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46)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46화(146/326)
‘돈을 많이 쓴 보람이 있을지 모르겠네.’
하지만 없어도 상관없었다. 반쯤은 자기만족이었으니까.
시월각의 개업일인 오늘은 다행히 날이 맑았다.
기녀들과 악공들, 광대들은 예정대로 의상을 차려입고 움직였다.
이미 개업식 소문을 퍼트려 놨기에 사람들이 기대에 차서 모여들고 있었다.
악공들이 먼저 악기를 연주하며 걸어 나가면, 그 뒤를 화려한 옷을 입은 여인들이 하늘하늘 춤을 추며 걸어갔다.
어린아이들이 그 뒤를 따라 춤을 추며 뛰어갔는데 동기 아이들과 시영원 아이들이 뒤섞여 있었다.
‘세자의 생각대로 잘 진행되기만 한다면 저 동기 아이들은 평범하게 예인의 삶을 걸을 수 있을지도.’
물론 세상에는 쓰레기도 많아서 힘들겠지만 그걸 막아 주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근데…… 어쩌다 내 일이 이렇게 많아졌지.’
이제 와 그걸 생각해 봤자 의미가 없었지만.
오픈 기념 행사를 보느라 따라가 버린 사람들도 있었지만, 찻집 오픈만 기다렸다 입장한 사람들도 있었다.
행진하며 공연할 수 있는 노래나 춤 대신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던 탓이었다.
찻집 안에서도 직원들도 다 고려 시대 복장으로 입고 있는 것이 신기한지 손님들도 재밌어 보였다. 직원들 중에는 익숙하지 않아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일부는 처음으로 입어 보는 비단옷에 들떠 보였고.
“그런데 왜 저까지 이런 옷을 입고 있는 걸까요.”
“나만 입으면 어색하니까?”
난감한 얼굴의 천호가 어색한 듯 연신 자신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무래도 움직임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반면에 성 겸사복은 어디 기록 영상 자료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역시 체탐인…….’
소이는 그냥 싫지 않은 얼굴이었고.
“이렇게 사람이 많은 줄은 몰랐습니다.”
“소문이 많이 났으니까 어느 정도 형편이 괜찮은 사람들은 한 번쯤은 와 볼걸.”
“이리 사람이 많은데 아기씨의 얼굴을 아는 사람과 마주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소문에 신빙성을 더해 주는 거지, 뭐.”
내 말에 소이는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건물을 올릴 때부터 소문이 무성했던 탓인지 소이의 말대로 손님이 제법 많았다.
아마 내 환심을 사고 싶은 사람들도 오지 않을까.
안 그래도 내 사저에 자꾸 선물 보내서 사람 귀찮게 하는데 매출 올려 주고 눈도장이라도 찍고 싶겠지.
지난번 납치사건 덕분에 내가 몰래 저자 돌아다닌다는 거 이제 알 사람은 다 아는데, 내가 여기 안 올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걸.
덕분에 저자에는 ‘어린아이 함부로 대하지 마라. 실은 변복(變服)한 옹주 자가이실지도 모른다. 죄 없는 양인들을 함부로 핍박하는 자들을 물색하기 위해 일부러 허름한 옷을 입고 저자를 거니시니, 평소 행실이 온당치 못한 자들이 감히 왕족을 모욕한 죄로 의금부로 끌려간다.’라는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들었다.
‘아니, 내가 무슨 언더 커버 보스나 암행어사도 아니고.’
다들 얼마나 찔리는 게 많은 거지.
어린애를 때리거나, 납치해서 인신매매를 안 하면 되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을 하며 시월각 내부를 가볍게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이분이 뉘신 줄 알고 감히!”
“으아앙!”
2층 어느 개별실에서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소란이 일었다.
시월각에 어린아이들이 비교적 많이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다들 가수나 배우들에게 물이나 음식을 전해 주는 등 간단한 심부름꾼 정도의 일을 할 뿐이다.
그러니까 2층에 어린아이는 없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글쎄요.”
여기서 저렇게 목소리를 높일 정도로 대담한 사람이면 제법 신분이 높은 사람이겠는데.
그리 생각하며 안에 들어가니 꿇어앉아 빌고 있는 소녀와 어린 남자아이가 있었다.
“소, 송구합니다. 동생이 무례를 범했습니다.”
시야에 들어온 풍경에 나는 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무례는 둘째치고, 이쪽은 남자 손님들뿐이니 여자아이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됐다. 그런데 왜 여기 여자애가 있지?
일행 중 다소 젊은 편인 사내가 앞으로 나서 나를 막아섰다.
“누구냐?”
“내가 누군지는 그 뒤에 계신 분이 알 것 같은데.”
“뭐…….”
“……옹주 자가. 어찌 이런 곳에 계십니까.”
뒤에 있던 사내의 말에 함께 온 사내들이 벌떡 일어나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내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적지 않지만 그리 많지도 않았다.
“이 무슨 소란입니까.”
“크흠.”
“왜 이 아이가 여기에 있는 것인지 설명해 주시겠지요?”
영천군은 잘못 걸렸다는 듯 얼굴을 구겼다.
안 봐도 뻔했다. 안 된다는 애를 여기까지 끌고 왔겠지.
“그저 차 시중을 들라고 데려왔을 뿐입니다.”
“여기가 어딘지 잊으신 모양입니다.”
“옹주 자가.”
“당장 이곳에서 나가 주시지요.”
“허어, 어찌 종친을 이리 대접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냐? 나 종친이야!
“그런 제가 해야 할 말이 아닙니까.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시고 오셨다고는 아니 하시겠지요? 먼저 옹주의 체면을 깎은 것이 어느 쪽인지 꼭 따져 보아야 하겠습니까.”
네가 먼저 날 무시한 거 같은데 그렇게 생각 안 하나 봐? 나 옹주야!
영천군과 나는 누구 백그라운드가 더 센지 다투는 목도리도마뱀처럼 날을 세웠다.
하지만 이곳은 내 영역이고, 내가 부리는 사람에게 손을 댔다는 것은 나랑 싸워 보겠다는 뜻이었다.
노비들끼리 싸움이 나도 주인 싸움이 되는 법. 그것도 내 앞에서 이런 짓을 벌였는데 내가 가만히 있으면 웃음거리가 될 판이었다.
물론 영천군이야 새파랗게 어린 나한테 밀렸다는 게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영천군은 다른 곳에서는 종친이라 우대받을지 몰라도, 나와 비교하면 항렬과 나이가 위라는 것 외에는 나을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와 비교하면 돈도 없고 권력도 없다는 뜻이었다.
“영천군 대감을 밖으로 뫼시어라.”
“예, 옹주 자가.”
소란을 듣고 달려온 이들은 분위기를 파악하고 내 지시를 따랐다.
영천군도 더 이상 망신당하기는 싫었는지 조용히 따라 나갔다. 영천군과 함께 온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영천군이 시월각에서 아예 나가는 것을 창문 너머로 확인한 나는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앞으로도 영천군은 시월각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해라.”
“그, 그래도 괜찮겠사옵니까.”
“내가 데리고 있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나를 무시하는 처사와 같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다면 내 명대로 이곳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야. 알겠느냐!”
“예, 옹주 자가.”
시영원 아이들은 늘 기운 없는 목소리로 어린 아이들과 놀아 주던 내가 날 선 목소리를 내는 것을 처음 듣고 놀랐는지 굳은 얼굴로 군기가 바싹 들어 대답했다.
나는 아직도 무릎을 꿇고 앉아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여인의 얼굴을 살폈다. 나이는 기껏해야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싶은 정도였다. 너무 어린 아이들은 고용하지 않았으니 아마 동기(童妓)들을 제외하면 여기서 정식으로 일하는 애들 중에서는 가장 어린 편이 아닐까.
‘아니, 영천군 이 미친 자가 이렇게 어린애를……?’
이 정도면 딸뻘 아냐?
대충 옷을 보니 기생도 아니었고, 나를 잘 모르는 걸 보면 시영원 아이도 아니니, 남은 가능성 중 하나인 학당에 공부하러 오던 양인 아이인 것 같았다.
집안이 양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시영원 아이였다면 이렇게 굳은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반사적으로 내 이름을 팔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놈들이 뻑하면 ‘옹주 자가한테 이를 거야!’를 입에 달고 다니며 시영원 출신 형과 언니들의 흑역사를 자극하고 다닌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으니까.
아이들은 많이 놀란 것 같지만 다행히 어디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괜찮으냐.”
“소, 소인은 괜찮……사옵니다. 옹주 자가.”
“누나아!”
“책아.”
울고 있던 아이는 여인의 동생이었는지 남매는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했다.
남동생 쪽은 기껏해야 내 또래(액면가 기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 누나가 끌려오니까 동생이 제 딴에는 누나를 지키겠다고 따라왔던 모양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울음소리 때문에 내가 와서 누나가 무사한 셈이기도 했고.
‘감동적인 장면이기는 하지만 이대로 두면 안 되겠지?’
나는 아직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하는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여기 책임자는 따로 있지만 지금은 내가 정리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여기 정리하고, 이 두 사람은 데리고 가서 앞뒤 사정을 파악해 오너라.”
“예.”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단속해야 할 것이야. 알겠느냐?”
“예!”
저런 놈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긴 했는데 첫날부터 나올 줄이야.
‘기생들이 공연한다고 여기가 기방인 줄 아나.’
이러니 옹주인 내가 관리를 해야 하잖아! 아악! 짜증 나!
이 빡침을 표현하기 위해 기둥이라도 발로 차고 싶은데 보는 눈이 많아 자중할 수밖에 없었다.
……새 건물이기도 하고.
‘근데 생각해 보니 내 돈으로 세운 내 건물인데 내가 발로 좀 차도 상관없지 않나…….’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열을 식히고 있는데 그런 나와는 대조적으로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은 어째 다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다들 뭐가 그리 좋아서 웃고 있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개업 첫날부터 장사가 잘된다 했더니. 모처럼 기분이 좋았는데 저 못된 아저씨 때문에 기분만 잡쳤네.”
“액땜을 하신 셈이 아니겠사옵니까. 곧 매향이도 도착할 테니 나가 보시겠사옵니까?”
“음. 그럴까.”
그러고 보니 슬슬 한 바퀴 돌고 돌아올 시간이었다.
너무 힘들지 않도록 밖에서 홍보하고 돌아온 팀은 휴식 시간을 가진 후 무대 위에 서도록 했으니 매향이 오는 거 보고 좀 놀아 줘야지.
다행히 다른 곳에서는 별문제 없이 장사 중인 모양이었다.
이쪽 소란을 눈치채고 나오려는 것은 애들이 용케 잘 막아서기도 했고.
‘그래도 아래층 사람들은 영천군이 나가는 걸 보긴 했겠지만.’
별로 누구랑 척지고 살 생각은 없는데 세상이 나를 까칠하게 만드네.
냉수 한 잔을 품위 없이 원샷하고 밖으로 나서는데 아까 본 오누이가 보였다. 울음은 그쳤는지 둘이 정답게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을 보니 마음이 훈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오누이구나.’
성원 세자와 나도 거의 저 정도 차이였지.
내가 냉수를 마시는 동안 사정을 알아 온 직원이 정황을 설명해 주었다.
확인해본 바 예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동생은 누나가 일하는 곳을 보고 싶다고 시영원 아이들 틈에 섞여 몰래 들어왔다가 누나가 강제로 이끌려 가는 현장을 목격하고 따라갔던 모양이었다.
저 조그만 게 누나를 지키겠다고 매달렸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했다.
“천호, 저기 팔고 있는 당과 좀 사서 저기 오누이한테 갖다 줘.”
“아. 알겠습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멍하니 오누이를 보고 있었는지, 어쩐 일로 대답이 늦은 천호가 얼른 내 지시대로 움직였다. 오늘은 성 겸사복도 있으니 이런 잔심부름은 천호의 몫이었다.
여기 큰 찻집이 들어서고, 공연이 있다는 걸 안 상인들이 발 빠르게 노점을 세운 덕에 근처에 군것질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많았다.
어차피 우리 가게에서 파는 고급 과자랑은 노선이 다르니 그다지 상관은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영천군도 그것 때문에 온 건가.’
매일 한정으로, 2층 개별실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카스텔라를 주기로 했는데, 소문이 나자마자 예약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밀려들었다고 들었다.
사실 종친들 중에는 카스텔라 먹고 싶어지면 이런저런 구실 붙여서 나한테 간단한 선물 보내는 사람도 있을 정도인데 영천군은 참…….
그사이 천호가 내가 시킨 대로 오누이에게 음식을 전달하고 돌아왔다.
멀리서도 당과를 든 두 사람이 기뻐하는 얼굴이 보여 조금 뿌듯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천호도 쓸데없는 소릴 했다.
“옹…… 아기씨는 아이들에게 참 관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