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12)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12화(112/326)
더 이상 노비의 인구를 늘리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권력자들은 노비의 수를 늘리고 싶어 하는 법이었으므로 사대부들도 썩 달가워하지는 않았지만, 사노비를 모아 반역을 도모한 자들이 있었으니 왕이 노비 소유에 대해 여러 가지 규제를 정하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런가, 이상하게 나한테, 정확히는 시영원에 노비를 바치겠다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고민 끝에 그냥 받기로 했다. 다른 데로 가느니 내가 맡는 게 낫겠다 싶어서.
‘나 참. 다들 그렇게 많이 만들어서 어디다 쓰려고…….’
“거래 장소도 알아냈어?”
“물론입니다. 숫자까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사람들이 갇혀 있는 것까지 저희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뭐야, 왜 이렇게 유능해.
역시 성 겸사복을 내 개인 호위로 쓰는 건 너무 인력을 낭비하는 일이 아닐까? 이대로 국가를 위해 일하도록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내가 잠시 효율주의에 빠져 있는 사이,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지 못한 성 겸사복이 물었다.
“포도청에 신고할까요?”
“음…….”
하지만 이거 내가 조사했다는 게 전해지면 그건 그것대로 월권행위 같아서 골치 아파질 것 같은데.
“포도청 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가게 할 수 없을까.”
분명 공을 세우고 싶어 의욕이 넘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그 사람에게 정보를 몰래 넘기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공을 세운다면 좋을 일이고.
“세자 저하께는 고하지 않으실 겁니까?”
“으음. 요즘 바쁜 거 같아서 내가 위험한 일에 엮였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은데.”
“그건, 그렇습니다만.”
아무래도 내가 그날 늦게 들어온 것과 연관시킬 거 같고.
‘사실 내가 전혀 위험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니까.’
얘기를 하게 되면 아마 이것저것 미주알고주알 알게 될 거고, 나도 실수로 뭔가 잘못 말할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포도청으로 배속된 전직 겸사복들에게 몰래 전해 보겠습니다. 나름 의욕 있는 친구들을 몇 알고 있습니다.”
“와, 성 겸사복 너무 유능해.”
“제가 좀 유능합니다.”
역시 나라에 필요한 인재 같은데…….
‘본인이 쉬고 싶다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뭔가 즐거워 보인다?’
내 개인적인 감상은 덮어 두고, 일단 일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사실 내가 뭔가 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그렇게 성 겸사복과 일부 전직 체탐인들은 포도청 쪽으로 조용히 정보를 전달했다.
어찌 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들이 거래하기로 한 그날, 포도청에서 약속 장소를 덮치는 것까지 직접 따라가 보았다고.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게 사실이야?”
“송구합니다.”
그곳에 사람들이 갇혀 있던 흔적들은 발견했기에 허위 신고라는 오해를 사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허탕을 친 셈이었다.
흔적을 지우지 못했다는 것도 그렇고, 포도청에 신고하고 현장을 덮칠 때까지의 여유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포도청 내부에 협조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성 겸사복도 당황해 그들이 접선했던 곳을 다시 찾아가 수색해 본다고 했지만 쉽지 않을 듯했다.
‘이를 어쩐다.’
그들이 거래하는 물품이 사람인 이상 결코 쉽게 거래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으기도 힘들고, 데리고 다니기도 힘드니까. 게다가 아무리 노비라지만 어지간하면 굶겨 죽이는 아까운 짓은 하지 않을 테고.
‘하지만…… 만약 그들이 죽여서 증거를 없앤 거면 어떡하지.’
내가 초조해하고 있을 때, 뜻밖에 사가에서 영선이 나를 찾아왔다.
사가에서 나를 찾아올 정도의 일은 좀처럼 없었지만 일단 영선이 찾아오면 내 지밀나인을 통해 전하도록 되어 있었다.
영선의 서신을 받아 온 소이가 궁금한 듯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옵니까?”
“그런 건 아닌데, 아무래도 한 번 나가 봐야겠는데.”
“예? 하지만 세자 저하께서 그리 화를 내신 지 얼마나 되었다고요.”
“매향이가 오늘 내게 꼭 전해야 할 말이 있다고 사가로 사람을 보냈다는 걸 보면 아마도 그날 일과 관계가 있는 것 같거든.”
“!”
매향이 괜히 위험한 일을 한 건 아니어야 할 텐데.
“위험하지 않겠사옵니까.”
“그냥 매향이를 만나서 얘기를 들을 뿐이야. 아무래도 다른 사람은 믿어도 될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
“하오나…….”
소이가 나를 어떻게 말려야 좋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밖에서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옹주 자가, 동궁전에서 문 상궁이 왔사옵니다.”
“?”
나 아직 세자랑 냉전 중인데?
세자에게 간식 같은 건 갖다 주고 있지만 대화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날 찾아온 문 상궁은 세자가 조금 뒤에 잠시 짬을 내서 나를 찾아올 거라고 전했다.
“갑자기 왜?”
“소인은 그저 웃전의 명을 따를 뿐이옵니다.”
그리 말하면서 문 상궁은 곤란한 듯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뭐야. 나 나가야 하는데.
잠시 후, 예고한 대로 세자가 내 처소로 찾아왔다.
소이에게 몰래 나갈 채비를 미리 해 두라고 했으니 오래 있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긴 세자야말로 원래 바쁜 사람이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려나.
“어쩐 일로 소녀를 찾으셨사옵니까, 세자 저하?”
“아직도 화가 나 있느냐.”
“소녀가 어찌 하늘 같으신 세자 저하께 화를 낼 수 있단 말씀이십니까. 오해십니다.”
“그만두거라…….”
내가 꼬박꼬박 존대를 붙이자 세자가 서운한 얼굴을 했다.
그런 불쌍한 얼굴을 해도 안 된다.
한동안은 세자가 찾아오면 좀 귀찮으니 거리를 두는 게 나았다.
오늘도 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찾아와서 발이 묶이지 않았는가 말이다.
‘아니지, 노예 매매면 심각한 일이니 이제 세자에게도 알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이미 포도청에서 나선 일이니 세자에게도 전해졌을 일이고 내가 얽혀 있다는 걸 알려서 골치 아프게 만들 필요는 없겠지.’
내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송 내관이 눈치껏 다른 사람들을 물리자 세자가 쭈뼛쭈뼛 다가와 어색하게 사과를 했다.
“그러니까, 그날은 내가 과했다.”
“아닙니다. 세자 저하께서는 얼마든지 그러실 수 있지요.”
“그만하래도. 크흠. 이, 이거 받거라.”
세자는 그렇게 말하며 비단 보자기로 포장된 무언가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사이즈로 봐서는 아마도 책?
“?”
“어렵게 구했느니라.”
뭘? 뭔데?
내가 내용물이 뭔지 확인하기도 전에 세자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나가 버렸다.
“이제 화 푸는 거다! 알았지?”
“??”
붙잡을 틈도 없이 후다닥 사라져 버린 세자 덕분에 잠시 혼란에 빠졌던 나는 세자가 두고 간 보자기를 펼쳤다.
이거 설마?
“아니, 이걸…… 어디서 구했지?”
예상했던 대로, 세자가 찢어 버린 꽃 그림자의 한역본이었다.
심지어 표지를 넘기자 세화의 필체로 된 수결까지 있었다.
이거 분명 품절됐을 텐데?
뜻밖의 상황에 내가 멍하니 눈만 깜빡거리고 있는 사이, 동궁전 나인들이 소반을 들고 우르르 들어와 바닥에 내려놓고는 또 후다닥 사라졌다.
내용물들은 주로 내가 좋아하는 간식거리였다.
“끄응.”
안 그래도 바쁜 놈이 이건 또 언제 구해 왔대. 저건 또 뭐고.
‘아니지, 본인이 구해 온 게 아니라 아랫사람을 시켰겠지? 명색이 세자 저하인데.’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송 내관이 혼자 다시 내 처소로 찾아왔다.
“송 내관? 무슨 일인가?”
“세자 저하께서 옹주 자가의 심기를 확인하고 오라셨습니다.”
“왜 갑자기 내 눈치를 그리 보신대.”
내가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자, 송 내관은 주위를 살피더니 가까이 다가와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세자 저하께서 그 책을 구하겠다고 저자에 미행까지 나갔다 오셨사옵니다.”
“엑?”
“사실이옵니다.”
“아니, 뭘 그렇게까지.”
“옹주 자가께서 아끼는 물건을 상하게 하였다고 많이 미안해하셨사옵니다.”
끄응.
“언제나 우애가 좋은 오누이가 아니셨사옵니까. 옹주 자가께서 이리 오래 화를 내시는 것은 처음이라 세자 저하께서도 마음이 편치 않으신 듯하옵니다. 침수도 편히 들지 못하시고 밤늦게까지 방에 불이 밝혀져 있던 날도 있으십니다.”
그건 조금 이유가 있었어…….
근데 여동생이랑 좀 싸웠다고 무슨 잠을 못 자고 그래. 큰일이다, 진짜.
아니지, 이 정도면 송 내관이 말을 지어내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런 내 의심을 알 리 없는 송 내관이 청산유수로 나를 달래고 있었다.
“세자 저하께 옹주 자가 외에 달리 속을 터놓을 이가 누가 계시옵니까. 옹주 자가께서 조금만 헤아려 주시옵소서.”
“그러게 빨리 세자빈을 맞으면 되잖아.”
내 말이 뜻밖이었는지 혀에 기름칠을 한 듯 말을 늘어놓던 송 내관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오, 옹주 자가.”
“송 내관. 솔직히 말해 보게.”
“무엇을 말씀이시옵니까.”
“정말로 세자 저하께서 마음에 둔 이가 없는 겐가?”
“소인도 있었으면 좋겠사옵니다…….”
송 내관의 목소리에서는 진실된 한탄이 느껴졌지만 나는 한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아니면 세자 저하께서 혹시…….”
“혹시……?”
“여자를 싫어하시나? 설마, 남자를 좋아한다거나.”
“아니, 그, 그런 기색도 없으셨사옵니다.”
“흠, 그래?”
난 또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장르가 바뀐 거 아닌가 했지.
실은 나 말고 또 환생한 사람이 있어서 실은 그쪽이 여주 혹은 남주(?)라든가,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내 질문이 너무 충격적이었는지 송 내관의 눈동자가 아직도 허공을 방황하고 있었다.
미안, 워낙에 혼란한 세상이라 그만…….
요새는 장르가 혼재되고 그러더라고.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는데 괜한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든 모양이었다.
거의 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니 송 내관이 전혀 낌새를 못 느꼈다면 그게 맞을 거다.
그래, 그것만 피해도 어디야.
“알았네. 그만 가 보게나.”
“송구하오나. 옹주 자가께서 조금은 화가 풀리신 것인지…….”
“며칠간은 더 화를 낼 것이니 그리 알게.”
“아니, 옹주 자가.”
“그리 알라고 하지 않는가.”
내가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자, 그제야 송 내관은 안심한 듯 활짝 웃으며 사라졌다.
어휴, 하여간 고생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