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35)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35화(135/326)
“네가 마음에 든 모양이지.”
우리는 고양이를 데리고 적당히 잡담을 하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가 굳이 이런 곳에서 서신을 받아 보고 있던 건 세자와 만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바쁜 사람이라 내 처소까지 오라고 하긴 뭐해서.
“그래서 어찌 되었습니까?”
“일단은 예상대로더구나. 네가 걱정할 건 없을 거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사간원에서 꽤 트집을 잡지 않을까 했는데 말이지.
오늘 사간원에서 올린 상소에 대해 정식으로 논의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니만큼 당연히 종두법에 관한 일이었다.
물론 종두법에 대해서는 왕과 세자에게도 미리미리 귀띔을 해 둔 바가 있었고, 나 역시 일찍부터 조정에서 말이 나올 것에 대해 대비하고 있었다.
나는 종두법에 대한 의원들의 의견과 내의원에서 일한 적이 있는 허연태 의원이 가져온 의서를 보여 주고, 실증 사례들에 대해서도 전달했다. 특히 기녀 매향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우두를 앓고 난 후 두창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했다.
의외라고 해야 할지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부왕은 허연태 의원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기에 설득이 쉬웠다.
‘허연태라. 그래. 그자가…….’
아마 죽은 왕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걸까.
허연태 의원이 종두법에 대해 알고 있고 이에 찬동하고 있다는 건 두창으로 죽은 왕녀를 치료하지 못하여 사직했던 의원이 계속 두창을 연구해 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어쩌면 두창으로 자식을 잃은 적이 있는 부왕이 누구보다 믿고 싶지 않을까.
방서에는 종두법의 효과를 수년에 걸쳐 검증한 내용 또한 있었고,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기방 사람들에게 접종하여 어느 정도 입증한 셈이었다.
이러한 근거들로 왕과 세자 역시 나의 설득에 둘 다 어느 정도 납득을 했기에 상소에 대응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았다.
“그 종두라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접종할 것이냐.”
“물론입니다. 일단 본인들이 원하는 경우에만 접종을 하고 있고, 아직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부모의 판단에 따르고 있습니다.”
시영원 아이들은 내가 보호자인 셈이라…… 일단 큰 애들부터 건강 상태 봐 가며 맞고 있었다.
애초에 아직 많은 사람에게 접종할 수 있을 정도로 많지도 않았고.
“그래서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소에게 강제로 우두를 전염시켜서 종두(鐘頭)을 얻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두에 걸렸던 소를 잡아먹는 것도 찜찜해할 테니 소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그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구나.”
“으음.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거 같기도 합니다만. 아마, 몇 년 지나면 새까맣게 잊고 잡아먹지 않을까요.”
“하하. 어쨌든 사실이라면, 장기적으로는 모든 이가 접종을 하면 좋을 텐데.”
“효과가 평생 가는 것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중요한 건 조선에서 근절했다고 해도 외국에서 다시 들어오면 성가셔진다는 거고요.”
“그렇다고 사신에게 강제 접종을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더냐. 물론 효과가 확실하다면 이 방법을 외국에 전파하는 방법도 있겠다만.”
왕과 세자가 신뢰하는 것과 별개로 많은 이들에게 종두법의 효과에 대해 확신을 주는 데에는 더 시간이 필요했다.
급한 환자들의 치료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종두법의 접종과 효과를 옆에서 지켜보았던 혜민서의 의료진들이 자진해서 접종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두창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할 때까지 다들 믿지를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스스로 접종하여 증명할 것을 자처했다.
그리고 당연히 아무 문제도 없었고, 두창에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종두법으로 별문제가 생기지도 않았고 두창에 걸리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또 시끄러워졌다.
“정말 그 종두법이라는 것으로 두창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오?”
“혜민서 의관들까지 자신의 몸에 직접 확인을 했다고 합니다.”
불치의 병이라고만 여겼던 두창을 치료하고 예방까지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는 사실에 모두 크게 동요했다.
그렇게 비웃었는데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나 할까.
그리고 일이 진척된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공을 세운 것이 누구인지는 일목요연했다.
조정에서는 어의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주도한 것이 의녀와 민간의 여의라는 사실에 술렁였다.
특히 그동안 내의원의 어의들조차 알아내지 못했던 두창에 대한 예방법을 민간에서 알아냈다는 사실에는 기분이 몹시 저기압이 되었다.
그나마 그 민간 의원에 내의원 출신이었던 허연태가 있어 체면치레는 한 셈이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되면 만만하게 때릴 수 있는 건 지금 핫해진 외부인이 아닌 조직 내부에 속해 있는 사람이었다.
내의원 의관들은 공연히 혜민서 의관들을 까며, 어째서 내의원에는 아무 말도 없이 혜민서가 그런 중요한 문제에서 멋대로 행동했냐는 식으로 못살게 굴었다고.
‘솔직히 나도 초반에 내의원에 말을 넣었지만 다들 종두법을 좀처럼 믿지 않았었지. 다들 신중하게 지켜보자는 입장이었고. 왕실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런가, 어차피 혜민서 소관이라고 생각해서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은 거 같고.’
이런 분위기는 사실 다른 사람이 아닌 혜민서 사람들이 더 예민하게 느꼈을 일이었다.
‘안 그래도 초반에 조금 태도가 어정쩡했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겠지.’
뭐, 예산 부족으로 시무룩한 혜민서 사람들을 몇 번 본 처지라 아무래도 내 입장에서는 팔이 안으로 굽기도 하고.
아무튼 의관이라 해도 그쪽도 수년간 관료사회에서 구른 사람들이다 보니 아마 이렇게 될 걸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혜민서 측에서도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혜민서가 아닌 시영원의 의원들이 주축으로 종두법을 주도하고, 혜민서 의원들은 일단 그냥 치료만 도왔다는 식으로 발을 빼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특히 세화를 비롯한 혜민서의 일개 의녀들과 여의들 몇몇이 옹주에게 감화되어 돌출행동을 했다는 식으로 몰아갔었는데 이제 와서는 취급이 반대가 되었으니 웃기는 일이었다.
아직은 부작용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지만 종두법이 효과를 보인다면, 두창을 예방할 방도를 알아내고 치료해 낸, 능력이 있는 의원인 셈이었으니 민간의원인 성지와 혜민서 소속 의녀 세화에게 명예직의 벼슬을 내리자는 의견도 나왔다.
대리청정 중인 세자가 꺼낸 말이었다.
심지어 이건 외명부의 것과 별개로, 왕이 직접 내리는 상이었으므로 반대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으나, 세자는 공이 있는 자가 그 능력을 인정받는 것은 당연하다며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들을 해냈기에 치하하는 것인데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는 식으로 일축했다.
성지는 그렇다 치고 세화는 혜민서 의녀이니 지금 외명부에 속해 있는 몸이 아니냐는 반대도 있었으나, 고작 명예직이니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는 의견과, 그래도 한낱 여인에게 관직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불쾌해하는 의견도 나왔다.
물론 아직 종두법의 효력이 완전히 입증된 것은 아니니 좀 더 지켜본 후에 다시 논의하자며 넘어갔지만.
‘신중한 것도 좋지만 너무 시간을 질질 끄는 거 아닌가.’
그러고 보니 두창은 날이 추울 때 더 잘 퍼진다는데 빨리 접종시키길 잘했네.
어느새 민간에서는 너도나도 종두법을 맞아야 된다는 쪽으로 여론이 흘러 있었다. 아마 시영원 애들이 앞다퉈 접종한 것이 의미가 있기도 할 거고.
‘예방 접종을 받은 사람들한테 연극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한 것이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네.’
한편, 내가 궁에서 나가지 못하는 사이 세화의 신작, 아니, 지천 선생의 신작이 발매되었다.
수정한 원고는 시영원 아이들 중 글씨를 잘 쓰는 아이에게 맡겨서 정리한 후 인쇄에 들어갔고, 예상과 다르지 않게 전작에 이어 이번 작도 만만치 않은 대박이었다.
연극 공연에 대한 2차 계약 역시 미리 맺어 두었으므로 연극 상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사비를 털어 예방 접종을 완료한 사람들에게는 그 연극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지시했다. 예방 접종은 시영 의원과 혜민서를 주축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므로 예방 접종 증서를 발급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에 증서와, 어깨의 종두 자국을 보여 주면 증서에 도장을 찍은 후 무료 입장이 가능했다.
어깨를 보여 주어야 하므로 당연히 남녀의 입장 줄은 따로 있었다.
무료 공연이라고 퀄리티를 떨어트리지는 않았으므로 당연히 연극은 재미있었고, 연극은 무료지만 책과 굿즈는 무료가 아닌 법.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굿즈가 될 만한 매개체를 내용 여기저기에 슬쩍 넣어 두었으므로 굿즈 종류도 다양하게 잘 팔렸다.
그 덕분인지 전체적으로는 생각보다 큰 손해는 아니었다.
‘사실 국가에서 무료 접종을 추진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정책 정하고 실행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아직도 종두법을 못 믿겠다는 노신(老臣)들이 많아서 설득하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게다가 아무래도 짐승의 고름을 묻혀 바늘로 찌른다는 사실에 찜찜해하는 사람도 많았고.
‘하지만 병에 걸려서 아픈 건 본인이란 말이지.’
세자가 본인도 나서서 접종하고 싶다고 했지만 그것도 주변에서 뜯어말려서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여간 왕족으로 태어나서 고생이야.
나도 세자도 맞질 못하는 대신 우리를 모시는 궁인들은 돌아가면서 종두를 맞아야 했다.
결국 다들 무서워하긴 하더라.
침 무서워서 의원에는 어떻게 가는 거지.
아무튼 이래저래,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성지와 세화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다.
허연태 의원이 의도적으로 뒤로 물러나서인지 의외로 이름이 많이 퍼지지는 않았다.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성지와 세화이니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모양이었다.
나는 또 여러 날이 지나서 겨우 만난 세자를 닦달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는데?”
“이번 일에 공을 세운 이들에게 전하께서 상을 내리시기로 하였다.”
“오.”
“그간 여의에게 품계를 내리는 문제에 대해서도 지지부진했는데 이번에 결국 제대로 품계를 내리게 될 것 같구나.”
“직접 불러서 치하하시나?”
지친 얼굴의 세자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민간 의원인 두 사람에게도 명예직을 제수(除授)하여 전하를 뵐 자격을 내릴 것이다.”
“오, 잘됐네.”
“아마 의녀 세화는 아무래도 이례적인 승진을 하게 될 거다. 내의원으로 들어오게 되면 자주 보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음.”
오오오. 잘됐네.
세화가 여주일 가능성이 높으니 어서 궁으로 들어와야지.
내 워라밸의 구원자! 여주님, 웰컴!
“그리고 주상전하께서 네게도 상을 내리고 싶어 하시는데 혹 원하는 것이 있느냐.”
“네?”
“이번에 종두법을 강행한 것은 네가 아니더냐. 모두 네 책임하에 일어난 일들이라고 들었다. 이것이 공이라면 너의 공이기도 하지 않느냐.”
필요한 건 딱히 없는데……?
세자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곧 떠오른 단어를 입어 올렸다.
“아, 독립시켜 주…….”
“기각.”
“아, 왜요.”
“아직 이렇게 어린데 무슨 독립이냐. 안 된다. 한 뼘은 더 큰 후에 말하거라.”
“와, 억울해.”
안 자라는 사람한테 그런 막말을??
“두고 봐, 나 가출할 거야.”
“지금도 잘만 나갔다 오면서.”
“나 내 집에서 하룻밤도 못 자 봤는데.”
“크흠.”
자기가 생각해도 좀 민망했는지 세자가 헛기침을 했다.
“이쯤 되면 집이라기보다는 규모가 남다른 거대 창고가 아닐까? 네? 오라버니? 어떻게 생각하세요오오???”
“어허, 그만하거라.”
내가 조금만 더 참는다, 진짜.
‘그나저나 성 겸사복은 허연태 의원에 대해 조사하는 거 같았는데 뭐가 나왔나…….’
“성지 의원님. 들으셨습니까? 주상 전하께서 의원님을 직접 불러 치하하실 예정이시라고 벌써 장안에 소문이 쫘악 퍼졌습니다!”
“어휴. 그러지 마세요. 주상 전하를 뵙게 되는 일이 어디 흔한 일이랍니까. 괜히 기대했다가 나중에 아니라고 하면 실망해서 잠도 못 이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벌써 조정에서 논의가 되었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시영원으로 갈 준비를 마친 성지와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시영원을 담당하는 나인 중 한 명이었다.
종두법 때문에 시영원으로 가는 성지의 보조를 겸해 찾아온 이였으니 결코 허튼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허연태는 자신이 칭찬받는 것보다 더 기뻤다.
‘인정받았구나. 드디어.’
아아. 절대로 이런 날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분명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그 사람이 쓴 책이 세상에 빛을 보는 날은 없을 거라고.
그저 언젠가 자신의 의술을 모두 이어받은 성지가, 자신이 죽고 난 후 이 책을 발견해 내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며 하루하루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살아왔는데.
어찌 이런 날이 왔을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허연태는 수년간 간직해 온 의서, ‘두창방서’를 쓰다듬었다.
옹주 자가의 명으로 두창방서를 전하께 올려야 한다는 말에 이전에 미리 만들어 둔 필사본을 전하께 바쳤다.
그 사람이 쓴 책을 어찌 다른 이에게 줄 수 있을까.
자신이 쓴 책이 주상 전하의 손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앗아 갔다며, 그 사람이 저승에서 화를 낸다 해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
상관없지 않은가.
의서의 내용만 같다면야.
이 책은 나에게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것을.
‘이녁, 이녁 대신 그 딸이 대신 인정을 받았소. 기쁘지 않소. 아니면 본디 이녁이 받았어야 할 상찬인데 이녁은 받지 못하는 것이 서운하오? 그래도 너무 서운해 마오. 하나뿐인 딸이 대신 받는 것이니. 그래도 딸이 어미의 덕을 보는 것이니 다른 사람의 공이 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소.’
의서에는 이름이 남겨져 있었다.
의녀 금비.
“그 의서를 쓴 의녀가, 허성지 의원의 친모이오?”
“!”
분명 방 안에 혼자였는데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허연태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사실 무엇보다도 그 내용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