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97
청풍표국 최강식객 097화
97화. 별은 빛을 잃고, 교룡은 비구름을 만나네(2)
분위기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자 어디선가 세 사람을 중심으로 수십의 인영이 내려섰다.
바로 여산홍과 매영옥을 비롯한 호위대였다.
그들의 등장에도 단목인은 여유만만이었다.
“호오, 아까부터 같잖은 기파를 내뿜던 놈들이구먼. 그래, 올 사람은 다 왔나? 더 불러도 되네만.”
겨우 후기지수 하나와 호위대 스물 남짓한 이들이 자신들을 막을 거라곤 애당초 하지 않았다.
이곳은 단목분가에서 청풍표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외진 공터였다.
밤이 깊어 인적은 없었고, 초여름 풀벌레 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소국주님.”
매영옥이 두혜련을 막아섰다.
하지만 두혜련도 가만히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자신에게 선물해준 보검 월령보검.
스릉.
고아한 소리와 함께 검이 뽑혀 들었다.
비록 이름난 무공이 아니었지만, 나름 칼 쓰는 법을 배운 그녀다.
적어도 임요성에게 짐이 되긴 싫었다.
이름 모를 작은 하천이 지나가는 모습은 일견 운치를 자아냈지만, 풍광에 시선을 뺏길 상황이 아니었다.
“이제 시작해도 되겠나?”
그의 말에 임요성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후후. 왜 그러나?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니 후회가 되나?”
“그럴 리가. 단지 좀 씁쓸할 뿐이오. 강호는 좀 다르다고 들었는데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소.”
“뭐랑 다를 게 없다는 소리지?”
“뭐, 그런 게 있소.”
“흥.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더 들을 게 없다는 듯 단목인의 손짓에 삼백 남짓한 이들이 바로 쇄도할 때였다.
“멈추시오!”
어디선가 내공을 담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잠시 후 허공을 박차며 하늘에서 항아가 내려서듯 여덟 명의 여인들이 나타났다.
“음?”
단목인도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 여기 도착하기까지 실로 빠른 경공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모두 초절정에 이른 여인들. 어디서 이런 여인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부인께서 공자님의 호위를 부탁하셨습니다.”
일선이 대표로 말하자 뒤에 시립해 있던 일곱 선녀들이 목례를 취했다.
그녀들은 모두 창술을 수련한 이들로 귀마의 독문무공은 사실 창술이었다.
전대 환희궁주인 귀마는 사실 아미파의 속가제자로 과거 복호창식의 권위자였다.
남자로서 속가제자의 신분임에도 엄청난 무재와 노력으로 본산제자들보다도 실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본산제자와의 허락되지 않은 사랑으로 그녀와 도피를 하였고, 그 와중에 사랑하는 연인을 잃게 된다.
앙심을 품은 귀마는 결국 천마의 중원정벌에 동참하였고, 귀마에 의해 가장 피해를 본 건 바로 아미파였다.
하마터면 당시 구대문파의 자리에서 퇴출이 거론될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변황대전 이후 백 년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예전의 성세를 회복하는 중이었으니, 환희궁이라면 이를 가는 것이 바로 아미파였다.
이후 귀마는 복호창식을 변형시켜 귀혼창식(鬼魂槍式)을 만들어내었다.
기본의 복호창식에 좀 더 패도적이고, 잔인한 살수를 추가한 귀혼창은 이름처럼 무시무시한 무공이었다.
두 부분으로 이뤄진 창을 조립하자 이내 자기 키보다 커진 창을 앞으로 내밀었다.
“하압!”
기합과 함께 펼쳐지는 기파에 삼백에 달하는 단목세가의 호위대가 움찔할 정도였다.
단목인 역시 그녀들의 기도에 살짝 놀란 얼굴이었다.
여덟 명의 초절정 여창수라니.
물론 호위대주 현운탁과 담호륜 역시 초절정이었고, 호위대의 조장들은 모두 절정의 검사들.
전투라는 게 경지로만 싸우는 게 아니었다.
많은 인원이 있으면 차륜전과 합격을 통해 경지의 차이를 메울 수 있었다.
그래서 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처음 생각과는 달리 꽤 많은 피해를 각오해야 할 듯싶었다.
신중한 표정의 아비와는 생각과는 달리 두혜련을 앞에 둔 단목룡의 눈은 욕정으로 가려져 있었다.
“흥! 잡년들이 더해졌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저 여자만 빼고 다 쳐 죽여라!”
단목인이 말릴 새도 없이 단목룡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먼저 검을 빼 들고 여산홍에게 달려들었다.
채재재재쟁!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팔선녀의 등장에 크게 기울던 전력이 비슷해졌다.
다행히 팔선녀들이 적의 예봉을 막아내어 두혜련 쪽까지 검이 닿는 일은 드물었다.
그나마 팔선녀의 방어를 뚫고 들어오는 이는 매영옥의 검이 용서치 않았다.
그마저도 떨치고 오는 이는 두혜련도 어찌할 수 있을 정도였다.
촤악!
“하아! 하아!”
자신의 첫 살인. 하지만 그런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었다.
손은 떨리고 가슴은 쿵쾅거렸지만 두 눈만은 매섭게 적들을 살피고 있었다.
다행히 비수와 같은 것들은 그녀가 입고 있는 천잠의가 막아주어, 두혜련은 임요성이 자신을 지켜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단목인과 임요성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비명 소리가 난무했다.
단목인의 마음은 겉과는 달리 급해지기 시작했다.
팔선녀의 등장으로 전력이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빨리 이놈을 해치우고 그들을 지원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후기지수라고는 하나 오늘 비무제에서 보여준 무위는 상상 이상이었기에 쉽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임요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천십좌와의 결전. 강호 출도 이후 가장 강한 상대.
그 위에 천무삼신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강호 최정상 고수와의 싸움이었다.
아직 강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한 상황. 검강은 절대 도기로 막을 수가 없다.
하지만 흑풍아조는 그 자체로 강기를 막아낼 수 있는 보도(寶刀).
‘버텨주길 바랄 수밖에 없나….’
징―! 지잉―!
흑아와 흑조를 동시에 빼내자 그들도 위험한 순간임을 짐작한 듯 거친 도명을 내뱉었다.
“호오. 아까는 자세히 보질 못했는데 지금 보니 실로 좋은 칼이로다.”
스릉!
맑고 영롱한 소리와 함께 단목인의 검이 뽑혔다.
현란한 단목세가의 무공을 구현하기 위해 고안된 검이었다.
좁고 긴 검은 보기에도 시릴 정도로 하얀 검신을 드러냈다.
훅!
공간을 접는 듯한 몸놀림!
단목인의 검이 임요성의 목을 갈랐다.
“안 돼!”
두혜련은 임요성의 목이 잘리는 광경에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눈에는 단목인의 검이 가만히 서 있는 임요성의 목을 가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초고수들의 몸놀림을 인지하지 못한 그녀의 착각이었다.
“이형환위?”
단목인의 미간이 꿈틀했다.
절대 고수도 아니면서도 이 정도의 경신공을 구사하다니!
“하! 무슨 사술이라도 익힌 게냐!”
슈아아악!
마치 공간을 가르는 듯한 검격에 주위에 심어진 나무 수십 그루가 통째로 잘려 나갔다.
파방!
공간을 박차며 달려드는 임요성의 흑아!
“흡!”
챙!
슈슉!
흑아를 막아낸 단목인은 바로 옆구리 아래서 찔러오는 흑조를 깜짝 놀라며 몸을 비틀며 피했다.
‘이게 무슨!’
실로 가공할 속도와 파괴력이었다.
호신강기를 뚫고 들어 오는 소도에 단목인이 거리를 벌렸다.
호신강기를 뚫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과감하게 접근했는데, 까딱하면 어이없이 죽을 뻔하지 않았나.
“하앗!”
경각심을 가진 단목인이 한층 세밀하고 조심스럽게 공격을 감행했다.
채재재재쟁!
두 사람의 검과 도가 불꽃을 튀기며 맞부딪혔다.
수십 합이 오고 갔고, 그러는 사이 팔선녀의 활약 속에 단목세가 호위대원들의 생명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현운탁과 담호륜은 오랜 경륜을 지닌 고수들.
팔선녀 중 각각 한 명씩을 맞이해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나머지 호위대원들도 오랫동안 합을 맞춰왔기에 아무리 초절정의 경지라고 해도 팔선녀들 쉽게 그들을 해치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초절정의 고수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차이는 두드러졌고, 점점 단목세가의 호위대원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단목인이 승부수를 던졌다.
“하! 속도는 제법이구나! 하지만 속도가 다가 아니란 걸 보여주지!”
쿠과과과과과!
단목세가의 절기가 시전되자 마치 머리 위로 은하수가 펼쳐진 것처럼 휘황찬란한 검격의 그물이 펼쳐졌다.
하늘에 수놓아진 은하수 아래 인간이 펼친 또 다른 검영(劍影)의 은하수!
“크윽! 모두 피해라!”
누군가의 외침에 수하들 간의 전투가 중단되며 거리를 벌렸다.
단목인의 검권(劍圈)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그 자신과 임요성 둘 뿐.
두 사람만을 남겨두고 거리를 벌린 이들은 자신들의 수장을 각각 다른 마음으로 바라봤다.
상천십좌에 이른 강호의 절대 고수, 단목인을 바라보는 이들은 승리에의 확신을.
파죽지세의 기세로 중원 무림에 이름을 떨쳐가고 있는 임요성을 바라보는 이들은 일말의 불안과 한편으로는 기대를 품으며.
하지만 그들 모두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단목인의 기합.
“죽어라!”
수많은 별 무리가 임요성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수많은 별이 낙하하는 듯한 성라폭렬에 임요성도 탈혼뇌정검 제4초식 벽력으로 대항했다.
콰아아아아앙!
엄청난 폭렬음과 함께 마치 땅이 수많은 운석에 강타당하는 것처럼 솟아올랐다.
“하아… 하아….”
비록 버티긴 했지만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드러난 모습은 처참했다.
임요성의 온몸이 피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임요성의 의식은 이미 날아간 상태였다.
피가 흥건한 채로 멍한 표정의 그는 삼류 무사가 가서 찔러도 될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단목인 역시 멀쩡하진 않았다.
가공할 공력에도 임요성이 수많은 검격을 쳐내자 막판에 내공을 무리해서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을 드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제법이군. 강의 경지를 밟지 못했음에도 그 정도라니. 하지만 이제 끝났다.”
천천히 다가서는 단목인. 누가 봐도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두 자루 흑아와 흑조를 들고 있는 모습은 일견 처절해 보일 지경이었다.
“보면 볼수록 좋은 칼이로다.”
단목인은 임요성을 죽이고, 저 칼을 자신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죽었어야 할 임요성의 목숨이 붙어있는 것도 바로 저 칼 때문이었다.
강호십대병기에 전혀 손색이 없을 보도(寶刀)였다.
스윽.
탐욕과 승리감에 도취된 눈빛으로 단목인이 검을 들어 올렸고, 두혜련의 비명소리가 벌판을 울렸다.
“안 돼―!!!”
* * *
날아간 의식 속에서 임요성은 과거를 보고 있었다.
‘사부님?’
수많은 적들을 홀로 막아내는 사부의 뒷모습.
너무나도 생생한 모습에 마치 과거로 회귀한 듯한 느낌이었다.
“어서 도망가라니까!”
머릿속에 남아 있던 그 날의 기억과 같은 말투.
중원 최강의 살수 조직이 동원되었다던 말은 들었다.
아직 불량인들은 어렸고, 미래를 위해 남겨둬야 했다.
불량인들을 제외한 공식적인 삼황자의 호위대는 이미 전멸. 이제 마지막 선을 넘으려는 순간이었다.
다른 불량인들은 모두 황자와 함께 도강을 위한 배에 올라타 있었다.
“요성아! 빨리 와!”
친구들의 부름 소리가 귓가에 윙윙 울렸다.
하지만 차마 임요성은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사부님!”
“멍청한 녀석! 나와 약속한 것 잊었더냐! 무조건 살아남기로! 어서 가라! 가서 살아남아라! 마지막까지! 크압!”
시선이 닿는 모든 공간을 지배하듯 묵천군의 몸놀림은 그야말로 사신(死神)과 같았다.
“미친! 절대 고수도 아닌 놈 하나를 넘어서지 못한단 말인가!”
중원 최강의 살수 조직인 살막의 막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절대 고수에도 오르지 못한 묵천군에게 발목이 잡혀 눈앞에 있는 황자에게 갈 수가 없었다.
“사부님….”
약속이라는 언급에 이제 막 솜털을 벗기 시작한 임요성의 눈에 핏발이 맺혔다.
“하하하하! 슬퍼하지 마라 제자야! 나 묵천군, 그야말로 자유롭게 내 의지대로 살고 죽음이니, 나의 죽음에 꽃을 뿌려다오!”
아름다웠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의 몸놀림.
묵천군이 절대 고수가 아님에도 절대 고수였던 단목형을 죽일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런 그의 환상적인 몸놀림 때문이었다.
잊고 있었다.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화경에 대한 강한 의식을 하고 있었을까.
경지에만 집착하는 그런 마음이 오히려 조화로운 검술을 펼치는 데 걸림돌이 되었고, 이와 같은 처참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까.
“방하착하게.”
또 어디선가 한산사 방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현듯 떠오른 그의 한마디.
난 무엇에 집착하고 있었던가. 그리고 난 그 집착으로 인해 어떤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던가.
그때 갑자기 사부의 고함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갈(喝)! 정신 차려라 이놈아! 아직 사부에게 오려면 백 년은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