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9
청풍표국 최강식객 009화
9화. 한 줄기 흑풍에 혈루가 내리다(1)
“아이참, 홍 표두님, 그만 하세요. 그 정도 하셨으면 충분하잖아요. 이제 표행을 원만히 마치고 돌아가기만 하면 되니까 좋게 가자구요.”
싱긋 웃으며 말하는 두혜련의 얼굴을 보고는 크음 하며 헛기침을 한 홍국헌이 다시 한번 임요성을 바라보며 눈을 한번 부라려 주고는 일행들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임요성의 귓가로 표사들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쳇! 강호 초출이라더니 개념이 없구만. 어른이 말했으면 대꾸를 해야지.”
“놔두게. 뭐 느껴지는 기도도 평범하고… 운동은 좀 한 것 같은데 눈이 맹맹한 게 어디서 객사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겠군. 어차피 조만간 죽어 나자빠질 놈한테 신경 써서 뭐 하겠나.”
“하긴. 뭐 얼굴이 반반해 보이니 돈 많은 여인이나 물어서 호강이나 하면 되겠지.”
“크크큭. 뭐 어찌 보면 그게 더 나은 것 아닌가?”
그들의 대화에 옆에 있던 고광춘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갔다.
입은 술을 홀짝이고 눈은 임요성을 흘끔거리며 자기네들끼리 내뱉는 말이 꽤 거슬렸다.
이건 명백한 도발.
보통 이 정도 되면 임요성 쪽에서 발끈해서 다가오기 마련이고, 그러면 선배로서 강호의 쓴맛을 제대로 보여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임요성은 소면을 마저 먹을 뿐 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이런 도발은 애들 장난 같은 일일 뿐이었다. 그리고 주인의 입장을 생각해서 굳이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도 않았다.
자기들이 씹어대는데도 별 대꾸가 없자 오히려 표사들의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긴 표행을 하는 동안에는 표사들이나 쟁자수들의 향락을 엄격히 제안했기에 표행이 끝나갈 무렵에는 모두 날이 서게 된다.
빨리 표행을 마치고 마누라 품이나 아끼는 기녀의 품, 또는 맛있는 술을 진탕 먹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들뜨고 조급해지기 마련.
이럴 때 늘 사소한 시비에 얽히기 마련이었고, 그 사소한 시비는 생각지도 못한 큰 피해를 낳기도 했다.
이런 그들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표행의 마지막까지 탈이 없도록 신경 쓰는 일이 표두의 몫이었으나, 홍국헌은 딱히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더욱이 이번 표행이 처음인 두혜련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때 모두의 예상을 깨고 두혜련이 천천히 일어섰고, 좌중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다들 그만하시죠. 더 이상의 분란은 용납 못 합니다. 계속 이렇게 분란을 일으킨다면 표행이 끝나고 정식으로 이 문제를 공론화하겠습니다.”
평소 표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두혜련의 강단 있는 말에 표사들 표정이 잠시 멍해졌고, 갑작스레 한 방 맞은 홍국헌 역시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말없이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호위무사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하는 고광춘을 혼낸 건 잘한 것이지만, 그 이후로 표사들이 앞에 앉은 청년의 험담을 하도록 놔둔 건 홍국헌의 잘못이 맞다.
“크음.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자네들도 이제 그만하게.”
홍국헌의 말에 두혜련의 얼굴이 임요성의 등으로 향했다.
“그쪽 공자님께서도 혹여 노여우셨다면 제 사과로 푸셨으면 해요. 저희 상행이 이제 귀가만을 남겨둔 상태라 좀 예민하거든요.”
“괜찮소. 개의치 마시오.”
임요성이 살짝 고개를 돌려 두혜련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두혜련의 고개가 살짝 갸웃했다.
‘어디서 본 적이 있나?’
표행을 하다 보면 스쳐 지나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그녀가 기억을 못 하는 건 당연했다.
물론 임요성은 도움을 받은 입장이었고, 청풍표국이라는 말을 기억해두었었기 때문에 고광춘이 말을 꺼낼 때부터 그녀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잠시 멍해 있던 그녀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해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두혜련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앉았고, 옆에서 발만 구르던 고광춘 역시 가슴을 쓸어내리며 맞은편 의자에 다시 앉았다.
그리곤 문득 고개를 돌렸다가 그의 표정이 달라진 것을 보고는 씨익 웃으며 낮은 소리로 소곤거렸다.
“미인이죠? 지금은 아직 이십 대 초반이라 소주제일미라고 하는데, 조만간 꽃봉오리가 만개하면 강남오화에도 들 정도라고 할 정도지요.”
장강 이북에 강북오미(江北五美)가 있다면 이남에는 강남오화(江南五花)가 있어 중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열 명의 여인을 꼽는다는 내용이 강호백서에서 있었다.
즉 조만간 중원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미인이란 뜻이었다.
금방 욕을 먹고도 다시 치근대는 게 주인장도 보통이 아니란 생각에 내심 실소가 나왔다.
그러니 20여 년을 버텼겠지.
임요성은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마저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후우.’
강단 있는 모습을 보였으나 두혜련은 자신의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하는 것을 고스란히 느꼈다.
이 표행을 책임지는 이는 물론 옆에 있는 표두인 홍국헌이다.
그러나 자신을 이 표행에 동행시킨 건 이들에게 자신의 입지를 다지도록 기회를 준 아버지의 저의가 깔려 있을 터.
지금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자신이 나설 기회가 없었으니.
하지만 표두가 오히려 분란을 방치하는 지금, 자신의 역할은 이들의 중재였고 다행히 잘 넘어간 것 같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까 눈이 마주쳤던 사내의 등을 힐끔 쳐다봤다.
우락부락한 표두와 표사들의 으르렁거림에도 아무런 감흥도 보이지 않던 사내.
강호 초출이라는 것 같은데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욱하는 기분에 저 사내를 놀리던 표사들은 느끼지 못한 것 같지만 옆에서 지켜본 자신은 여성 특유의 육감으로 뭔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아버지께서 늘 하던 말씀이 있다. 표행을 나가거들랑 평범해 보이는 이들을 더 조심하라고.
어느 정도 각이 나오는 자들은 설혹 실수를 해도 보상이 가능하지만, 평범한 이들 중에는 그야말로 구름 위의 존재들이 있고, 그런 이들을 건드렸을 경우의 피해는 환산이 불가하다는.
그리고 그런 이유뿐만 아니라 뭔가 낯설지가 않았다.
‘어디서 봤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임요성의 등을 바라보고 있을 때, 임요성은 대수롭지 않게 먹던 소면을 국물까지 쭈욱 들이켰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거처로 들어가려 일어설 때였다.
둥…!
무겁고 음습한 파동이 객잔의 공기를 울리며 두 명의 사내가 천천히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의 등장과 동시에 객잔의 공기가 싸늘히 식어갔다.
두 사내의 등장에 객잔의 공기가 달라졌다는 걸 제대로 느낀 사람은 임요성 혼자뿐이었다.
아니 한 사람 더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에 쭉 째진 눈을 한 두혜련의 호위무사였다.
그는 과거 인연이 닿았던 청풍표국주의 요청으로 식객으로 머물고 있었다.
소주 일대에서 제법 명성을 떨치던 낭인이었으며, 별호는 미염랑, 이름은 계두천이었다.
수염을 멋들어지게 길러 얻은 별호지만, 실력은 진짜였다. 절정에 이른 고수로 주로 국주나 직계의 호위를 맡아왔다.
이번에도 표행 중 다른 일에는 일절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두혜련의 호위에만 신경 써달라는 말을 듣고 동행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두 사내의 등장으로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며 안 그래도 작은 눈을 더 게슴츠레 뜨며 그들을 관찰했다.
임요성 역시 그들의 등장에 일어나던 자세에서 다시 의자에 천천히 엉덩이를 붙였다.
“입이 칼칼한데 괜찮은 차나 한 잔 주시죠.”
“예? 아, 알겠습니다.”
전문 찻집인 다루(茶樓)가 아니라서 많은 종류는 없었지만, 후식으로 차를 찾는 이들을 위해 어느 정도는 구비를 해두곤 했다.
일어나려다 다시 앉아 주문을 하는 임요성이 의아하긴 했으나 일단 새로 온 손님이 중요한 고광춘은 얼른 주방에 차 주문을 넣고는 두 사내에게 다가갔다.
한 사람은 묶은 꽁지머리에 눈빛이 날카로웠고, 한 사람은 길게 풀어헤친 머리에 눈이 퉁방울처럼 튀어나온 데다 입술이 엄지처럼 두꺼웠다.
홍국헌은 임요성 정도의 기감은 없었으나, 오랜 표행 생활로 그들의 분위기에서 뭔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그들의 모습을 예의주시하면서 말이 점점 줄어들었으나 눈치 없는 표사들은 계속 수다를 떨어댔다.
계속 나불거리는 수하들을 보다 못한 홍국헌이 나직이 말했다.
“그만하고 일어나지. 내일 또 표행을 가야 하니.”
지금 들어온 두 사람의 심상치 않은 기도에 빨리 자리를 파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에? 이제 시작인데 벌써요? 아직 밥도 덜 먹었다구요.”
“맞습니다, 형님. 시켜놓은 음식은 다 먹고 일어나죠?”
수하들을 더 몰아붙이자니 오랜 표행에 이제야 좀 편안히 앉아 속을 달래고, 회포를 풀려는 그들의 말도 맞아 홍국헌도 더는 몰아붙이지 못하고 속을 끓여야 했다.
“헤헤, 어서옵셔. 어떤 걸로 주문하시겠습니까?”
그사이 고광춘이 두 사내에게 차림판을 내밀자 꽁지머리의 사내가 웃으며 물었다.
“사람 고기는 파는가?”
“에… 예에?”
점주가 깜짝 놀란 얼굴을 하자 꽁지머리의 사내가 피식 웃었다.
“크큭. 농담일세. 가서 돼지머리 눌린 거 좀 썰어오고, 죽엽청이나 한 병 내오게.”
“아, 예예.”
잠시 혼이 나갔다 돌아온 고광춘이 다급히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술이 약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표사 하나가 투덜댔다.
“거 참 농담 한번 살벌하게 하시네.”
“윤찬! 말조심하거라!”
두 중년인의 입이 열리기도 전에 홍국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제 아우가 술이 약해서 한 실수이니 선배님들께서 너그럽게 용서바랍니다.”
홍국헌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꽁지머리의 사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저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원래 수장이라는 자리가 다 그렇지 않은가. 아랫사람 챙기려면 힘들겠어.”
“흥, 당신이 뭘 안다고….”
짜악!
한마디 더 하려는 윤찬이라는 사내의 얼굴이 반대로 획 돌아갔다.
“더 나불대면 내 손에 죽는다.”
표두의 으르렁거림에 윤찬을 비롯한 다른 표사들, 그리고 쟁자수들까지도 눈이 번뜩 뜨였다.
그제서야 찬찬히 두 사내의 행색을 살피던 그들이 뭔가 위화감을 느끼고는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저 홍 표두가 저렇게 하는 데는 필경 이유가 있을 테니까.
“허허. 뭐 그렇게까지야. 난 신경 쓰지 않으니 마저 식사나 하시게.”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은 홍국헌의 등줄기로 땀이 주루룩 흘렀다.
뭔가 기묘한 적막 속에서 점주가 쭈뼛쭈뼛 음식을 들고 왔다.
돼지머리 눌린 고기는 바로 자르기만 하면 되었기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묵묵히 젓가락을 놀리는 두 사내의 모습을 바라보던 표사들은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대충 쑤셔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아, 참. 이번에 북경으로 표행단이 하나 들어갔는데, 그게 북경의 귀부인들이 사용하던 귀중품들을 매입해 운송하기 위함이라지?”
꽁지머리 사내의 말에 두꺼비 얼굴의 사내가 고기를 우적우적 씹으며 맞받았다.
“음. 나도 들었어. 뭐 북경에서 유행하는 패물들과 옷들을 가져다 소주에 있는 기루에 푼다고 들었네만. 그런데 그건 왜 묻나?”
“거 참, 나도 집에서 기다리는 여우 같은 마누라한테 점수나 좀 따볼까 해서 말이지. 구경이나 좀 해보고 싶긴 한데.”
“뭐, 볼 수만 있다면야 나도 보고 싶군. 그쪽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꽁지머리 사내의 고개가 천천히 두혜련 쪽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