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03)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03화(103/326)
한양에는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만큼 기녀들의 수도 적지 않았다.
아마도.
왜 ‘아마도’냐면, 궁궐에서 곱게 자란 내가 그런 쪽으로는 그리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충 듣기로는 육조거리 근처와 벽장동, 다방골(다동)에 많다고 들었다.
‘그때 분명 다방골…… 기방이라고 했지.’
위치적으로는 조금 납득이 간다. 육조거리는 말할 것도 없고, 벽장동도 광화문 동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심리적으로 조금 멀어지고 싶겠지.
관리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들이니 다방골도 멀다고는 못하겠지만 기분 문제랄까.
원래 기방은 고위 관리들보다는 하급 관리나 무관들이 많이 드나들고, 높으신 분들은 주로 기녀를 집으로 부른다던데. 사극 같은 데서는 고위 관리들이 회합하는 곳이라서 이곳 설정도 그쪽에 맞춰져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나마 내가 기방에 대해 조금 알고 있는 건 역시 매향이나 송화 같은 기녀들과 안면이 있어서다.
어느 기방인지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기방(妓房)이라고 부를 정도로 규모가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역까지 특정해 줬으니 참 다행이지.
‘일단 한번 가 볼까…….’
내가 거길 가도 괜찮을지가 좀 걱정이지만.
그리고 내가 말을 꺼내자 당연히 반대에 부딪혔다.
성 겸사복도 성 겸사복이지만 소이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본래 양반댁 아가씨였던 영선은 기방이라는 말에 그저 어찌할 바를 몰라 했고.
“아니 옹주 자가, 옹주 자가께서 가실 만한 곳이 아니지 않사옵니까.”
“옷만 좀 평범하게 입고 있으면 다들 이상하게 안 볼걸.”
“그런 문제가 아니옵니다.”
“동기(童妓)로 볼까 봐?”
“그, 그것이…….”
“낮에 잠깐 가서 다방골에 기방이 몇 개나, 어디에 있는지만 봐 둘 거야. 혹시 알아? 뭔가 단서가 더 있을지.”
“어휴, 옹주 자가.”
그렇게 우겨서 결국 소이와 성 겸사복 두 사람을 이끌고 다방골까지 가게 되었다.
영선이도 따라나서고 싶은 눈치였으나 시간이 늦어지면 환궁하는 것이 먼저라 영선이 혼자 내 사가로 귀가해야 할지도 몰라 그냥 집에 있도록 했다.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소식을 전할 사람도 필요한 법이고.
‘음…… 다방골이 청계천 건너 보신각 근처구나. 원래, 아니 현대에선 거기가 다동이었나 무교동이었나, 아마 음식점이 많았던 거 같은데.’
예나 지금이나 사람 모이는 터인가 보다. 하여간 청계천 근처는 지나갈 때마다 기분이 좀 이상했다.
아무튼 나는 과거가 된 미래보다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다.
불건전한 동네를 상상하고 온 것 치고는 비교적 평범했다. 음악 소리나 노랫소리는 조금씩 들려왔지만.
‘그러고 보니 매향이네도 다방골에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기방에 가 보겠다고 하면 다들 펄쩍 뛸 테니 뭔가 구실이 있어야 할 텐데 매향이를 보러 가겠다고 해 볼까?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여기서 기방은 하나라고요?”
“아, 이런 촌…… 크흠. 다방골에서 기방이라고 부를 만한 곳은 저 유명한 매향이가 있는 다방골 기방 하나뿐이지.”
길을 물어봤을 뿐인데 노래는 역시 매향이가 최고고, 송도 기생들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며 찬양을 늘어놓은 아저씨 덕분에 다른 지방에 있다는 유명한 기생들 얘기까지 들어야 했다.
‘자기 본진 자랑하는 아이돌 오타쿠 같네.’
나는 안 들리는 척 슬쩍 소이에게 매달렸다.
사극에서 보던 것처럼 기녀들이 여러 명 있는 규모 있는 기방은 그리 많지 않다는 모양이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소인도 잘…….”
“저도…….”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소이와 성 겸사복 두 사람 다 나와 마찬가지로 아리송한 표정을 했다.
나는 일단 주변을 둘러보고 방금 대화를 나눈 아저씨가 가르쳐 준 다방골 기방으로 가 보자고 두 사람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기방은 하나뿐이라더니 낮에는 평범하게 일하러 돌아다니는 사람이 적지 않아서 우리도 그리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이 동네에는 기방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나 심부름을 하는 노비들도 많은 듯했다.
물론 일찍부터 기방을 찾아온 손님들도 있었고.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기억에 있는 얼굴을 발견했다.
“아?”
“어찌 그러십니까?”
“쉿.”
나는 소이의 옷자락을 잡아당겨 담벼락 뒤로 숨어 지나가는 사내를 유심히 관찰했다.
소이 역시 뭔가 눈치챈 듯 나를 따라 몸을 숨긴 채 눈짓으로 대화했다.
‘그때 그 납치범이다.’
‘그때 그 납치범입니다.’
우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도 성 겸사복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에 변화가 없었지만 시선만은 우리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사내가 어디로 가는지는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거리에서 유독 크고 화려한 건물에 오색등이 장식되어 있는 건물, 누가 봐도 우리가 찾던 기방이 틀림없었다.
기방으로 들어가는 납치범을 본 나는 약간 억울함을 느끼며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다.
‘아, 열아흐레라며!’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예정이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였다. 게다가 말이 띄엄띄엄 들렸으니 내가 제대로 들었으리라고 확신할 수 없었고.
어쩐지 시일이 지나치게 넉넉하다 했어.
사실 그날 무슨 일이 있어서 나를 놓친 건지도 알 수 없으니 오늘 여기서 보게 된 건 정말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지.
“기방 안으로 들어가야겠다.”
“그, 그건 안 됩니다……!”
어떻게든 따라 들어가 보려는 나를 소이가 붙잡아 세울 때였다.
“하하하하.”
요란한 웃음소리와 함께 사내들 한 무리가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인물은 나와 안면이 있는 인물이었다.
“어?”
얼마 전 세자와의 대화에도 등장했던, 흥화군의 아들인 은화군이었다.
‘엉겁결에 숨긴 했지만 왜 저 사람이 여기에?’
분명 지금 부인이 회임 중인 몸이었는데 설마?
나는 인류애를 잃은 떫은 눈으로 은화군 쪽을 주시했다.
주변에 있는 이들이 다들 굽실거리며 은화군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부인께서 회임을 하셨다니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분명 오늘은 은화군 어르신께서 한턱내신다고 하셨습니다?”
대충 대화 내용을 봐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상상은 갔다만…….
‘음.’
좋은 일이 있어서 한턱내는 거면 내가 운영 중인 식당에 가도 될 일인데 굳이 기방에 오다니. 속이 시커먼 놈들이었다.
물론 거기가 이제 좀 비싸고 예약하기도 어려운 곳이 되긴 했지만.
‘서민 대상의 식당이라도 하나 새로 내 볼까.’
다른 동네에 분점을 하나 더 내 볼까, 그렇게 전혀 상관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소이에게서 벗어났다.
“나 잠깐 좀 갔다 올게.”
“네?”
흥화군이 내 숙부뻘이니 은화군은 나와 같은 항렬이다.
그러니 적정한 호칭은…….
“오라비!”
“?”
여동생이 없는 은화군이 놀라거나 말거나, 나는 은화군에게 덥석 매달려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하하, 사람을 잘못……?! 엑??”
“오라비 왜 여기 있어어?”
“그, 어, 오, 우, 어어……야말로 왜 여기에?”
내가 누군지 알아보기는 했으나, 차마 밖에서 지칭할 말을 찾지 못한 은화군이 어물어물 호칭을 넘겼다.
사실 내 외견이 몇 년째 변하질 않으니 내가 못 알아본다면 모를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종친들이 나를 못 알아보기도 쉽지 않았다.
주변에 함께 있던 이들이 은화군의 이상한 반응에 의아한 듯 물었다.
“어찌 된 일이십니까?”
“친……척…… 누이동생이라네.”
은화군은 뭐 씹은 얼굴로 간신히 급조한 변명을 읊었다.
그리고 떨리는 눈으로 내게 물었다.
“대체…… 왜…… 이런 곳에……?”
지당한 의문이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싱글싱글 웃으며 은화군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오라비가 보여서 따라왔는데. 놀러 온 거야?”
“그, 그렇겠……지?”
“여기서 놀면 재밌어?”
“어? 그, 그럼, 아주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있거든!”
“그렇구나! 그럼 오라비 여기 놀러 온 거 숙부님도 아시겠네??”
“…….”
“…….”
갑자기 일행의 남자들이 일제히 숙연해졌다.
이런 것에 엄격한 집안이 아니더라도 부인이 임신했을 때 정도는 가리는 게 정상이었다.
하물며 아직 임신 초기. 안정해야 할 시기였다.
게다가 어린아이에게 저런 변명을 했으니, 그 뒷수습은 본인의 몫이지.
“재밌는 데면 나도 따라갈래.”
“하…… 하하하. 어린 아기씨가 가실 만한 곳이 아닙니다.”
“그, 그러시며어…… 아니, 들어갈 만한 곳이 아니잖……니.”
은화군은 습관적으로 나한테 존대를 붙이려다 주변을 확인하고 겨우겨우 말을 흐렸다.
“그럼 숙부님한테 말씀드려도 괜찮아?”
“…….”
“그, 뭐 어떻습니까. 저희가 뭐 나쁜 짓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요.”
“크흠. 그렇습니다. 그저 음률을 들으며 대화를 나누고자 함이 아니겠습니까.”
“나도 음률 들을래.”
“음…… 그게, 그…… 그리, 하지…… 뭐. 그래, 내가 뭐 부끄러운 짓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아니 그렇습니까?”
한동안 나와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방황하던 은화군은 겨우 마음을 정한 듯 그리 말하며 주변에 있는 이들을 훑었다.
만약 부끄러운 일이 될 만한 짓을 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뜻이었다.
“어흠, 어흠.”
“아직 날이 밝으니 늦지 않게 나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사람도 많지 않을 테니 술주정뱅이도 없을 겁니다.”
그렇게 합리화가 끝났다.
갑자기 짐짝 하나를 데리고 가게 되니 다들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는 와중에, 은화군이 의외로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럼 이……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에 모두 동의하신 거지요.”
“은화군 어르신께서 그리하자 하시는데 저희야 뭐.”
“크흠.”
아무래도 돈 내는 사람이 은화군이다 보니 다들 눈치를 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기방 안에 데리고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입구에서 돌려보낼 것 같습니다만.”
“흐음, 이리 작은 아이가 아닙니까. 우리 사이에 끼어 있으면 보이지도 않을 겁니다.”
“그럴까요. 거참, 이런 경험은 처음입니다.”
그렇게 수런수런하더니 마치 짠 것처럼 나를 가운데에 두고 주변에서는 보이지 않게 은근히 무리를 지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기방에 따라 들어가는 나를 보며 성 겸사복과 소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으나 어쩌랴.
나는 좀 기다리고 있으라는 손짓을 하고 은화군의 옷자락에 매달려 기방으로 들어갔다.
도포 자락에 가려져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다들 내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듯했다.
기방 안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내부가 제법 규모가 있어 보여 조금 감탄했다.
물론 궁 안에서 살던 내 입장에서 보면 크다고 할 수 없지만.
아무튼 예약이라도 해 놨는지 은화군의 일행은 한 번에 안쪽에 있는 별채에 안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