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31)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31화(13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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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씨.”
“오, 잘 쉬다 왔어?”
시영원 아이들과 놀아 주고 있는 사이 어느샌가 조용히 나타난 성 겸사복에게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래서, 만족했고?”
“조금…… 조사를 해 보아도 되겠습니까?”
“음. 남의 가정사를 캐는 취미는 없지만.”
성 겸사복이 저런다는 건 좀 알아보고 싶은 게 있다는 뜻이겠지?
‘내의원 의관 출신이니 괜찮겠거니 했는데 설마 성가신 일이라도 있는 걸까.’
허연태와 성지는 아이들에게 의술을 가르치는 핵심 인물 줄 하나이니 나중에 이상한 문제라도 터지면 곤란했다. 특히나 인성 문제라면.
“걸리는 게 있다면 그렇게 해. 지금은 천호도 있으니 성 겸사복은 조금 쉬어도 괜찮지 않아?”
“아니, 그놈을 어떻게 믿고 제가 자리를 비우겠습니까?”
성 겸사복의 퉁명스러운 목소리 뒤로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아, 듣는 놈 기분 나쁘게 왜 이놈, 저놈, 하십니까? 엄연히 천호라는 이름이 있는데.”
“내 뒤에 서지 마라, 어린놈아.”
“그놈 다음엔 어린놈이라니.”
천호가 일부러 익살스럽게 삐진 얼굴을 하자 성 겸사복도 할 말이 없는 듯 혀만 찼다.
“어린 건 사실이지. 덩치는 크지만.”
“저도 이렇게까지 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만.”
“뭐, 큰 게 불만이야?”
“불만까지는 아니지만요. 역시 몸이 너무 크면 조금 불편하달까요. 그런데 저기 지금 저거 안 말려도 되겠습니까?”
“글쎄 내버려 두면 자연 소화(燒火)되지 않을까.”
우리가 이렇게 헛소리를 하며 놀고 있었지만 시영원 내는 지금 의외로 평온하지는 않았다.
“내가 먼저야!”
“아니, 내가 먼저 맞을 거거든!”
“아냐! 내가 먼저 맞을래!”
방금 도착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리가 없는 성 겸사복이 아이들의 시끄러운 목소리에 조금 질린 얼굴을 했다.
“제가 못 본 사이에 혹시 애들이 단체로 미치기라도 했답니까? 대체 왜 저렇게 맞고 싶어 하는 겁니까? 이번 기회에 평소 건방지던 놈들 좀 혼내 줘도 되는 겁니까?”
“그런 의미는 아니야…….”
나는 부정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들린다는 사실까지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먼저 맞는다고 딱히 더 좋을 것도 없는데 왜…….”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고 하지 않습니까.”
천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매가 아니잖아.”
예방 접종이라고.
내가 이틀 연속으로 나왔다는 사실에 들뜬 아이들에게, 오늘 이렇게 다시 나온 이유와 두창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두창에 대해 들은 아이들이 무서워하기에 예방 접종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었다.
잠깐 아파서 열이 나고 나면 두창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에 아이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일부러 바늘로 찌른다는 말에 두려워하는 아이들과, 빨리 맞겠다고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로.
그리고 조금 더 머리 회전이 돌아가는 아이들은 또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바보들아! 무서운 척을 해야 뭐라도 더 얻어먹을 거 아냐!”
“앗, 맞아!”
“그걸 몰랐네!”
말하자면 예방 접종을 맞긴 맞을 건데 무서운 척을 해서 나한테 과자 하나라도 더 받아 내고 싶다는 의견이었다.
덕분에 양분되어 있던 의견이 그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야, 아기씨 힘들게 하지 말고 그냥 주는 대로 맞아.”
“맞아.”
“나도 이쪽이 맞는 것 같아.”
그리고 또 반대로 기특한 아이들도 있었고.
‘쟤들은 잘 관찰해 두라고 해야겠다.’
머리를 잘 굴리는 애들은 잘 굴리는 애들대로, 고지식한 애들은 고지식한 애들대로 맞는 적성이 있는 법이니까.
물론 후자 쪽 의견을 말한 애들이 꼭 고지식한 애들이란 법은 없었다.
내가 여기에서 애들을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 하는 말이니까.
그런데 재밌게도 조금 큰 아이들 중에서 맞지 않겠다는 애들은 또 없었다.
“아니, 너희는 왜 그렇게 겁이 없어. 어쨌든 아프다니까?”
“아픈 건 싫지만요. 안 맞으면 더 아프다면서요. 죽을 수도 있는 병이라면서요.”
“맞아.”
나는 아이들이 제대로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너희는 그게 뭔지도 모르는데 그대로 맞을 거야?”
“에이. 그치만 아기씨가 우리한테 나쁜 일을 하지는 않잖아요.”
“맞아.”
큰일이다. 애들이 나를 너무 철석같이 믿는데.
좀 의심하는 법을 가르쳐야 할까.
“얘들아. 사람 말을 그렇게 곧이곧대로 다 믿으면 못쓴단다.”
“하지만 아기씨 말을 안 믿으면 누구 말을 믿어요?”
“…….”
아니, 저렇게까지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맞아. 말 잘 들으면 그야말로 자다가도 떡이 나오는걸.”
“난 계란밀떡이 좋더라!”
“나도!”
음. 애들 예방 접종 하면 카스텔라라도 한 조각씩 줘야 할까.
“게다가 마마는 한번 걸린 적이 있는 사람은 안 걸린다잖아요. 그럼 그거 바늘로 몇 번 찔리면 앞으로 걱정 안 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어? 으음.”
나는 잠깐 대답을 망설였다.
‘아니, 하지만 백신이 기한이 있는 경우도 꽤 있지?’
우두는 어땠더라?
내가 고민하는 사이 뜻밖의 목소리가 대신 답을 해 주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몇 년에 한 번은 맞아야 안전할 것 같습니다. 주기는 더 짧을수록 좋고요.”
“어라, 성지? 벌써 집에 갔다 왔어?”
“예.”
성지의 손에는 책 한 권이 소중하게 들려 있었다.
성 겸사복이 아무것도 얘기해 주지 않았으므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곧 다시 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세화는 우두의 접종법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고, 자신도 우두를 접종했다는 사실과 팔에 흔적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뜻밖에도 성지가 가져온 책은 두창에 대한 의서로, 그 의서에도 세화가 말한 것과 거의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게다가 몇 년에 걸쳐 접종자들의 상태를 확인한 기록까지 있었다.
“이런 책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대체 누가 쓴 책입니까?”
“예전에 어떤 의녀가 쓴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의녀가 의서를 말입니까?”
임 주부의 어투에서 묘하게 무시하는 어감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시선을 주었는지, 나와 눈이 마주친 주부가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아니, 딱히 눈치 주려던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앞으로는 여의들도 많아질 것이고, 의서를 쓰는 여의들도 여럿 나올 테니 지금 분위기를 잡아 두는 게 좋지 않을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뜻밖에 허연태가 먼저 나섰다.
“실은 저도 스스로 그 책의 내용을 시험해 본 적이 있습니다.”
“예?”
“확인되지 않은 것을 어찌 조카에게 먼저 시도했겠습니까. 지금 제 팔에도 우두 자국이 있습니다. 제 몸으로 직접 확인해 본 후 조카, 성지에게도 똑같이 우두를 놓았으니 아마 지금도 팔에 우두 자국이 남아 있을 겁니다.”
임 주부가 여인들 어깨를 확인하는 것은 아무래도 좀 어려웠지만 허연태와 임 주부는 남자였으므로 잠시 자리를 바꿔 확인하고 돌아왔다. 물론 성지와 세화의 어깨는 내가 확인했고.
‘아. 그러고 보니 전생에 어른들 어깨에 이상한 자국 있는 걸 많이 봤는데 이게 우두 백신 흔적이었나.’
목욕탕이나 수영장에 가지 않아도 여름에 민소매를 입고 다니니까 어깨 쪽 피부가 약간씩 이상한 걸 본 기억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이렇게 뭔가 튀어나와 있는 게 우두 자국이었던 모양이었다.
‘이게 그거였구나, 신기하네.’
확인이 끝나고 곧 다시 논의가 이어졌다. 내의원 의관 출신이기까지 한 허연태가 본인은 물론 어린 조카에게까지 직접 검증했다고 하니 일단 인체에 큰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셈이라 임 주부의 얼굴은 밝아졌다.
이제 실무적인 이야기가 오고 갈 차례가 되었다.
“그럼 우두를 확보하는 것부터…….”
“왕실에서 소를 키우는 목장이 있으니까 그쪽이랑, 시영원과 주막에 고기를 공급하는 백정들을 통해 알아보면 빠르겠는데.”
“그, 그렇군요.”
“이건 내가 사옹원과 민 상궁에게 전달해 두고. 아, 세자 저하께도 말씀을 드려야…….”
“…….”
세자 저하라는 단어에 임 주부가 기절할 것 같은 얼굴을 했기에 나는 모르는 척 시선을 피했다.
이 시대 왕가는 아무래도 신비주의 전략이다 보니 왕이나 세자 저하 같은 높으신 분 이야기가 나오면 좀 저런 반응이란 말이지.
‘아, 하지만 내가 너무 절차를 무시했나.’
이런 일은 관리에게는 공적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위험성도 있다.
“임 주부가 빠르게 위에 보고를 올려 보는 게 좋겠지만 허가가 나는 데 시간이 걸릴 테니 이 일은 일단 시영 의원에서 민간 주도…… 아니, 내가 주도하는 걸로 하지.”
“옹주 자가……!”
음, 이젠 숨기는 것도 의미 없는 기분이 든다만 설정은 지켜야지.
“어허, 옹주 자가라니 무슨 소리를, 아기씨라고 불러야지.”
“예. 아기씨.”
다들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특히 혜민서 주부는 여러모로 마음이 편해진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혜민서가 그리 힘 있는 부서는 아니다 보니 괜히 나서기도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 우두를 접종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좀 유명한 사람이 접종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유명한 인물이라 하면…….”
다들 누가 좋을지 고민하는 사이 나는 거침없이 이 동네 최고 유명인 하나를 천거했다.
“그래서 내가 맞을까 하는데.”
“안 됩니다!”
“아니 되옵니다!”
‘세자한테도 권하고 싶은데 안 되려나.’
사실 백신이라는 것이 반드시 부작용(副作用)이 따르는 법이고, 아주 극히 낮은 확률일지라도 거부 반응이나 부작용 등으로 사람이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설령 백만분의 일의 확률이라도 당한 본인과 가족들에게는 원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과거 천연두 백신 부작용으로 사망한 확률이 0.00198%였다고 한다.)
그리고 의원의 역할은 단순히 접종만이 아니라 최대한 접종받을 환자의 상태를 살펴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방법 자체는 간단해서 의원이 하지 않아도 가능하겠지만 접종자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의원의 진맥이 있으면 좋겠는데.”
“일단 의원들부터 먼저 접종을 했으면 합니다.”
“의원들도 쉽게 믿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소의 고름이라는 사실을 알면 다들 꺼림칙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그건 역시 부정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특히 사대부들은 체면을 중시하니 의술에 조예가 없는 분들은 특히 설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체 높으신 분들을 환자로 받아 본 적이 있는 이들은 다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의외로 금방 해결되었다.
두창 때문에 기방에 격리되어 있는 이들 중에는 이름 높은 기녀들이 있었으니까.
그들은 두창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떠는 것보다는 차라리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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