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04)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04화(104/326)
이미 어느 정도 술자리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곧 주연이 제대로 마련되고 장지문 밖에서 여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나를 발견한 매향이와 송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을 보고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 대고 한쪽 눈을 찡끗 감았다.
매향이와 송화를 비롯한 기녀들 중에는 내 얼굴을 아는 이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은 내가 있을 수 없는 곳에 와 있다는 사실에 잠시 스턴이 걸린 듯했으나 곧 능청을 떨었다.
“어머나, 이런 곳에 어여쁜 아기씨가 와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내 친척 동생일세. 무례를 범하지 말게.”
“쇤네들이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아기씨께 무례를 범하겠사옵니까?”
어린아이를 기방에 데려오는 이상한 놈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으므로 은화군과 그 일행들은 기녀들이 그저 나를 보고 당황했다고 여긴 듯했다.
곧 기녀들이 연주하는 음악이 흐르고 다들 조금씩 나를 신경 쓰면서도 주연을 즐기기 시작했다.
물론 은화군은 술을 입에도 대지 못했지만.
“허 참, 기방에 들어오는 양반댁 아기씨라니. 저는 처음 봅니다.”
“하하하하. 하지만 누이동생이 귀엽지 않은가. 은화군 어르신, 혹시 아기씨께 아직 혼처가 없으면 저희 친척 동생은 어떻겠습니까?”
적당히 나를 귀여워하는 제 벗들을 보며 은화군은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귀한 댁 금지옥엽으로 자랐으니 함부로 말 꺼내지 마시게.”
은화군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 있어서인지, 아님 은화군이 종친이란 사실에 생각이 미친 것인지 다들 조금씩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마 종친의 친척이니 나 역시 어느 왕족 가문의 여식이리라 추측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겠지.
사실, 틀린 말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굳어 있는 아저씨들을 두고 기녀들에게로 다가갔다.
나와 눈이 마주친 매향이 싱긋 웃었다.
진상에 익숙한 기녀들에게도 지금 이 상황은 좀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만, 그 가운데서 매향이만은 침착한 얼굴이었다.
“자네들은 무슨 노래를 부르는가?”
“무슨 노래를 불러 드리올까요, 아기씨?”
“무슨 노래를 제일 잘 부르는데?”
기녀들은 남자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나를 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매향은 처음에는 조금 걱정스러운 눈빛이었으나, 그사이 은화군이 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나를 보며 까르르 웃으며 내가 반쯤만 가르쳐 주고 본인이 완성한 그 노래를 불렀다.
“노래 실력이 훌륭하구나.”
“아기씨께서 이리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내가 박수를 치며 칭찬하자 기녀들도 까르르 웃으며 내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아저씨들은 묘하게 씁쓸한 얼굴을 했지만.
“자네들이 이리 어린 아기씨를 좋아하는 줄은 몰랐군.”
“어여쁘신 아기씨께서 이리도 소인들의 노래를 좋아해 주시지 않사옵니까. 호호.”
분위기가 그렇게 되자 기녀들은 노래를 마친 후 은근슬쩍 남자들은 못 본 척하고 내 옆으로 와서 나에게 음식을 먹여 주며 하하호호하기 시작했다.
“자, 소인이 드리는 산적을 드시옵소서.”
“소인이 드리는 꿀떡도 하나 자셔 보시어요.”
“어머나, 아기씨. 목이 마르지 않으시옵니까, 여기 식혜를 드셔 보시어요.”
“난 식혜보다 수정과가 좋은데.”
“어멋, 소인이 그것도 모르고. 얘, 얼른 가서 수정과 한 동이 가져오라고 해라.”
“예, 언니.”
즐기고 있긴 한데 이거 약간…… 주역이 바뀐 느낌?
‘뭐지 이건, 주지육림도 아니고.’
술 대신 식혜와 수정과를 마시고, 예쁜 기녀들 사이에서 먹여 주는 대로 음식을 받아먹고 있자니 약간…… 편안한 쓰레기가 된 느낌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아저씨들은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다.
내가 딱히 뭔가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지만, 가만두고 보자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 그런 감정을 표출해야 하나 말아야 하는 나름 복잡한 심경인 듯했다.
내 알 바는 아니었지만.
“아니, 어찌 기녀들과 저런…….”
“어허, 그만두게.”
“하지만,”
“되었대도.”
그리고 그런 나의 자유로운 태도에 누군가가 한마디 하려고 하면 은화군이 필사적으로 말렸다.
나는 그사이에 불건전한(?) 장난을 치고 있었다.
“흐응. 자네들 노래를 잘 부르는데 이름이 무언가?”
“소인, 매향이라 하옵니다.”
“소인, 송화라 하옵니다.”
피차 아는 사이였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두 사람은 처음 만난 사이처럼 새로 자기소개를 했다. 나도 수작질을 했고.
“음, 마음에 드는데 어때, 우리 집으로 오겠느냐?”
“어머나!”
내 말에 기녀들이 설렌다는 듯 가슴 위로 손을 포갰다.
“악! 무슨 소리를!!”
그리고 그런 기녀들과 대조적으로 질겁하는 은화군을 뒤로하고 나는 웃음을 참았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기녀들도 마찬가지로 웃음을 참았다.
하지만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물론 나름 재미도 있긴 한데, 이러려고 기방에 들어온 게 아니지 않은가.
“앗.”
“어머나.”
나는 식혜를 잡으려 손을 뻗다 실수인 척 일부러 술병을 쏟았다. 쏟아진 술이 내 옷자락을 적시자 눈치 빠른 매향이 황급히 나를 안아 들었다.
“이를 어찌하지요. 옷이 젖으셨습니다.”
“음. 이제 돌아가 볼 생각이었으니 괜찮아.”
내 말에 방 안에 있던 아저씨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소인들이 모시겠사옵니다.”
“응.”
“옷을 내어 드릴 터이니 갈아입고 가시지요. 젖은 옷을 입고 가시면 감모 드십니다.”
매향이와 송화가 그리 말하며 내 손을 하나씩 붙잡고 나서자 다시 낯빛이 어두워진 것 같았지만.
나는 두 사람의 손을 잡고 방을 빠져나가며 은화군에게 인사를 남겼다.
“잘 놀았으니 나 가 볼게. 오라버니.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들어가야지.”
“그, 그래. 귀가가 늦으면 아니 되지, 그런데 혼자서 괜찮겠……니?”
“밖에 기다리는 사람도 있구. 밖에까지는 이 사람들이랑 같이 가지 뭐. 데려다줄 거지?”
“그럼요. 아기씨.”
은화군도 내가 혼자 돌아다니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는지 흔쾌히 나를 보내 주며, 혹시라도 사람을 못 찾으면 다시 돌아오라는 당부까지 했다.
물론 나는 그대로 나갈 생각이 없었지만.
“아기씨, 그런데 어쩐 일로 이곳까지 오셨사옵니까?”
“이곳은 아기씨께서 오실 만한 곳이 아니옵니다.”
아까까지 즐거운 듯 웃고 있던 두 사람은 주연 자리에서 멀어지자 그때부터 나에게 잔소리를 쏟아 냈다. 물론 다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다.
나는 반 강제로 옷을 갈아입혀지면서 두 사람에게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를 고민했다.
“음. 그게…….”
나는 일단 짧게 날 납치했던 놈의 인상착의를 말하며 혹 기방에 자주 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소인들은 본 적이 없사온데…….”
“저나 송화를 부를 정도로 돈이 많은 사람이 흔치 않으니 다른 쪽에 있는 손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 말하면서도 두 사람은 기방에서 일하는 하녀들을 불러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덕분에 뜻밖에도 쉽게 행방을 찾았다.
“별채에 따로 모이는 사람 중에 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가 봐야겠는데.”
내 말에 매향이도 송화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그러십니까?”
“나한테 사기 친 놈?”
“아아.”
지금 왜 납득한 얼굴이야.
사기라고만 하면 좀 가벼워 보이는 것 같아 말을 조금 덧붙였다. 차마 날 납치한 장본인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하지만 위험한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어. 그런 일 하는 사람들 중에 위험한 쪽이랑 연결된 사람도 있는 법이잖아.”
“혹시 아기씨, 위험한 일을 하시려는 건 아니시지요?”
“차라리 소인들이 가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내가 직접 확인해야 그 사람이 맞는지 알 수 있지.”
그리고 만약 엿듣다 들킨다 해도 얼굴만 잘 감추면 차라리 외견상 어린아이인 내가 낫고.
내 말에 두 사람은 납득한 듯했지만 물러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인들이 함께 가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그러면 아기씨께는 시선이 덜 갈 테니까요. 아니 그렇습니까?”
“흠.”
‘아직은 대낮이고 기방 안에는 사람도 많으니 그리 위험하진 않을 거야.’
매향의 말에 동의한 나는 술을 핑계로 동기 아이의 옷을 빌려 입은 김에, 시중드는 아이인 척 별채로 따라가서 매향의 뒤에 숨어 드나드는 사람들을 확인했다.
부르지도 않은 매향이 왔다는 말에 별채 손님들은 당황하면서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듯했다.
그러던 와중 나는 뜻밖의 인물을 봤다.
‘어? 저 사람은 분명…….’
영빈의 친척 중 하나였다.
코 옆에 큰 점이 있는 특이한 얼굴이라 기억에는 있었지만 분명 영빈이 몰락하기 전부터 드나들던…… 사람이었다.
‘그리 친한 거 같지는 않았지만.’
영빈의 친척이었지만 한창 잘나갈 때에도 영빈이나 경언군을 자주 찾지는 않았던 거 같다.
그런데 정작 찾던 사람은 안 보이고 왜 저 아저씨가 보인담.
어쨌든 별채까지 왔으니 그냥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매향은 아무래도 일하는 아이가 말을 잘못 전한 것 같다고, 이리되었으니 기다리는 손님이 오시기 전까지 여기서 한 곡조 뽑고 가겠노라고 하자 거부하려던 놈들도 입을 다물었다.
나는 매향이와 약속한 대로 일단 슬쩍 뒤로 빠진 후 밖에 나가 건물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주변에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일하는 사람들이 멀리 뜨문뜨문 보였으므로 내가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은근히 주변을 살피다가 건물 뒤쪽에서 쑥덕거리는 사내들을 발견했다.
‘아, 저 남자 같은데?’
나는 심부름 가는 척을 하기 위해 들고 온 작은 쟁반을 끌어안고 그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이야기를 엿들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알지 않나. 자금이 필요해.”
이것만 들으면 그리 이상할 게 없는 대화였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날, 그 오두막에서 나를 해치려고 했던 사내와 날 납치한 사내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위작 판매만 걸리지 않았어도 좀 더 쉽게 큰돈을 벌 수 있었는데…….”
“세자가 포도청에 철저한 조사를 명해서 지금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아. 자네도 한동안은 얌전히 몸을 숨기고 다니게. 도성 안은 위험하니 앞으로는 여기 말고, 일단 서활인서(西活人署) 인근 주막에서 만나도록 하고.”
“젠장, 여인한테 관심도 없다는 쭉정이 세자 주제에……!”
우리 세자 쭉정이예요?
나는 세자의 평판이 이상한 방향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나무 뒤에 숨어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 애썼다. 나무 그림자 덕분에 내 모습도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세자의 평판을…….”
“그럼……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너무 위험하네. 하지만…….”
무슨 위험한 소릴 하는지 두 사람은 아까보다 소릴 낮춰 대화하고 있었다.
‘거리가 조금만 더 가까웠어도…….’
더 조심조심 몸을 웅크리고 귀를 기울일 때였다.
뚜둑-
“!”
뭘 잘못 건드렸는지 나뭇가지 같은 것이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누구냐?!”
사내들의 시선이 동시에 이쪽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