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96
청풍표국 최강식객 096화
96화. 별은 빛을 잃고, 교룡은 비구름을 만나네(1)
달그락. 달그락.
그믐이라 하늘은 별만이 총총했고, 표국의 곳곳에 밝혀진 횃불만이 눈에 들어왔다.
적막한 사위를 백운학이 염주 알을 굴리는 소리만이 채웠다.
“넌 그냥 들어가서 자빠져 잠이나 자라니까 왜 기어 나와서 귀찮게 구는 게냐.”
염주를 돌리고 있는 백운학이 옆에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제자를 보며 핀잔을 주었다.
“어차피 몸을 의탁하기로 한 마당에 한 놈이라도 더 잡아야지요. 부족하나마 한 손 보태려고 나왔습니다.”
“거참. 실력도 변변찮은 놈이.”
백운학이 핀잔을 주며 계속 염주를 돌렸다.
물론 스승의 입장에서 한 말일 뿐이었다.
약골처럼 보이는 위현보였지만, 그의 무공 역시 그리 쉽게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힐끗 옆을 본 위현보가 물었다.
“백팔 개면 충분한 겁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염주 몇 줄 더 사두는 걸 그랬군요.”
“나머지 놈들은 알아서 하겠지.”
“하긴. 그런데 말입니다.”
“…?”
“왜 그 청년, 아니 임 공자를 돕는 겁니까? 사실 스승님 정도면 어딜 가더라도 대접을 받을 수 있을 텐데요. 딱히 임 공자의 곁이어야만 할 이유가 따로 있는지요?”
“글쎄….”
그 물음에는 백운학도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사실 이번에 그가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면 평생 안 보고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암어를 통해 자신을 불렀을 때부터 왠지 이리될 것만 같았다.
“나도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거라 딱히 해줄 말이 없구나.”
잠시 뜸을 들인 백운학이 달빛을 보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런데 강호에 나와보니 알겠더구나. 흑과 백으로 나뉜 강호. 의(義)와 패(覇)를 숭상하는 또 다른 파벌로 나뉜 백도 무림….”
“그 말씀은 임 공자는 파벌에 얽히지 않아서 좋다는 겁니까?”
“꼭 단정하긴 어렵구나. 하지만 무림세가나 문파가 아닌 표국을 선택한 걸 아는 순간부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단 걸 알 수 있었지.”
“하지만 표국은 의(義)도 아니요, 패(覇)도 아닌, 그냥 이(利)가 아닙니까?”
“허나 이(利)는 의와 패를 모두 아우를 수 있지. 둘 모두 다른 의미의 이(利)가 아니더냐. 난 정의란 호불호의 다른 모습라고 생각한단다. 보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걸 정의라고 불리는 것이지. 중원이 아닌 새외, 또는 그 너머의 서역에선 우리와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
아직 젊은 위현보는 스승의 말을 완전히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아니 받아들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생각이 있으니.
“오는구나.”
그때 스승의 손이 멈췄다.
스스슷!
표국에 산재해 있던 묵풍조 장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표국을 향해 다가오는 음습한 그림자를 느꼈기 때문이다.
아직 경비대원이나 교룡대원들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천도들 또한 묵풍 장로들의 전음에 따라 움직일 뿐.
표국의 식솔들에게는 이미 습격 사실을 알렸고, 아무 일도 없을 테니 날뛰지 말고 침착하라는 말을 해둔 상태였다.
괜히 날뛰다가 눈먼 비수에 맞아 죽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모든 전각의 불은 꺼져 있었고, 문은 안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살수들은 임요성이 없는 표국을 빈집털이라 생각하며 긴장감 없이 왔으리라.
살수는 모르고 당하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살수가 올 거라는 것, 그리고 언제쯤 올 거라는 걸 알고 대비를 하고 있게 되면 그 위력이 반으로 감소한다.
‘흠. 웬만하면 안 오길 바랐는데.’
묵풍조를 이끄는 일검의 눈이 깊어졌다.
그냥 주군의 기우이길 바랐다.
그래서 임요성이 우승한 좋은 날, 아무런 피도 보지 않길 바랐다.
‘후후. 하지만 또 이것이 강호를 살아가는 이들이 겪어야 할 필연이라면, 그 또한 즐기리라.’
일검의 미소가 짙어졌고, 손이 올라갔다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산개해서 각개격파 하라! 표국의 내부는 신경 쓰지 말고 최선을 다해 눈앞의 적만을 섬멸하라!]일검의 전음과 함께 다른 아홉 명의 묵풍 장로들이 아홉 방향으로 흩어졌다.
* * *
또각. 또각.
말을 타고 가는 세 남녀의 얼굴은 그런대로 밝았다.
일행의 가장 선두에 있는 홍국헌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 연신 히죽거리고 있었고, 그 뒤를 따르는 두혜련 역시 못 마시는 술을 억지로 몇 잔 걸친 터라 은근히 기분이 올라온 상태였다.
물론 막판에 길거리에 나붙은 괴문서에 분위기가 가라앉긴 했지만, 그래도 임요성의 우승과 소주제일상단과의 협업 등으로 이번 신성대연은 그들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성과를 얻어 가는 것이다.
하지만 뒤를 따르는 임요성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일이 어찌 될지 모르니 일단 방비를 해두라고는 했지만, 걱정이 안 될 수는 없었다.
사실 비무제에 참석하는 것보다도 표국으로 가고 싶긴 했지만, 단목인이 그를 가만 놔둘 것 같지 않았다.
차라리 단목인을 견제하면서 비무제를 무사히 마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옳았다는 것이 지금 증명되고 있었다.
단목세가를 나오자마자 조금씩 포위를 좁혀오는 기파를 느꼈고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잠깐 멈추시게.”
귀에 익은 목소리. 단목인이었다.
뒷짐을 지고 앞을 가로막는 그의 얼굴엔 하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어? 단목가주님께서 여길 어떻게….”
홍국헌의 말을 자르며 임요성이 앞으로 나섰다.
“올 거라 생각했소.”
“음? 하하. 알고 있었던 겐가? 역시 비무제의 우승을 날로 먹은 건 아니란 건가?”
“아버지, 그냥 빨리 해치워 버리고 저년이나 잡아가죠?”
그리고 옆에서 걸어오는 이는 바로 단목룡이었다.
그의 눈은 이미 발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눈앞에 서 있는 두혜련의 벌거벗겨진 나신을 상상하며.
“인석아. 서두르지 말거라. 어차피 네 차지가 될 테니.”
“쯧. 부자가 나란히 왕림하셨군. 가주라는 분이 엉덩이가 상당히 가볍군. 보통은 수하들을 시키던데.”
주위를 둘러보니 얼핏 봐도 백이 훌쩍 넘는 이들이 자신들을 이미 둘러싸고 있는 게 보였다.
이들은 단목인과 단목룡의 호위대였다.
단목인을 호위하는 현운탁 이하 성영대와 단목룡을 호위하는 담호륜 이하 천망대 2개조가 합류한 인원은 물경 150여명.
호위대주인 현운탁과 담호륜부터가 초절정 고수였고, 한 명 한 명이 절정 혹은 최소 일류 이상의 고수였기에 그들이 내뿜는 기파에 두혜련이 숨이 막혀 답답해할 정도였다.
스윽.
홍국헌이 그녀의 앞으로 가서 기파를 막아내자 겨우 두혜련은 숨을 쉴 수 있었다.
임요성의 빈정거림에도 단목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했다.
“나도 그럴까 했지만, 사실 가문의 숙원을 풀어야 할 일이 생겨서 말이야. 뭐, 백웅을 죽인 솜씨도 직접 볼 겸 겸사겸사 직접 왔다네.”
임요성은 단목인의 말이 묵천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갑작스럽게 나타난 괴문서에 방주와 총군사가 그쪽으로 신경이 분산되어 있어 이렇게 야행을 하는 데는 아무런 방해 요소가 없었지. 천운이랄까? 자네한텐 악운이겠지만 말일세. 어떤가? 자네가 백 호법을 처리한 것이 맞겠지?”
“다 알고 왔다니 숨길 게 없겠군. 그렇소. 내가 죽였소.”
“왜지? 왜 그를 죽였나?”
“재밌는 말씀을 하는군. 우릴 죽이러 온 이를 죽이는 게 이상한 것 아니오?”
임요성의 말에 단목인이 빤히 쳐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딴엔 틀린 말은 아니군. 이런 대접을 받아본 게 실로 오랜만이라 좀 놀랐을 뿐이네. 그런데 말일세. 여기 내가 같이 온 사람이 하오문의 강소지부장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임요성이 눈을 가늘게 뜨자 단목인이 손을 내저었다.
“그래그래. 그렇게 시치미를 뗀다면 내가 먼저 이야기하지. 우선 하오문 지부장이 이곳에서 알아낸 사실 말야. 실로 교묘하게 숨겼더군. 하지만 처음부터 계획을 잡고 움직이는 것 아니라, 그때그때 순발력으로 대처하는 일은 어딘가에 필연적으로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지. 그게 규모가 작은 세력의 한계이고 말야. 어떤가? 내가 모를 줄 알았나? 자네가 묵천군의 제자라는 것을?”
단목인의 말에 임요성의 눈이 가늘어졌고, 두혜련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죠?”
임요성이 요즘 사람들에 회자되고 있는 묵천과 관계가 있다니?
임요성을 돌아봤으나 그 역시 놀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하. 이거 내가 사랑싸움의 원인이 된 건가? 이보게 순진한 처자. 저 청년이 바로 현재 소주 무림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묵천이라는 곳의 수장이란 말일세.”
두혜련이 임요성을 쳐다보던 눈길을 거두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죠? 오라버니께서 한 일이라면 전 그게 무슨 일이든 믿고 있어요.”
이번엔 임요성의 눈이 그녀를 향했다.
자기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주는지.
“미리 말하지 못한 건 미안하다.”
“그 얘긴 나중에 해요. 우선 이 상황을 헤쳐 나가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그간 많은 일을 겪어서인지 두혜련 역시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물론 그것은 임요성에 대한 믿음의 발로이기도 했다.
“자네가 묵천군의 제자가 된 그 순간부터 자네는 나에게 죽을 운명에 발을 들인 게지. 난 이날만을 기다리고 있었거든.”
단목인의 눈이 서늘하게 변했다.
“글쎄. 그 운명이라는 걸 반대로 해석한 게 아니오?”
“후후. 자신이 대단하군. 하지만 강호가 자신감만으로 다 되는 건 아니지. 암튼 이번 기회에 내 오랜 숙원도 풀고, 아들이 원래 마무리 지어야 했던 청풍표국도 지워버리면 되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로군. 다행히 내가 직접 온 의미는 챙기게 되었어.”
그의 말에 두혜련이 주먹을 움켜쥐며 물었다.
“왜죠? 왜 저희 청풍표국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죠…?”
그녀의 말에 옆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단목룡이 불쑥 나섰다.
“하아…. 씨발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왜 너흰 안 뒤져서 안달이냐? 다른 곳들 같았으면 벌써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을 텐데, 왜 듣보잡 병신 가문이 아직도 버티고 있냔 말이야! 오히려 내가 짜증을 내야 할 장면 아니냐? 솔직히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라!”
단목룡은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무런 문제 없이 끝났어야 할 일이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의문이었고 황당했다.
사실 일이 이렇게 커질 상황이 아니었다.
그냥 조용히 사라졌어야 할 청풍표국 따위가 아직 건재하다는 건 바로 저놈 때문이라는 생각에 임요성을 바라보는 단목룡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어차피 죽을 것들이니 내 일러주지. 강소표국은 양주상단의 소주 거점과 같은 곳이야. 당연히 소주를 집어삼킨 뒤에 강남 상계까지 먹으려는 계획의 일환이고. 그런데 그 첫 공사가 너네 땜에 망쳐버렸잖아! 흥. 아무튼 오늘 이후로는 그런 번거로움도 사라졌지만!”
“이, 악한들!”
두혜련이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강소표국의 야욕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그의 야망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음인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의 뒤에는 양주상단이 있었고, 양주상단의 뒤에는 산서상인이 있었다.
산서상인은 소주를 거점으로 삼아 휘주상인이 급속도로 세를 불리고 있는 강남 상계까지 평정할 계획이었다.
원래는 수도가 북경으로 이동하면서 산서상인의 입지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오히려 대운하의 확충으로 강남의 물산이 각광받으면서 휘주상인이 커버렸다.
산서상인은 더 이상 그들이 크기 전에 단목세가와 손을 잡고 이들을 짓밟으려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첫 계획이 청풍표국의 한 식객 때문에 헝클어진 것이다.
다시 그녀에게 고개를 돌린 단목룡이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순진한 년. 강호에 악한이 어딨냐? 하지만 걱정 마라. 넌 내가 아주 소중히 예뻐해 줄 테니. 이제 어느 정도 대화가 무르익은 것 같으니 시작하시죠, 아버지?”
단목룡의 말에 단목인이 손을 들어 올리자 친위대가 포위망을 좁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