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47)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47화(147/326)
“후후. 작고 약한 것들은 좀 지켜 줘야지.”
물론 좀 컸다고 나쁜 짓 하고 다니면 두들겨 팰 거야.
“아기씨도 작고 약하십니다만.”
“그래서 이렇게 나 지켜 줄 사람을 끌고 다니잖아.”
내가 나를 둘러싼 성 겸사복과 소이, 천호를 가리키자 셋 다 피식 웃음을 흘렸다.
조선 땅, 그것도 도성 안이 대낮에 아이들이 뛰어다니지 못할 정도로 치안이 개판인 동네는 아니었다.
물론 시대마다 좀 다르긴 하겠지만.
사실 한적한 동네는…… 호랑이가 더 무서울 정도고.
‘건달들은 상당수 광산에 밀어 넣었고. 좀 건전한 애들은 대부분 시영원에 수용해서 갱생하고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도성 자체는 비교적 치안이 좋은 편이었다.
게다가 시영원의 소문이 퍼져서 깔끔하게 하고 다니는 아이들을 감히 건드리는 놈들도 없었으므로 평범한 서민들도 훨씬 안전해졌다.
시영원은 수영 옹주라는 뒷배도 뒷배였지만, 소속된 사람 수가 압도적으로 많고 소속감도 강했다.
게다가 못해도 호신술 정도는 익히고 있었으며 일부는 무예가 제법 뛰어나기도 했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체 비율로 보면 노약자와 어린아이가 많았지만, 그 아이들이 대부분 자랐고 무예까지 익혔다. 절대로 패싸움으로 붙을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어린아이 하나 잘못 건드리면 그야말로 벌통을 들쑤시는 꼴이었다.
안 그래도 옹주 자가 납치 사건 덕분에 불온한 놈들을 색출하느라 한동안 여기저기 뒤집어 놓았으니, 도성 안은 평화로울 수밖에.
그렇게 평화로운 한양은 시월각이 오픈하고 어째선지 고려풍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시월각 사람들이 하고 다니는 것처럼 옷을 새로 맞추는 것까지는 어렵더라도 특히 은근슬쩍 머리 모양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땋아 내린 댕기 머리에 질린 소녀들이 머리 모양을 바꾸기 시작한 거다.
안 그래도 내가 어릴 적(?) 반묶음 유행시켜서 하고 다녔던 아이들이 많이 자라서 이번에도 내가 만든 유행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시월각 덕분에 근래에 고려풍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어쩐지 요새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 머리 모양이 좀 바뀐 거 같았습니다.”
드물게 찾아온 손님에게 차를 권하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자니, 자연히 시월각 이야기가 나왔다.
장안의 화제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근래에 고려풍이 유행하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덕분에 내가 비슷한 고려 시대풍으로 하고 돌아다녀도 티가 나지 않을 정도라 좀 재밌었다.
‘음…… 기왕 이렇게 된 거 솔직히 가체 유행은 좀 없애고 싶네.’
아직은 내가 가체 쓸 일 없지만, 몸이 자라면 나중 일은 모르는 거고.
현실적으로 목 디스크 너무 무서워.
물론 왕실이라고 사람들이 사극에서 나오는 것처럼 매일 가체 쓰고 있는 건 아니라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격식을 차리는 자리에는 하고 다니는 법인데 저거 진짜 꽤 무겁다고.
사실 왕실에서 가체 안 쓰고 다른 거 쓰면 되겠지만 그걸 내가 바꾸기는 아무래도 어려웠다.
이미 법도(法度)라고 박아 버린 건 어설프게 건드려서 좋을 게 없었다.
하지만 원래 왕실에서 쓰면 여염집에서까지 다 따라 하고 싶어 하는 법 아니겠는가,
이 시대에 여성 패션의 유행을 선도하는 건 보통 두 집단이다.
왕실 여성. 그리고 기녀.
극과 극이지만 둘 다 다른 의미로 선망의 대상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 머리를 가장 무겁게, 비싸게 하고 다닐 수 있는 여성들이기도 하고.
‘조선 시대에 머리에 무거운 가체 얹고 급하게 고개 돌리다 목 부러져 죽은 여자도 있었다던데.’
남의 머리카락 머리에 얹고 다니느니 차라리 그냥 보석 장신구 달고 다니자…….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고 머리 기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체 왜 남의 머리카락을 얹고 다니게 된 건지.
대머리라서 가발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가체도 어차피 사치품인데 차라리 귀금속 쪽이 덜 찜찜하고 대대손손(?) 잘 물려받아 쓸 수 있어서 낫지 않을까?
‘유물로 남겨도 더 가치가 있을 거 같고…….’
박물관에서 조선 시대 귀금속류 빈약한 거 보면 좀 아쉽긴 했다.
내가 바꾸고 싶다고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깊이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이 보기 드문 손님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 갑자기 방문하고 싶다고 연락했던 상대는 웃으며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옹주 자가께서 다음에는 어떤 유행을 만드실지 다들 기대하고 있사옵니다.”
“제가 일부러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의도하지 않으셨다지만 기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송안은 그리 말하며 즐거운 듯 후후 웃었다.
기대하지 마…….
“송안 언니도 시월각에 방문하셨나요?”
“아버지께서 권해 주셔서 가족들이 함께 가 보았지요.”
화천군 그 아저씨 참 의외로 가정적이네.
내 생각이 얼굴에 드러난 건지 아니면 그냥 의미 없는 변명인지, 송안이 바로 말을 이었다.
“제 혼사가 무산된 이후로 아버지께서 신경을 많이 써 주십니다.”
“사윗감을 고르는 데에 심사숙고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흠이 발견되니 다들 상심이 크십니다.”
“아하하. 그렇겠군요.”
그나마 참고 그냥 결혼하라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어색하게 웃자 송안도 분위기를 바꿔 보려는 듯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벌써 몇 번째 반복되는 것을 보니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요.”
하지만 집안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혼인을 안 하면 뭔가 문제 있는 거 아니냐는 시선을 받는 시대였다.
혼인을 하지 않으면 주변의 시선도 따가울 수밖에.
‘나야 다들 내 현재 모습만 봐도 감히 혼인하라고 독촉할 사람이 없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생각해 보니 나도 지금 이 병 고치고 나면 혼인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자라는 건 좋지만 그건 좀 귀찮네.
“사실 변변찮은 남자와 혼인하느니 혼자 사는 것이 나을 수도 있어요.”
“예? 그래도 괜찮을까요?”
“돈이 없는 집안인 것도 아니잖아요.”
화천군도 그렇고 아들인 무영군도 여동생에게 재물을 아까워할 인물은 아니었다.
뭐, 굳이 생계가 걱정이면 같은 종친인 내가 돌봐 주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혼인을 안 하는 것을 누가 가만두겠습니까. 혼자 사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요. 제가 옹주 자가처럼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능력까지는 모르겠지만 송안이 총명하다는 말은 좀 들은 것 같은데.
성격은 요즘 혼인 파투 난 여파인지 전보다 좀 덜 얌전해진 거 같기도 하고.
“흠. 그럼…… 능력이 있는지 확인해 보겠어요?”
“예?”
“사서삼경도 떼셨다면서요.”
“예에…….”
참고로 요새는 이것도 기본 교양이란다.
예전이라면 여자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지 않는 집안도 많았지만, 시영원에서 걸인 아이들과 노비들에게도 글을 가르친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유행처럼 너도나도 여자아이들에게까지 글을 가르치게 되었다고.
천민들이 글을 읽을 줄 아는데 양반이 글을 읽지 못한다면 그보다 민망하고 빡치는 일이 있을까.
“산술(算術)도 어느 정도 할 줄 알고요.”
“그……렇죠? 옹주 자가께서 만드신 숫자가 익히기 쉬웠지요.”
이 상황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내 얼굴에 금칠을 하다니 훌륭한 사회성이다.
“사실 시월각을 관리해 줄 신분 높은 관리직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 중이거든요.”
“!”
시월각에는 높은 신분의 손님이 많다.
아무래도 만들 때부터 돈을 좀 때려 박은 보람이 있는지 고급스러운 인상이라, 높으신 분들의 안목에 맞았던 모양이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돈을 쓰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하지만 진상 보존의 법칙은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법.
조용히 와서 돈을 뿌리고 가는 훌륭한 고객님들이 있는가 하면, 상상도 못 한 진상을 부리는 인간들도 있었다.
진상은 성별을 가리지는 않지만, 소란을 일으킬 만큼 용감한 진상은 대체로 지위와 권력이 있는 놈들이었다.
오픈하고 조금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네가 감히 옹주 자가를 등에 업고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며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던가.
그래도 제정신으로는 잘 못 할 텐데 술에 취하면 용감해지는 법이더라.
본래 시월각 안에서의 음주는 금지했는데 밖에서 음주하고 들어오는 것까지는 막지 못한 탓이었다.
“아…… 첫날 일어난 일은 저도 전해 들었습니다.”
“소문이 빠르지요.”
내가 ‘신분 높은 관리직’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유를 빠르게 깨달은 송안이 작게 탄식했다.
시월각 개업과 동시에 영천군이 가장 유명해졌지만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진상들이 있었다.
‘그러면 안 된다는 자각이 없다는 게 큰 문제지.’
공연이 끝난 후 박수 치고 환호하는 정도야 나쁠 거 없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추파를 던지거나 무대에서 내려온 이들을 나중에 강제로 끌고 가려는 놈들이 있어서 어린 나이에 뒷목을 잡아야 했다.
‘덕분에 오픈하고 한동안은 좀 기강을 잡고 다니느라 바빴지.’
그래도 이제 어느 정도 안정된 거 같으니까 내가 매일 출근 도장을 찍을 필요까지는 없었다.
오픈 첫날 엄격하게 종친까지 쫓아낸 게 제대로 소문난 모양이라 오히려 첫날 이후로는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고.
혈연인 종친한테도 엄격한데 다른 사람한테는 오죽하겠냐는 말이었다.
물론 덕분에 중전에게 불려가 너무 과하게는 하지 말라고 한마디 적당히 주의를 듣긴 했지만.
세자도 적당히 두둔해 주었다고 들었다.
의외로 적당적당 모자(母子)였다.
애초에 시월각이 내가 직접 운영에 관여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 그곳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여인을 희롱하였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무례한 일이었으니까. 그에 관해서는 오히려 왕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들었다.
그 말은 본인의 귀에도 들어갔을 테니 한동안 자중하지 않을까.
“이런 말씀을 올리는 것은 법도에 맞지 않사오나…… 실은 저도 조금, 통쾌하였습니다.”
“푸훗.”
송안의 수줍은 고백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흠. 어쩌면 그대로 화가 나서 본격적으로 싸우자고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만, 의외로 조용해서 더 놀랐습니다.”
“아…… 실은 그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
“실은 영천군 숙부께서 가까운 종친들을 불러서 시월각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하시며 울분을 토하셨답니다.”
그렇게 영천군이 여론 몰이를 계획하였으나 당시 참여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대체로 이런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렇군요. 저는 가족들 데리고 가서 즐겁게 감란전병 먹고 왔는뎅.’
‘나도 부인이랑 갔다 왔는데 조용하고 분위기도 좋던데 왜 그랬을깡.’
‘종친인 거 알아보고 다과도 더 주던뎅.’
‘우리 딸도 갔다가 머리 모양 바꿔서 해 보고 싶다고 했더니 곧 복식 체험 행사 기획하고 있으니 나중에 꼭 다시 찾아달라고 해서 또 가겠다고 난리던뎅.’
나한텐~ 잘해 주던데~ 왜 그랬을까~
그렇게 하하호호한 종친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나한테 영천군의 행각을 고자질했다.
딱히 나를 찾아올 구실이 없는 사람들은 서신으로 소상하게.
가족 중에 그럭저럭 나를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은 관계의 사람이 있다면 뭔가 구실을 붙여서 직접 말을 전했다.
지금 송안이 하는 것처럼.
“아버지께서는 철이 들지 못한 동생이 부끄럽다며 옹주 자가께 대신 사죄의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동생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요.”
그치, 그치. 혈육 새X, 가끔 패고 싶을 정도로 사람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 거 나도 다 알지.
그 사람들이 모두 말을 맞춰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저 사죄의 말들은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송안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자 종친들에게 나를 도와 일을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지만, 모두 황송하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이유는 다들 비슷했다.
그럴 능력이 없다.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괜히 욕심을 부린다는 오해를 사는 것이 두려운 것도 있겠지만, 아마 저 대답이 거짓도 아닐 거다.
송안만큼은 아니어도 다들 그런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모양이니.
“옹주 자가께서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굳이 선물까지 들고 찾아온 송안이 미션 클리어에 안도한 듯,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 얼굴에는 ‘저는 정말 그 숙부랑 얽히고 싶지 않아요!’라고 쓰여 있어서 나는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안 그래도 이상한 혼사 들고 왔던 숙부가 괜히 옹주의 노여움까지 사서 도매금으로 묶이게 생겼으니 유쾌할 턱이 있나.
화천군에게는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동생이겠지만, 송안에게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