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43)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43화(143/326)
그렇게 말하며 중전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중전의 시선을 따라 부왕 역시 착잡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수영 옹주.”
“예, 아바마마.”
평소처럼 가족 간에 모인 사사로운 자리가 아니었으므로 왕도 세자도 나를 수영 옹주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 일은 옹주의 의사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어찌 생각하느냐.”
잡생각을 하느라 몰랐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다들 나에게 집중되어있었다.
뭐야, 부담스러워.
하지만 지금은 나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답은 하나뿐이었고.
“그럼 해 보지요.”
여기저기서 작은 한숨 소리와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안도하는 것인지 놀라는 것인지.
세자도 복잡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 너무 선뜻 허락하는 것이 아니냐.”
“어전에서 꺼낸 말이 아니옵니까. 본인도 결코 쉽게 꺼낸 말이 아닐 것이옵니다. 그만큼 자신도 있을 것이고, 또한 신중할 것이옵니다.”
덕분에 나도 여주 확인하는 데 오래 걸렸잖아. 빨리빨리 갑시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여러 사람의 검증을 거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치료 방법에 대해 논의하다 보면 시간만 오래 걸리지 않겠사옵니까. 같은 증상이 있는 사람이 달리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찌 검증을 할 수 있겠사옵니까. 본래 약이란 어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병이 있는 사람이 먹으면 약이 되는 약재도, 건강한 사람이 먹으면 도리어 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법이다.
특히 내 경우 독으로 인한 것이니 치료하는 과정에서 뭘 어떻게 처방받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내의원에서 치료 방법에 대해 일일이 검증하다 보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안 그래도 내의원에서 세화를 반가워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더 열정적으로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고.
문제는 그렇게 되면 내 치료도 늦어지고!
전개도 늦어지고!
한국 사람, 아니, 조선 사람 빨리빨리!
“전하, 지금까지 누구도 치료법을 알지 못했던 옹주의 병에 대해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 이는 처음이 아니겠사옵니까. 시도해 볼 여지는 있다고 생각되옵니다.”
“옹주를 누구보다 아끼는 세자까지 그리 말한다면 막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옹주의 건강에 문제라도 생긴다면 결코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알겠느냐.”
“의원은 그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의술을 펼칠 뿐이옵니다.”
“그래. 그래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잘할 사람도 무서워서 못하게 되지 않을까요.
안 그래도 이 시대에 임금님이라고 하면 감히 얼굴도 쳐다볼 수 없는 경외의 대상인데.
“세자는 어린 시절부터 의술에도 관심이 깊었으니 과인보다 나을 테지, 이 일에 관해서도 세자에게 일임할 것이다.”
“예, 전하.”
“아무리 마음이 급하더라도 결코 조급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예. 가슴에 새겨 두겠사옵니다.”
그렇게 비교적 화기애애하던 시작과는 대조적으로 어전을 벗어날 때는 다들 여러 가지 다른 의미로, 긴장감이 넘치는 얼굴로 물러났다.
어전을 벗어나자 그제야 살 것 같은지 가슴을 쓸어내리던 세화와 성지는 내가 다가가자 다시 놀란 듯 허리를 숙였다.
“옹주 자가.”
“옹주 자가.”
“이리 보니 반갑네. 어전에서는 긴장했을 테니 일단 내 처소로 가서 좀 쉬지.”
“예, 옹주 자가.”
두 사람은 살겠다는 얼굴로 나를 따랐다.
아무래도 아는 얼굴이기도 하고. 왕보다는 옹주가 편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송구합니다, 옹주 자가.”
“무엇이 말인가?”
“이 일에 대해 옹주 자가께 먼저 말씀드리는 것이 순서인 듯했으나 혹시라도 다른 분들이 허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감히 이런 식으로 허락을 구하였사옵니다.”
반대가 심할 거 같아서 일단 저질러 봤다는 말이었다.
“모르고 있다 들어서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뭐 상관은 없지.”
어쨌든 바뀌는 것은 없을 테니까.
“아마 다른 왕실 식구들에게 먼저 말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성가셨을걸? 만약 실패한다면 실망이 클 거라는 생각에 나에게는 숨기자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어.”
“옹주 자가.”
“평생 못 고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고칠 방법이 있다는 건 그럭저럭 희망이 있다는 뜻이겠지. 아니 그런가?”
내 말에 세화는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심려 마시옵소서. 제가 반드시 옹주 자가의 병을 고쳐 보이겠사옵니다.”
오, 주인공의 호언장담.
‘믿습니다.’를 외쳐야 할 거 같은데 뜻밖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야 할 것이야.”
“오라버니.”
나를 따라 나온 듯 우리의 대화에 끼어든 세자가 한숨을 쉬며 세화에게 물었다.
추궁이라기보다는 약간 걱정이 섞인 느낌이었다.
“어찌 무모하게 주상 전하의 앞에서 고칠 수 있다고 단언한 것이냐. 만에 하나라도 실패한다면 그 뒷감당은 어찌하려고.”
“하오나 세자 저하, 그리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저를 인정하고 옹주 자가의 치료를 맡기지 않았을 겁니다.”
“자네는 참 겁이 없군. 실력에 자신도 있는 것 같고.”
“그만한 자신 없이 어찌 어전에서 감히 입을 열었겠사옵니까.”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은 잠시 눈빛을 주고받았다.
대화 내용도 그렇고 너희 묘하게 호감 있는 티가 난다, 야.
음, 근데 지금 이거 혹시 그…… 불꽃이 튀기는 거니?
내가 바라는 쪽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호감이 담긴 불꽃이었다.
두 사람을 올려다보다 시선을 돌려 성지를 보니, 성지도 묘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였다.
‘못 본 척하지요.’
‘못 본 척하자.’
하지만 우리의 이런 배려는 빛을 보지 못하였다.
“너 지금 이상한 생각 하고 있지.”
“이상한 생각이라니요. 그저 세자 저하의 눈빛이 좀 수상하다는 생각을 좀 했을 뿐이옵니다.”
“뭐?”
세자는 생각도 못 했다는 듯 당혹스러운 얼굴이었지만 나는 관대하게 웃으며 세자의 팔을 두드렸다.
한창 그럴 나이다…… 아니, 그럴 나이도 좀 벌써 좀 지났다…….
“뭐. 바로 가기 싫으면 가볍게 산책이라도 하고 가는 것도 괜찮…… 으앗?”
소개팅 주선해 주고 사라질 예정인 주선자처럼 좀 분위기 있는 대화가 가능한 곳으로 유도할까 했더니, 세자는 뜻밖에도 나를 안아 들었다.
“옹주의 몸 상태에 대해 좀 더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으니 따라오게.”
“예, 세자 저하.”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과 달리 나는 버둥거리며 따졌다.
“어디 가?”
“네 처소에 갈 것이다. 가서 네 보호자들의 의견도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
“내 보호자?”
누구?
“참으로 옹주 자가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말하는 가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역시 말은 안 해도 꽤 신경 쓰고 있었구나.
나는 조금 미안해져서 가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미안, 미리 말해 줬으면 마음고생은 덜했을 텐데 말해도 안 믿을 게 뻔해서.’
송비는 비번인데도 굳이 나와서 얘기를 함께 듣고 있었다. 아마 내 병세(?)에 대해 자세히 얘기할 필요가 있어서인 듯했다.
“치료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가?”
“처음에는 오래 걸릴 것입니다. 그리고 자라면서 또 조금씩 약을 조절해야 할 테니 저나 성지 의원이 지속적으로 옹주 자가의 곁에 있을 생각이옵니다.”
안 그래도 이번에 공을 세워 내의원 소속으로 프리패스 될 예정이었던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내 담당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세화는 그렇다 치고, 성지는 원래부터 내의원에 들어올 생각이 없었던 터라 내가 회복될 때까지만 내의원에 있기로 했다.
‘원래 내 담당 여의들은 굴러들어 온 돌에 치인 기분이려나.’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껏 아무도 실마리를 잡지 못한 내 불치병을 고칠 수 있다고 나선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성지는 물론이고 세화까지 요즘에는 무척 유명 인사였다.
“흐음. 실은 자네의 의술에 대해서는 나도 익히 들은 바가 있네.”
“어떤 것을 말씀하시옵니까?”
“칼로 종기를 제거했다는 말을 들었다.”
“부술(剖術)을 이르십니까.”
“맞네.”
어릴 적부터 나랑 중전 때문의 의서깨나 파더니, 세자는 이상하게 의학 지식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가, 세화와 대화도 잘 통했고.
‘음. 옛날에도 그랬지, 그러고 보니.’
나는 이제 흐릿해진 옛 기억을 더듬었다. 세화는 모를 수가 없겠지만 세자는 아직 세화가 어릴 적 만난 그 소녀라는 걸 모를 텐데. 과연 알아차릴 수 있을까?
두 사람은 나의 소박한 기대를 저버리고 일 얘기만 했다.
하긴…… 전에도 의술 얘기만 했어. 저런 삐뚤어진…… 아니, 의술 오타쿠 같은 인간들…….
의술 오타쿠라니 약간 이상한 표현이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종기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은데 부술로 이를 치료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하지만 몸을 상하게 하는 일이라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사옵니다.”
“죽어도 싫다는 것은 어찌 막을 수 있겠느냐. 하지만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 방도를 알려 주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당장은 당연하게 아니 된다 생각하는 이들도 그 방법이 보편화된다면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따르게 될 것이다.”
“예, 저하.”
세화는 세자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음, 그래. 좋은 일이야.
‘설마 또 차기작 남주 모델로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난 저걸 원작 공커의 아우라라고 믿고 싶어요.
자기 세뇌를 하며 보고 있자니 약간의 죄책감과 현타가 오는 거 같기도 하다만…….
살짝 둘만의 세계에 빠진 듯한 두 사람을 두고 나는 성지에게 말을 걸었다.
“그동안 잘 지냈지? 알고 지낸 지도 오래되었는데 이렇게도 보게 되는군.”
“예. 소인도 궁에 들어와 옹주 자가를 뵙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사옵니다. 오랜만에 뵈옵는데 무탈하신 듯하여 기쁘옵니다.”
나도 성지도 힘없이 웃었다. 한참 못 본 이유를 떠올린 탓이다.
뭐, 피차 바빴어.
‘흐음. 본인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성지가 안다고 했던가, 모른다고 했던가.’
친자가 아닌 것은 알지만 역당의 핏줄이라는 사실은 모른다고 했었지.
본인이 안다면 내의원 의관 자리 사퇴하겠다고 선언하고 사라질 거 같으니 이대로 묻어 버리자. 본인도 모르고 알 수도 없는 연좌제는 행정 절차의 소모와 인력 낭비, 개인의 불행을 낳을 뿐이었다.
“실은 소인도 세화 의원에게 부술에 대해 배우고 있사옵니다.”
“오?”
둘이 사이가 좋더라니 그런 것도 배워?
“혼자서는 벅찬 일이옵니다. 거부감을 가지는 이들이 많아 걱정하였는데 다행히 제 부족한 의술을 믿고 함께하겠다는 분들이 계셨사옵니다.”
성지를 비롯한 의원들 몇몇이 세화에게 의술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니 유능한 의원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
세자도 이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확인할 거 확인하고 치료 일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계획을 세운 이후 세자는 돌아가야 했다.
‘일 많을 텐데…….’
세화를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는 나와는 달리 세자는 걱정이 많고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나도 이해하는 바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세자가 앞에 있으면 긴장할 수밖에 없는 법.
내 치료에 대한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도 세자가 자리를 뜨지 않자, 나는 두 사람이 보지 않는 사이 세자에게 눈치를 줬다.
‘뭐냐.’
‘이제 그만 가라.’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