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06)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06화(106/326)
‘나쁜 놈 아니면 또 보자고.’
그 말을 남기고 그 조그만 여자아이는 일행으로 보이는 시꺼먼 아저씨 품에 안겨 사라졌다.
‘저 아저씨는 대체 정체가 뭐지.’
자신의 검을 그렇게 쉽게 받아 내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는데, 역시 한양에 오니 다르긴 달랐다.
다시 담을 넘어 기방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얘기가 끝났는지 숙부가 인상을 찌푸리고 천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놈은 대체 지금까지 뭘 하고 있던 게냐?”
“아, 숙부. 끝나셨습니까?”
“쯧. 쓸데없는 시간 낭비였지. 근데 네놈은 또 어디서 뭘 하다 온 거야. 한양에 와서도 여전히 어린 여자애들 꽁무니 쫓아다니고 있었냐?”
숙부의 말에 천호는 정색하며 부정했다.
“아니, 누가 들으면 오해할 만한 말씀 좀 그만두시고요. 곤란해하는 아이들 좀 도와준 게 뭐가 어때서요. 그리고 ‘여전히’라고는 하지만 그때는 어린 여자애고 남자애고 그냥 대부분 제 또래 애들이었잖습니까.”
“등치는 산만 한 게 조막만 한 애들한테 동갑이라고…… 쯧쯧.”
나이에 비해 체격이 큰 게 무슨 죄라고.
억울해하는 천호에게 숙부는 따라오라는 듯 손짓하며 그대로 몸을 돌렸다. 아무리 안에는 들이지 않았다지만 기방은 아직 어린 소년이 있을 만한 곳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린애들 괴롭히는 인간들 꼴 보기 싫기도 하고요.”
“흥. 인간 말종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지. 왜, 여기서 어린아이 괴롭히는 놈이라도 봤나 보지?”
“아니라곤 못 하겠습니다.”
천호는 아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숙부가 어찌할 생각이든 저쪽과 깊이 연관되는 건 피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물론 이 괴팍한 숙부는 입은 거칠지만 어릴 적 부모를 잃은 자신을 이렇게 키워 준 장본인이니, 유괴범들과 손을 잡겠다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만.
“유괴범이라고?”
“예에. 자세한 얘기까지는 듣지 못하였습니다만 당시에 사기꾼들이 도망치며 아이를 납치했다는 건 저도 들었으니 사기꾼 일당이기도 할 겁니다.”
기방에서 제법 멀어진 것을 확인한 후, 그들이 아이를 유괴한 범죄자들이라는 사실을 전해 주자 예상대로 숙부는 욕을 하며 침을 뱉었다.
그리고 불똥은 다른 데로도 튀었다.
“그런데 네놈은 또 겁도 없이 그런 데에 끼어들고 다녀?”
“아니, 어린아이가 납치되었다고 하는데 잡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만.”
“아이고, 이런 미친놈. 아니다. 이런 놈을 조카라고 키우고 있는 내가 미친놈이지.”
한숨을 내쉬던 숙부는 갑자기 뭔가 깨달은 듯 물었다.
“혹시 납치당한 여자아이가 양반가 여자아이였느냐?”
“예? 예에. 아마도요. 왜요?”
“네놈이 어릴 때부터 곱게 차려입은 네 또래 양반댁 아기씨들 보이면 괜히 빤히 쳐다보고 그랬었지 않으냐.”
“…….”
“좋아하는 여자애라도 있었나 했더니 아직도 그러니 원.”
숙부의 말에 마땅한 변명거리를 찾지 못한 천호는 반박하지 못하고 조용히 숙부의 뒤를 따랐다.
스스로도, 자신이 왜 그러는지 자각하고 있는 탓이었다.
아마도 오래전, 어린 너에게 무슨 죄가 있겠냐며 도망치라고 해 주었던 그 작은 여자아이 때문이겠지.
“그런데 성 겸사복은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
나는 성윤에게 들린 채 이동하며 가장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기방 뒤쪽은 나무가 많고 길이 좋지 않아 이렇게 이동하는 편이 빨랐다.
“그렇게 기방으로 들어가시니 불안해서 저도 몰래 따라 들어가 봤습니다.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아기씨를 혼자 보내겠습니까?”
“엄연히 따지면 혼자는 아니었지만.”
“아까 그분은 종친이셨지요?”
“응. 소이는 일단 알고는…… 있으려나.”
소이가 내 옆에서 종친 볼 일이 적지는 않지만, 생각해 보니 그 많은 종친을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겠는데.
“다행히 항아님께서 알고 계시기도 했고, 아기씨께서 오라비라고 부르시지 않았습니까. 종친이시라고 생각했지요.”
“음. 다행이네.”
뭐 논리적으로 추론하면 그렇겠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성 겸사복은 허탈해 보이는 얼굴로 투덜거렸다.
“나 참. 걱정되어서 몰래 숨어들어 갔더니 아기씨께서는 기방에서 아주 즐겁게 놀…… 시간을 보내고 계시길래, 주변을 좀 둘러보고 왔더니 그사이 어딜 가신 건지 아니 계시지 뭡니까.”
음. 나의 주지육림 행각을 봐 버렸군.
“미안, 좀 놀았어…… 바로 나오는 것도 이상하잖아.”
“괜찮습니다. 위험한 것보다는 그게 낫지요.”
좀 찔리는데.
나는 말은 아끼기로 했다.
“그런데 대체 뭐가 어찌 된 일입니까. 옷은 또 어찌 되신 거고요.”
“기녀들 중에 마침 아는 얼굴들이 있어서 도움을 좀 받았거든.”
“그래서 옷이 바뀌신 겁니까?”
“응.”
아, 그러고 보니 이 옷도 돌려줘야 되는데.
걱정하고 있을 매향이랑 송화한테도 나 무사히 돌아간다고 전해 줘야 되고.
“아기씨를 찾으려고 기방 여기저기를 살피고 있는데 마침 웬 도둑놈이 아기씨를 들고 가는 걸 보고 바로 쫓아왔지요. 그놈은 대체 뭡니까?”
“아까 말했잖아. 일단 도둑은 아니고…… 아, 그럼 원래 내가 있던 건물 쪽은 살펴봤어? 거기서 날 납치한 범인들을 봤거든.”
“!”
어느새 아까 헤어진 기방 앞 골목에 도착하자 소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 겸사복은 나에게 그자들의 인상착의를 듣고, 소이에게 나를 인수인계했다.
“제가 들어가서 그놈들 얼굴을 확인해 볼 터이니 아기씨께서는 돌아가 보십시오.”
“구조는 알겠어?”
“예.”
“혹시라도 수상한 사람으로 몰리거나 들키면 시영원 아기씨가 매향이에게 전할 말이 있어서 왔다가 길을 잃었다고 해. 매향이랑 송화 얼굴은 알지?”
“그럼요.”
“위험한 짓 하지 말고. 알았지?”
내 말에 성 겸사복이 씨익 웃었다.
“알겠습니다. 아기씨.”
그러고는 다시 왔던 길로 사라졌다.
‘그놈들 아직 있으려나 모르겠네.’
아직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흐르지는 않았으니 그새 얘기 다 끝내고 가지는 않았을 듯했다.
아무래도 은밀한 얘기는 밤에 하는 법이지 않은가.
아까 내가 들은 얘기도 그리 핵심 내용일 것 같지는 않았고.
그건 그거고, 우선은 눈앞에서 한숨 쉬고 있는 소이를 상대하는 것이 먼저였다.
“아기씨, 제발 갑자기 사라지지 말아 주세요.”
“음. 미안. 설명할 틈이 없었어. 그런데 소이, 뭘 들고 있는 거야?”
소이는 아까 보지 못한 작은 보따리 하나를 안고 있었다.
“아까 송화가 문 앞까지 나와서 저를 찾더니 하녀 아이를 통해 아기씨 옷이라며 저에게 전했습니다.”
“에구. 세심하네.”
그렇게까지 안 해 줘도 되는데.
나는 소이에게도 소곤소곤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고, 소이는 한숨을 쉬며 내 상태를 살폈다.
“앗?”
“왜 그래?”
나를 살피던 소이가 갑자기 큰 소리를 내기에 고개를 돌리니 울상인 얼굴이 보였다.
“왜?”
“아기씨, 여기 치마가 찢어지…… 세상에!”
“?”
“다치셨잖아요.”
“어?”
보니까 찢어진 치맛자락 사이로 빨간 상처 자국이 보였다.
‘아…… 아까 넘어질 땐가.’
당시 상황이 상황이었던 데다 이후 계속 긴장 상태였다 보니 아픈 것도 몰랐나 보다.
“어, 그러게. 좀 다쳤네.”
“아니, 아기씨. ‘어, 그러게.’라니요. 피가 나지 않사옵니까.”
“별로 큰 상처도 아니고.”
이 정도 상처야 뭐, 지금이야 좀 애지중지 귀하게 자라서 그렇지 전생에는 그렇게까지 경악할 일도 아니었다. 물론 일곱 살 기준으로.
게다가 상처가 비교적 작기도 하니 별로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이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웃전들께서 아시면 소인은 죽은 목숨입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살벌한 사람들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소이에게는 당연히 무섭긴 하겠지.
하지만 웃전들이 내 맨다리를 볼 일이 뭐가 있어.
‘아니다. 가이가 알아도 혼나겠구나.’
소이에게는 가이는 언니인 동시에 엄격한 상사였지.
“혜민서가 가까우니 그곳에서 간단하게 치료라도 하고 가시지요.”
“그러든가.”
“어휴. 아프지도 않으셔요?”
“음. 안 건드리면 그냥 뭐.”
내 호적 나이도 이제 열여섯 살인데 이 정도 다친 걸로 소란을 피우겠니.
다들 내가 어린아이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겠다만.
근심이 가득해 보이는 소이를 위로하며 우리는 일단 혜민서로 향했다.
성 겸사복이 조금 걱정이었으나, 기방이 아예 그놈들 소굴이라면 모를까. 나 같은 어린아이도 아닌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는 성윤을 저 안에서 몰래 처리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기방이 저놈들 소굴이라면 매향이 전혀 모를 수가 없으니 처음부터 나를 말렸을 테고.
***
“아기씨? 이런 늦은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늘 일찍 와 버릇했더니 혜민서에 들어서는 나를 본 의녀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여전히 바빠 보이는데 내가 긁힌 상처 정도로 신세를 져도 괜찮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이는 당당했다.
“아기씨께서 조금 다치셨습니다.”
“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조금 민망해하는 나와 달리 다들 정색을 하고 나를 안으로 데려갔다.
환자들이 지내는 곳이 아니라 의녀들이 지내는 공간이라, 쉬고 있던 몇몇 의녀들 외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어머, 아기씨. 다치시지 않았습니까.”
“좀 긁혔어.”
편히 앉아 수다를 떨고 있던 의녀들까지 다들 우르르 몰려와 호들갑스럽게 걱정을 하니 조금 민망했다.
“나뭇가지 같은 것에 걸리신 걸까요. 옷까지 찢어지시다니. 그런데 오늘은 복장이 다소 가벼우십니다.”
“아, 놀러 다니다 보니.”
그러고 보니 이 옷 빌린 건데 찢어져 버렸네. 새로 사 줘야 하나.
나를 적당히 자리에 안내한 후 의녀 한 명이 곧 깨끗한 물과 면포를 들고 가지고 왔다.
“조금 따끔하셔요.”
“응.”
제법 긁히긴 했는데 어린아이니까 흉터 없이 낫지 않을까?
흉터 좀 생겨도 나야 별로 상관없긴 한데.
‘궁녀들 말고 다른 사람한테 들킬 가능성은 별로 없고.’
나는 적당히 약까지 바른 후 장난처럼 입단속을 했다.
“어디 가서 내가 옷 찢어 먹었고 다치기까지 했다는 말 하면 안 된다아~”
“예, 아기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