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85
청풍표국 최강식객 085화
85화. 시작되는 연회(4)
신성대연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비무제가 시작되기 전, 식전 행사 동안에는 서로 간의 인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그동안에 먼 곳에서 온 구경꾼들은 주린 배를 채우기도 하고, 화려한 분위기에 휩쓸려 거나하게 술에 취해 비무제가 시작하기도 전에 뻗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와는 달리 막사 쪽은 오히려 더 바쁜 움직임이 일었다.
비무제가 끝나고 나면 드러난 결과에 분위기가 가라앉기 때문에 기회는 지금뿐이었기 때문이다.
진천구성들이 위치한 막사에 긴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진천구성들은 각 성도의 패자를 자처하는 세력의 가장 유력한 후기지수들이었기에 그들에게 얼굴도장을 찍기 위함이다.
자신의 신분과 소속이 적힌 명첩(名帖)을 들고 선 그들의 얼굴은 모두 긴장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이 순간 어떤 첫인상을 보이냐에 따라 큰 계약이 성사될 수도 있고, 아예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은 의뢰라도 받아보려는 표국이나 상단, 또는 철방 등의 대표자들이 가장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이미 거래를 하고 있는 이들은 안부 인사를 하러 온 것이라 상대적으로 표정이 밝았다.
이들이 인사를 하고 가면 각자 돌아가는 길에는 그들이 받은 명첩들로 수레 하나를 이룰 정도라고 하니, 그 위세를 능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와 동떨어진 곳이 있었으니 바로 청풍표국이었다.
나름 기대를 하고 있던 홍국헌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무림일성이라는 별호를 얻기는 했으나, 오랜 세월 강호를 대표해온 이들이 가진 배경에는 비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동안의 강호에는 반짝 떴다가 사라져간 신성들 역시 많았기에, 그런 일시적인 이름보다는 오랜 세월 지켜온 명가, 또는 명문이라는 배경을 더 중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들의 생각이 옳은 것이었다.
무턱대고 신인들에게 투자를 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워낙에 많았기 때문이다.
길게 줄이 늘어선 이들과 상대적으로 조용한 자신의 막사를 보던 홍국헌이 한숨을 푹 쉬었다.
“표두님.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어차피 단번에 뭔가 극적으로 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잖아요.”
두혜련이 싱긋 웃자 홍국헌도 마지못해 따라 웃긴 했지만, 차마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기는 힘들었는지 묵묵히 땅만 바라봤다.
두혜련도 내심 기대를 하긴 했지만, 청풍표국의 대표격으로 나온 자신이라 드러내고 실망감을 보일 수는 없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임요성은 느긋하게 앞에 놓인 차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오라버니는 실망스럽지 않으세요?”
“실망? 글쎄. 난 오히려 저들이 이해가 되는데? 수많은 식솔이 딸린 자신의 가문을 책임지고 온 이들이 무턱대고 신흥 세력에 투자를 한다는 게 더 어불성설 아닐까.”
“하긴….”
두혜련도 임요성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때였다.
뭔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자신들의 막사 앞으로 한 비대한 중년인이 만면에 함박웃음을 지은 채로 연신 땀을 훔치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의 반? 아니, 삼 분의 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마르고 아름다운 여인이 뒤따르고 있었다.
“소, 소주제일거상 왕만금 아닌가! 옆에는 소주제일미를 다툰다는 장녀, 왕소군!?”
진천성들에게 안부 인사를 하려 줄을 서 있는 이들을 부러운 눈초리로 지켜보던 다른 일반 신성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수군댔다.
당연히 기존의 진천성들, 특히 남궁헌이나 단목룡 쪽으로 갈 줄 알았는데 청풍표국으로 그가 향하자 더욱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허허, 이거 실례하겠습니다. 전 소주에서 조그맣게 상단을 운영 중인 왕만금이라고 합니다.”
연신 땀을 닦으며 사람 좋게 웃는 그를 보며 홍국헌은 쉽게 따라 웃을 수 없었다.
들려오는 말처럼 눈앞의 사내는 소주의 상권을 한 손에 쥐고 있는 태호상단의 단주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서상인을 배후에 둔 양주상단과 물러설 수 없는 승부를 벌이고 있는 휘주상인의 대표격이기도 했다.
기존의 경제중심지였던 양주에서 점차 소주와 항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여기서 밀리면 휘주상인은 향후 수십 년은 다시 절치부심해야 할 터.
강북을 대표하는 전통의 강자가 산서상인이라면, 대운하의 발전에 힘입어 새롭게 떠오르는 신흥강자가 바로 휘주상인이었다.
그 휘주상인의 최전선에 있는 태호상단주 왕 대인의 청풍표국 방문은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와, 왕 대인! 어서 이리로 앉으십시오!”
홍국헌이 벌떡 일어나서 자리를 안내했다.
두혜련도 아비를 따라 먼발치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던지라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단지 임요성만이 담담하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그 모습에 왕만금이 눈에 이채를 담은 채로 말을 걸었다.
“오! 공자께서 요즘 강호 무림에 위명을 떨치고 계신 그 무림일성 임요성 공자시로군요. 이거 실로 영광입니다!”
아들뻘 되는 임요성에게 왕만금은 그야말로 깍듯했다.
왕만금의 수완이 보이는 대목이기도 했으나, 사실 강호에서는 상인에 대한 대우가 무사에 비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지금도 옆을 보면 중년의 사내부터, 노인으로 보이는 이들마저도 진천성들에게 연신 허리를 굽히는 것이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임요성은 자신이 뭔가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왕만금의 인사에 임요성도 일어서서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작은 상단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소주의 상권을 좌지우지하고 계신 왕 대인을 만나 저도 기쁩니다.”
천하제일상이라 할 수 있는 하남성의 만금장 정도라면 모를까 소주에서 이름 좀 날리는 정도의 자신에게 ‘일성(一星)’의 칭호를 얻은 이가 이렇게 정중하게 대한 건 처음이었다.
살짝 감동을 받은 얼굴을 한 왕만금이 얼른 옆에 있는 여인을 소개했다.
“허허, 제 부족한 여식입니다. 이렇게 영웅호걸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데려와 개안을 시켜주기 위해 함께 왔지요. 뭐 하느냐, 어서 인사드리거라.”
아비의 재촉에 왕소군이 내리깔고 있던 눈을 살짝 올려 뜨며 옥구슬 같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소녀, 왕소군이라고 하옵니다. 무림일성 임요성 공자를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눈이 안쪽으로 살짝 모이고, 눈 끝이 쳐진 그녀는 뭔가 몽환적인 분위기의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자자, 서서 이러지들 마시고 어서 앉읍시다.”
홍국헌이 호들갑에 왕씨 부녀와 임요성 등이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차를 마시며 사소한 대화가 오가며 분위기가 무르익자 왕만금이 은근슬쩍 물어왔다.
“어떻습니까? 좀 있으면 비무제가 시작할 텐데, 어디까지 올라갈 거라고 보십니까?”
대놓고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어찌 보면 실례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해맑게 묻는 왕만금의 표정은 언뜻 바보처럼 보일 정도로 순수했다.
그러나 그의 물음은 결코 순수하지만은 않았다.
임요성이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가 보고 싶은 것은 임요성의 다른 부분이었다.
후륵.
그런 그의 의도는 상관없다는 듯 덤덤히 차를 마시며 임요성이 말했다.
“왕 대인의 결정에 후회는 없을 것입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자신감. 그리고 진천성들과의 비무를 앞둔 그에게서는 아무런 긴장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왕 대인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을 임요성에게서 볼 수 있었다.
“향후 3년간 저희 상단의 모든 상행에 대한 독점권을 받아주십시오.”
독점권을 준다는 생색이 아니었다. 받아달라는 청이었다.
홍국헌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두혜련 또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3년간 소주제일상단인 태호상단의 상행에 대한 독점권이라면 별일이 없다면, 3년 이후 청풍표국은 소주제일, 아니 강소제일표국이 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임요성은 오히려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왕 대인을 지그시 쳐다봤다.
“그런 표면적인 사항들은 여기 계신 두혜련 소국주님과 홍국헌 표두님, 두 분과 상의하시면 될 테고, 제게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임요성의 말에 사람 좋게 웃던 왕 대인의 실눈이 반짝였다.
“후후. 역시 소문대로 강호 초출의 미숙함이 전혀 없으시군요. 맞습니다. 따로 드릴 부탁이 있습니다.”
잠시 뜸을 들인 왕 대인의 목소리가 임요성에게 박혔다.
[전 앞으로 산서상인을 밀어내고, 휘주상인의 천하로 만들 포부를 가지고 있습니다.]전음을 보낸다는 것은 적어도 절정 고수 이상의 무공이나 반 갑자 이상의 내공이 있다는 말이었다.
이미 그 사실을 짐작한 임요성은 그의 전음에도 놀라지 않았다.
[듣자니 산서상인의 대표격이 바로 단목세가와 동맹관계에 있는 양주상단이라고 하더군요. 왕 대인께서 원하시는 부분이 그쪽입니까?]임요성의 전음에 왕 대인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잘 아시는군요. 은밀히 조사해본 결과 단목세가와 악연으로 엮여 있으시더군요. 그들의 무력만 막아주신다면 다른 부분은 제가 감당하겠습니다.]임요성의 표정을 살핀 왕 대인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만약 이번 일이 잘 풀린다면 휘주상인이 운영하는 상단의 상행에 대한 독점권까지 제가 추천하겠습니다.]소주제일거상인 왕 대인의 추천이라면 어지간하면 다 이뤄질 것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제안이었다.
하지만 강소제일가이자 상천십좌가 있는 단목세가를 감당해달라는 부탁 자체가 어찌 보면 더 엄청난 것이었다.
[왕 대인의 계획은 차질 없이 이뤄질 것입니다.]임요성의 광오한 대답에 왕 대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공자님과 참으로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제 여식이 이래 봬도 금 타는 솜씨가 일품인데, 연회가 끝나고 내일 저녁 조촐한 술자리를 마련하고 싶습니다만.”
왕만금의 말에 옆에 그들의 표정을 살피고 있던 두혜련이 움찔했다.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전 따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을 것 같군요. 일이 잘 풀린다면 제가 한번 찾아뵙도록 하지요.”
완곡한 거절에 왕만금의 눈이 두혜련 쪽을 힐끗 향했다.
“하하, 이것 참. 제가 마음이 많이 급했나 봅니다. 임 공자님 말씀대로 좋은 날 따로 한 번 시간을 잡지요. 그럼 부디 좋은 결과 얻으시길.”
왕만금이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돌아 나왔다.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지자 왕소군이 물었다.
“아버지. 아무리 요즘 이름을 날리고 있다고 해도, 다른 이들처럼 든든한 집안을 가진 이를 꼬시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딸의 말에 왕만금이 미소를 지었다.
“왜? 네가 보기엔 저 공자가 부족해 보이더냐?”
“뭐, 개인적인 능력이야 소녀가 뭘 알겠어요. 하지만 다들 뒤에 가문이나 문파를 등에 업고 있는 이들에게 선을 대려 하잖아요.”
“후후. 그건 그렇지. 또 그게 당연한 것이고. 하지만 중원 상계를 틀어쥐고 있는 산서상인에게서 패권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방법,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으로는 힘들단다.”
“일종의 도박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죠?”
“그런 셈이지. 하지만 무턱대고 돈을 걸면 안 되지. 충분히 알아보고, 또 알아보고, 다시 알아본 다음 결정을 내려야 하는 법.”
“그 말씀은 이미 확신을 가지고 내리신 결정이란 말씀이군요?”
자신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딸을 힐끗 쳐다본 왕만금이 다시 고개를 돌려 비무대 쪽 임요성이 있는 막사를 본 다음 다시 몸을 돌렸다.
“딸아. 지금까지 내 안목이 틀린 적은 없었다. 두고 보렴. 이 투자는 내 인생에 있어 최고의 결과를 가져올 테니.”
아비의 말을 들으며 왕소군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도 담담한 표정을 한 사내를 떠올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