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62
청풍표국 최강식객 062화
62화. 주군의 자리 (1)
밤이 깊어 모든 전장의 직원들이며 고객들이 빠져나간 천하전장 강소지부의 뒤뜰은 황량하기만 했다.
성급 지부였기에 뒤뜰이라 해도 중소 무관의 연무장 정도의 크기라 수십여 명은 거뜬히 수용 가능했다.
자정이 넘어가자 황량했던 후원에 하나둘씩 사람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더니 이내 후원이 가득 찼다.
오랜만에 보는 이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간단한 눈인사를 하며 상대의 생사만 확인했다.
각 성에서 온 이들이라 지방의 사투리며, 억양으로 시끌시끌해지던 무렵 표홀한 신법을 펼치며 후원의 앞부분에 내려서는 열 초로인들의 등장에 삽시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묵풍 장로님들을 뵙습니다.”
조용한 음성이었으나 오십여 명이 동시에 인사를 올리자 제법 울림이 있었다.
“모두 잘 살아있었구나.”
푸근한 인상의 초로인이 수염을 쓰윽 쓰다듬으며 그들의 면면을 훑었다.
묵풍조(墨風組)는 묵천군이 단목세가와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일 때 그를 수행했던 열 명의 호위들로 그들은 이후 묵풍조라는 단체 별호와 함께 천도들뿐만 아니라 당시 강호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일검 형님. 못 보던 새 어디 젊은 첩이라도 구한 거요? 얼굴이 왜 그렇게 윤기가 나?”
후원에 모여 있던 이들 중 연장자로 보이는 이가 한 초로인을 향해 대뜸 묻자 폭소가 터졌다.
묵풍조는 서열에 따라 일검부터 십검으로 불렀다.
처음엔 편의상 그렇게 불렀지만 이제는 그게 자신의 이름처럼 되어 버렸다.
“예끼 놈. 첩은 무슨. 반로환동의 조짐이라 생각하거라.”
“반로환동은 무슨. 아니 반로환동이 무슨 개나 소나 다 하는 거면 강호에 반로환동이 넘쳐나겠수다.”
옆에 서 있던 이검이 피식 웃자 일검이 고개를 홱 돌렸다.
“이 새끼가 개나 소나라니!”
“어허. 욕 찰지게 하는 건 여전하구려.”
묵풍조는 한 명의 여인과 아홉 명의 남자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모이면 주로 일검과 이검이 말다툼을 벌였고, 조용한 성격의 여인인 칠검은 다른 동료들의 말을 듣기만 했다.
묵천군이 사라지고 그들은 정기적으로 1, 2년에 한 번 정도는 모임을 가져왔으나 칠검은 이렇게 모임에 나오는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묵천군을 사이에 두고 경쟁을 하던 기녀와 연적이었다.
단목세가와의 혈전 이후 칠검은 묵천군이 이제야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웬걸, 오히려 아예 강호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자진을 하려는 걸 다른 묵풍조들이 말려 겨우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이후 묵천의 근거지가 있던 항주에 있는 작은 절에서 계속 은거 중이었다.
가끔 다른 묵풍조들이 안부차 방문을 하긴 했지만, 그녀는 조용히 차만 내줄 뿐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주로 찾아간 이들 쪽에서 강호의 정세나 중요한 사건들을 말하다가 입맛만 다시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끔 반응을 보이는 건 묵천군에 대한 내용뿐이었다.
찾지 못했다는 말에도 그녀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이십 년이 지난 지금 그의 후계라는 자가 왔으니 그녀가 어찌 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의 마음을 아는 다른 묵풍조들은 간단한 안부를 물은 이후에는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끼익.
구용식과 매영옥이 후원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묵풍 장로님들을 뵙습니다.”
선배인 그들에 대한 예를 표한 뒤 그들은 이미 마련된 중앙 단상 옆에 시립했다.
그리고….
저벅. 저벅.
땅을 지르밟는 듯한 소리가 적막한 사위를 뚫고 들려오기 시작했다.
꿀꺽.
열린 후원의 문으로 임요성이 나타나자 천도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훤칠한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이 강인한 무사보다는 문사의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걸어올 때 느껴지는 묵직한 기도와 남자다운 인상이 그런 분위기를 상쇄시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에서 느껴지는 묵빛 안광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오직 탈혼검법을 대성하여야만 나올 수 있다는 묵천기를 드러내며 다가오는 임요성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극적이었다.
첫인상인 만큼 최대한 천군다운 모습을 보여달라는 구용식의 언질에 임요성은 자신의 성격과는 맞지 않았으나 이번만큼은 그의 말을 따랐다.
탁. 탁. 탁.
단상으로 올라가 자신을 여러 가지 감정이 담긴, 그러나 공통적으로 경외의 눈빛만은 담고 있는 그들을 보며 천천히 포권을 취했다.
“묵천의 천도들을 뵙게 되어 반갑소. 나는 전대 묵천군의 진전을 이은 임요성이라 하오.”
그리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다시 좌중을 훑었다.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서늘하지만 아름다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난 인정할 수 없어요. 정녕 묵천군의 진전을 이었다면 이 자리에서 증명하세요.”
칠검이었다.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 제법 나이가 든 티가 났으나 그래도 타고난 미모는 여전했다.
“칠검 장로시군요. 좋습니다. 어떻게 증명하면 되겠습니까?”
“흥. 무림의 법도는 한 가지. 나와의 비무를 통해 증명하세요. 묵천 4대 절학으로 나를 이긴다면 인정하겠어요.”
고개를 끄덕인 임요성이 다른 묵풍조을 쳐다봤다.
“다른 묵풍조 장로들께서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갑작스러운 칠검의 비무 요청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는 법.
“그렇소. 차례차례 비무를 해서 우릴 모두 이겨주시오. 그럼 우리는 공자를 당대 묵천회의 천군으로 인정하겠소.”
일검의 말에 임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휘릭.
단상에서 공중을 격해 날아간 곳은 천도들의 중심이었다.
임요성의 등장에 모두 급히 뒤로 물러나 어느새 커다란 원이 그려졌다.
“장로들 모두 한꺼번에 덤비시지요.”
그가 내뱉은 말에 장로들뿐만 아니라 천도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음?”
“허?”
“하… 하하하.”
“…….”
각자의 성격에 맞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허허. 공자께서 호승심이 너무 지나치시는구랴. 전대 묵천군이라도 지금 우리를 만난다면 질게요.”
일검이 푸근한 얼굴로 말하자 옆에서 이검이 고개를 주억였다.
“맞아. 지금 우린 20년 전 그대로가 아니거든. 공자께서는 자존심 상해할 필요 없으시오. 우리가 모두 뜬다면 상천십좌도 감당할 자신 있으니까.”
이검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20년 전, 그들의 경지가 절정이었다면, 현재 그들은 모두 초절정을 넘긴 상태였다.
“그래, 공자께서 상천십좌에 오르면 몰라도 지금은 너무 이르오.”
뾰족한 턱을 가진 빼빼 마른 삼검이었다. 그만큼 그들은 자신들의 무공에 자신이 있다는 말이었다.
“공자. 괜한 호승심에 이 많은 천도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서 얼굴 팔리지 말고 한 명씩 붙어요. 그렇게 해서 우릴 다 이긴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예요.”
칠검이 얼굴을 굳힌 채 말하자 이번엔 임요성이 피식 웃었다.
“사부님에 대한 믿음이 강하시군요. 하지만 그분과 난 걸어온 길이 다릅니다. 거쳐온 수라장의 수준이 다르며, 손에 묻힌 피의 양이 다릅니다. 앞으로 그대들이 믿고 따를 새로운 천군이 될 나, 임요성의 ‘격’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들이 마음으로 믿고 따르던 묵천군과의 비교에 묵풍조의 얼굴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아무리 앞에 있는 이 젊은이가 묵천군의 제자라고는 하나 그들은 묵천군과 생사를 함께 했던 전우.
그보다 자신이 더 높은 수준이라는 직설적인 말에 묵풍조의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자만 이 모든 건 임요성이 의도한 바였다.
이들은 묵천군에 대한 충성심이 유별나게 높다.
그렇기에 자신이 하수라도 적당히 맞춰주다가 주군으로 추대할 것이다. 묵천군의 유지를 받든다며.
하지만 임요성은 그런 식으로 천군의 자리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이왕지사 하기로 한 것 제대로 이들의 마음을 얻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제대로 도발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도발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흥. 별수 없지. 정녕 공자가 원한다면 왜 우리가 묵풍조로 당대에 인정받았는지 보여드릴 수밖에.”
키는 작지만 강한 인상의 사검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차례차례 임요성을 둘러 원을 그렸다.
“공자. 그대의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 상대와의 차이를 알지 못하고 무모한 희생을 하려는 것부터가 이미 수장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소. 지금부터는 무림의 선배로서 후배에게 따끔한 지도를 해드리리다.”
푸근한 표정의 일검조차 이번에는 굳은 얼굴로 임요성을 질타했다.
오른쪽 옆 눈가에 길게 난 흉터가 그런 그의 인상을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웃기만 할 때는 주름처럼 보여 푸근해 보이던 인상이 살기를 머금자 더없이 흉흉했다.
묵풍조의 날 선 반응에 임요성이 아무런 대답 없이 몸을 풀었다.
어깨를 돌리고, 목을 돌리며, 팔목 발목을 돌리자 다른 천도들까지 비웃음을 흘렸다.
무슨 파락호들 개싸움 하는 것도 아니고, 고수들과의 싸움에 무슨 몸풀기란 말인가.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 역시 얼마 만에 이렇게 몸을 풀어보는지.
그 말인즉, 그들은 이제 보게 될 거라는 뜻이이다.
천섬이라 불리며 수많은 이들을 영문도 모른 채 죽도록 만든 극쾌의 검을 말이다.
“하핫. 참나. 그래 몸은 다 풀었소? 시작해도 되겠소이까?”
빈정거리며 묻는 오검의 조소 어린 표정에 다른 묵풍조들도 허탈한 듯 픽 웃어버렸다.
하지만 임요성은 담담하게 칼을 뽑았다.
스릉. 스릉.
가장 먼저 중도인 흑아를 뽑아 우수에 쥐고, 다시 그 안에서 소도인 흑조를 뽑아 좌수에 역으로 쥐자 묵풍조들의 눈썹이 꿈틀했다.
“도? 검이 아니고 도란 말인가! 이런 몹쓸! 지금 우릴 가지고 장난을 했던가! 탈혼검법은 도법이 아닌 검법이거늘! 어찌 도를 든 자가 묵천군의 전인을 자처한단 말인가!”
일검의 노호성에 다른 묵풍조들도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하! 우리가 속았구려!”
“이런 미친! 어이가 없군.”
“이보게 용식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구용식은 자신에게 떨어지는 불호령에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이미 탈혼의 맛을 봤다. 그리고 청풍표국의 국주전 앞마당에서 펼친 그 압도적인 한 수!
한칼에 십수 명의 목숨을 한 번에 날려버린 새로운 풍인의 참격에 임요성을 완전한 자신의 주군으로 받아들였다.
“일검 장로님. 붙어보면 알 일입니다. 보고 있자니 묵천군의 전인을 앞에 두고 말씀들이 너무 많으시군요. 비무가 끝나고도 장로님들의 입이 그리 자유로울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뭐, 뭣이!”
자기가 한창 활동할 때 막내로 들어왔던 이가 구용식이다.
그런데 이런 방자함이라니! 아마도 그것은 임요성에 대한 충성에서 비롯된 것일 터.
그 마음은 이해가 가나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일검의 판단력은, 아니 다른 묵풍조 모두 판단력이 흐려져 있었다.
“싸움을 입으로 합니까. 지루하니 빨리 덤비시지요.”
“하! 어디 실력도 그 입에 버금가는지 두고 보겠소!”
챙!
채재재쟁…!
일검이 검을 뽑자 다른 묵풍조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지금껏 탈혼검법을 연마해 왔으나 칼, 그것도 이도술이라는 믿기지 않는 광경에 다들 불신이 가득했다.
스슥.
임요성의 발끝이 땅을 쓸고,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그의 행동에 묵풍조 역시 동시에 상체를 숙이며 당장이라도 출수할 듯 자세를 낮췄다.
사아아악.
공기가 내려앉고, 그들의 분위기를 감지한 천도들의 눈도 같이 가라앉았다.
쏴아아아아!
주변을 압박해 나가는 그들의 기도에 후원 곳곳에 심겨 있는 버드나무 자락에서 비가 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웅, 웅, 웅.
대치한 임요성과 묵풍조의 무기들에서 모두 내기가 한 올 한 올 피어오르더니 새끼줄처럼 꼬여 뚜렷하게 뭉쳐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초절정고수의 증명인 위강(僞罡)!
그들보다 나이가 작게는 이십 년, 많게는 삼십 년이 적은 임요성이 자신들과 같은 위강을 내뿜자 묵풍조의 얼굴이 일제히 굳어졌다.
나이가 이제 이립에 들어선다고 들었거늘, 벌써 위강이라니!
묵풍조의 장로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천군, 아니 주군이시여. 부디 이 비무로 정식으로 저희의 주군이 되어주십시오. 격의 차이를 보여주십시오.’
구용식이 마음속으로 기도할 때, 갑작스럽게 거대한 파공음이 터졌다.
콰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