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45)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45화(145/326)
그리고 아마 이건 내가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했고.
하지만 성가시기도 해서 옆에 있는 세자의 도움을 좀 받기로 했다.
“세자 저하께서는 부술에 대해 어찌 생각하십니까?”
“위험성은 있지만 잘만 하면 좋은 치료법이 아니겠느냐.”
“네, 그럼 투자 좀 하시죠.”
“???”
나는 세자를 좀 삥뜯기로 했다.
“목장이랑, 시영원을 통해 백정이랑 연계해 줄게. 필요한 건 이거겠지?”
“! 감사합니다, 옹주 자가!”
나 왜 이렇게 이런 일에 손을 많이 대냐.
‘이런 일은 원래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거쳐야 하니 중전에게 말이 먼저 간 것도 이해가 가고, 정작 중전이 나와 세자를 불러서 일을 시키는 것도 이해가 가는군.’
바쁜 세자였지만 이런 일을 나나 중전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것도 좀 그렇지.
나는 겸사겸사 수의사들을 수배해서 통해 동물의 질병 관련한 외과 수업도 연계해서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안 그래도 지난번 우두 때문에 알게 된 우의(牛醫)들도 있었고.
다만 이런저런 비용이 나올 수 있었으므로 이는 세자를 통해서 조금 금전적인 지원을 받았다.
“너는 돈도 많으면서 그런 걸 나한테 지원까지 받아야겠느냐.”
“나도 아무래도 요새 사업 때문에 지출이 많아서.”
“그렇게 돈이 많이 들었느냐?”
“음. 아무래도 이번에는 이것저것 돈이 많이 드네. 적자 나면 곤란한데.”
아무튼 그렇게 결과적으로 부술 교육에 관한 일도 결국 나한테 결재 서류가 올라오게 되었는데…….
이를 확인하던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니, 어째서 내가…… 책임자가 되어 있는 거지.’
나는 그냥 내 사업하기도 바쁜 사람인데요……?
자연스럽게 일을 토스하다니, 중전마마, 무서우신 분……!
다행히 세화는 나를 치료하면서도 내게 궁에서 안정하라든가 하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냥 평소대로, 늘 하시던 대로 지내시면 되옵니다.”
“그러시면 안 될 텐데…….”
세화의 말에 소이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태클을 걸었을 뿐.
내 앞에서 티를 내지는 않지만 부술 수업 외에, 내의원 내에서 세화의 능력에 대한 검증을 하겠다고 이래저래 소란이 있는 듯했다.
세화는 힘들겠지만 이런 거까지 내가 참견하는 건 좀 그렇지…….
사실 까놓고 말해서 내의원 의관들이 인정을 하든 안 하든 나는 세화한테 치료를 받을 건데.
의관들이 그걸 모르지도 않을 텐데, 아마도 자존심의 문제인 거 같았다.
본인들이 손도 못 댔던 병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니 아마 치료법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고 검증하려고 하지 않을까.
‘일단은 놔둬 볼까.’
내가 자꾸 개입하면 오히려 더 미운털만 박히는 법이니.
원래 나를 담당하던 내의원 여의들은 내가 미리 불러다 언질을 준 것도 있고, 내가 세화와 성지를 각별히 총애하는 것을 눈치채고 있으므로 적당히 몸을 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세화가 어전에서 내 병을 고치겠다고 말을 꺼냈으니, 애매하게 대립해서는 옹주 자가의 치료를 방해한다고 역풍을 맞을 거라는 걸 궁 안에서 수년간 버텨 온 능구렁이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애초에 원작에서도 여주는 온갖 견제를 받았지만 까딱도 안 했던 ‘기존나쎔’이었으니까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어쩌면 여주를 싫어하던 내의원 내 강경파 수장쯤 되는 인물의 가족(아마 여성)이 갑자기 급환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치료해 주며 대화합의 장이 완성되는 뻔하디뻔한 전개가 일어날지도 모르고.
일단 나는 하던 일에 집중했다.
‘이제 오픈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찻집 겸 공연장인 시월각의 오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점검뿐이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옷 준비하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네.’
건물이 완성되기도 전 다방을 고려풍으로 인테리어하고 옷을 입히겠다는 내 말에 다들 잠시 침묵했으나 바로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움직였던 기억이 선명했다.
권력은 참 좋은 거지…….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이 멀지도 않고, 자료 수집도 어렵지 않았다.
다만 최근에는 그다지 입을 일이 없는 스타일의 옷들이라 주문 제작에 다른 옷들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린 정도?
인테리어 소품은 내 소장품들 중 저렴한 것들을 일부 가져오기도 하고, 사옹원을 통해 고려풍 도자기들을 주문하기도 했다.
덕분에 차근차근 준비가 진행되었고, 기녀들도 처음 입어 보는 스타일의 옷에 즐거워했다던가.
기왕 콘셉트를 맞추는 김에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그냥 고려풍으로 입히기로 했다.
기녀들의 공연용 의상과 비교하면 수수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건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심부름하는 동기(童伎)들도 그렇고, 안내하는 아이들에게도 새 옷을 입히느라고 돈을 좀 썼다.
‘생각해 보니 이거 직원용 유니폼 지급 아닌가.’
실용성은 완전 배제한 의상이지만.
생각해 보면 현대에서 고급 식당 같은 데서 종업원들이 입는 옷도 딱히 실용적으로 편한 옷은 아니지 않나?
격식…… 은 있다면 있고, 분위기에는 확실히 맞는 것 같고. 그럼 문제없겠지?
그리고 애들 옷 해 주는 겸사겸사 나도 고려 복식으로 옷을 하나 지어 입었다.
“후후후.”
평소 입는 옷과는 다소 다른 스타일의 나풀나풀한 옷을 입고 머리 모양도 달리하고 뛰어다니는 나를 보며 천호가 피식 웃었다.
“실은 옹주 자가께서 입고 싶으셨던 것은 아닙니까?”
“오. 들켰는걸.”
내가 깔깔 웃으며 긴 소매를 펄럭이자 천호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옹주 자가께서는 입고 싶으시면 그냥 해서 입으시면 되지 않습니까?”
“에이, 이런 건 혼자 입으면 너무 눈에만 띄고 좀 재미없다고.”
“?”
다들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뭐 어때.
그런 이유로 관계자들은 다들 고려 옷을 입게 된 셈이니 나쁘지 않았다.
얼마 후 오픈일에 시월각에 직접 가서 오픈 준비하는 현장직들의 의견을 묻자 다들 까르르 웃었다.
“재밌어요!”
“소매가 길어요!”
“예뻐서 좋아요!”
다들 까르르 웃으며 즐거워했다.
그야 돈을 내가 댔는걸…… 공짜로 예쁜 옷이 생겼는데 싫을 것도 없었다.
이곳 외에 다른 데서는 입을 일도 없는 옷이지만.
“매향.”
“아기씨! 오셨습니까.”
그렇게 디자인에 차등을 두지 않은 것 같은데 매향이는 유독 화려했다.
“준비는 어때?”
“호호. 이런 무대는 처음이라 조금 떨리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옵니다.”
“매향이도 떨릴 때가 다 있어?”
“그럼요.”
머리 장식을 어루만지며 매향이 후후 웃었다.
“실은 소인이 그날 아기씨를 쫓아갈 때도, 내심 많이 떨었답니다.”
“전혀 몰랐는데.”
신출귀몰한 스토커인 줄 알았지.
“누가 보아도 귀하신 양반댁 아기씨이셨는걸요. 천한 기녀 따위 매를 맞고 쫓겨날지 어찌 알겠습니까. 물론 그런 분이 아니실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요.”
“그래?”
“예.”
고개를 끄덕이며 매향은 눈부시게 웃었다.
“그런데…… 이런 분이실 줄은 몰랐지요.”
매향에게는 앞으로 기방이 어찌 될지에 대해 미리 언질을 주었다.
행수 기녀는 물론 따로 있었지만 다방골 기방에서 정신적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이가 매향이니 앞으로 어찌 될지에 대해 미리 알려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그날 아기씨를 만나지 못했다면 분명 이런 기쁨은 누릴 수 없었겠지요.”
“……그래.”
어쩌면 모든 것이 바뀌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불만을 품는 기녀들도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매향이 이리 기뻐한다면 분명 잘될 일이겠지.
“매향이도 고려가요 같은 거 부르나?”
“아니요. 저는 평소 하던 대로 할 겁니다. 특기인 사람들이 나설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럼 그것도 부를 거야? 꽃그림자랑, 꽃비.”
꽃비는 지천 선생의 두 번째 작품 제목이다. 한자로는 화우(花雨).
제목을 짓기 귀찮았던 건지 의도된 꽃 시리즈인지, 독자들의 의견은 후자였지만 원작가의 말로는 아무 생각 없었다고.
꽃그림자와 꽃비는 매향이 시영원 놀이터에서 연극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의 제목들이기도 했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하나…… OST……? 주제가?’
모티브가 있다 보니 노래를 들으면 원작 소설이 생각난다고 해서, 사람들이 정해진 시간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연극과 달리 언제든 볼 수 있는 소설책을 사도록 만들어 버린 노래였다.
이렇게 본의 아니게 판촉을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덕분에 가끔 가면을 쓴 주연 배우들이 매향의 노래에 맞춰 짧은 하이라이트 공연만 하는 식의 연극 홍보도 꽤 효과를 보고 있다나.
“예. 후후. 요즘 유행 중인걸요. 곡이 바뀔 때 겉옷 색을 바꿀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어떨까요?”
“그것도 괜찮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노출은 안 된다.”
“호호. 안 합니다.”
웃으며 그리 말한 매향이 생각났다는 듯 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안 그래도 다들 어깨에 새로 생긴 우두 자국이 못마땅한 모양이라 반기지는 않을 겁니다.”
“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우두 접종받은 부위에 흔적이 남아 있는데 커 봐야 콩알만 한 그 자국 때문에 그리 싫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안 맞으면 얼굴과 사지에 생길 수도 있는데.
‘체탐인들이 싫다는 건 좀 이해가 갔지만…….’
몸에 특정할 만한 자국이 남는 게 싫다나. 은퇴했는데도 다들 직업병이 심각했다.
그래서 남들 볼 일 없는 부위에 맞으면 되지 않겠냐고 했더니 다들 기겁했지만.
무슨 생각을 한 걸까, 대체.
“다른 지역 기녀들에게도 강제로 맞도록 해 볼까.”
“예?”
다들 우두를 접종받은 사람을 꺼리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하니 기녀와 공노비들에게 강제로 접종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전에 여기처럼 달리 공연할 공간을 좀 만들어 줘야 할 거 같지.’
매향이와 마찬가지로 어느 지역이든 이름난 기녀가 한둘씩은 있으니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공연을 한다면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이거 알려 주고 세자에게 일 시켜야겠다.’
나는 너무 바빠!
내가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이번에는 나와 안면이 있는 다른 기녀들도 다가왔다.
다들 새로운 스타일의 옷이 재밌는 모양이었다.
특히 옷에 맞춰 머리 모양도 고려풍이라 가채를 쓰지 않아도 되니 좋아하는 기녀들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꾸미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머리도 가볍구요!”
“하지만 머리가 너무 수수하지 않습니까?”
“그럼 장신구를 좀 달자. 분위기를 내자는 거지 꼭 재현하자는 건 아니니까.”
조금 바꾸는 것 정도야 뭐 어때.
어차피 현대처럼 인터넷이나 자료가 풍부하지 않아서 고증 틀려도 대부분 모를 거 같은데.
홍보를 겸한 오픈 행사로 며칠간은 기녀들이 퍼레이드처럼 번화가를 가볍게 한 바퀴 돌기로 했기에 다들 준비로 분주했다.
큰길이라 수레를 끌 수 있으니 수레에 올라타 노래를 부르거나, 여러 기녀들이 춤을 추며 걷는 거다. 악공들도 연주를 하며 걸어야 해서 악기 종류에 따라서는 조금 괴로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리허설은 조금 어려웠지만.
“길거리에서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되는 것이지요? 조금 떨리옵니다.”
“옷이 화려하니 빙글빙글 돌기만 해도 시선이 집중될 것 같습니다.”
“어두운 시간이 되면 등을 들고 걸어가면 어떻겠습니까?”
처음 내가 낸 홍보 기획에 다들 꽤 흥미로워하며 다들 의견을 냈다.
다들 비단옷을 입고 있어서 사치스럽다고 욕을 좀 먹을 거 같기는 하지만 매일 하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어차피 저 옷들 입고 공연도 할 거고.
‘약간 전생에 종로에서 연등 행렬 본 거랑 비슷한…… 느낌이려나?’
그러고 보니 고려 시대 옷이 불화(佛畵)에 나오는 옷이랑 비슷하긴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