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3)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3)화(13/326)
“경원군? 네가 먼저 나를 부르다니 별일이구나.”
“경언군 형님. 이런 곳에서 혼자 무얼 하고 계신 겁니까.”
갑자기 나타난 동생 경원군을 보는 경언군의 눈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내가 여기서 무얼 하든 네가 무슨 상관이지?”
“……세자 저하께서 오늘 이곳에 오시기로 하였으니 형님께서도 함께 인사를 여쭙는 것이 어떻겠……!”
짜악-
“!!”
경원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언군은 손에 들려 있던 나뭇가지를 휘둘러 경원군의 팔을 후려쳤다.
제법 떨어져 있는 여기까지 소리가 들리는 걸 봐선 결코 가벼운 장난이 아니었다.
“내 앞에서 건방 떨지 마라.”
“……형님.”
“하, 형님? 형님은 무슨. 세자 옆에 있으면 뭐라도 얻어먹을까 싶어 그렇게 곁에서 살살거리는 게냐? 너도 곱게 죽고 싶다면 내 눈에 거슬리지 않는 게 좋을 거다.”
“…….”
경원군이 별 반응 없이 침묵하자 경언군은 흥미를 잃은 듯 그대로 몸을 돌렸다.
“모처럼 좋은 장난감을 주웠는데 흥이 깨졌구나.”
그러고는 손에 들려 있던 나뭇가지를 훌쩍 던지곤 미련없이 가 버렸다.
경원군은 경언군이 가는 것을 확인하곤 제 옷을 벗어 그물처럼 내려 연못에 빠진 고양이를 건져 냈다.
냐옹…….
“괜찮다. 해치지 않으마.”
겁에 질린 고양이는 제 은인을 알아본 듯 경원군에게 매달려 오들오들 떨었다.
비록 옷은 엉망이 되었으나 고양이가 무사한 것을 본 경원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뒤로 돌아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괜찮은 것이냐? 많이 놀랐겠구나.”
“흐우?”
나는 내가 방금 본 걸 떠올리며 부르르 떨었다.
‘설마 아까 그놈이 고양이를 일부러 죽이려 한 건가? 쟤가 방해했다고 화풀이로 저렇게 때린 거고?’
만약 내가 그때 뛰쳐나갔다면 그 화풀이 대상은 내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자산아, 게 있느냐.”
“예, 경원군 대감.”
경원군이 누군가를 부르자 어디선가 젊은 내관이 붉어진 얼굴로 다가왔다. 아마 경원군을 모시는 내관인 모양이었는데 아까 일을 목격했는지 화를 참는 듯 부르르 떨고 있었다.
“소란 떨지 마라. 처음 있는 일도 아니지 않느냐. 어머니 앞에서도 입단속을 해야 할 것이다.”
“흐흑.”
“안 그래도 건강이 안 좋으신데 심려 끼쳐 드릴 수야 없지 않으냐. 가서 조용히 새 옷을 가져오너라.”
“이미 지시해 두었으니 심려 마시옵소서.”
경원군은 내관에게 젖은 옷과 고양이를 내밀었다.
냐아-
“이런.”
하지만 고양이가 떨어지지 않고 매달린 덕분에 결국 안에 받쳐 입은 옷까지 젖고 말았다.
얘도 아직 어린아이인데 고양이를 구하고 저 미친놈에게 맞다니.
“아우우.”
아까 경언군에게 맞은 곳을 조심조심 쓰다듬자 경원군이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저것도 쉽게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때리니까.”
상습범이야?
“그러니 너도 앞으로는 혼자 돌아다녀선 아니 된다. 알겠느냐?”
“으응.”
내관이 어디선가 서둘러 공수해 온 옷을 입은 경원군은 나를 데리고 아까 세자와 함께 있던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없어졌다고 찾으러 온 건가?’
둘이 놀라고 피해 줬는데 도리어 시간을 뺏어 버린 모양이었다.
“경언군이 이곳에 자주 오니 너도 가능한 한 이쪽으로 오지 말거라. 알았느냐?”
“음.”
선빈이 영빈 엿 먹을 때 기뻐한 이유가 있었구나.
아무리 숨긴다 해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났다면 엄마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 어린아이가 어머니를 생각해 숨기려 하는 걸 보니 울컥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휴우, 내가 하는 말은 알아듣는 게 맞느냐?”
“우우.”
“어린아이가 벌써 이리 말썽이니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겠구나.”
복잡한 내 얼굴을 보며 한숨을 내쉰 경원군은 애써 부드럽게 웃었다.
‘미안.’
마침 얘기를 전해 들었는지 사색이 된 송비가 나를 보고 달려왔다.
“아기씨!”
“풀숲에 있더구나. 나뭇가지에 얼굴이 긁힐 수 있으니 혼자 보내지 말거라.”
경원군은 내가 연못가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말하지 않았다.
아마, 경언군이 가능한 나의 존재를 떠올리지 않길 바라서였을 것이다.
‘어린애가 정말 애 같지가 않네. 환경 때문인가.’
그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날 이후로, 경원군은 종종 나를 찾았다.
그리고 가끔은 세자도 그 자리에 함께했다.
“꼬맹이.”
“우우!”
“언제쯤 말문이 트일 것이냐? 형님 저하께서도 듣고 싶어 하시지 않느냐. 오라버니라고 불러 보거라.”
“우!”
쓸데없는 요구를 하는 입이 얄미워 결국 손을 들었다.
찰싹! 찰싹!
“어찌 네가, 아얏, 또 이리 오라비를 때리느냐. 고얀 것.”
“하하하. 경원군이 억지를 부리니 시아도 골을 내는 게다. 그렇지 않으냐?”
“우우.”
“아닙니다. 형님. 이 쪼그만 꼬맹이가 어찌나 성정이 거친지 아십니까? 어린아이가 툭하면 저리 손이 먼저 나가니 따끔하게 혼을 내야 합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리한 적이 없단다. 그렇지, 시아야?”
“웅.”
“!”
세자가 그리 말하며 내 뺨에 볼을 비비자 경원군의 얼굴에 경악과 함께 미약한 배신감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거 평소에 좀 잘하라고.’
생명의 은인인 것도 있지만 세자는 참 착하고 다정다감해서 내가 화를 낼 일이 없었다.
반면에 경원군은 애는 착한데 쓸데없는 말이 많아서 다소 매를 버는 경향이 있었다.
얼마 전에 선빈과 함께 찾아왔을 때라든가.
‘그래도 머리끄덩이를 잡은 건 좀 심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게 누가 아이한테 못생겼다고 하래?
아무리 이 시대에는 일부러 아기를 보고 못생겼다고 해야 좋다는 미신이 있다지만 듣는 아기 입장에선 기분이 나빴다고!
……그래도 쫌 미안하군.
생각난 김에 사과의 뜻으로 다가가 다과를 우적우적 먹고 있는 경원군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그러자 경원군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풉.”
마주 앉아 있던 세자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덕분에 경원군은 더욱 심통 난 얼굴이 되었고.
‘애가 괴롭히는 재미가 있단 말이지.’
하지만 아무리 아직 어리다고 해도 모처럼 잘생긴 얼굴에 주름은 좋지 않다.
나는 아직도 고사리 같은 손을 뻗어 미간을 꾹꾹 펴 주었다. 힘 조절이 안 되는 것이 단점이었지만.
“아니, 어린애가 왜 이렇게 힘이 세…… 으앗?!”
미간을 누르던 내가 힘 조절을 못 해 엎어지자 동시에 뒤로 넘어간 경원군이 자연스럽게 내 쿠션이 되었다.
“까르르!”
“즐거워 보이는구나.”
“보고만 계시지 마시고 도와주십시오. 형님. 시아가 이제 제법 무겁습니다.”
경원군이 혼자 못 일어나겠다고 엄살을 부리자 세자는 다시 웃음을 터트렸고, 나는 다시 주먹을 들었다.
이제 좀 뛰어다니는 애기가 무겁긴 뭐가 무거워.
퍽퍽!
“야, 야!”
“하하하. 경원군도 좀 더 몸을 단련하는 편이 좋겠구나. 시아가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다고. 그렇지?”
“우으!”
그리 말하면서도 세자는 경원군에게서 나를 떼어 주었다. 그리고 뭐가 그리 좋은지 나를 품에 안고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우리 시아가 이리 어여쁜데 경원군이 심술을 부리는구나. 그렇지?”
“우.”
“하지만 확실히 슬슬 말을 해 줬으면 좋겠구나. 아바마마께서도 고대하고 계신단다.”
“우우우우.”
시른데.
‘아예 말을 못 하는 척하는 건 차라리 괜찮은데 혀 짧은 소리로 말하는 건 좀.’
뭔 차이냐고 묻는다면 기분 문제라고 하겠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말을 조금 늦게 하나 보다 정도였고.
‘좀 더 발음 정확해지고 말하자.’
분명 아이들 중에도 말을 늦게 하는 아이는 꽤 있다고 들었으니 큰 문제도 아니었다.
왕을 기쁘게 해 주라는 의도인지 다들 나에게 ‘아바마마’라는 말을 강요하니까 더 말하기 싫기도 하고.
가장 걱정할 거 같은 언니에게만은 가끔씩 둘만 있을 때만 꼭 끌어안고 ‘엄마.’라고 부른 후 손으로 입을 막는 시늉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다행히 걱정하진 않았다.
물론 다른 걱정은 한 거 같지만.
후궁은 왕의 자녀에게 스스로를 어머니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자신이 엄마라는 말을 가르쳤다는 오해를 받을까 나에게 더 열심히 ‘아바마마’라는 말을 가르쳤지만 웃으며 무시했더니 이젠 그냥 포기한 듯했다.
‘나는 원래 엄마 말도 언니 말도 잘 안 들었어.’
***
그래서 오늘도 혼자 받는 밥상을 거부하고 멋대로 찾아와 언니와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아기씨. 오늘도 나가실 겁니까?”
“웅.”
“매일 어딜 그리 바삐 다니십니까?”
“헤헤헤.”
나는 배시시 웃으며 식사를 끝낸 후, 언니를 일별하고 처소를 나섰다.
언니는 숙원이 되고, 나를 곁에 둔 이후 얼굴이 확 좋아졌다.
예전에 선빈과 대화를 나눈 후에는 안색이 조금 좋지 않아 보였는데 뭔가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는지 전보다 마음을 다잡은 듯했다.
‘무슨 얘길 한 걸까.’
나 때문에 영빈과 척을 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선빈 쪽 라인에 타려는 걸까.
‘중전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언니는 내가 돌아다니는 것을 막지 않았다.
어차피 내 뒤로 궁인들이 따라다니고. 내가 그다지 위험한 일을 하는 성격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요즘엔 가끔 같이 산책도 다니지.’
나를 데리고 선빈에게 갈 때도 있었다. 후궁들 사이는 고만고만해 보였지만 글쎄.
그래도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여기저기 쏘다녀본 결과 어지간해선 후궁들이 나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은 없었다. 하긴 영빈이 이상한 거지.
게다가 내 소문이 어떻게 퍼졌는지 다들 내 환심을 얻고 싶어 했다.
심지어는 아기용 간식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마치 지금처럼.
“아기씨께서 이리 강건하시니 윤 숙원이 참 복이 많습니다.”
“복이 많기는 하지요. 어미는 자식으로 귀하게 된다더니. 우연히 하룻밤 만에 덜컥 회임을 하고, 왕자 아기씨를 생산한 것도 아닌데 하루아침에 숙원이 되기까지 하였으니까요.”
“아기씨 앞에서 말을 삼가시게. 왕녀 아기씨께서 복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복 아냐. 내가 쟁취했거든?
“아기씨?”
“우우.”
얻어먹을 거 다 먹은 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예의상 손을 저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 둘이 숙의와 소용이었나.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또 아주 좋은 사람도 아닌, 그냥 평범한 느낌이었다.
일단 영빈을 겪고 나니 눈이 낮아져서 다 좋아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그래도 다들 아이가 없어서인가 나를 귀여워했다.
‘언니가 나를 풀어놓고 키우는 게 이래서인가.’
왕자들은 친모가 끼고돌 수밖에 없으니 가까이하기는 어렵고.
후궁들은 다들 언니와는 달리 좋은 집안 출신들 같았고 당연히 품계도 높았다.
‘숙원이면 가장 낮은 품계지. 승은상궁보단 낫지만.’
좀 쩨쩨한 거 같기도 하지만 딱히 총애받는 것도 아니고 신분도 좋은 거 같지 않으니 감지덕지였다.
‘하긴 오히려 눈에 안 띄고 조용히 살 수 있으면 좋지.’
옹주로 태어나긴 했지만 보니까 여긴 손이 귀하니 그럭저럭 대접이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왕족이라 맘대로 궁 안을 활보할 수 있는 것도 좋고.’
일제강점기를 거치지 않은 궁이라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여기가 내가 아는 경복궁이나 창덕궁 같은 궁인지 아닌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운동과 실익을 겸비한 산책은 여러모로 나쁘지 않았다.
“음? 시아 네가 어찌 여기 있느냐.”
“우?”
그리고 그렇게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던 중 뜻밖의 인물과 마주쳤다.
물론 집주인이 집에 있는 게 이상한 건 아니지만. 워낙 바빠서인지 한동안 얼굴 보기 힘들었던 생물학적 아비였다.
‘나 대체 어디까지 온 거지?’
옆에 사람이 주렁주렁 달린 거 보니 퇴근(?)길인 모양이었다.
‘오, 그럼 저쪽으로 나가면 정전(正殿)으로 이어지나. 지금 정전이 어떤지 직접 보고 싶은데.’
예전에 본 경복궁 근정전의 모습을 떠올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생물학적 아비가 걸어온 방향에 문이 있었다. 길이 어떻게 이어져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슬쩍 눈치를 보며 생물학적 아비와의 거리를 쟀다.
그 모습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생물학적 아비가 묘한 얼굴을 했다.
“내 자식인데 어째서 이리 아비를 꺼리느냐.”
꾸물꾸물 거리를 두고 인상을 썼지만 왕 근처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지금 이 인원을 제치고 저기로 갈 방법은 아마도 없으니…….
일단 사회생활에 충실하기로 했다.
“우우.”
“하하. 정무를 보고 온 것은 이 아비인데 어찌 네가 더 지치고 고단한 얼굴을 하는 것이야?”
“에우.”
그래, 일하는 거 힘들지.
전에 본 시끄러운 할배들을 떠올린 나는 지쳐 있는 생물학적 아비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이런, 지금 위로해 주는 것이냐?”
“웅.”
“이렇게 어린데 벌써부터 이리 효심이 지극하다니.”
아니다, 비즈니스다.
“상을 줘야겠구나.”
제가 이 정도면 효녀죠.
‘슬슬 다리도 아팠고 이대로 처소까지 데려다주지 않으려나…… 어라?’
생물학적 아비에게 몸을 맡기고 편안하게 늘어져 있던 내 시야에, 별로 달갑지 않은 얼굴들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