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08)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08화(108/326)
의원들 중에 종종 있다. 내가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든 뭔가 증상을 알아내려고 자꾸 질문하는 사람들이.
왕의 건강에 대해 함부로 물어보았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커지지만 내가 보기엔 가족력을 따지는 듯했으므로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뭐 그냥 건강하다고 대답하기도 했고.
이미 한 번 비슷한 문답을 거친 바가 있는 성지는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어 안절부절못하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익숙하게 대답해 주었다.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직업 정신이 투철한 건 나쁘지 않았다.
내 대답을 들은 세화가 생각에 잠긴 사이 어느새 세책방이 보였다.
“다 왔다.”
“저어, 아기씨…….”
세화가 뭔가 말하려 했지만 제대로 듣지 못한 나는 세책방을 보곤 먼저 달려 나갔다.
안에 들어서니 슬슬 가게를 정리하고 있던 장씨 아저씨가 나를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아기씨, 오셨습니까?”
“응. 책 때문에 왔어”
“책이요?”
“이거.”
파본 교환하러 왔습니다.
안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표지를 보여 주자 장씨 아저씨는 일단 우리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나는 아까 발견한 부분을 보여 주며 말했다.
“아직 상태가 안 좋으면 좀 더 보완해야지. 벌써 팔면 어떡해.”
“앗, 이런…… 앞으로는 검수를 한 번씩 더 해야겠습니다. 다행히 아직 팔고 있는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관계자들에게만 먼저 보여 주려고 만든 시제품이거든요. 아, 물론 아기씨 몫도 빼 두었지요.”
“그럼 이건?”
“한정판은 작가의 수결을 받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아까, 원작자에게만 먼저 보여 주었습니다.”
“원작자??”
내가 뒤를 돌아보자 따라온 세화가 대화를 들었는지 민망한 듯 웃었다.
함께 듣고 있던 성지와 소이 역시 놀란 얼굴이었다.
“아, 먼저 말씀드리려 했는데 들켰네요.”
“의녀인데 소설도 쓰는 거야?”
앗, 투잡?
“사실 의녀 생활만으로는 어머니의 약값을 감당하기 어려워서요. 다행히 제가 의녀이다 보니 약재 구하는 것은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고 있기는 합니다만 역시 장기적으로 보면 돈이 많이 들 테니까요.”
병든 어머니가 있구나.
“그런데 어쩌다 소설을 쓰게 되었어?”
“어머니께서 병석에 계시며 적적해하시는 듯해서 이야기를 지어내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들어 하셔서 글로 남겼는데, 이것도 어쩌면 돈이 될지도 모르겠다 싶어 세책방으로 가져와 봤지요.”
그리고 세화가 가져온 소설을 보고 안목이 있는 장씨 아저씨가 독점 계약을 했다는 소리였다.
역시 이 아저씨가 보는 눈이 있어. 고용하길 잘했다니까.
“소설 내에 의술에 대한 묘사가 묘하게 현실적이다 했더니 이유가 있었구나.”
“아무래도 아는 분야이니 묘사가 세밀해지지요.”
뒤에서 소이가 눈을 반짝이고 있었지만 나는 모르는 척하며 세화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이어 갔다.
<화영>의 작가가 누구인지 이런 데서 알게 될 줄이야.
‘원작에서 여주가 소설을 썼다는 내용은 없었는데. 세화는 여주가 아닌 건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꽤 유력한 후보 같았는데.
뭐 일단 지금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아까 생각했던 얘기를 다시 한번 꺼냈다.
“마침 잘됐네. 그럼 아까 말한 연극 각색은 어때? 원작자가 허락해 준다면 각색은 다른 사람이 해도 되니 힘들지 않을 테고, 저작권료는 잘 쳐줄게.”
“그, 그래도 될까요?”
사실 금전적인 이유로 야간에 추가 근무를 하기도 했다고.
글을 쓰는 것은 낮에 하는 것이 나으니까.
“그러다 몸 상해.”
“몸 하나는 튼튼한걸요. 게다가 이번에는 한역본이었으니 그리 어려운 작업도 아니었고요.”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작가를 만난 김에 독자라면 누구나 던질 법한 질문을 하나 던졌다.
“그러고 보니 신작은 안 내?”
“네? 예, 아직은요.”
작가님 신작 내주세요. 근데 투잡이면 정말 바빠서 못 쓰지 않을까 싶긴 하네.
“혹시 원하시는 내용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
싱글싱글 웃고 있는 세화에게 거기까지 대답하던 나는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잠시 말을 멈췄다.
“세자를 남자주인공으로 연애 소설 하나 써 볼 생각 없어?”
“네?”
얼떨떨한 얼굴의 세화가 되물었다.
“세자…… 저하를…… 주인공으로요?”
“응.”
세자를 주인공으로 한다는 게 꼭 현실에 있는 실물 세자가 주인공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의외로 픽션과 현실을 겹쳐서 보는 법이거든.
‘드라마가 흥하면 그 드라마의 캐릭터와 배우가 별개의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배우에게서 그 드라마 캐릭터를 겹쳐 보고 환호하게 되지.’
물론 세자는 배우가 아니지만.
왕자와 공주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왕정제 국가의 왕자와 공주에게 괜한 환상을 보듯이 멀리 있는 사람에게 환상을 뒤집어씌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사람들이 세자가 문제가 있는 몸이라는 인식 대신 다른 인식을 덮어씌우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음. 예를 들어서, 어릴 적 만나 첫눈에 반한 소녀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세자라든가.”
“어릴 적…… 만난 소녀요?”
“응. 왜, 예를 들어서, 첫사랑인 소녀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집안이 몰락해서 둘이 헤어지게 되는 거지.”
“…….”
생각나는 대로 말했는데 이거 생각해 보니 원작 재현 의뢰 아냐?
“그리고 복수하기 위해 돌아온 소녀와 세자가 우연히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진다든가…… 음. 이런 건 좀 식상한가?”
“아, 아닙니다.”
세화가 고개를 저었지만 별로 반응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권력자다 보니 진솔한 의견 듣기가 힘드네.
“아니, 나도 강요하는 건 아니거든?”
“아뇨, 아뇨. 그냥 소녀의 집안에 누명을 씌운 범인은 누구일까, 아니 누구로 해야 할까, 하고요.”
“글쎄. 알고 보니 실은 자기 딸을 세자빈으로 밀어 넣기 위해 어떤 대신이 꾸민 음모였다든가 하는 건 어때? 맞아, 그래서 세자가 혼인을 거부하는 거지!”
우리 집 세자와는 상황이 저언혀, 안 맞지만.
당시 세자가 혼인 못 했던 이유 같은 건 이제 거의 다들 좀 희미해졌을 테니 소설에서 어떤 이유를 대든 상관없었다. 심신에 하자 있는 거만 아니면 돼.
내 이런 속을 모르는 이들이 신기한 듯, 혹은 애매한 얼굴로 나를 칭찬했다.
내가 옹주인 것을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의 차이였다.
“아기씨께서 이런 재능이 있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재능이 있는 건 아니고. 조금 생각나는 소재를 던져 본 거지.”
장씨 아저씨의 말에 나는 적당히 말을 흐렸지만 사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오늘 들은 그 유괴범들의 대화가 조금 신경 쓰여서였다.
‘세자가 혼인도 안 하고 후궁도 안 들이는 걸로 정말 뭔가 하자 있는 걸로 여겨지면 곤란한데.’
근데 진짜 내가 모르는, 차마 말 못 할 문제라도 있는 거면 어쩌지?
‘아냐, 여주의 공식 설정이 명의(名醫)인데…… 뭔가 문제가 있어도 고쳐 주겠지!’
잘못하면 장르가 좀 바뀔 거 같긴 하지만! 로맨스에서 로맨틱 코미디 정도로 바뀌는 건 괜찮을 거 같아!
빨리 와라, 여주!
내가 그렇게 나름 진지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다들 내가 꺼낸 스토리에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특히 소이는 잘 아는 분야다 보니 약간 의기양양해졌다.
“써 보면 어때요? 고증이라면 도와드릴 수 있는데.”
“예? 하지만 부, 불경죄가 되지 않을는지요.”
다른 사람들은 신작을 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었지만, 역시 써야 하는 당사자는 난감한 모양이었다.
“불경죄라니 세자 저하한테 뭘 시킬 생각인데…….”
“뭘…… 시켜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음. 그냥 적당히 잘생기고, 유능하고, 나쁜 놈만 아닌 걸로 하면 되지 않을까아. 그 정도면 그럭저럭 사실 적시니까. 아니, 나쁜 말만 안 쓰면 되지.”
“그렇, 습니까?”
“소설인데 뭐 어때. 소재가 괜찮으면 생각은 해 봐. 꼭 내가 말한 내용이 아니어도 상관없으니까.”
“하하. 예.”
우리는 일단 한정판 출간본에 대한 논의를 하고, 극본 각색에 대해 적당한 상의를 거친 후 세책방을 나섰다. 사람이 많으니 좀 정신없지만 여러 의견이 나오는 건 나쁘지 않았다.
“세자의 첫사랑…….”
“?”
혼자 중얼거리던 세화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한 듯 변명을 했다.
“아뇨, 아까 아기씨께서 말씀하신 소재를 생각하다 보니 세자 저하께 그런 첫사랑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글쎄, 평범하게 가능하지 않겠어? 염정소설(艶情小說)에 나오는 것처럼 호감을 가진 사람과 강제로 헤어지게 되면 오히려 더 애틋해지는 법이고.”
“아기씨는 너무 냉정하세요.”
정작 세화는 가만있는데 소이가 투덜거린다.
좀 더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으나 세화가 혜민서로 돌아가야 했다. 나도 어서 궁으로 들어가 봐야 했고.
나는 세화가 눈앞에서 직접 사인을 해 준, 작가의 첫 번째 사인본을 안고 서둘러 궁으로 돌아왔다.
장씨 아저씨가 빼놓은 내 몫의 책들도 다시 검수했는데, 나한테 줄 거라고 따로 확인해서 그런가 상태가 괜찮기에 일단 나는 한 권만 가져가고 세화에게도 상태 좋은 것을 가져가도록 했다.
이런 곳에 필명으로 수결을 쓰는 것이 영 익숙하지 않다고 민망해하면서도 지천 선생이라는 자신의 필명을 적어 주었다.
소이도 한 권 받았고. 나 쫓아다니면서 심신이 고단한데 이런 콩고물이라도 좀 있어야지.
얼굴을 보면 본인도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후, 피곤한 하루였다.’
어떤 날은 할 일 없이 방바닥을 구르고, 어떤 날은 기방에 몰래 잠입해 유괴범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아주 스펙터클한 인생이야.
‘성 겸사복은 괜찮으려나.’
위험한 일에 발을 담근 만큼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모처럼 받은 초회 한정판, 그것도 작가에게 직접 받은 사인본 덕분에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는 듯했다.
그래서 책 한 권만은 소이에게 맡기지 않은 채 소중히 끌어안고 있었다. 오늘은 삽화가 들어간 부분이랑 좋아하는 부분만 어떻게 번역됐나 확인하고 내일 밝을 때 정독해야지.
세화 의녀가 작가라니. 생각도 못 했네.
‘음. 그러고 보니 아까 세책방에 들어가기 전에 나한테 뭔가 얘기하려는 거 같았는데 작가라고 밝히려는 거였을까.’
세책방에 굳이 같이 온 걸 보면 처음부터 말하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본인 소설의 팬이라는 걸 알고 일부러 밝혔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이유는 글쎄, 나와 가까워지면 좋을 것이 당연하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고.
‘그런 타입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어머니가 편찮으시고 돈이 필요하다면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소설이 히트 쳐서 돈을 꽤 벌었을 텐데 어머니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건가.
혜민서 방향상 먼저 헤어진 세화와 달리 우리와 중간까지 잠시 동행했던 성지 말로는 혜민서의 의관들 못지않게 지식이 해박하고 의술 역시 뛰어나다고 했다.
그런데 고치지 못한다는 건……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치료를 멈출 수는 없으니 돈이 끝없이 나가는 법이었고.
‘집에 환자가 있으면 가세가 기우는 건 어쩔 수 없지. 예나 지금이나, 혹은 미래에서나.’
전생에 부모님 병원비 걱정했던 것을 새삼 떠올리며 나와 소이는 서둘러 궁으로 들어왔다.
“세책방에 들른 탓에 너무 늦어 버린 것 같사옵니다.”
“그래도 뜻밖에 책을 받아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 나중에…….”
소이와 수다를 떨며 내 처소로 들어오는데, 뜻밖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찌 이제 들어오는 것이냐.”
“세자 저하? 어찌하여 이런 시각에 제 처소에 계시옵니까?”
“너를 찾아왔더니 네 처소 궁인들이 네가 어디 있는지 대답을 하지 못하더구나.”
아무리 남매간이라지만 연락도 없이 왔니. 매너 없게.
“어마마마께서 너를 급하게 찾으시는데 네가 처소에 없어, 네 처소 나인들이 도와달라고 동궁전으로 찾아왔더구나. 어마마마께는 내가 부탁한 일이 있다고 둘러대고 넘어갔지만 나까지 그냥 넘어가 줄 수는 없지 않겠느냐.”
“음. 미안. 고마워.”
나와 세자의 사이가 돈독하다 보니 소속 궁인들도 급하다 싶으면 서로의 처소로 가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덕분에 왕과 중전에게 걸리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는 했는데 정작 세자가 화가 난 얼굴이었다.
“네가 요즘 너무 나돌아다니는구나. 이 시간까지 대체 어디서 무얼 하다 이제 돌아오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