
그런데 그의 생각과는 달리 임요성 또한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팽원호와 비무를 하다 보니 중직도를 이용한 속도 중심의 도법과는 달리 거도를 쓰며 패기와 무거움을 바탕으로 한 힘의 도법에서 자신의 무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그도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이미 자신이 배운 이 무공은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다시 발전할 부분이 있다는 사실에 한편으로 설레고 다른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다.
자신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힘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가.
그때 팽원호가 진지하게 물었다.
“이보게 친구. 도대체 자네의 경지는 어느 정도인가? 혹시 강의 경지에 발을 들였는가?
팽원호의 직접적인 질문은 만약 처음 보는 상대에게 던진 것이라면 실례되는 성질의 것이었다.
강호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실력을 일 푼은 숨기라는 격언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임요성은 이들에게 별로 그런 경쟁심이나 거리감을 두지 않았다.
별로 해줄 것도 자신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이들이다.
“글쎄. 강호에 나와서 가장 재밌었던 점이 바로 그 경지에 관한 부분인데….”
강호백서에는 상세한 무공의 경지가 적혀 있었다.
일단 심법을 익혔는가 아니냐로 구분해 무사냐 아니냐로 구분했다.
즉 기초적인 양생공이라도 익혔다면 삼류무사로 쳐줬다.
이류무사부터는 제대로 된 무공을 익혀 검법이든 도법이든 이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류무사부터는 내공의 영역이다. 쌓인 내공을 운용해 원래 자신의 몸보다 더 높은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무기에 기를 불어넣는 검경의 경지였다.
그리고 내기가 유형화되어 밖으로 발현되는 내기발현의 경지가 절정고수의 구분이었다.
내공의 성질에 따라 여러 가지 색깔의 빛이 무기를 감싸게 되고, 이로써 절정고수라는 걸 증명했다.
초절정은 화경과 절정 사이에 끼인 경지로, 같은 내기의 발현이라도 화경은 그 성질을 달리했다.
가령 물을 비유하자면, 일류고수가 몸 안에 떠도는 내기를 응집할 수 있는 단계라면, 절정고수는 기체가 액체로 되듯, 기운이 응결되는 단계였다.
즉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 수증기가 제대로 응결되어 물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파괴력이 강해지고, 기운으로 사람을 상하게 하는 기격상인(氣挌傷人)이 가능해진다.
초절정은 여기서 더 나아가 물이 얼음이 되는 경지다. 즉 응결이 응고로 변하는 것이다.
그만큼 파괴력이 무시무시해지는 것이다.
물로 맞는 거랑, 얼음덩어리로 맞는 거랑 어느 쪽이 더 아프겠는가.
그런데 화경은 이와 완전히 그 궤를 달리한다.
즉 물이 얼음으로 변한다든가의 문제가 아닌 아예 성질이 다른 쇠로 변한다고 보면 된다.
그랬기에 절정에서 화경으로 가는 것은 내공의 양이나 무공의 강함을 떠나 완전 다른 성질의 깨달음이 필요한 것이다.
몇 갑자를 가지고 있어도 초절정에 머무르는 반면, 일 갑자를 가지고 있어도 화경에 오르는 것이 그 예다.
그랬기에 임요성 또한 삼 갑자에 이른 내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 강(罡)의 경지는 오르지 못했다.
수많은 실전을 경험하며 무공도, 실력도 극에 다다랐지만 그에게는 다른 종류의 뭔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초절정이 화경의 고수에게 무조건 패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인간의 정점이라는 절정의 경지를 넘어서 초인에 경지에 다다른 그들은 그렇게 단순한 비교가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화경의 고수가 약한 내공을 바탕으로 강기를 쏘아대다 보면 금방 내공이 동나게 되고, 허를 찌른 초절정 고수의 기습으로 죽는 경우도 더러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임요성은 신공절학이라 할만한 능비혼과 현풍보의 활용으로 자신보다 높은 경지의 무인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교룡의 내단을 얻기 전 불량인 시절의 임요성을 우내십존에 비유했던 과거 객잔 무인들의 대화가 그 예라 할 수 있다.
“하긴 자네 생각도 틀린 말은 아니지. 절정고수가 일류고수에게 죽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니. 물론 그런 경우는 하수가 엄청난 경험으로 무공의 경지를 보완하는 특별한 경우지 않나.”
팽원호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임요성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부럽군. 누군 절정에서 빌빌대고 있는데, 누군 벌써 강의 경지를 논하다니.”
팽원호가 뒷머리를 거칠게 긁적였다.
하지만 얼굴엔 어떤 시기나 질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순수한 호승심과 부러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옆에서 황보익이 중얼거렸다.
“요성 형이 백타도 가능하다면 나도 비무를 해보고 싶은데 아쉽군.”
“나 백타도 가능한데?”
“예?”
“오옷! 좋아! 둘이 한 번 붙어보라구!”
오히려 몸이 달아오른 건 두 사람이 아닌 팽원호였다.
* * *
파바바바바방!
“크읍! 뭐가 이리 빠랍!”
미친 듯이 쏟아지는 임요성의 권격에 놀란 황보익이 입을 열다 혀를 깨물었다.
“퉤퉤! 젠장!”
꾸르르릉!
피를 뱉은 황보익이 내뻗은 주먹에서 뇌성(雷聲)이 울렸다.
황보세가의 독문무공인 벽력신권(霹靂神拳)의 오성 이상에 이르면 울린다는 천둥소리에 연무장을 둘러싸고 있던 나무들이 세차게 떨렸다.
우우웅!
임요성의 발차기가 공기를 가르며 황보익의 관자놀이를 향했다.
퍼억!
황보익이 가까스로 막았으나 그대로 힘을 가하자 엄청난 힘이 팔목에 가해졌다.
“크윽! 무슨 힘이!”
황보익의 팔목을 지지대로 삼아 튕겨 몸을 회전시킨 임요성의 반대쪽 발꿈치가 황보익의 안면을 강타했다.
퍼억!
촤아악!
가까스로 팔을 교차시켜 막아냈으나 뒤로 일 장을 쓸려나가면 밀렸다.
“젠장!”
황보익도 가만있지 않았다. 칼의 고수가 설마 백타에도 일가견이 있을까 방심하던 그의 생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쿠웅!
진각과 함께 앞으로 내뻗은 황보익의 주먹에서 무시할 수 없는 권기가 방출되었다.
파바바바방!
장강을 앞두고 벌어졌던 백웅과의 싸움에서 보여줬던 장법이 황보익의 권기를 해소했고, 동시에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를 내며 임요성이 쇄도했다.
빠악!
그대로 공중을 가르고 나간 임요성의 무릎이 황보익의 팔뚝을 강타했다.
“크윽!”
부러지진 않았으나 실금이 간 것 같았다.
내려서며 찍은 조법을 반대쪽 팔뚝으로 막았으나 마치 뜨겁게 달구어진 인두로 된 손가락이 잡은 듯 치익 소리가 났다.
황보익의 몸을 두르고 있던 호신기막이 타들어 가는 소리였다.
“이 무슨!”
천강수 조법 삼 초식 천강용조였다. 마치 용의 발톱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른 임요성의 손이 황보익의 팔뚝을 잡아채고 그대로 솟구치며 펼친 슬격에 황보익이 턱을 정통으로 맞아 뒤로 넘어갔다.
쿠웅―!
아무리 후기지수 중 최고를 논하는 이들이라고는 하나 임요성에게 닿지는 못했다.
“크윽!”
“어머! 괜찮아요?”
조영영이 걱정돼서 달려가려 했지만 황보익이 손사래를 쳤다.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황보익이 일어섰다.
이미 자신은 임요성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안 황보익이 포권을 취했다.
“잘… 배웠소, 요성 형님.”
“음.”
임요성도 마주 포권을 취하자 뒤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짝짝짝.
팽원호가 박수를 치며 걸어왔고, 눈에는 역시 기이한 열기를 담고 있었다.
“아니 겉으로는 저리도 얌전하게 생긴 사람이 싸움은 어떻게 저리 격렬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마음속에 활화산을 품고 있는 친구구먼.”
팽원호가 뱉은 말에 황보익도 격렬하게 동의했다.
“내 말이 그 말이오! 아니, 형님은 생긴 건 계집… 아니, 얌전하게 생겼으면서 어떻게 싸우는 건 무슨 야차같이 싸우시오?”
황보익이 아직도 자국이 남은 팔뚝을 쓸어내리며 혀를 내두르자 임요성이 멋쩍은 듯 뒷덜미를 문질렀다.
“뭐 아무래도 살던 곳이 그렇다 보니….”
“하, 언제 한번 진짜 자네의 살아온 이야기도 한번 듣고 싶군그래.”
팽원호의 말에 임요성이 피식 웃었다.
“별거 없네. 흔한 이야기지.”
임요성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황보익을 쳐다보는 눈에는 작은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확실히 강호의 명문세가의 무공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실전형 황실 무공이나 군부의 무공과는 잡다한 동작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쓸모없는 동작은 아니었다.
화법(花法)이라 불리는 강호의 무공.
그것은 화려한 초식 사용으로 문하생을 많이 받아들이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이 화법은 기공형 무공에 최적화된 동작들이다.
이들 무공의 초식 흐름과 동작은 자신이 속한 문파나 세가의 독문무공의 파괴력을 보다 높이기 위한 일종의 무공진법이었다.
즉 동작 하나, 초식 하나에 자신이 가진 내공과 공명하여 보다 높은 경지, 보다 높은 내력을 발출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초식이라는 걸 살인기예로만 집중하면 되기에 번거롭게 많은 초식이 필요가 없다.
최단 시간, 최단 거리의 베기와 찌르기 말고는 없으니까.
임요성이 참고삼아 익혔던 황실 무공 역시 그러했고, 살수의 무공도 그렇다.
내공이 없이 맞붙는다면 최적의 무술이겠으나 내공이 실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렇다 보니 임요성은 강호의 이름난 후기지수들과의 비무에서 많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오직 실전 무술로만 올라온 초절정의 영역에서 노닐고 있는 임요성은 점점 새로운 세계인 화경의 경지로 뛰어오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황보익 역시 자신과는 다른 분야라 생각하며 애써 무시했던 임요성의 무공에 깊은 감명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감명은 누군가에 의해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흐흐흐. 내가 질 때마다 고개를 짤래짤래 흔들더니 결국 너도 마찬가지네? 설마 권사가 칼잡이한테 권으로 지겠냐며 으스대더니 몇 초 버텼지? 보자….”
“크음. 그, 그만합시다….”
멋쩍은 표정으로 황보익이 머리를 긁었다.
“에혀. 남자들은 무슨 비무에 이렇게 목숨을 거는지.”
조영영이 황보익의 팔뚝을 걱정스럽게 만지작거리며 투덜거렸다.
괜히 미안해진 임요성이 헛기침을 했고, 그 모습에 팽원호가 호탕하게 웃었다.
“거참. 이거 정인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안 그런가 친구?”
팽원호가 임요성을 바라봤지만, 자기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듯 슬쩍 시선을 피했다.
“커허험! 아무튼 자네와 비무를 하면 뭔가 힘을 숨길 필요가 없으니 좋단 말야!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팽원호를 보며 임요성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임요성에게는 이런 사소한 경험들이 모두 훌륭한 깨달음의 초석이 되고 있었다.
“아무튼 오늘은 잠깐 나갔다 와야겠어. 신성대연에 관해서 몇 가지 논의할 게 있다고 소주의 단목세가 분가로 오라는군. 이번 연회는 단목세가의 분가에서 진행될 예정이거든.”
“신성대연 회의?”
단목세가가 언급되자 임요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 혹시 자네가 솔깃할 만한 소식이 있으면 기억해두지.”
팽원호가 임요성을 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리고 어차피 너희들도 같이 가야 하는데…. 너는 팔목 괜찮겠어?”
“거참! 비록 진천성에 들지 못했어도 산동의 흑곰이라 불리는 나요. 이 정도는 끄떡없소.”
“그럼 바로 가자구.”
팽원호와 황보익, 조영영이 청풍표국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임요성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사심 없이 자신에게 다가와 준 그들을 보며 임요성은 불량인으로 살며 조금씩 깎여나갔던 정(情)이라는 감정을 되새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