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18)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18화(118/326)
내 뒤는 물론이고 여기저기서 소리 없는 경악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까 납치범들이 조용히, 얌전히 있으라고 협박한 참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가족들은 너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걸.
“놔! 사람 살려!”
다른 여인들이 놀라서 내 입을 막으려 했지만 나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다들 본심은 아니었는지 내 반항에 순순히 떨어져 나갔다.
“저기 보이는 여자아이는……?”
“하하, 아, 저 노비 아이가 열이 나더니 정신이 좀 이상해져서 헛소리까지 하기 시작해서 따로 격리 중입니다. 하하하.”
차마 보는 앞에서 날 때릴 수는 없었는지 사내는 그렇게 둘러대며 부장에게 묵직한 돈주머니를 건넸다.
‘너도…… 나중에 죽일 거야.’
내가 조용히 속으로 살생부를 작성하고 있는데, 부장을 따라온 군관 중 하나가 찜찜한 얼굴로 이쪽을 살피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창살 가까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친 군관은 여기 있어선 안 될 것을 보았다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어?”
그리고 사실 나도 아까부터 이 군관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전에 궁에서 일하던 사람 같은데.’
정확한 직위까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몇 년 전엔가 분명 궐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음, 누구더라. 이름은 가물가물한데 내가 뭔가…… 도와줬던 거 같기도 하고.’
하도 이 사람 저 사람 내키는 대로 퍼 주고 도와주고 한 일이 많다 보니 기억이 잘 안 났다.
갑자기 가족이 아프다고 해서 사람 시켜 집에 의원 보내 준 사람만도 한가득이니 원.
사실 내가 딱히 무골호인(無骨好人)이라 잘 도와줬다기보다는 살다 보면 소소하게라도 내가 도움받을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이었을지는 글쎄.
내가 떠올린 것과 동시에 저쪽도, 내가 누군지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그럴 리가……?”
“자네는 왜 그러는가?”
부장이 이상하다는 듯 보거나 말거나 군관은 홀린 듯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한쪽 무릎을 꿇어, 앉아 있는 나와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옹주…… 자가?”
“뭐……?”
군관의 입에서 나온 말에 그럭저럭 자기들끼리 온건하던 분위기가 싸늘하게 굳었다.
여전한 침묵 속에서 군관과 내 목소리만이 선명하게 울렸다.
“응. 오랜만이네,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고?”
“오, 옹주 자가 덕분에 건강하게 자라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음. 아이가 아팠던 집이 맞나 보다. 사람을 시켜 의원을 불러다 줬었지.
군관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찌…… 이런 곳에 계시옵니까.”
“납치됐어.”
지금 내 앞에 있는 군관이 궁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건지, 내 간결한 대답에 부장은 방금 받은 돈뭉치를 집어 던지며 외쳤다.
“왕족 납치범이다! 추포하라!”
“예!!”
오, 태세 전환이 빠르네…….
“옹주 자가, 물러나 계십시오!”
군관의 말이 아니라도 여기저기서 다들 칼을 뽑기 시작했는데 괜히 가까이 서 있을 만큼 강심장은 아니었다.
그동안 훈련하는 것은 자주 봤지만 누군가가 이렇게 목숨 걸고 싸우는 모습을 볼 일은 없었으니까.
다행히 아까 납치범들이 덮어 놓은 천 때문에 밖에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무서웠다.
챙! 챙!
끄아악!
퍽! 퍼억!
아악!
밖에서 들려오는 흉흉한 소리에 다들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다른 쪽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나와 같이 갇혀 있던 이들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 옹주 자가셨습니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중요한 일은 맞는 거 같지.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걸 따지는 건 역시 좀 무의미한 일이었다.
쾅! 와드득!
“!”
뭔가가 우리가 갇혀 있는 옥에 부딪혔는지, 와드득 하고 나무가 쪼개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자 다들 불안한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방금 전 충격으로, 우릴 심리적으로 지켜 주고 있던 천이 떨어지며 살벌한 전투 현장이 눈앞에 펼쳐져 버렸다.
“히이익!”
일단 우리는 괜한 싸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안쪽으로 최대한 붙었다.
‘그런데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소이나 천호의 연락을 받고 왔다기엔 좀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다른 팀이었나.’
성 겸사복이 계속 추적 중이었으니 어쩌면 그쪽에서 뭐가 왔을지도.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네.
중요한 건 지금 누가 이길 것인가였다.
의외로 범죄자 집단이 잘 싸우고 있긴 한데 설마 공권력이 여기서 지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했다.
“으아악!”
어쨌든 눈앞에 유혈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보니 떨리긴 했다.
‘내가 피를 토한 적은 있어도 사람이 눈앞에서 쓰러지는 건 처음이라 무서워!’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오늘 노비장이 열릴 예정이라고 했으니 노비를 사러 오는 놈들도 있을 거야! 그 사람들도 잡아야…… 꺄악?”
끼익-
안타깝게도, 난전 속에서 내 말을 들은 건 우리 편이 아니라 인신매매범 쪽이었다.
특히 납치범은 싸우다 다쳤는지 울분에 찬 얼굴로 나를 보며 외쳤다.
“젠장! 젠장! 왜 옹주가 이런 곳에 있어!”
“…….”
길 가던 나를 네가 납치해 왔다고 딴지를 걸고 싶었지만 지금 자극해선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나는 꽤 유명인사였다.
“왕족이라니…… 젠장! 저 미친 옹주 때문에 우리가 그동안 갖다 팔 노비를 못 구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게 억울한 거야?”
“어차피 죽을 거면 혼자는 못 죽어!”
영문을 알 수 없는 논리였으나, 눈이 뒤집힌 사람을 상대로 논리를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사실 뭐 눈이 안 뒤집혀도 그냥 미친놈인 거 같고.
아무래도 신생아 시절부터 미친놈을 봐 온 처지라 그런가, 저놈이 말이 통하지 않는 미친놈이라는 걸 알고 나니 설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나무로 된 창살을 미친 듯이 흔들던 놈은 곧 자신에게 열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감옥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꺄아악!!”
“아, 안 돼……!”
나를 감싸려던 사람들도 번뜩이는 칼날 앞에서는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저놈의 목표는 나 하나뿐인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고 뒷걸음질 쳤지만 그리 넓지도 않은 옥 안에서 도망갈 곳은 없었다.
“이리 와!”
“!!”
퍼억-!
그리고 사내가 내게 손을 뻗는 순간, 뜻밖에도 뭔가가 납치범의 머리를 후려쳤다.
사내는 억 소리도 못 내고 창살에 부딪힌 후 그대로 쓰러져 바닥을 뒹굴었으나, 그 덕분에 나무로 만든 감옥은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납치범을 후려친 범인은 어디선가 나타난 천호였다.
그리고 내게 손을 내미는 천호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쓰러진 줄 알았던 납치범이 이번에는 천호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위험해!”
“!”
나를 감싸며 그대로 몸을 피한 천호가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던 납치범의 오금을 차 넘어트리곤 팔을 잡아 꺾었다.
“아악!”
“밧줄 같은 것 없습니까?”
사람들이 나서서 옷자락이라도 풀어 주려 했으나, 납치범 일당 중 하나가 이쪽으로 달려드는 것을 보고는 팔을 꺾은 사내를 그대로 집어 던졌다.
“위험하니까 이쪽으로 오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천호는 입구를 막아선 채 이쪽으로 들어오려는 놈들을 막았다.
나무 감옥이 조금 흔들거리고 있기는 했지만, 창살 덕분에 입구가 하나뿐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천호는 얼핏 봐도 힘이 장사인데다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성 겸사복이랑 싸울 때부터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얜 대체 뭐 하는 앨까.
‘그리고 왜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날 도와주지?’
난전 속에서 이 안으로 들어오려는 놈들은 대부분 나를 인질로 잡을 생각인 놈들이었으니, 천호가 저리 고생하는 것은 사실 나 때문이었다.
나 때문에 천호가 다칠까 봐 괜히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모두 멈춰라!!”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병사가 도착했고 압도적 인원수를 본 인신매매단들은 도주도 포기하고 항복했다.
물론 이미 도망친 놈들도 있었지만 군졸들이 나뉘어 쫓았다.
“후우.”
“괜찮아?”
겨우 상황이 진정되고, 인신매매단 인물들이 포박되는 것을 확인한 천호가 그제야 안심했는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좀 놀라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아기씨…… 옹주 자가는 괜찮으십니까?”
“덕분에. 다치진 않았어?”
“괜찮습니다. 다치지 않았어요.”
으으. 옷 색깔이 안 괜찮아 보이는데 괜찮다고 하니 이걸 확인해 볼 수도 없고.
곧 몸을 일으킨 천호가 이제 나와도 될 것 같다며 나를 비롯한 여인들을 인도했다.
밖으로 나온 나는 부상당한 사람들 사이에서 아는 얼굴을 찾았다. 다행히 처음 나를 알아본 군관도 무사해 보였다.
그런데 새로 온 군사들 옆에는 아는 얼굴도 있었다.
“오라버니?”
“시아야!”
네가 왜 여기서 나와…….
내가 당황하거나 말거나 세자는 나를 붙잡고 어디 다치지 않았는지 빙글빙글 돌리며 확인했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지 않았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옆에서 천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풉.”
“…….”
고생한 애라 봐준다.
“어디 상하지는 않았느냐, 세상에 이 어린 것을…….”
글쎄, 차라리 어려서 다행일지도 몰라, 오라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만.
“오라버니. 이런 데까지 와도 괜찮아?”
“네가 납치를 당했다는데 내가 어찌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을 수 있겠느냐.”
나는 걱정돼서 한 소리였지만 세자는 도리어 화를 냈다.
내가 화를 내야 할 거 같은데…….
하나뿐인! 세자가! 이런! 위험한! 곳에! 오지! 말라고!
하지만 내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했겠지 싶어서 얌전히 토닥토닥을 당해 줬다.
그렇게 세자가 나를 끌어안고 감동의 해후를 하는 중간중간 충실히 지시를 내리고, 익위사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인신매매단은 대부분 포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매하러 오던 놈들은 도망쳤겠는데.’
이 난리를 쳤으니 어지간히 멍청한 놈이 아니고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도망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