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69
청풍표국 최강식객 069화
69화. 백운신의 (4)
그가 누워있는 동안 많은 이들과 상의도 하고 고민도 한 부분이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죽이자니 그래도 이십 년 가까이 두혜련의 어미 노릇과 두진호의 아내 역할은 충실히 한 그녀였다.
그렇다고 살려두자니 이번에 그녀의 욕심으로 인한 피해가 너무 컸다.
하지만 얼마 전 뇌옥에서 본 두원후와 강연화의 모습에서 임요성은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강 부인은… 이미 제정신이 아닙니다.”
두진호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임요성이 뇌옥에서 본 그녀의 모습을 이야기하자 두진호가 장탄식을 내뱉었다.
“그렇군….”
야욕이 무너진 것도 모자라 아버지와 그 식솔들이 모두 죽었으니 그 충격이 오죽하랴.
비록 자신에게 한 일은 괘씸했지만, 또 그리되었다니 두진호의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임요성의 말에 침통한 표정으로 머리를 기대어 생각에 잠겨 있던 두진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절에 비구니로 넣는 방법은 어떤가?”
임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구니라… 그것도 괜찮겠군요. 그 생각은 못 해봤습니다.”
그렇게 말하던 임요성은 문득 한산사의 그 노승이 생각났다.
무공은 익힌 것 같진 않았지만 보통 승려가 아니었다.
모든 내공을 상실한 강연화 정도는 충분히 다룰 수 있을 강단의 소유자였다.
“절은 제가 알아보지요.”
“음. 부탁하네.”
“그리고 두원후는….”
잠깐 뜸을 들인 임요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군역을 이행토록 하는 건 어떨지요?”
“군역?”
두진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관과 강호 무림이 아무리 관무불가침이라는 불문율이 있다고는 하나 해야 할 의무는 있었다.
세금이라든지 군역의 의무 같은 것들이다.
사실 군역은 거대세가의 경우엔 돈으로 해결하는 게 대부분이었고, 대문파는 황실이나 관에 일정 부분 무력 봉사를 통해 해결하곤 했다.
두원후 역시 이번에 스무 살이 되면서 군역의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
두진호는 그동안 두원후의 군역을 돈으로 해결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예. 죽일 수는 없다고 쳐도 이번에 강 부인으로 인해 많은 인명피해가 났습니다. 강 부인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니 절에 비구니 넣는다고 쳐도, 두 공자까지 아무런 벌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가솔들 사이에 말이 나올 겁니다.”
“으음….”
두진호가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군역을 간다는 것은 꽤 위험한 일이었다.
대개 몸의 어디 한 군데가 상해서 돌아오는 것은 예사요, 죽는 것도 허다했다.
“표국을 위해 군역을 이행한다고 하면 가솔들의 불만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을 겁니다.”
군역을 돈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강호 무림에 제대로 군역을 행한다는 건 표국을 바라보는 세인들의 시선이 훨씬 좋아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아들들이 많은 경우 한두 사람 정도는 일부러 군역을 이행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게다가 군부에서 새사람이 되어서 나오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두진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자신이 생각해도 임요성의 생각이 가장 최선이었다.
아들을 죽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넘어갈 수는 없다.
만약 군대에서 잘못된다면…. 그건 자신과 아들이 감당해야 할 몫인 게다.
“…그래. 그렇게 하시게. 그리고 고맙네. 내가 챙겨야 하는 부분이거늘….”
두진호가 임요성의 두 손을 잡고 두드려 주었다.
* * *
한편 소주의 거리는 다가오는 신성대연의 일로 북적였다.
각 지방의 표국, 상단부터 시작해서 작은 포목점, 철방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 눈도장을 찍어 작은 하청이라도 받기 위해 간과 쓸개는 이미 집안 장독대에 깊이 넣어두고 왔다.
점점 신성대연 날짜가 가까워지자,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구름 위의 존재라고 할 만한 진천구성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무당의 의찬, 남궁세가의 남궁헌, 화산의 담명, 소림의 홍천, 황보세가의 황보혁, 모용세가의 모용백, 공동의 벽운, 그리고 팽원호와 이번에 신성대연을 주최한 단목룡까지 진천구성이라 불리며 강호 젊은이들의 존경을 받는 이들이 모두 모였다.
거리에 따라 도착에 조금씩의 차이는 있었으나, 신성대연이 다가오자 진천성들이 모두 소주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들의 입성으로 소주 거리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먼발치에서나마 그들을 보고 싶어 하는 여인네들, 그들과 조그마한 인연이라도 쌓으려는 중소세력의 대리인들이 그들과 좀 더 지근거리에 있기 위해 각축전을 벌였다.
그리고 청풍표국의 회의실에는 병석에서 일어난 두진호가 참석하는 첫 회의가 열렸다.
두진호의 시선은 가장 먼저 총관을 향했다.
“허허. 그래. 나 없는 동안 모두 잘해주었네. 이 총관.”
“예. 국주님.”
“고맙네. 끝까지 중심을 잡아줘서 말이야.”
“별말씀을요. 당연한 것을.”
“허헛. 그 당연한 게 제대로 돌아가질 않아 이리되지 않았나.”
두진호는 따뜻한 표정으로 총관 이천호를 바라봤다.
임요성. 그가 있었기에 이 표국이 건재할 수 있었고, 폭풍 같았던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총관이 아니었다면, 그가 중심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아무리 임요성이 있다고 한들 일반 하인들이나 쟁자수들의 동요가 심했을 것이고. 많은 이탈자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표국을 지켜온 총관이 듬직하게 자리를 잡고 그들을 다독여 주었기에 그들은 안심하고 다시 미래를 꿈꿀 수 있던 것을 두진호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있다.
“그리고 오 시녀장도 고생 많았고, 상자수께도 감사드립니다.”
임요성이 식객이면서도 든든하게 청풍표국의 외풍을 막아준 방풍림이었다면, 이들 셋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청풍표국을 지탱해준 대들보와 같은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그럼 고마운 사람들끼리 잘 이야기 나누게. 난 숨이 차서 그만 일어나지.”
자기 할 말만 하고 일어나는 두진호를 보며 모두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다가 두혜련이 급히 일어나 아버지를 잡았다.
“자, 잠깐만요, 아버지! 갑자기 나가시면 어떡해요?”
두혜련이 난감한 표정으로 묻자 그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받았다.
“허허. 국주패를 가지고 있는 임 공자도 있겠다, 임시국주인 너도 있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더냐? 아, 말이 나온 김에 이번 참에 그동안 나 대신 임시국주직을 수행하던 련아를 정식으로 소국주로 삼도록 하겠네. 그리고 당분간도 나 대신 표국의 업무를 맡으면 될 게야. 이의 있는 사람 있는가?”
두진호의 결정에 아무도 반기를 드는 이는 당연히 없었다.
“흠흠. 이제 굳이 내가 있을 필요가 없겠지? 소국주?”
갑자기 소국주가 된 두혜련이 어안이 벙벙하다가 급히 말을 이었다.
“네? 그래두요. 이렇게 오셨는데….”
“그러니까 내 할 말은 다 했잖느냐? 고마운 사람들한테 감사 인사했으면 됐지. 이제 둘이서 잘 의논해서 처리하면 될 게다. 앞으로도 그럼 될 거고. 사이좋게? 응? 험험.”
헛기침을 하며 임요성을 은근한 눈으로 한 번 쳐다봐준 두진호가 방을 쌩하니 나가버리자 모두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하…. 일단 아버지 몸이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으니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제가 따로 재가를 받는 쪽으로 하죠.”
아무도 두진호가 몸이 안 좋아서 이 방을 나갔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실제로도 두진호의 몸은 병상에서 갓 일어난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쌩쌩했다.
요즘엔 그 좋아하는 원림에서 백운신의와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물론 이들도 알고 있다. 임요성이 모시고 온 의원이 아주 고명한 분이라는 것을.
그러니 그 죽어가던 양반을 벌떡 일으켜 세운 것이 아니냐는 표국 내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있는 것 아니겠나.
하지만 설마 강호 최고의 명의라는 백운신의라는 것을 짐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진호는 백운학이 지어주는 탕약과 아침저녁으로 행하는 시침으로 중독되기 전보다 더 좋은 몸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는 몰랐지만 이대로만 가면 절정의 문턱에서 주저앉았던 한을 풀 충분한 몸 상태가 되어줄 것이었다.
“큼. 우선 오늘 논의할 주제는 신성대연의 초청장에 관한 문제예요.”
두혜련이 품에서 초청장을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자 모두의 눈이 그리로 쏠렸다.
현 청풍표국의 회의실에는 호위대주를 맡은 여산홍, 정보각주인 구용식, 경비대주 나윤천에 총관 이천호, 대표두가 되어 표사부를 책임지게 된 홍국헌, 시녀장 오연희, 상자수 감천식이 포함되어 총 9명이 회의실에 모여 있었다.
이번 일로 임요성과 두혜련은 앞으로의 회의 때도 오 시녀장과 감 노사를 포함하자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아무래도 집안의 하인들을 관리하는 두 사람이 있으면 표국의 분위기를 다잡는 데도 좋고, 밑에서 흐르는 소문을 확인하고 좋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두혜련의 말에 경비대주 나윤천이 불쑥 내뱉었다.
“소국주님, 의논할 게 뭐 있습니까. 이것처럼 좋은 기회가 어딨다구요. 무조건 참석해야죠.”
빙글거리는 나윤천을 보며 총관 이천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 대주 말이 맞소. 이건 우리 같은 중소표국에게는 큰 기회요. 그 점에서 임 공자께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모두 공자님이 벌이신 일과 인맥으로 성사된 일일 테니까요.”
총관의 정중한 인사에 임요성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무턱대고 참석할 수는 없소. 신성대연에 참석하게 되면 필시 많은 이들과 엮이게 될 테고, 표국이라는 특성상 많은 의뢰를 받을 수도 있지 않겠소?”
이천호의 물음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이천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마도 신성대연의 참석은 여기 계신 두혜련 소국주님과 임요성 공자께서 동행하는 게 제일 보기도 좋고, 의미도 있을 것이오. 하지만 아직 임 공자께선 표국의 일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으실 테고, 소국주님도 마찬가지지요. 그런 걸 논의해보면 될 것 같소.”
이천호의 긴 얘기에 모두 수긍을 표했다.
“듣기로 연회에 참석하는 인원은 수장 한 명에 호위와 시종, 이렇게 해서 총 3명이 한계인 걸로 압니다. 구성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나, 인원수는 한계가 있다지요?”
두혜련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초청장에도 그렇게 쓰여있더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아무래도 홍 표두께서 동행하시는 것이 즉각적인 대응도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가장 이상적일 것 같습니다.”
신성대연은 말 그대로 지역 최고의 축제라 할 수 있었다.
진천구성이 번갈아 가며 일 년에 한 번씩 개최하는 행사에는 보통 때는 볼 수 없는 강호 최정상에서 군림하는 내빈들을 먼발치에서나마 구경할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나 청풍표국은 중소표국인 관계로 그간 단목룡이 여는 신성대연에는 한 번도 초대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런 기회를 또 언제 잡을 수 있겠는가.
사실 내심은 모두 동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큰 표행 건을 따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한 이런 중요한 연회에 아직 표행에 관한 경험이 적은 두혜련과 임요성만 가고 표두가 안 갈 수는 없었다.
이후의 시간은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이번 연회에서 일어날 일법한 일들에 대한 토의가 이어졌다.
그렇게 토의를 마치고 나온 임요성의 전각에는 백운신의가 제자와 함께 앉아 있었다.
임요성이 자리에 앉으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도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치료비는….”
“됐다, 이 녀석아. 내가 너한테 치료비를 받겠느냐. 어차피 약재값은 너희 총관이 알아서 처리해주었고.”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왜? 빨리 보내고 싶은 게냐?”
“하하. 그럴 리가요. 저야 신의께서 계속 있어 주시면 좋지요. 원래 표국엔 없던 의각을 따로 만든 것도 신의가 계실 곳을 만들어드리기 위함도 있습니다. 계실 만큼 계시다가 좋은 의원이나 한 분 추천해주시면….”
“여기 있지 않느냐?”
“예…?”
임요성이 눈을 크게 뜨고 되묻자 백운학이 고개를 옆으로 까딱했다.
“내 제자 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