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49)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49화(149/326)
질 수 없다는 생각에 나도 세자의 볼을 잡았다.
“고지부도(고집불통).”
“?!”
후후. 세자 저하의 얼굴을 이렇게 떡 주무르듯 주물럭거리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뿐일 거다.
근데 네가 먼저 시작함.
“어허, 네 어찌 오라비에게 이리 불경한 것이야.”
“뭐…… 불만이면 쫓아내시든가.”
사람이란 돈이 많으면 겁이 없어지지. 쫓아내면 내가 갈 데가 없으랴.
그리고 오랜만에 세자의 볼따구니를 주무른 나는 뭔가 위화감을 느꼈고, 숨기지 않고 본인에게 던졌다.
“근데 오라버니.”
“?”
“피부 탄력이 예전 같지 않네……. 관리 좀 하지?”
“!!”
“음. 수면 부족인가. 얼굴도 좀 까칠한 거 같고.”
나는 애잔한 눈으로 세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아, 글쎄. 예전의 그 감촉이 아니라니까……. 역시 오라버니도 나이를 많이 먹긴 했어.”
그리 말하며 나는 흥미가 떨어져 손을 뗐다.
에잉. 이제 영 손맛이 없네.
내가 어릴 적 세자의 볼을 좀 주물렀다는 사실을 아는 궁녀들은 웃음을 참기 위해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세자가 오고 조금 긴장한 분위기였던 세화도 내 목소리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고개를 돌렸다.
아, 진짜라니까.
“하긴 오라버니도 이제 말랑말랑할 나이가 아니지.”
“아니…… 내가 왜 말랑말랑해야 하느냐.”
나는 세자의 항의를 못 들은 척하고 세화에게 말을 건넸다.
“세화. 바쁘겠지만 시간 내서 세자 저하 피부 미용 관리 좀 해 주겠어? 아직 장가도 못 갔는데 얼굴이 저래서야, 원.”
“…….”
본인의 볼을 어루만지며 침묵하는 세자를 차마 쳐다보지도 못한 세화가 어깨를 가늘게 떨며 겨우 입을 열었다.
“……예엣, 옹주 자가.”
“지금 시침 가능하겠어?”
너무 웃는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세화가 진정되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
‘옹주 자가 곁에 있는 분들은 분명 즐거우시겠지.’
시침을 마치고 나오던 세화는 아까 전 일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혜민서에서도 몇 번 뵈었으니 어떤 분인지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자주 보니 또 느낌이 달랐다.
다들 세화가 너무 침착하고 담대하다고 했지만 지엄한 궁에 처음 들어와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특히 왕족들이 기거하는 처소들은 엄숙하고 무서웠다.
하지만 언제나, 옹주 자가가 계시는 곳만 마치 다른 공간 같았다.
‘게다가 옹주 자가께서 나를 편히 여기시니 다행이지. 아마 옹주 자가와의 연이 없이 내의원에 들어왔다면 훨씬 더 힘들었을 텐데, 참으로 운이 좋았구나.’
세자와 옹주는 마치 여염집 오누이같이 티격태격 사이가 좋았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볼 때마다 자연히 생이별한 동생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수천이 그 아이도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까.’
혜민서에 있는 동안 환자를 보러 다니는 척 조용히 수소문을 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동생 수천이도 그날 무사히 도망친 모양이었다. 덕분에 행방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어쩌면 그날 함께 있었던 옹주 자가라면 무언가 알고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걸 물어보려면 자신이 누구인지도 먼저 밝혀야 했다.
옹주 자가께서 관대한 성품이라는 것은 알지만, 과연 역적의 자식이 신분을 속이고 궁 안에 들어와 있는 것까지 용인해 줄까?
지금까지처럼 자신을 믿고 치료하라며 몸을 맡길 수 있을까?
“?”
탕약이 든 사기그릇은 뒤따라왔던 의녀에게 맡긴 터라 가벼운 몸으로 내의원으로 돌아가려는데, 눈앞에 뜻밖의 인물이 서 있었다.
‘분명 세자 저하의 뒤를 따르던 지밀상궁이신 것 같은데.’
자신의 궁녀들을 직접 소개해 준 옹주와는 달리 세자 쪽 사람은 전혀 모르지만 그래도 몇 번 마주치며 얼굴은 기억하고 있었다.
“세자 저하께서 찾으십니다.”
“!”
시침을 감시하러 온 것 같던 세자는 옹주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먼저 옹주의 처소를 떠났다. 시침을 노출되어 있는 부분에만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아무리 친 오라버니라 해도 과년한 여동생이 시침을 받는 동안 곁에 있을 수는 없었다.
‘그냥 동생이랑 놀러 오신 줄 알았는데.’
세화에게 볼일이 있었던 걸까.
상궁을 따라가니 내관에게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던 세자가 세화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갑자기 불러내어 놀라지 않았는가.”
“아니옵니다.”
“옹주가 없는 곳에서 확인할 것들이 있어 문 상궁을 통해 자네를 불렀네.”
세자는 문 상궁과 송 내관을 소개해 주었다.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이 두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내 명을 사칭한다면 응하지 말게.”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사옵니다.”
옹주 자가께서 어린 시절 지금의 세자 저하가 먹을 독이 든 곶감을 대신 먹고 자라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이었다.
설마 세자도 아닌 옹주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야 있겠냐마는 걱정되는 것이 당연했다.
‘만약 옹주 자가가 아니었다면…… 세자 저하께서 자라지 않는 몸이 되었을지도 모르니…….’
만약 그랬다면 세자를 폐하여야 한다는 상소가 들불처럼 이어지지 않았을까.
옹주 자가께는 송구한 말씀이지만 아마 모든 사람들이 세자가 아닌 옹주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세자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고.
‘왕실 윗전들께서 옹주 자가를 애지중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겠지.’
세화의 기억 속 아직 어리던 세자 저하 역시 하나뿐인 누이동생을 무척이나 애지중지했었다.
그때는 아마 아직 옹주 자가께서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때였지만.
그래도 그 모습을 보고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었다.
“옹주의 상태에 대해 묻고 싶어 불렀네. 옹주 앞에서는 아무래도 깊이 묻기가 어려워서.”
“예. 세자 저하. 옹주 자가께서는…….”
세화는 지금 옹주의 몸 상태와 앞으로의 진료 계획에 대해 술술 털어놓았다.
사람의 병이란 의서대로만 증상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더 면밀하게 살펴야 했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일단 지금 상태는 순조로웠다. 다행스럽게도 옹주는 지금껏 아무 불편이 없었다는 말 그대로 무척 건강했다.
“다만 몇 가지 약재가 더 필요하여 위에 말씀을 올렸사옵니다.”
“구하기 어려운 약재인가?”
“그다지 쓰이지 않는 약재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의원이라고 모든 병을 알고, 모든 약재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화도 그 약재가 쓰이는 곳을 많이 알지 못하였으므로 내의원에 재고가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정말로, 시아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인가.”
“물론이옵니다.”
벌써 몇 번째 듣는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세화의 답은 하나였다.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 고치겠다고 나섰다.
그러니 의원이 해야 할 일 역시 하나였다.
“필요한 약재가 있다면 얼마든지 청하여도 좋다. 시아의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내 무엇을 아낄까.”
“심려치 마시옵소서.”
“……수영 옹주가 왕녀로 태어났다고는 하나 일찍 생모를 잃은…… 박복한 아이이기도 하네.”
세화는 세자가 생략한 내용을 알 것 같았다.
수영 옹주는 첫째 오라버니인 성원 세자를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어머니를 잃고, 태어나지도 못한 동생도 잃었다.
심지어 그런 모략을 꾸민 이는 피를 나눈 형제였다. 옹주의 위로 셋이나 있던 형제들 중 남은 이는 지금 눈앞에 있는 세자 저하 하나뿐이었다.
“지금까지는 궐 안에서 함께 지냈지만 만약 병이 나아 자라게 된다면 하가해서 궐 밖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지. 그리된다면 나는 지금까지처럼 계속 그 아이의 곁에 있을 수 없겠지만, 분명 옹주에게는 앞으로도 자네들이 필요할 것이네.”
“저하.”
옹주의 병이 나으면 낫는 대로 옹주는 세자의 곁을 떠날지도 몰랐다.
세자는 조금 복잡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곧 환히 웃으며 말했다.
“나는 자네의 심성을 믿네. 우연이었다고는 하나 저자에서 자네를 처음 만난 그날 자네가 아무런 이유도, 망설임도 없이 길에 쓰러져 있는 이를 데려가 치료하는 모습을 보았지.”
“……!”
“그런 자네이기에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 자네가 옹주를 치료하게 되어 다행이야. 그러니…… 부디 옹주를 잘 부탁하네.”
“예, 세자 저하.”
저물어 가는 석양 아래에서 세화를 보는 세자의 눈빛이 무척이나 다정했기에 세화는 무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수영 옹주가 보고 있었다면 ‘미남계다! 미남계를 쓰고 있어!’라고 외쳤을 풍경을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바라보는 송 내관과 문 상궁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정작, 세화는 그들의 기대를 이뤄 주지 않았다.
“하온데 저하.”
“무슨 일인가?”
“옹주 자가께서 아까 세자 저하의 피부 미용에 대해 심려하고 계셨사온데.”
“아니, 필요 없다.”
“피부가 상하고 안색이 좋지 않다는 것은 병의 시작일 수도 있사옵니다.”
“아니래도.”
모처럼 분위기 잡고 있던 세자는 질색했지만 세화는 굴하지 않았다.
“송구하오나 진맥을 받고 계시온지요.”
“…….”
중전과 옹주가 들었다면 기함했을 일이지만 세자는 정기 검진도 달가워하지 않아서 피해 다니고 있었다. 입막음을 당한 의관들은 고자질했다는 소리를 들을까 무서워 중전에게도 고하지 않고 있었고.
“지금은 달리 미편한 곳이 없다 해도, 미리 진맥을 받아 보심이 옳을 듯하옵니다.”
“그냥 피로가 쌓였을 뿐이네. 시아가, 수영 옹주도 자주 피곤하다고 하지 않는가.”
“옹주 자가께서 피곤해하시는 것은 몸의 불균형 때문이겠지요. 게다가 평소 활동량이 많은 분이시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직 어리신 육체 덕분에 회복도 빠르십니다. 세자 저하와 어찌 비교할 수 있겠사옵니다.”
혹시 이거 나 늙었다는 뜻인가.
세자는 잠시 움찔했으나 세화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물론 시아와 비교하면 늙었다는 표현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다만.
“저하.”
“……정 그렇다면 마음대로 진맥해 보게.”
세화가 엄격한 표정으로 자신을 부르자 어쩐지 찔끔한 세자는 결국 맥없이 팔을 내밀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어쩐지 세화에게선 수년간 지켜봐 온 하나뿐인 누이동생의 끈질김이 느껴졌다.
‘말하는 대로 해 주지 않으면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거 같다.’
게다가 거부하면 중전과 옹주에게 바로 고할 수 있는 위치이기까지.
다른 의관들에게 했던 것처럼 압박을 주자니 막 내의원에 들어온 신입(심지어 여동생 치료하는 중)을 괴롭히는 것 같고.
심지어 남들이 뭐라고 하든 결국 종두법을 실행에 옮긴 쇠고집이 아니던가.
‘하지만 선량하고 신념 있고 고집 있는 사람은…… 싫지 않지.’
온통 제 욕심 채우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늙은 능구렁이들만 보다 보면, 이런 사람에게는 약해지는 법이었다.
그리고 세자는 그날 밤, 그렇게 충동적으로 무방비하게 제 팔목을 내어 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오라버니, 과로라며? 어쩐지 피부 상태가 쓰…… 중년 아저씨 수준이더라니!”
세자를 진맥한 후 다시 옹주 처소로 돌아온 세화를 통해 세자의 과로 상태를 들은 옹주가 잔소리를 퍼부으며 동궁전에 난입했으니까.
“아니, 그건 좀 너무하지 않느냐!”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닌데!
물론 옹주는 언제나처럼 세자의 항변 따윈 들어주지 않았다.
“누워, 누워! 잘 시간이야!”
옹주가 치료를 받는 데 방해하면 안 된다는 명목으로 고자질이 막혀 아쉬워하던 문 상궁은 당연히 옹주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