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00)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00)화(100/326)
‘시아야, 우리 시아.’
누군가 나를 끌어안고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나를 이렇게 부르는 사람은 한 사람뿐인데.
성원 세자…….
맞아. 이런 목소리였어.
그 가짜 호랑이 사건 이후로 목소리조차 떠올리지 못했는데…….
“정신 차려요!”
“!”
눈을 뜨니 낯선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야, 누구?
“정신이 드십니까?”
“아……?”
눈을 몇 번 깜빡거린 나는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을 떠올리곤 몸서리를 쳤다.
“아, 도, 도망가야……!”
“괜찮으니까, 진정하십시오.”
“???”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는 또 낯선 방 안이었다.
“여긴…… 어디?”
“음. 일단 물을 좀 드릴까요?”
“……아니.”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걸 마시기에는 방금 전까지의 기억이 너무 선명했다.
나는 눈앞에 있는 이를 찬찬히 관찰했다.
덩치는 큰 편이지만 얼굴은 아직 앳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그 외의 특이점은…… 잘생겼다는 거랑 손에 굳은살을 보면 무예를 익힌 것 같다는 정도?
“경계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정말 이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기씨께서 산속에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해서 데려온 것뿐이고.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 가까이에 있는 주막으로 데려온 겁니다.”
“산에는 왜 갔는데?”
“으음, 실은 아까 포졸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걸 보고 무슨 일이 있나 구경을 갔는데. 거기서 아이가 유괴되었다는 소릴 듣고 유괴범을 쫓아가다가…….”
“아.”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
“좀 이상한 말이지만 혹시 그 유괴된 아이가 아기씨 맞습니까?”
“응.”
“다행입니다. 아니었으면 어떡하나 했거든요.”
“아, 나 집……에 연락해야 하는데.”
“아, 여기 주막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기씨를 안다고 소식을 전하겠다고 했습니다.”
“어??”
그렇다면 여기는…… 내 프랜차이즈 주막 중에 하나?
날 알아봤다는 건 시영원 출신 아이들인가?
“예. 그러니 곧 아기씨의 가족들이 찾으러 올 겁니다.”
엄연히 말하면 가족……은 아니지만 분명 다들 지금쯤 엄청 걱정하고 있겠지.
‘으아아아. 아직 궁에 연락하진 않았겠지? 그럼 큰일인데!’
만약 세자나 왕이 알게 된다면 대형 참사였다.
가벼운 패닉 상태에 빠져 있던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럼 나 때문에 산에 들어갔던 셈이네. 도와줘서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아니, 전 그냥 쓰러져 있던 사람을 데려온 것뿐이니까요. 어쨌든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소년은 다정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흠, 감히 내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는 사람은 이승에 셋밖에 없지만 용서해 주지.
‘아, 이래서 아까 성원 세자 꿈을 꾼 건가.’
아까 일을 떠올리자니 몸이 떨려 왔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게다가 나를 쫓아오던 사람은 그럼 어떻게 된 거지?
“경계하는 건 알겠지만 물 정도는 마셔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사람 불러올까요?”
“아니이. 됐어.”
나는 열려 있는 문밖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갔다.
그러자 막 야채를 다듬고 있던 여인 하나가 나를 보고 울먹이며 달려왔다.
좋아. 아는 얼굴이다.
시영원에 제법 오래 있던 아이 중 하나였다. 나이는 나보다 몇 살 위였지, 아마?
“아, 아기씨!”
“와아. 오랜만이네.”
“어휴.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산에 쓰러져 있는 아이를 데려왔다고 해서 봤더니 아기씨여서,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래요.”
“음. 재수가 없었지.”
“아기씨 같은 좋으신 분이 재수가 없다니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요.”
“하하하.”
여인은 물을 떠다 주며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은 없으시죠? 시장하진 않으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아기씨 드리려고 닭죽 끓이고 있거든요.”
“요리 솜씨는 많이 늘었어?”
“그럼요.”
아는 사람이 있으니 확실히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경언군 그 빌어먹을 놈이 위리안치된 이후로 이렇게 긴장해 본 적은 처음 같았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어머, 닭죽 금방 다 됐는데 먹고 가요.”
나를 구해 준 소년은 이상하게 푸근한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숙부가 기다리고 계셔서요. 깨어나는 걸 봤으니 어서 가봐야죠. 몸조리 잘하세요, 아기씨!”
“아? 아, 고마워!!”
소년은 단정한 얼굴로 웃으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람을 구해주고 너무 쿨하게 가버리니 이쪽이 더 서운할 지경이었다.
“이름이라도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냥 보내 버렸네.”
“저라도 물어볼 걸,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네요. 그런데 아기씨는 왜 그런 곳에 계셨어요?”
“어쩌다 보니…….”
으음. 시영원을 통해 연락이 가려면 언제쯤 소식이 닿으려나.
스마트폰이 없는 시대에 익숙해지긴 했는데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소이와 성 겸사복이 나를 찾아와, 해가 떨어지기 전에 환궁할 수 있었다.
“아기씨, 소인은……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소이 많이 놀랐지? 괜찮아. 울지마.”
“흐엉엉. 무, 무슨 일이라도 생기신 줄 알고…….”
소이를 달래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렸을 정도로 두 사람은 나를 빨리 찾아왔다.
소이에게 내가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들은 성 겸사복이 다시 포도청을 찾아가 왕족 납치 사건에 대해 신고하기 전에, 다행히 근처에 있던 프랜차이즈 주막을 통해 내가 어디 있는지 전해졌다고.
‘아이들도 똑똑하네.’
소식을 전하기 위해 직접 시영원으로 가는 게 아니라, 가까운 주막으로 이야기를 전하도록 나름 시스템이 잡혀 있는 모양이었다.
많은 아이들에게 내가 산속에 쓰러져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덕분에 성 겸사복에게 소식이 빨리 전해진 셈이었다.
소이의 표현을 빌자면 내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 몇은 죽일 기세였다는 성 겸사복은 무거운 목소리로 자신을 탓했다.
“소인이 아기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탓입니다.”
“아니, 포도청 포졸들이 일을 제대로 못 해서 그런 것뿐인데.”
그런 커다란 항아리가 있는데 열어 보고 찔러 보고 했어야 정상 아냐?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네.’
난 당연히 다 확인해 본 곳이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한 일이었단 말야.
기껏해야 숨겨 놓은 진품 골동품이나 발견할 줄 알았지 거기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으음.’
정말 그냥 실수……일까?
나는 성 겸사복을 잘 다독여 돌려보내고, 소이는 물론 주막 아이들의 입단속까지 철저히 한 후에 궁으로 돌아왔다.
물론 사가에 들러 옷매무새도 다시 정리했기에 궁 안에서는 이 일을 알지 못했다.
위작 골동품 사건으로 어린아이가 유괴되었던 건 포도청에서도 알고 있었으나 그게 나라는 사실은 몰랐고, 유괴된 아이도 무사히 돌아왔다고 포도청에 전했으니 사건은 조용히 무마될 듯했다.
하지만 조용히 잠자리에 누운 나는 몇 가지 생각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내가 엿들은 게…… 뭔가 중요한 얘기일 수도,’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단어는 ‘다방골 기방’, ‘열아흐레’, ‘세자’ 정도였다. 연관성이 전혀 없는 단어이긴 한데 기방은 몰라도 ‘세자’라는 단어는 흘려들을 수 없는 단어였다.
골동품을 위조해서 팔고, 필요하다면 나 같은 어린아이를 납치하거나 죽이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놈들이라면…….
‘그러고 보니 그놈들이 분명 ‘우리의 대계(大計)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면 모두 처리해야 해.’라고 했었지.’
‘세자’와 어린아이라도 죽여야 하는 ‘대계’요…….
이렇게 단어가 엮이면 역모(逆謀) 같은 단어밖에 연상되는 게 없는데요.
“하아.”
지금까지 이 세계관이 소설 속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다른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진짜 사극 쪽 세계관이기라도 한가?’
소설에서는 본격적인 역모까지는 안 일어났지만, 사극이면 각색하더라도 꼭 역모 한 번씩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단 말이지.
어쨌든, 분명 소설과는 달라졌는데 큰 사건만은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다면 또 누군가가 역모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 아닌가.
경언군도 죽었는데, 대체 누가 또 역모를 꾸미는데.
‘아, 진짜 좀 편하게 살려고 했는데.’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잠 못 드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좀 더, 전향적인 마음가짐으로 살기로 다짐했다.
‘그래, 경언군 없이도 누군가가 이렇게 역모를 꾸미는데 다른 일들도 다 일어나겠지. 여주가 나타날 거고, 내 병도 고칠 거고, 남주…… 세자와 혼인해서 행복하게 살 거야.’
역모? 주인공이 세자인데 역모가 성공할 리가 없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막 나가는데 결말이 바뀔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럼 당연히 세자는 살겠지? 여주랑 남주랑 결혼하고 행복하게 잘 살겠지?’
결말은 약속된 해피엔딩이니까.
이래서 사람은 배드엔딩이 아닌 해피엔딩인 소설을 봐야 하나 보다.
해피엔딩이 예정되어 있어도 이렇게 불안한데 결말이 배드엔딩인 소설에 빙의 환생하면 살아남아도 정서불안 엔딩일 거 같았다.
다만, 이 소설이 해피엔딩인 건 좋은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잖아.’
원작의 흐름에서 나는 원래 진작 죽었어야 하는 한 줄, 혹은 두어 줄짜리 엑스트라였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내 식사 시중을 들고 있는 가이를 보며, 가이와 소이를 떠올렸다.
송비는 원작에 언급도 없었던 것 같지만 원작에서 가이와 소이의 결말은 절대 좋지 않았다.
소이는 어릴 적에 죽고, 가이는 동생 복수에 인생을 갈아 넣고 결국 성공하지만…… 가이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선 소설에서 보여 주지 않았다.
원수의 등에 칼을 꽂아 넣고 만족했을지 몰라도 그 이후 가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동생 무덤 앞에서 원수의 시체로 제사를 지내 주고, 본인의 인생을 행복하게 즐길 수 있었을까?
소설 속의 가이는 주인공의 조력자였다고는 해도 대외적으로는 경언군의 사람이었다.
죽은 동생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홍 숙원, 아니 지금은 폐서인 홍씨가 되어 버린 영빈의 측근이 되어 불법적인 재산 축적 형성을 도왔다. 영빈과 경언군의 신임을 얻기 위해 명령에 따라 다른 사람을 짓밟기도 했고.
‘아마 자신의 죗값을 치르려 했을 거 같지.’
경언군에게서 동생을 해친 죗값을 받아 냈으니 자기 자신도 죗값을 치르려 했을 것 같았다.
“가이…….”
“옹주 자가? 어찌 그러시옵니까?”
“음. 아니야 요새 가이가 바빠서 자주 못 봐서 그런가. 오랜만에 가이가 옆에 있으니 좋구나 싶어서.”
“어머나, 옹주 자가. 어인 일이시옵니까. 후후후. 그리 말씀해 주시니 소인 너무 기뻐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내가 가이한테 늘 고마워한다는 거 알지?”
“그럼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가이를 꼭 끌어안았다.
내 나이가 열여섯이라는 걸 생각하면 좀 민망한 말이었지만 모처럼 외관이 일곱 살이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가이도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지금 방 안에는 나와 가이 둘뿐이란 걸 깨달았는지 가볍게 내 등을 토닥였다.
생각해 보면 이리 가까운 스킨십을 하는 일이 워낙에 드물었다.
내 피붙이들이 많지 않은 탓도 있지만 왕실의 법도가 너무 지엄하여 다들 감히 왕족의 몸에 손을 댈 수도 없고, 어린아이라 하여도 쉬이 어리광을 부리지 못하는 탓이었다.
‘세자도 그래서 그리 외로워하나.’
모처럼 어린아이인데 여주가 오기 전까지만이라도 좀 귀여워해 줘야겠다.
“아이, 옹주 자가. 이러시면 송비가 부러워할 것입니다.”
“음? 송비도 한번 안아 줘야겠네.”
다행히 어제 일은 가이는 물론 송비도 모른다. 영선이 잘 처리해 준 덕에 송비는 그저 내가 구경에 정신이 팔려 늦었다고만 알고 있었다.
소이야 내가 눈앞에서 납치당했던 걸 들키면 어찌 될지 모르는 처지이니 알아서 입단속을 할 테고.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데리고 있는 식솔들이 너무 많았다.
만약 역모가 일어나면 이 사람들은 다 무사할 수 있을까.
“어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안 하면 안 되겠지.”
“그렇……겠지요?”
“나 아무래도 또 나가 봐야 할 거 같은데.”
“예?”
증거도 없고 근거도 희박하지만, 아무래도 역모가 일어날 거 같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