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23)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23화(123/326)
“아, 저는 난생처음 바다도 가 봤어요. 재밌었어요.”
“저도 바닷가 처음 가 봤어요. 신기하더라고요.”
“저도요. 한양에서는 들어 보지도 못한 이상하게 생긴 생선도 팔더라고요.”
멀리 갔다 돌아온 아이들이 모여 있으니 시끌벅적했다.
“그리고 아기씨께 드릴 선물도 가져왔어요!”
“선물?”
“네, 놀라실 겁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 가져올게요.”
얘들이 나한테?
‘지역 특산물 같은 건가?’
하지만 어지간한 특산물은 왕실에 진상되는 것이 있어서 내가 놀랄 만한 건 없을 텐데.
놀라는 척을 해 줘야 하나.
하지만 여기 있는 애들이 그걸 모를 거 같지는 않은데.
지방에 보낸 애들을 처음 선정할 때 나와 민 상궁과 체탐인들이 가장 고심한 기준이 밖에 나가도 뒤통수 안 맞고 돌아올 애들이었으니까.
머리도 좋고, 눈치도 빠르고, 호신술도 익히고, 처세술도 있는 애들로 뽑았다.
너무 시영원 안에서만 사는 것 같아 세상 경험도 좀 하고 오라는 뜻이기도 했다.
‘다들 비교적 잘 지내다 온 거 같긴 하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전혀 연고가 없는 동네가 아니고 내가 소유하고 있는 토지가 있는 지역으로 갔다 왔으니까. 땅 주인, 그것도 왕족이 보낸 사람을 해코지할 만큼 대범한 사람도 흔치 않았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선물을 가져오겠다며 자리를 비운 몇 명이 뭔가 묵직한 덩어리를 가지고 돌아왔다.
“??”
“아이고, 무거워라.”
“이거 무거워서 들고 가시진 못하겠네.”
깔깔깔 웃으면서, 다들 반짝이는 눈으로 내게 보따리를 풀 것을 요구했다.
뭔데 그래…….
부담스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매듭을 열어 보니 책이었다.
‘희귀한 책이라도 수집해 왔나…… 어?’
하지만 익숙한 아이들 글씨였다.
그리고 내용은…….
“세상에?!”
겨우 몇 권을 살짝 확인했을 뿐인데도 입이 저절로 쩍 벌어졌다.
얘들이 대체 뭘 만들어 온 거야?
“사랑한다. 얘들아!”
“와아-”
***
대청마루 쪽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천호가 움찔 놀라 고개를 돌리자 아이들이 재밌는지 까르르 웃었다.
“별거 아니니 놀랄 거 없어.”
“무슨 일인데?”
어느새 천호와 친해진 아이들이 마루 쪽을 쳐다보며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언니 오빠들이 가져온 선물이 아기씨 마음에 들었나 봐.”
“거봐, 아기씨 취향 맞다니까.”
“흐음?”
천호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이들이 히죽 웃으며 잘난 척을 했다.
“아기씨에 대해선 우리가 더 잘 아니까 뭐든 물어봐.”
“뭐든? 정말?”
“그, 그렇게 다 알고 있지는 않지만.”
궐 안에서의 아기씨가 어떤지 모르니까 단언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는 저렇게 편안한 모습이지만, 원래 옹주라든가 높으신 분들은 좀 더 무게를 잡는 법 아닐까.
아이들은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가 보는 아기씨가 아기씨지.”
“음. 그래. 그 말은 맞을 것 같다.”
“그렇지? 그렇지?”
처음 몇 번 타 본 이후로는 돌리는 쪽으로 넘어가 아이들과 놀아준 천호가 적당히 털고 나오자 그를 보고 있던 성 겸사복이 고생했다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힘도 좋고 체격도 좋고…… 너 정도면 무과를 노려볼 만도 한데 생각 없느냐?”
“제가 말입니까?”
“그래. 왜 아기씨 곁에 붙어 있으려는 거냐? 아기씨를 보면 몇 번이나 봤다고. 빵이야 굳이 아기씨 호위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얻어먹을 방법은 있을 텐데.”
시아가 들었다면 성 겸사복이 남 말할 처지가 아니라고 했겠지만, 아이들이 가져온 선물에 감격해서 격렬한 감사의 포옹을 해 주느라 바쁜 옹주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음. 그야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옹주 자가 곁에 있으면 일단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다는 이유도 있지요. 그리고 이상한 말인 건 압니다만, 아기씨를 보면 지켜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천호의 뜬구름 잡는 소리에 성 겸사복은 탐탁지 않은 듯 추궁을 이어 갔다.
“어째서?”
“글쎄요, 아마…….”
“아마?”
“제가 아기씨를 처음 만났…… 아니, 발견했을 때 아기씨가 납치당하고 탈출해서 산속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
“그다음에 또 만났을 때는 기방에서 납치범들의 대화를 듣다 들킬 뻔한 것을 데리고 나왔더니, 무서운 아저씨가 갑자기 칼을 뽑고 달려들었고.”
“크흠.”
할 말이 없어진 무서운 아저씨는 무안한 듯 헛기침을 했다.
“그다음에는 길에서 발견해서 말을 걸려는 순간 이상한 놈에게 납치를 당하시더라고요.”
“…….”
“뒤쫓아 가서 구해 드리겠다고 했더니 가서 여기 위치를 전하라고 하질 않나. 시키는 대로 도와줄 사람들 이끌고 왔더니 그사이 납치범에게 위협당하고 있지를 않나…….”
“…….”
성윤도 차마 대꾸할 말이 없었다.
“어째선지 볼 때마다 그런 상태이신데…… 당연히 보고 있으면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불안해서 어떻게 혼자 다니시게 두시는 겁니까?”
어쩌다 보니 이젠 도리어 천호가 추궁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아니, 평소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어…….”
이렇게 사실만 나열해 놓고 보니 생판 남이라도 좀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처음 만났을 때도 길에서 깡패들에게 뜯기고 있었고, 그다음에 사복시에서 만났을 때는 도망치는 역도들 때문에 위험했었고.’
그때 자신도 저 작은 옹주 자가를 위험하게 혼자 놔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물론 나야 그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이 꼬맹이는 그럼 무엇 때문일까.
사실 옹주 자가의 곁에 붙어 있으면 떨어지는 게 많을 거라는 정도야 바보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니 사람이 꼬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오랫동안 보아 온 시영원 출신도 아니고,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정체도 알 수 없는 놈을 옹주 자가 곁에 두자니 성윤의 입장에서는 조금 내키질 않았다.
물론 이놈이 몇 번이나 옹주 자가를 구해 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지만, 이상한 놈이기라도 하면 큰일이 아닌가.
게다가 뭔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 같아 썩 유쾌하진 않았다.
저 소년의 숙부라는 자도 그렇고.
‘딱히 그자가 나보다 먼저 불법 노비장의 위치를 찾아내서 그런 건 아니고.’
아직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대체 뭐 하는 자이기에 그렇게 능력이 뛰어나단 말인가?
물론 호랑이를 사냥하는 착호군이었다 하니 기척을 죽이고 추적하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을 터였다.
아마 숙부에게서 제대로 교육을 받았다면 이 소년 역시 범상한 또래 아이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일전에 검을 맞대 본 바로는 확실히 평범한 녀석은 아니었고.
‘세자 저하께서 그자와 이 소년의 능력을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았지.’
아직 신원 조사가 완료되지 않았으니 가까이에 두지는 않겠지만 신원이 확인되고 나면, 어쩌면 궁으로 들일지도 몰랐다.
‘뭐 이제 와 자리를 뺏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그자 덕분에 세자가 자신을 놓아준다면 고마울 정도다.
처음부터 딱히 출세에 뜻이 있지도 않았다. 지금은 그냥 저 옹주 자가가 평온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기만 바랄 뿐이지.
처음 만나고 벌써 8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처음 본 그날과 마찬가지로 성윤의 허리께에 겨우 올 정도로 작기만 한 옹주 자가가 뭔가 잔뜩 끌어안고 폴짝거리며 뛰어왔다.
“성씨 아저씨! 천호! 이제 가자.”
“……예, 아기씨.”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조금 이상해지긴 했지만 성 겸사복은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니 겸사복 그만두면 호칭이 저걸로 바뀌는 거 아닌가?
친근하다면 친근한데 뭔가 좀 아닌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소이. 이거 좀 적아한테 실어 줘.”
“아까 아이들에게 받은 물건이옵니까?”
“응. 궁에 돌아가서 읽으려고.”
아까 아이들이 뭔가 선물하는 것 같더니, 양이 꽤 많아서 한 번에 가져가지 못하고 일단 몇 권만 추려서 가져가는 모양이었다.
“나머지는 아기씨 댁에 옮겨다 놓을까요?”
배웅하러 따라온 지아의 말에 옹주 자가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들도 있고, 분류가 안 된 부분이 많다고 했지? 정리가 되면 목록을 만들고 한 권씩 더 필사해서 가져다 놓자. 물론 필사비는 줄게.”
“안 주셔도 되는데요.”
“자꾸 무료 봉사하려고 하면 못써. 습관 된다고.”
“예.”
키득키득 웃던 지아는 조금 고민하는 표정을 하더니, 말에 오르려는 옹주를 붙잡고 조용히 무언가를 속삭였다.
“?”
막 떠날 준비를 하던 이들은 의아해했으나 천호를 제외하고는 다들 지아가 옹주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알고 있었으므로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아의 말을 듣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던 옹주는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피식 웃었다.
“……음. 괜찮아. 아마도 헛소문일 테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그래도 내가 미리 알아 두는 편이 나으니까. 알려 줘서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옹주는 지아의 어깨를 토닥이고 말 위에 올랐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고삐를 잡은 소이가 조심스레 묻자 옹주는 고개를 저었다.
“으음. 대단한 일은 아니야.”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영원을 나서는 옹주의 얼굴이 조금 가라앉아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
‘경언군이 살아 있다, 라.’
지아가 전라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소문이라고 했다.
사약을 먹고 죽은 왕자가 실은 살아남아 자신을 죽인 아버지와 남동생을 저주하고 있다나 뭐라나.
‘하든가.’
솔직히 세자의 위치가 공고해진 지금 후궁 출신 찌끄래기 왕자 하나가 깝쳐 봤자 놀랍지도 가렵지도 않다.
근데 심지어 반역 혐의로 사약 받은 왕자가 실은 살아 있다?
관군 보내서 토벌해야 할 대상이다.
물론 진짜 본격적인 반역 모의하는 놈들이라면 일단 왕족이라는 이유로 어떻게든 붙잡아 이용해 먹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과연 그럴 만한 메리트가 있을까?
사실 경언군을 좀 겪어 본 이들이라면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을 텐데.
지아 앞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웃었지만, 그놈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으니 어쩐지 전에 들은 그 납치범들 대화도 조금 의심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사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지만…… 역시 신경이 쓰이기는 하는군. 안 그래도 한창 바쁜 세자 귀에는 안 들어가는 게 나을 거 같네.’
지난번 납치 사건 이후로 꽤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물론 어찌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으므로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했던 불쌍한 나는 방바닥을 구르며 궁인들이 전해 주는 소식들만 겨우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