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51
청풍표국 최강식객 051화
51화. 참교육 (4)
“허어어억!”
호상희의 명령으로 백련문을 도와주었던 세 명의 절정 고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내, 나윤천이 깜짝 놀라 일어난 곳은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어두침침한 지하 뇌옥이었다.
“당신은 누구요…?”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옆에 사람이 있는데도 몰랐다니….
급히 내력을 끌어올려 봤지만, 단전에 내공이 모이는 족족 흩어졌다.
뭔가 술수를 쓴 모양이다.
‘젠장.’
그래도 산 게 어딘가.
“넌 누군데?”
질문을 받은 사람은 두원후였다.
“나? 난 이 집 둘째 아들.”
“뭣?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냐고 물으려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곳 또한 강호였기에.
그때였다.
삐―걱.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임요성이 걸어 내려왔다.
철컹.
쇠창살 문을 열고 들어온 임요성이 사내의 얼굴에 다짜고짜 손을 갖다 대려 하자 벼락처럼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쿵쿵쿵…!
“대협!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또 견마지로냐?
임요성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널 살려둔 건 네 녀석한테 정보를 얻기 위함이다. 그리고 쉽게 가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실랑이를….”
“하나도 숨기지 않겠습니다! 뭐든 물어보신다면 제 멍청한 머릿속에 떠다니는 부유물까지도 긁어서 읊어 올리겠습니다!”
나윤천이 다시 고개를 찧으려 할 때였다.
“그만. 정신 사납다. 일단 네 말을 들어 보도록 하지.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하는 기미가 보이면 바로 사지가 찢어지는 고통을 주겠다. 하지만 대답만 잘하면 고통 없이 죽여주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윤천이 눈물을 글썽이며 목숨을 구걸했다.
“대협! 그러지 마시고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저, 저에게는 아픈 아내가 있습니다. 제가 죽는다면 아내 역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죽음이 두려웠다. 하지만 그에게는 죽음이 두려운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랬기에 더욱 간절해진 것이다.
쿵쿵쿵쿵…!
임요성이 관자놀이를 짚었다.
“…알겠으니까 일단 가만 좀 있어 봐.”
가라앉은 목소리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은 나윤천이 대뜸 부복을 취했다.
임요성이 입을 열었다.
“누가 시켜서 왔나?”
“하오문 소주지점장 호상희입니다. 소주제일루의 루주이지요.”
“흠…. 하오문이라… 이것들이 계속 거슬리게 하는군.”
차가운 임요성의 표정에 부복한 나윤천이 마른침을 삼켰다.
처음 봤을 때도 느낀 거지만 뿜어져 나오는 중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호상희 그년의 아비를 봤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때 임요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좋아. 네가 알고 있는 하오문에 대한 모든 걸 말해봐라.”
나윤천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줄줄 읊어댔다.
“알겠습니다. 하오문은 그러니까….”
행동은 좀 가볍긴 했으나 그에게서 나오는 말은 제법 알토란 같은 내용이 많았다.
한참을 말하던 나윤천은 머리를 쥐어 짜내기 시작했다.
말이 끝나면 죽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소한 것 하나라도 입을 터는 것이다.
“됐다, 그만해. 그러니까 하오문은 현재 따로 문주가 없다? 각 성에서 자체적으로 관리를 하며, 성급 도시의 지부장이 관할 도시의 지점장들을 통솔한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 소주 하오문의 지점장인 호상희의 아비가 강소성 지부장으로 있기에 그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습지요.”
임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강호백서에도 없는 이야기였다.
“워낙 하오문이 점조직이라 문주라는 게 사실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강력한 힘으로 이끌던 문주가 죽고 나면 그다음 대 문주가 나오기까지 한참 걸리는 게 하오문입니다. 솔직히 문주가 누군지는 문도들에게 별 의미가 없죠. 자기는 바로 윗대에게만 잘 보고하면 되니까요.”
“그렇군. 그럼 만약 내가 강소성 하오문 지부장을 죽인다면 다른 성의 지부장들이 복수를 할 것 같은가? 너의 생각을 말해봐라.”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대협의….”
“그냥 공자 정도로 하지.”
“존명. 공자님의 지위를 인정해드릴 겁니다. 자신들도 그렇게 그 자리에 올라왔고, 굳이 다른 성의 지부장과 분란을 만들어 전쟁에 휘말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서로 간의 경계가 명확하니까?”
“정확하십니다. 하지만 만약….”
나윤천이 살짝 고개를 들어 임요성과 눈을 마주치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중원 전체의 하오문을 통일하실 생각이시라면 아마 다른 지부장들이 연합해서 공자님을 공격할 겁니다.”
임요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생각은 없다. 단지 소주 바닥에서 걸리적거리는 걸 치우고 싶을 뿐이지. 그런데 그 소주지점장의 아비가 강소지부장이라니 같이 치울 수밖에.”
“공자님―!”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니 큰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놈이 뭐 하는 거지라는 표정의 임요성이 어이없는 눈으로 그가 하는 양을 지켜봤다.
“저를 공자님의 수하로 삼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나윤천은 지금 자신이 돌아가도 죽음을 면치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같이 갔던 이들이 모두 죽고 인질이 되었다가 풀려난다고 한들 호상희 그년은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공자에게 의탁하지 않는다면 분명 죽게 될 것이다.
“지금도 충분한데 굳이 널 받을 필요가 있을까?”
“사람은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전 무공도 조금 하지만 하오문에서 오래 굴러먹어서 잡다하지만 꽤 많은 지식이 머릿속에 있습죠. 이런 것들도 분명 도움이 되실 겁니다.
“말은 잘하는군. 난 말만 번지르르한 녀석은 믿지 않는다. 아무튼 됐고, 넌 하오문에서 어떤 위치였나?”
“전 소주 하오문 지점에 들어오는 신입들의 무공을 교육하던 사범이었습니다.”
무공사범이었다는 말에 임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쓸만한 곳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좋다. 정 네놈이 살고 싶으면 너의 쓰임을 증명해라. 그리고….”
덥석.
“……!”
나윤천이 입을 열기도 전에 얼굴을 덮어 쥔 임요성의 손에서 흑빛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임요성이 중얼중얼 뭔가를 말하자 잠시 나윤천의 눈동자가 한동안 붉게 명멸했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크윽!”
임요성이 손을 떼자 나윤천이 신음을 내며 휘청거렸다.
“네놈을 뭘 믿고 내 뒤를 맡기겠나. 나를 비롯한 내 지인들과, 청풍표국의 식구들에게 해코지를 하려는 마음을 먹는 순간 온몸의 기혈이 뒤틀릴 것이다. 일종의 최면 금제지.”
“흐으…. 괜찮습니다. 그 정도의 금제로 살 수만 있다면….”
임요성은 그의 말투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보통 목숨을 구걸하는 자와는 다른 무엇이 있었던 것이다.
“널 신임한다고 한 적은 없다. 단지 네놈이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기회를 줘보는 것이지.”
임요성은 강호백서만으로 이 드넓고 깊은 강호의 세계를 이해하기는 부족하다는 걸 느끼는 중이었다.
오히려 이런 흑도의 인물이 강호의 추악한 민낯과 드러나지 않은 뒷얘기들을 더 잘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기회를 줘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한 것이 걸리기도 했고.
임요성이 몸을 돌리고 나윤천이 뒤따를 때였다.
“공자님! 저에게도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두원후였다.
두 사람이 하는 양을 지켜보던 두원후가 자기도 빌면 살려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간절한 눈으로 임요성에게 부탁을 했다.
“다시는 불온한 마음을 품지 않겠습니다! 개가 되라면 되고, 말이 되라면 되겠습니다! 제발 제게도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십시오!”
뒤를 돌아본 임요성이 담담히 말했다.
“결정은 네 아버지의 몫이다. 기다려라. 곧 쾌차하실 터이니. 그때 가부 간의 결정이 내려질 것이다. 그동안은 자숙하고 있도록.”
“…알겠습니다.”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뜨리는 두원후를 보며 임요성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마냥 악한 놈이라 생각했던 두원후가 지금 보니 그냥 철없는 청년이었을 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엄마 치마폭에 싸여 천지 분간을 못 했기에 거침없이 행동해왔지만, 막상 모든 걸 잃자 마음을 잠식하고 있던 여러 악한 기운들이 사그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힐끗.
그의 옆에 있는 다른 방에는 강연화가 멍한 표정으로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자신의 가문이 멸문하고 유일한 의지처였던 아버지까지 돌아가시고 나자 정신을 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 외모가 충격적이라 할 정도로 많이 달라져 있었다.
중년의 나이에도 젊은 여성의 피부처럼 탄력 있던 얼굴에 주름이 생겨났고, 머리를 하얗게 새 있었다.
너무나 큰 충격에 기력이 다 빠져나간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무가의 여식으로 일정 부분 느껴지던 내공이 하나도 없었다.
기력이 빠져나가면 내공 역시 자연적으로 흩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그 내공으로 유지하던 주안술이 풀어지면서 본래 나이보다도 더욱 늙어버린 것이다.
이 정도면 앞으로 제대로 사는 것도 힘들 것이다.
“…언제부터 저랬지?”
임요성의 물음에 두원후가 자신의 어머니를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날부터입니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크윽….”
두원후가 서러운 듯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공자님! 저희 모자를 살려주십시오. 이제 저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제발 목숨만 부지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두원후가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그만해라. 아까 말했다시피 두 국주님께서 깨어나셔야 하니. 일단… 어머니나 잘 보살펴 드리도록 해라.”
찝찝한 마음에 혀를 한 번 찬 임요성이 몸을 돌렸고, 바닥에 엎드린 두원후와 멍한 표정의 강연화를 한 번 쳐다본 나윤천이 그의 뒤를 따랐다.
* * *
날이 밝자 표국 전체가 술렁였다.
홍국헌의 표사대가 머무는 전각에 팔에 붕대를 감고 있는 한 청년이 들어왔다.
“선배님들! 어제 그 소식 들었어요?”
“으하함. 막내가 또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듣고 와서 우리를 재밌게 해주려나?”
그의 말에 요양 중인 표사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청년은 하북에서 임요성과 팽원호의 비무를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신입이었다.
다행히 이번 습격에서 살아남았으니 그야말로 천운이라 할 수 있다.
“아이참. 이건 진짜 큰 건이라니까요? 이번에 백련문이라는 무관에서 우릴 습격했는데, 임 공자님이랑 그분이 데려온 호법 두 분이서 수장 둘을 죽이고, 나머지 문도들은 모두 잡았다고 해요.”
“뭐?”
“정말이냐?”
표사들이 깜짝 놀라 바닥에서 튕기듯 상체를 세웠다.
“진짜예요. 게다가 수장은 죽이고, 문도들을 모두 사로잡아 지금 우리 경비대로 쓰려고 정신개조 중이래요!”
“허어, 이게 무슨 일인지.”
간밤에 백련문이 표국을 습격했으나 임요성과 두 호법이 그들을 막았다는 내용에 모두 경악과 함께 감탄으로 끝을 맺었다.
사실 그들의 진면목은 흑도방이었으나, 그것을 아는 이들은 드물었기에 청풍표국의 식솔들은 그냥 소주에 있는 무관으로 알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로서는 환영할 일이었다.
아직 청풍표국은 경비조차 제대로 설 인원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꺼번에 일꾼(?)들이 생긴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일류까진 아니더라도 이류와 삼류 수준의 실력을 갖춘 나름 무인들이었기에 표국의 경비대로 쓰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홍국헌은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져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가뜩이나 인력난에 없던 탈모까지 생긴 홍국헌은 그야말로 덩실덩실 춤을 출 정도였다.
그리고 외원에 위치한 표사 전용 전각에 딸린 작은 연무장에는 간밤에 표국을 습격한 백련문도 오십여 명이 도열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