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02)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02화(102/326)
‘세자도 그날 일에 대해 더 알고 있는 건 없는 것 같네.’
제대로 보고는 받은 것 같지만.
그래도 내가 그 납치당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고.
‘세자가 모르면 왕도 모르는 거지. 다행이다.’
왕도 세자도 내가 가끔 몰래 궁궐 밖을 오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만 적당히 눈감아 주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뭔가 위험한 일에 휘말린다면 그걸 가만두고 볼 리가 있겠는가.
‘못 나가게 하거나, 아니면 정말 왕족 티 내면서 가마 타고 사람을 몇 명씩 데리고 다니게 하겠지.’
그런 거야 어디 여행 갈 때나, 아니면 궐 밖에서 생활하다 궁으로 놀러 올 때나 필요하지, 지금처럼 놀러 다닐 때는 그야말로 성가시기 그지없었다.
물론 내가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게 단순히 놀기 위해서만도 아니고.
‘아우. 내가 무슨 역모까지 밝혀야 해?’
옹주 노릇 현타 온다…….
솔직히 뜬금없이 역모라니 이 무슨 급발진인가 싶겠지만, 이쪽 세계관이 원작의 타임라인을 제법 준수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설득력이 있는 추론이었다.
‘아, 젠장. 이딴 설득력 거부하고 싶은데…….’
물론 반역이 일어난다 해도 지금 당장은 아니고 보통은 몇 년 후의 얘기일 가능성이 높았다.
내 기억으로는 아직 시기적으로 반란이 일어날 때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반역이라는 게 하루 이틀 준비해서 되는 일도 아니었다.
물론 비교적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아예 군대를 이끄는 무관이어야 가능했고 위험한 만큼 임명에 굉장히 신중한 편이었다.
그러니 권력이 있거나 야심 있는 사람이 역모를 모의한다면 아무래도 조짐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돈도 필요하고, 병사도 필요하고, 무기도 필요하니까’
그리고 명분.
명분 때문에라도 어지간해서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를 전복시킬 정도의 명분도 실리도 없으니 보통은 왕족 하나를 왕으로 추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수양대군 이래로 왕족 본인이 주도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지.’
종친, 수양대군 본인이 반역을 일으킨 전적이 있기 때문에 종친에게 권력을 허락하지 않게 된 셈이다.
여기서도 권력이 있는 종친이 반역을 일으킨 전적이 있어서 금지되어 있고.
그래도 반역하면 역시 종친 하나를 추대하는 법이다.
‘지금 세자에게는 살아 있는 남자 형제가 하나도 없으니까.’
중종, 진성대군은 연산군 때 유일한 적통 대군이었기 때문에 반강제로 왕으로 추대되었다.
하지만 지금 반역을 일으킨다면 어떨까.
‘백성들은…… 지금 왕실에 큰 불만이 없어.’
세자가 혼인을 하지 않는다는 건 불안 요소이기는 하지만 아직 젊고 건강하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후손이 없다면 종친 아이들 중 하나를 후계로 삼는 게 뭐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러니 권력을 잡고 싶다면 차라리 유력한 종친들과 연을 만들어 두는 게 더 쉽고 안전했다.
반역? 사극에서는 보통 꼭 한 번씩은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드문 일도 아니지만.’
세자 암살 모의 같은 것도 바로 반역에 범주에 포함되니까.
폐서인 홍 아무개씨도 성원 세자를 저주한 증좌가 나왔을 때 바로 역모죄로 잡혔고.
그러니 지금도 뭐 어딘가에선 왕이나 세자를 원망하는 사람들이 역모를 계획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최근 왕과 세자는 은근슬쩍 의견의 차이가 나타나도록 행동하고 있었다.
아마 왕이 공식적으로 대리청정을 천명하고 나면 그때부터 둘이 반목하는 척하면서 노비제 문제를 손볼 예정인 듯했다.
아무래도 이런 경우 왕이 보수파고, 세자가 개혁파가 되는 구도인 법.
덕분에 많은 노비를 소유한 세력가들 중에는 세자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사실 지금 종친 중에 가장 많은 노비를 소유하고 있는 건 나였지만, 나야 뭐…… 딱히 불만이 없어서.
‘아직은 세자 혼자의 생각인 것처럼 굴고 있지만.’
둘이 적당히 대립하는 척하면서 국정을 원하는 대로 이끌어 갈 예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괜히 놀라거나 불안해할까 봐, 부왕은 나에게도 미리 머지않아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킬 것이라고 언질을 해 주었다.
물론 나는 대리청정에 관해서는 놀라지 않았다.
원작에서도 세자는 20대 초반쯤부터 대리청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솔직히 왕을 보면 그러지 말라는 말도 안 나왔다.
‘건강이 심하게 안 좋은 건 아니지만 지친 거 같아.’
내 앞에서 가능한 한 티를 내지 않으려 하지만 부왕은 역시 성원 세자의 일 이후 상당히 지친 얼굴이었다.
아직 그렇게 은퇴를 생각할 나이가 아닌데도, 하루라도 빨리 세자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고 싶은 듯했다.
‘그래서 세자빈 일도 그냥 넘겨주나.’
누구보다 세자를 채근해야 할 사람이 가장 조용하니 세자도 저렇게 뻗대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상황만 보면 역모를 좀 해 보고 싶은 놈들도 있을 거 같지만, 아직 너무 시기상조 같았다.
역시 지금 상황에서는 너무 급발진이 아닐까.
‘뭐 경계해서 나쁠 건 없겠지.’
역모가 아니더라도 어쨌든 그놈들은 고액의 사기를 치던 범죄자이며, 나같이 어린아이를 납치한 흉악범이었다.
‘가만 안 둬……!’
무사히 도망치고 나니 도리어 이제 와서 그땐 이랬어야 했나? 저렇게 했어야 했나? 다른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만 가득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어릴 적 위험한 일을 좀 겪었다지만 둥기둥기 귀하게 대접받으며 평화롭게 살아온 내가 이 짧은 팔다리로 그 상황에서 뭔가 더 능동적인 행동이 가능했을 리가 없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은 불변의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럴 때의 해결 방법이란 그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직빵이었다.
‘어린아이를 납치하는 건 어느 동네나 중범죄지.’
게다가 납치된 사람이 왕족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처벌 수위가 몇 계단이나 올라갈지…….
물론 알릴 생각은 없다.
왕이나 세자나 바쁜 사람들인데 괜히 걱정하게 만들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나와 동행했던 소이와 성 겸사복이 무슨 소릴 들을지 모를 일이었다.
안 그래도 둘이 괜히 죄책감 때문에 웃전들에게 이실직고할까 봐 입단속만 한참을 해야 했다.
‘내가 노려진 것도 아니고, 그냥 우연히 그 자리에 있다가 납치된 것인데 일을 크게 만들지 말라고 했지.’
그리고 일단, 나를 해치려고 했다는 얘기는 생략했다.
다만 그놈들이 사기꾼인 데다 위험한 놈들인 것은 분명하니 꼭 잡아야겠다는 말에는 다들 동의해서 그자들의 행방을 찾는 데에는 다들 협력적이었다.
‘으음. 시영원에서는 설마 모르겠지. 다행히 시영원까지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 주막에 있는 애들 입단속은 했는데.’
시영원 애들에 대한 내 영향력이 제법 큰 건 나도 안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아이들한테는 나보다 민 상궁이 더 가깝고 무섭다고. 민 상궁이 추궁한다면 아이들이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있을까?
‘시영원 가기 좀 무섭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민 상궁은 뭔가 미심쩍어할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나는 내가 사기당할 뻔했다는 명분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
궁 안에서는 혹시라도 말이 새어 나갈 수 있으니 정보를 교환하는 것도 내 사가에서 이루어졌다.
진상을 아는 성 겸사복은 누구보다 적극적이었고.
“옹주 자가께서 깨어나셨을 때의 상황은 말씀하신 것이 전부이옵니까?”
“응. 나도 정확한 위치는 잘 몰라.”
당시에 눈이 가려진 채로 이리저리 들려 다녔으니 알 리가 있나.
하지만 분명 산길이었으니 내가 눈이 가려져 있지 않았다고 해도 기억할 수 있었을지에 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결론을 말하자면 내가 납치되어 있던 그 장소를 찾고 싶은데 정확한 위치를 찾기 어려웠다.
“그날 나를 구해 준 사람이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붙잡아 두지 그러셨습니까.”
“숙부가 기다린다고 빨리 가야 한다고 했는걸. 나도 그때는 좀 정신이 없어서…….”
“송구합니다.”
“아니, 미안해하지 말고.”
생명의 은인인 셈인데 제대로 답례도 하지 못해 조금 마음이 쓰였다.
분명 아직 앳된 티가 역력한 소년……이었다. 덩치는 제법 컸으니 정말 소년인지 아니면 그냥 동안인 건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시원시원한 인상에 좀 잘생겼던 거 같은데…….’
하지만 그날 금방 가 버려서 제대로 신상에 대해 듣질 못했다.
주막에서 듣기로도 근방에서 본 적 없는 얼굴이라고 했고.
“잘생겼다면서요.”
“응.”
“옹주 자가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로 잘생긴 소년이 근방에 살았다면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지요.”
“그……런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성 겸사복이 피식 웃었다.
“세자 저하께서 워낙에 옥골선풍(玉骨仙風)이시라 그런지 어지간한 사내들은 옹주 자가의 눈에 차지 않을 텐데, 잘생겼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나?”
나는 나와 대외적인 연령이 그나마 가장 비슷한 소이에게 객관적인 판단을 부탁했다.
“옹주 자가께서 잘생겼다는 말씀은 잘 안 하시지요.”
“내가…… 보는 남자가 별로 없잖아.”
“규장각에 자주 드나드셨잖아요.”
“아니, 거기도 태반이 아저…… 유부남이라고.”
게다가 말이 젊은 인재지, 정말 극소수의 천재들을 제외하면 과거에 급제하는 연령이…….
물론 극소수의 천재가 모이는 곳이기도 하지만.
“게다가 내가 거기서 외모 평가를 하긴 좀 그렇지.”
대부분이 아직 하급 관료들이라고는 하지만 세자의 측근으로 찍힌 몸들이었다.
나와는 양호한 관계를 유지해야 될 사람이었고.
본의 아니게 함께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 아, 그래서 얼굴이 눈에 안 들어왔구나.
기쁘지 않은 현실을 직시하며 나는 본래의 화제로 이야기를 돌리기로 했다.
“아무튼 그 소년을 찾기는 어렵다는 말이지.”
“예. 뭔가 다른 이야기를 나눈 것은 없으십니까?”
“음…… 내가 납치당하는 현장 근처에 있었는데, 어린아이가 유괴당했다는 말에 따라왔다가 나를 발견했다고 했거든.”
“그거 참…… 훌륭한 청년이 아닙니까.”
“잘생긴 소년이 인성까지 훌륭하군요.”
성 겸사복과 소이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뿐이라면……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일단 성 겸사복은 나에게 들은 인상착의를 참고로 나를 발견한 주막 주변을 수소문하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성 겸사복은 내가 발견되었다는 산속에 나무꾼들이 가끔 쓰는 작은 초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제가 갔을 때 이미 그곳은 비어 있었습니다.”
“거기가 확실해?”
“옹주 자가께서 말씀하신 대로 광에 어린아이가 통과할 만한 창도 있었습니다.”
내가 가 보는 게 확실하겠지만 아무래도 위험했으므로 모두가 반대했다.
성 겸사복조차 혼자 가지는 않고 시영원에 있는 옛 동료들을 데리고 갔다 왔다고.
사람이 없으니 허탕이긴 했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자들은 무엇이었을까.”
“위작 판매하던 사기꾼들이 임시로 쓰던 곳이 아니겠습니까?”
“그냥 그랬으면 좋겠는데.”
이번에도 사가에 모여 탐문 결과를 들었다. 별 소득은 없었지만.
그날 일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나와 소이, 성 겸사복, 영선 이렇게 네 사람뿐이었기에 다른 이들에게는 일단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성 겸사복은 그날 일로 상심이 컸는지 내 옆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아서 도리어 걱정이었다.
소이야 뭐, 원래 그게 직업이고.
‘나도 놀라기는 했지만 좀 과한가…….’
날 노린 거라면 모를까 어디까지나 사고였는데.
‘그때 남자가 분명 열아흐레라고 했지. 그날이 스무닷새였으니 지나간 얘기를 한 게 아니라면 다음 달, 아니 이제 이번 달 열아흐레를 말하는 걸 테고.’
이제는 그자들이 말했던 다방골 기방 쪽을…… 찾아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