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25)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25화(125/326)
“그럼 누구 좀 데려와…….”
그래도 남아 있는 사람들은 체계화 과정을 거쳐 교사 겸 의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시영원 내에도 사람이 많아 아픈 사람이 나오기도 하고 소문이 나서 의원을 찾아 이곳으로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괜찮겠어?”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그리고 그런 성지를 걱정스럽게 보던 허연태는 성지가 보지 않는 곳에서 의외로 내게 청했다.
“제 질녀(姪女)가 너무 의욕이 넘치는 것이 조금 걱정이옵니다. 옹주 자가께서 저 아이를 조금 쉬게 해 주실 수 없을는지요.”
“어려운 부탁은 아니지. 그리고 옹주라고 부르지 말고.”
“……예.”
나를 보는 눈빛은 여전히 좀 이상하지만.
여기서 지내다 보면 아이들도 많이 볼 텐데, 정말 누구 나와 닮은 아이라도 있었던 걸까.
왕실에 있었다니 정작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내 이복 자매들을 많이 봤을지도 모르겠다.
‘으음. 하지만 나는 언니, 내 생모를 닮았지 부왕은 별로 닮지 않았는데.’
생각난 김에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내가 혹시 누구 아는 사람과 닮았나?”
“예에?”
“왜 그리 놀라. 허 의원이 나를 볼 때마다 조금 태도가 이상해서 하는 말이야.”
“아, 아니옵니다.”
“숙부님은 여전히 이상하시죠.”
성지가 와서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지만 뭔가 좀 개운하진 않았다.
‘음…… 오늘 저녁에는 좀 얼큰한 걸 먹자고 할까.’
이 시대에 고춧가루도 있어서 다행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성지를 잡아끌었다.
“참, 요즘도 혜민서에 자주 가?”
“그럼요. 의원을 지망하는 아이들이 혜민서에서 오들오들 떠는 것을 지켜보고 있지요.”
아무래도 여기보다는 혜민서가 빡세고 온갖 다양한 증상의 환자들을 보게 되니까. 다들 혜민서에 가면 패닉 상태를 한 번씩 겪는다고.
“역시 전공 분야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럼 의원의 수가 훨씬 많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의원의 수가 늘어난다=재정 부담이 커진다.
이것도 일단 수익 사업이기도 하니까 말이지.
월급제에, 신변 보호에 이것저것 조건이 나쁘지는 않아서 흥미를 갖는 사람도 많지만 여의들과 동급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보이는 의원들도 있었다.
반면에 성지처럼, 의원을 부친으로 둔 여인들이 흥미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고,
뭐, 부모가 딸을 의원으로 키울 뜻이 있다면 여기가 아니라 시험을 보게 했을 가능성이 더 높겠지만.
그래도 이곳이 여인들에게 안정적인 곳이라는 의식이 꽤 퍼져 있다 보니 이런저런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일이 자꾸 커져서 성지에게는 미안하네. 이렇게 일을 많이 시킬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저야 좋지요. 아기씨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할 수 있으니까요.”
“피곤해 보이는데 조금 쉬지? 그러고 보니 요즘 꽃 그림자 연극 시작했다며, 봤어?”
“아…… 바빠서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기획했던 연극이었지만 내가 궁에 처박혀서 나오지 못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을 통해 진행되느라 나는 서신으로만 확인해야 했다.
전에 시영원에 왔을 때도 날씨가 안 좋아서 보지 못하고 돌아갔고.
그나저나 바로 근처에서 하는데도 보지 못한 성지도 참…….
“평가는 좋다고 들었습니다. 학생들 중에서 보고 온 사람들이 있고, 환자들도 다들 아시더라고요.”
“그거 다행이네.”
‘세화가 각색에도 약간 참여했다고 했지…….’
원작자가 관여했다고 하면 원작 팬들의 불만이 좀 사그라들지 않을까.
성지 말로는, 주변에서 듣기로는 나름 인기는 있다는데 원작의 코어 팬들은 마음에 안 들어 한다는 얘기도 들려온다고 했다.
뭐, 대중적으로는 더 인지도가 넓어져서 주춤했던 책 판매량도 다시 올라갔다는 거 같으니 잘된 일이기는 했다.
말이 나온 김에 보러 가자고 성지를 끌고 나오자, 허연태 의원이 남은 일은 자신이 할 테니 아기씨를 배웅해 드리라며 성지의 등을 밀었다.
참고로 연극은 시영원과 학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우리 놀이터에서 하고 있다.
사람이 알아서 모여 있는 곳이니까.
연극은 앞부분은 무료 공연을 할 때가 있지만, 뒷부분은 무조건 유료 공연으로 하고 있다.
놀이터에 사람이 많은 시간대에 놀이기구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앞부분 맛보기 공연을 보게 만든 후, 중요한 부분에서 멈춘다고.
그리고 뒷부분은 유료 결제…… 아니, 요금을 내고 이어서 볼 수 있도록 했더니 뒷이야기가 궁금해진 사람들은 돈을 내고 공연을 보든가, 아님 책을 사든가 하더라.
물론 처음부터 느긋하게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을 위해 전체 유료 공연 시간대도 따로 정해져 있었고.
‘순조로운 충동구매를 조장하기 위해 옆에다 가판을 차리고 원작 책도 쌓아 놓고 팔고 있지.’
초회 한정 수결본은 이제 구할 수 없는 물건이 되었지만, 그래도 삽화본을 찾는 수요가 제법 있어서 한문본, 한역본, 한역삽화본 3종류의 책을 구비해 놓고 팔고 있었다.
당연히 삽화본이 제일 비싸다.
장씨 아저씨 말에 따르면 요새는 한문삽화본을 내달라는 요청도 들어오고 있다는데, 역시 한자보다는 한글이 대중성이 높기 때문에 그다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서 고민 중이라고.
나도 별로 권장하지는 않고 있다.
그래도 요새 연극 때문에 사는 사람이 늘어서 활자 인쇄의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그걸 본 사람들 중 가끔 돈독 올랐다며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더라.
그리고 그 말을 전해 들은 나는 수익의 일부분은 시영원 운영에 쓰인다는 문구를 적은 입간판을 옆에 세우고, 시영원 아이들을 위한 기부 좀 해 달라고 작은 함을 하나 설치하게 했는데, 그 이후로는 조용해졌다고 한다.
놀이터에서 파는 책은 아무래도 시영원 사람들이 판매를 담당하고 있어 수익금의 일부가 시영원으로 들어간다. 안 그래도 출판사(!)가 내 거라 내가 번 돈이 시영원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앗, 아기씨 오셨습니까. 지금 공연 중이긴 한데 마침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이쪽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원래는 돈을 내고 표를 산 후에 들어가지만 우리는 관계자였으므로 다들 나와 성지의 얼굴을 알아보기 때문에 프리패스였다.
소이는 들뜬 얼굴이었으나 성 겸사복과 천호는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연극 공연은 실제로는 처음 봤는데, 보고로는 들었지만 천막 안에 사람이 꽉 차 있는 것을 보니 확실히 성공적인 모양이었다.
나는 성지에게 소곤소곤 말을 걸었다.
“근데 어째선지 연기하는 사람들 중에 아는 얼굴이 보이네.”
“아, 시영원 아이들 중에 해 보고 싶다는 아이들이 있어서 간단한 역할만 하고 있어요.”
뭐 주요 배역은 프로들이 하는 거니까 상관없으려나.
참고로 예전에 한번 말이 나왔던 대로 진짜로 주요 배역들은 눈가를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팬들의 ‘나의 주인공은 이렇지 않아!’는 배우들에게 좀 부담스러울 거 같기도 하고, 전에 얘기가 나왔던 대로 신변 보호의 문제도 있고 해서.
게다가 저 가면도 굿즈로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었다.
일부러 주인공들 가면에 한정판 책 표지에 넣었던 꽃무늬도 넣어놨는데 팬들한테 그게 좋아 보였나 보다.
처음에는 팔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일부 열성 팬들이 돈을 들고 와서 ‘얼마면 돼! 얼마면 되는데!’를 외치는 걸 보고 소량이라도 주문 넣어서 팔자는 말이 나와서 허가해 줬다.
책 파는 데서 같이 팔면 되니까 제작 속도 외에는 큰 문제도 없고.
의외로 잘 팔려서 추가 주문을 넣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지금 들어오면서 보니까 벌써 재고가 없더라.
뭐, 돈이 잘 벌리니 나야 좋긴 하다만. 다들 돈 있어서 사는 거겠지? 사치를 조장했다는 소릴 듣는 건 조금 곤란한데.
나는 투자자 겸 원작 독자의 눈으로 연극을 관람했다.
원작 팬의 입장에서 아쉬운 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연극이 끝나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자 나와 일행들도 그대로 천막에서 빠져나왔다.
내가 왔다는 걸 알면 괜히 인사하러 찾아올 거 같아서 조금 서둘렀다.
“성지도 원작을 읽었지? 어때 보여?”
“재밌네요. 나름 각색도 적당히 되었고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아기씨께서 생각해 내신 일인데 이제야 보시니 아깝네요.”
“어쩔 수 없지. 나 때문에 다 준비된 걸 미룰 순 없잖아.”
그래도 꽤 잘 만들어져서 다행이야.
극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돈도 제법 썼다고. 이미 투자금은 회수할 정도로 벌었지만.
‘뭐 작가 본인이 어느 정도 손을 댔으니 그럴 만도 한가.’
세화가 고생했지. 안 그래도 혜민서 일도 바쁜데 극본 감수에, 내가 새 소설 의뢰까지 했으니.
성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지 세화, 아니, 지천 선생의 신작에 대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아기씨께서 일전에 말씀하신 소설 말인데요. 어느 정도 내용이 나왔으니 아기씨께서 한번 읽어 주셨으면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어, 정말?”
지난번에 세자를 주인공으로 한 원작 재현 의뢰, 아니, 신작 의뢰가 벌써 내용이 나왔다니.
세화, 잠은 자고 있는 걸까.
“그…… 아기씨께서 납치당하신 그날, 세화가 세자 저하를 직접 뵙고 남자 주인공의 인상을 확실히 정했다고, 덕분에 글이 금방 써졌다고 하더라고요.”
“오…….”
아앗, 그때 세화가 세자를 보던 눈빛이 설마 그거였어?
‘쳇.’
사실 야악간 남다른 기대를 걸었던 나는 조금 실망했다.
그리고 어쨌든 소설이 완성되었다면 좋은 일이었으므로 세화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읽어 봤어?”
“예, 아직 다듬는 중이라고 했지만 재밌었어요.”
“호오.”
재밌다니 다행이었다.
“기왕이면 그것도 연극으로 만들까 하는데. 어떨 거 같아?”
“흠. 아직 인기가 있을지 알 수 없는데도요?”
“원래 대박 작가의 차기작은 팍팍 밀어줘야지.”
“그……런가요?”
대박작이 아직 하나뿐인 작가를 그렇게까지 밀어주는 것은 좀 과한 거 같긴 했지만 이번 신작은 내가 의도한 바가 있었으므로 일부러라도 밀어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긴, 판촉 효과로는 좋을 것 같군요. 저는 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 아니니 제 시선이 정확한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원래 열성 독자가 아닌 사람이 봐도 재밌어야 여러 사람에게 통용되는 거야.”
너무 마니악한 글은 보는 사람밖에 안 보니까 오히려 인기가 없다고.
“참, 제가 보기에는 일단 문제 될 부분은 없어 보이는데 아기씨께서 한번 확인해 주셨으면 하는 듯했습니다.”
“음. 그건 내가 확인해야지.”
왕정국가라고 검열 심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왕마다 조금 성향이 다른 법이다.
현재 조선은 어지간한 일에는 그리 빡빡하게 굴지 않는다.
사실 풍자극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걸 일일이 탄압하면 폭군 아냐 하고 수군수군 소리가 나올 뿐이지.
왕의 입장에서는 백성들이 노는 거 가지고 신경 안 쓴다는 배포 있는 모습을 보여 주며, 실록에 왕이 백성에게 관대했고 언론을 막지 않았으며 어쩌고를 남기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게다가 일부러 왕실을 모욕하려는 내용이라면 모를까.
주 내용은 연애물에, 세자는 잘생기고 능력 있고 그럴 예정.
‘내가 말해준 스토리대로라면 왕실을 능멸하려는 대신의 음모를 알아챈 세자가 그 함정에 빠지지 않고 왕위를 지키는 이야기인 셈이니까.’
물론 책의 첫 장에 이 글은 가상의 조선이 배경이고 실제의 인물, 사건과는 관계가 없으며 만약 유사한 경우가 있다면 우연일 뿐이라고 써 둘 거지만.
사실 켕기는 게 많은 사람일수록 주변에도 빡빡해지는 법이 아니겠는가.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고 여유가 있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관대해지는 법이었다.
지금 이쪽의 조선은 적장자 상속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진 편이라 꽤 왕권이 안정되어 있는 편이었고, 도덕적인 흠결도 딱히 없었다.
뭐, 내가 알던 조선은 수양대군이 적장자인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이후로 저주받은 것처럼 불행에 불행이 이어져 결국 세조의 적자(嫡子)들은 줄줄이 일찍 죽고, 손자인 성종 때 조금 평탄한 듯하다가 이후 연산군이라는 폭군까지 나왔었지.
그 뒤 연산군의 동생인 중종이 왕위에 올랐지만 그 아들인 인종과 명종까지 요절하면서 결국 수양대군의 적손(嫡孫)은 끊겨 버렸지만.
‘수양대군은 살아생전에는 종기로 고통받기도 했지.’
당시에도 본인은 아프고 자손들은 줄줄이 죽어 나가니까 지은 죄가 많아서 저주받았다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그랬기에 오히려 고양이가 암살자가 있다는 걸 알려 줘 살았다거나, 문수보살이 세조의 병을 치료해 주었다는 등의 전설을 만들어 이미지 메이킹을 꾀했었고.
물론 그래 봤자 수양대군이 조카 죽인 패륜범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사실 나도 그런 전설이나 하나 만들어서 퍼트릴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수양대군과는 달리 세자는 지은 죄도 없는데 암살당할 뻔했다 그러면 오히려 더 이상할 거 같았다.
그래서 그냥 이대로 가기로.
‘내용적으로도 세자가 여색을 밝혀서 궁녀를 희롱한다는 식의 이야기도 아니고 말이지.’
애초에 전작인 화영을 보고 의뢰한 거니까 그다지 걱정스럽지는 않았다.
화영도 스토리상 연애 비중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건전했거든.
“그럼 이대로 세화를 만나러 혜민서에 가 볼까.”
“나온 김에 가 보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직 날이 밝으니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