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7
청풍표국 최강식객 007화
7화. 시작되는 인연(3)
“자, 보십쇼.”
고광춘가 오기 전까지 무표정하게 창밖을 보고 있던 임요성의 눈이 책자의 겉표지로 이동했다.
“강호백서?”
“헤헤. 무사님처럼 강호에 처음 발을 딛는 분들을 위해 제가 지은 책입죠. 보시면 아마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흐음.”
임요성이 책자를 사라락 펼치다 눈에 띄는 대목이 들어왔다.
“무술을 할 줄 아는 이가 강호에서 구할 수 있는 직업에는… 표국의 표사, 상단의 호위, 세가의 무술교관….”
여기까지 읽던 중에 고광춘이 책을 탁 덮었다.
“흠흠. 은자 한 냥입니다요. 워낙 먹튀가 많아서.”
“먹튀… 가 뭡니까?”
“날로 먹고 튄다는 말인데, 스리슬쩍 읽고는 그냥 돈도 안 내고 냅다 배 째라고 하는 거죠. 무공을 익힌 분들이 그렇게 나오면 저희로서는 어찌할 방도가 없어서요. 흐흐.”
“크음. 그런데 책 한 권에 은자 한 냥이면 너무 높은 것 아닙니까?”
아무리 황궁에만 있어 실제 강호의 물가에 어둡다고 해도 그간 불량인으로 생활하며 들은 풍월이 있었다.
은자 한 냥이면 어지간한 서민 가족의 한 달 쌀값이었다. 그런데 이런 책 한 권에 은자 한 냥이라니?
그때 아까 이야기를 늘어놓던 낭인들이 왁자지껄 웃었다.
“이보게 청년! 나한테 은자 한 냥을 주면 그보다 더 주옥같은 내용들을 직접 얘기해주지!”
“거참, 무사님들은 술이나 드시우!”
“하하하! 도대체 그렇게 벌어서 어디다 쓰는가? 계집 밑으로 쏟아붓는 것 아닌가?”
사내들의 짓궂은 농담에 주인장이 참견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물론 무공 하나 모르는 그가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둘 다 단골손님이었기에 이 정도 농담을 늘어놓을 정도로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하, 그럼 많이 파시게.”
음식을 다 먹은 두 낭인들이 웃으며 2층을 내려갔다.
그들이 나눈 대화에 게슴츠레 변해가는 임요성의 눈빛을 받으면서도 고광춘은 오히려 당당하게 배를 내밀며 말했다.
“흠흠. 저분들 말을 듣지 마시구요. 저분들이야 직접 몸으로 겪었기에 저런 말을 할 수 있는거죠.”
“…….”
“흠흠. 하지만 강호 초출의 무사님께서 이 책을 본다면 훨씬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강호에서는 정보가 곧 돈입지요. 개방이나 하오문에서 정보값으로 받는 금액이 얼마나 높은지 아십니까?”
고광춘이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그런 정보에 돈이 아깝다고 쓰지 않으면 이 강호에서는 언제 뒤에서 칼 맞아 뒈질지 알 수 없습죠. 이 책은 제가 무사님 같은 분들을 떠나보내고 뒤이어 들려온 객사 소식에 가슴이 아려와 한 자 한 자 눈물로 써 내려간 알토란 같은 것들입니다. 특히 무사님처럼 강호 초출의 무사들께서는 꼭 읽어봐야 할 주옥같은 내용들로 가득하지요.”
“…….”
통주에서 지금 입고 있는 상·하의 무복 한 벌과 장포까지 해서 은자 한 냥이었는데….
“게다가 은자 한 냥 값으로 목숨을 구한다고 생각해보십쇼. 그게 과연 높은 걸까요?”
끄덕끄덕.
일견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릴 적에 황자의 불량인으로 발탁되어 거의 황궁에만 머물며 오직 그의 곁만 지키던 우물 안 개구리.
강호에 처음 나오면 눈 뜬 상태로 코를 베어 간다고 황실의 선배들이 하던 말이 있었으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좋습니다.”
결국 고광춘의 화술에 말린 임요성이 품에서 은자 한 냥을 꺼내어 고광춘에게 내밀었다.
“과연. 제 눈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흔쾌히 정보값을 지불하실 분이라면 강호에서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군요. 혹시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이름을 말해도 되나 살짝 고민했지만, 이내 털어버렸다. 어차피 이제 강호에 나온 이상 자신을 계속 숨긴다는 것도 우스웠다.
“임요성이라 합니다.”
“호오. 무림에 빛나는 별이라… 존함이 직관적이군요. 원래 이름이나 별호는 직관적인 게 최고죠. 자, 그럼 음식은…?”
“그냥 주인장께서 알아서 갖다 주시죠.”
“역시.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은 상대에게 물어 조언을 구하라! 본서 187쪽에 있는 내용입지요. 그럼.”
고광춘는 미소를 짓고는 내려갔다.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임요성이 은근슬쩍 책을 펼쳐 187쪽을 보니 과연 그의 말대로 강호의 격언 편에 나오는 말이었다.
그래서인지 살짝 마음이 동한 임요성이 첫 장부터 천천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차피 음식이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터이고, 멍하니 있다가는 과거의 미망에 빠져 허우적댈 것이기 때문이다.
사라락.
“흠.”
객잔 주인치고는 글솜씨가 제법이었다.
어떠한 대목은 일개 객잔주의 식견이라기에는 꽤 높은 경지의 무인이 썼을 법한 내용들도 있었다.
책에 완전히 매료된 임요성이 처음에 보다 말았던 대목을 찾았다.
“강호의 직업편이라….”
여러 가지 직업들이 나왔으나 눈에 띄는 것은 표국의 호송무사인 표사로 고용되는 것과 상단의 호위, 세가의 식객으로 들어가는 것 세 가지가 있었다.
임요성은 더 이상 누군가의 개인 호위가 되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오로지 주인의 안위를 위해 본인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삶은 지난 십 년간 신물이 나도록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키는 것에 있어서는 이골이 난 자신에게 그나마 어울리면서 개인 호위보다는 자유로운 직업으로 표사나 상단 호위 등이 괜찮아 보였다.
황궁에만 틀어박혀 있던 그에게 강호를 돌아다니며 돈까지 벌 수 있는 생활은 꽤 매력적이었으니까.
그리고 세가의 식객도 괜찮아 보였다. 평소에는 하릴없이 자유롭게 지내다가 세가에서 필요로 하는 것에만 힘을 쓰면 되니 그야말로 한량이었다.
물론 그 한 번의 임무에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쉬운 임무가 주어질 리가 없겠지만.
“하하. 직장 구하시나 보죠?”
마침 점소이와 함께 음식을 같이 가지고 오던 고광춘이 웃으며 말했다.
“표사. 괜찮습죠. 자유를 좋아하는 무림인들이 제법 선호하는 직장입니다. 적당히 자유롭기도 하고, 적당히 무공을 활용해 돈도 벌 수 있구요.”
고광춘이 탁자에 음식을 다 놓고는 손가락을 펴며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유명한 표국으로 들어가면 소처럼 일만 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명문세가의 식객이 좋긴 하죠. 물론 그에 상응하는 무공 능력이 필수긴 하지만.”
임요성이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였다.
“꺄악!”
창밖으로 여인의 비명 소리가 들려 두 사람 모두 고개가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웬 여인이 험상궂은 사내들에 둘러싸여 희롱을 당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무공 수준이라면 저 사내들 정도는 쉽게 물리칠 수는 있을 터. 그러나 임요성은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고광춘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본서 33쪽에 보면 강호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정리되어 있죠. 그중 하나가 ‘강호의 일에 어설프게 나서지 말라’입니다.”
물론 고광춘의 말대로 그런 이유는 아니다.
황제의 방패로 살면서 오직 호위만 생각했기에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관심을 두지 않던 습관이 있었기에 지금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끈 것뿐이다.
고광춘이 목이 마른 지 탁자 위에 올려진 물에 손이 가며 임요성의 얼굴을 힐끗 쳐다봤다.
임요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고광춘이 물을 빈 잔에 따라 들이키고는 다시 말을 꺼냈다.
“강호는 은원이 어지럽게 얽히고 얽힌 곳이죠. 괜한 참견에 어설픈 도움은 상대와 자신 모두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지요. 그리고 사실 저들이 진짜 위험에 처한 이들인지 알 수도 없구요.”
저렇게 희롱하는 여성을 구하다가 왜 우리 남편 때리냐고 오히려 피해보상을 청구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는 말이 덧붙었다.
“아, 음식 식겠네요. 맛있게 드시고, 또 궁금한 거나 더 시킬 일이 있으면 부르시지요.”
고광춘이 사람 좋게 웃고는 내려갔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강호의 모든 것이 신기한 자신에게는 꽤 도움이 되는 말들이었고, 재밌기도 했다.
임요성이 천천히 수저를 들어 식사를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아까 실랑이가 붙던 이들을 다시 보니 과연 고광춘의 말대로 자신을 구하러 온 무사에게 삿대질을 하며 핏대를 올리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헛웃음을 한 번 지은 임요성이 고개를 저으며 식사를 계속했다. 역시 강호는 재밌는 곳이라고 생각하며.
임요성이 한 참 식사에 빠져 있을 무렵, 객잔의 뒷문에서 두 사람이 은밀히 말을 나누고 있었다.
한 사람은 고광춘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행색이 말 그대로 거지 중의 상거지였다.
“이달 치 수금하러 왔네.”
“쩝. 좀 일찍 오셨군요. 그런데 때를 잘 맞추셨습니다. 마침 좀 전에 한 무사에게 한 권을 팔아 이번 달 수익이 총 은자 아홉 냥이 되었거든요. 딱 나누기 좋게 말이죠.”
고광춘이 품에서 은자 여섯 냥을 세어 거지의 손에 올렸다.
거지 행색의 사내는 사실 개방의 하북 분타주 풍림개(風霖丐)였다.
개방은 강호에서 거지들로만 이뤄진 방파로, 흔히들 십만방도라고 할 정도로 많은 구성원을 자랑했다.
그들은 무소유를 기치로, 의와 협을 숭상하는 이로 똘똘 뭉친 백도무림의 상징적인 존재들이었다.
중원 천지에 흩어진 방도들을 통해 주고 정보를 수집, 가공하여 판매하는 일이 주 수입원이며, 그 외에도 강호를 위해 많은 일을 하는 단체였다.
그중 풍림개는 매듭으로 서열 구분을 하는 개방에서 오결매듭을 가진, 한 성의 책임자였다.
성(省)은 중원에서 가장 큰 단위의 도시로 그 아래로 부(府), 주(州) 현(縣)으로 내려간다.
보통 한 성을 연고지로 삼아 세를 불리는 문파나 세가와는 달리 개방은 딱히 근거지가 없었다.
하남성 개봉에 총타가 있긴 하지만, 정보를 취합해서 각 분타로 내려보내는 역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개방의 방주가 있는 곳이 그냥 총타라 보면 되지만, 사시사철 돌아다니는 걸 보면 딱히 총타의 개념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풍림개라는 별호에서 알 수 있듯이 바람처럼 빠른 경공과 그가 펼치는 타구봉법이 한여름 장마처럼 쏟아진다고 할 정도로 패도적인 면이 있었다.
타구봉법은 개패는 봉법이라는 뜻으로 구걸을 하는 중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개를 요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발달했다는 단봉술이었다.
유래는 좀 웃기지만 그 수준만큼은 강호 일절이었다.
“달리 확인해보지 않아도 되겠지?”
“거 참. 하북을 총괄하는 개방의 풍림개님께 누가 사기를 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북성 개방 분타주 풍림개가 품에 은자를 쓰윽 집어넣으며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흐흐. 그건 그렇지.”
“그런데 거지라면서 왜 이렇게 열심히 돈을 버십니까? 이렇게 책까지 써가며 말이죠.”
“이 사람아. 이게 다 영업비일세, 영업비.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뒷돈을 먹여야 할 때도 입고, 접대를 할 때도 있는데 그런 돈이 어디 동냥으로만 충당이 되는 줄 아나? 다 깊은 뜻이 있어 방주께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일세.”
“뭐, 딴에는 맞는 말씀이긴 한데….”
고광춘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개방이라면 한 해 들어오는 정보료만 해도 엄청날 것인데….
“혹시 정보료 생각하는 거면, 그건 우리와는 큰 상관이 없어. 다 중앙으로 올라가서 다시 재분배되는 거니깐. 이건 어디까지나 능력제로, 많이 팔면 우리 분타에서 개별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이거든.”
“예에….”
그가 시큰둥하게 받자 풍림개가 화제를 돌렸다.
“크음. 그나저나 이번 달에 온 이들 중에 딱히 눈에 띄는 자는 없던가?”
이러면서 또 정보를 수집하는 그였다.
“뭐, 앞선 여덟 분은 딱 봐도 군부 출신에 딱딱함이 몸에 배여 있어 어디 세가의 무공 교관이나 되면 잘될 것 같은데, 지금 식사를 하고 있는 사내는….”
고광춘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풍림개의 눈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