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8
청풍표국 최강식객 008화
8화. 시작되는 인연 (4)
그의 오랜 직감으로 앞의 말은 사족이었고, 뒷말에 방점이 찍혔다는 걸 알았다.
눈앞의 사내는 이곳에서 사십 년 이상을 살아온 토박이.
그가 본 무림인만 해도 엄청났고, 그를 거쳐 간 이들의 행적이 바람결에 들려와 이제는 꽤 보는 눈이 생긴 그였다.
그의 말은 제법 들어둘 가치가 있는 것들이 많았다.
“일반적인 군부 출신은 아니고, 꽤 높은 분들의 호위나 경비 무사 쪽인 듯한데….”
고광춘이 고개를 까딱했다.
“그런데?”
풍림개가 재촉하듯 물었다.
“풍기는 분위기가 묘하게 격이 있으면서 오히려 평범한 태도가 더 의심이 가게 하더군요. 아마도 꽤 고위층을 호위하던 이거나… 좀 더 은밀한…?”
꿀꺽.
풍림개가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금의위?”
금의위란 말에 그가 손사래를 쳤다.
“에이, 금의위는 아닐 겁니다. 걔네들은 건방이 몸에 배서 저 같은 놈들이랑은 말도 제대로 안 섞으려는 하는데요?”
풍림개가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그럼 자네가 추측하는 바는 어디인가?”
“글쎄요. 거기까진 잘… 단지 평범한 무사는 아닌 듯합니다.”
“….”
풍림개가 얼굴을 굳히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 입조심하게. 그쪽 인물들은 아무리 하급 무인이라도 조심해야 하네.”
“당연합지요. 풍림개 님이니 이렇게 떠드는 거지.”
만약 이들의 대화를 임요성이 들었다면 실로 소름이 돋을 만큼 정확한 추리였다.
“그나저나 이름은 물어봤나?”
“임… 요성이라고 하더군요. 무림의 빛나는 별이라는 뜻이라 꽤 기억에 남습디다.”
“임요성이라… 알겠네. 일단 일이 있어 무림맹 하북지단에 있을 테니 뭔가 특이한 일 있으면 바로 부르게.”
풍림개가 손을 흔들며 사라졌고, 고광춘 역시 주위 몇 번 두리번거리고는 뒷문을 닫으며 들어갔다.
‘임요성이라… 일단 기억해둘 필요는 있겠어.’
풍림개의 눈에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 * *
“후우.”
하늘 위로 휘영청 뜬 달을 보며 임요성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날은 저물었고, 가는 동안 마을이 없으니 묵고 가는 것이 어떠냐는 주인의 말에 그러기로 하고는 여러 사람들이 쓰는 객실을 잡았다.
객잔 뒤편에 마련된 숙박용 건물에서 나온 임요성은 잠이 오지 않아 객잔 후원을 거닐다가 작은 웅덩이가 있는 곳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작은 웅덩이지만 달을 비추는 모습은 꽤나 운치가 있었다.
일단 곽구의 어미를 찾아보기 위해 소주행을 택하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행선지를 정하지 않았다.
이대로 중원 곳곳을 여행하며 다녀도 좋을 것 같았다.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황제가 그리 적게 넣어두진 않았을 것이다.
뭣하면 중간중간 간단한 일을 해주면 돈을 벌어도 될 것이고.
이렇게 뭘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게 얼마 만인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렇다고 억지로 뭔가를 하고 싶진 않다.
어떻게 얻은 귀한 자유인데.
잠시 상념에 빠졌던 그의 머릿속을 객실에서 들려오는 소란이 헤집고 들어왔다.
임요성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용한 별채가 어울릴 것 같다던 객잔 주인의 말을 들을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처음엔 괜찮았다. 그가 직접 썼다는 강호백서를 읽으며 웃기도 하고, 꽤 깊은 내용에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런데 점점 밤이 깊어갈수록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남녀의 교합성이 정신을 산란케 했다.
책에 집중하려고도 해봤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자리를 박차고 뜰로 나온 것이다.
“후후. 긴장이 풀린 건가.”
황제의 곁에 있을 때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불량인으로 있을 때는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자신의 눈은 오직 황제의 안위만을 생각했을 테니까.
‘하긴.’
어쩌면 자신의 불면은 주위의 소음 때문이 아닐지도 몰랐다. 부드러운 침상에 누워 잠을 청하는 것이 그 얼마 만이던가.
늘 황자의 곁을 지키며 쪽잠을 잤고, 앉아서 자는 건 예사요, 서서 눈을 붙인 적도 부지기수였다.
침상에 몸을 눕히자 오히려 수많은 개미들이 자신의 몸을 기어 올라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객잔의 식당 쪽에서 여러 사람들이 내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삐걱.
식당으로 연결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일 층 전체를 가득 메운 사오십 명 정도의 사내들이 흥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왜 주무시지 않구요?”
고광춘이 임요성에게로 다가오며 물었다.
자정을 지나는 시각이라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꿈속에 있을 시간이었다.
그의 말에 임요성이 구석 작은 탁자에 앉으며 얼굴을 쓸었다.
“으음. 도통 잠이 오질 않는군요. 출출한데 간단히 먹을 소면이나 있으면 좀 주시겠습니까?”
고광춘이 빙긋 웃으며 받았다.
“소면이야 금방 삶으면 되지요. 그나저나….”
처음 객잔에 왔을 때보다는 많이 편안해 보이고 부드러워진 표정에 고광춘의 얼굴이 밝아졌다.
“후후. 강호에서는 딱딱하게 무게를 잡는 것보다는 허허실실 전법을 쓰는 게 낫다는 257쪽의 내용을 읽으셨군요. 훨씬 보기 좋습니다.”
주인의 말에 임요성이 피식하며 웃었다.
“그보다는 책 자체가 주는 해학에 가슴 한쪽에 있던 돌덩이가 사라졌다고 하는 편이 맞겠죠.”
“뭐, 그것도 노림수죠. 재밌는 내용으로 강호 초행의 긴장감을 완화해주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허허실실입니다. 허허만 있어선 곤란합니다.”
찡긋 한쪽 눈을 감았다 뜬 고광춘이 주방으로 가서 소면을 시키는 모습을 보며 천천히 의자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이제는 누군가가 황자를 죽이려는 걸 막을 필요도, 그를 해하려는 이를 미리 죽일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편안함이 오히려 불편한 건 왜일까.
탁.
금세 소면 하나가 탁자 위에 놓였다.
식당을 가득 채운 일행의 주문을 주방에 넣고는 소면을 받아 온 고광춘이 임요성의 맞은편에 앉았다.
“읏차. 밤에는 저 혼자 식당을 보다 보니 이제야 이렇게 앉습니다요.”
잠시 너스레를 떤 그가 몸을 앞으로 내밀며 작게 소곤거렸다.
“저분들 보이시죠? 저분들은 강소성 소주에 있는 청풍표국(靑風鏢局)의 표행단 분들인데 이번에 북경 쪽에 표물을 실어주고는 돌아가는 길에 들렸습죠. 표행 중에는 늘 들러주시는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리고 딱히 객잔에 해될 일도 하지 않으시구요.”
임요성의 눈썹이 살짝 모아졌다.
‘청풍표국이라면….’
표국은 일종의 운송업으로 이들은 소금을 거래하는 염상의 위탁으로 소금을 북경으로 운송해주고는 북경의 귀부인들이 쓰던 패물과 옷가지를 싣고 소주로 복귀하는 중이라고 주인이 귀띔해주었다.
아마 자신이 할 일을 알아보고 있다는 걸 알고 표행단 일행이 온 참에 이런저런 말을 해주는 모양이다.
게다가 소주라면 지금 자신이 가려는 곳이다. 우연치고는 꽤나 반가운 우연이랄 수도 있었다.
다시 주인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저쪽에 호위무사로 보이는 한 분과 표사들에 둘러싸여 앉아 있는 여인 보이죠? 청풍표국주의 따님인데 이번 표행이 초행이라고 합니다. 슬슬 표행에 대해 알아야 하기에 일을 익히기 위해 동행한 걸로 보이네요.”
임요성은 저 여인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담담히 앞에 놓인 국수만 먹었다.
후루룩.
“음.”
자신의 말을 들으며 소면을 먹는 임요성을 보던 고광춘이 은근한 말투로 물었다.
“혹시 공자께서도 생각 있으면 표행단에 합류하시죠?”
“제가 말입니까?”
임요성이 뜻밖의 말이라는 듯 소면을 먹다가 고개를 들었다.
고광춘이 씨익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예.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중의 한 곳이 소주라고들 하지요. 딱히 목적지가 없으시면 표사들이 뭘 하는지도 경험할 겸 표행에 합류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도 소주로 가볼까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아, 그러면 더욱 잘된 것 아닙니까? 사실 혼자서 먼 길을 가긴 힘들거든요. 말도 구해야 할 것이고, 잠자리며….”
고광춘이 말을 하던 중에 저쪽에서 신경질적으로 젓가락을 탁! 하고 놓는 소리가 들리더니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보게 주인장! 듣자 하니 지금 우리 얘길 하는 것 같은데, 함부로 입 놀리지 말게. 표행 중에 몇 번 들렀다고 우릴 우습게 보는 겐가!”
표사들이 자리한 곳에서 그중 고참으로 보이는 한 중년 사내가 눈을 부릅뜨며 이쪽을 보며 소리치자 일순 객잔 안의 공기가 냉랭해졌다.
사내는 청풍표국의 표두인 홍국헌이란 자였다.
국주의 장녀가 이번 표행이 첫 경험이었기에, 그가 사실상 이번 표행의 책임자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무공수위는 일류의 끝자락에 위치한 고수였다.
비록 절정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해 고광춘이 하는 이야기를 분명하게 알아듣진 못했으나 귀에 들려오는 몇 가지 단어들로 자신들의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의 호통에 단박에 고광춘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건 명백히 자신이 잘못한 것이 맞다.
굳이 이곳이 강호가 아니더라도 다른 이의 행적이나 상황을 다른 이에게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예의가 없는 행동이었고, 과격한 사람을 만나면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객잔의 주인이라면 일단 무시부터 하고 보는 강호인들만 상대하다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임요성을 만나자 자신도 모르게 흥이 나서 입을 나불거리게 된 것이다.
무림인들은 귀가 밝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이럴 땐 바짝 엎드리는 게 상책이다.
“하이고, 아닙니다요, 홍 표두님! 제가 어찌 그런 생각을 품겠습니까. 단지 이 무사분이 강호 초행이시라 도움을 드린다는 것이 제가 주제넘은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요.”
고광춘의 사과에 홍국헌이 조금 누그러지긴 했지만, 말한 김에 몇 마디 더 쏘아붙였다.
“그간 종종 찾아왔다고 너무 편하게 생각한 거 아닌가? 사람이 편할 때 어려워할 줄 알아야 하네!”
“아이고, 그러믄입쇼. 제가 배움이 짧아서 그러니 부디 용서해주십시요.”
고광춘이 바짝 엎드리자 잠시 입맛을 다신 홍국헌이 이번에는 조용히 소면을 먹고 있는 임요성을 보며 한마디 했다.
“거기 자네도 마찬가지일세. 강호 초출 같은데 괜한 기대하지 말게. 우린 어중이떠중이를 받아주는 그런 곳이 아니니깐.”
하지만 아무런 대꾸 없이 소면을 먹고 있는 임요성의 모습에 홍 표두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자가 그런데! 잘못을 했으면 뭐라도 말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사실 임요성이 잘못한 건 없었다. 그는 단지 듣고만 있었으므로.
“호, 홍 표두님. 이 무사께선 딱히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요. 전부 제가….”
“어허! 자네는 가만있게. 강호에 처음 나왔으면 응당 기본 예의는 배워야지. 이보게 자네….”
얼굴에 검상이 있어 더욱 찡그린 모습이 흉흉한 그가 임요성을 불러 몇 마디를 충고를 더 하려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인, 두혜련이 손을 내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