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54)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54화(15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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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와 옹주가 떠나고 개유와에 홀로 남은 세화는 궁녀들의 조용한 시선을 받으며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세자 저하께서 책을 떨어지는 것을 막아 주셨을 뿐 오해하실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문 상궁은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다지 알겠다는 얼굴은 아니었다.
“저, 정말 아닙니다.”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저 조금 한숨이 섞인 목소리로 그리 말할 뿐.
떨어진 책을 정리하며 세화는 문 상궁의 눈치를 보았다.
‘……문 상궁 마마님. 말투가 좀 바뀌지 않았나?’
저렇게 정중한 느낌이 아니었던 것도 같고, 원래 그랬던 것도 같고.
“후우.”
함께 책을 정리하던 문 상궁이 마치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누구든 좋으니 세자 저하께서 여인에게 관심 좀 보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그렇군……요.”
한숨의 방향이 달랐다는 사실을 깨달은 세화는 조금 안도하면서도 당황해 눈치를 살폈다.
마찬가지로 함께 책을 정리하던 동궁전 상궁들도 가끔 묘하게 실망한 듯한 얼굴을 할 뿐 그다지 세화를 탓하거나, 화가 난 기색은 없었다.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보지?’
동궁전 지밀상궁이란 훗날의 대전상궁이 될 가능성도 높은 사람이었으니, 그쯤 되면 어의도 함부로 못 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깍듯함은 대체 뭐지.’
옹주 자가의 궁녀들이야 지밀나인인 소이와 워낙에 안면이 있기도 하고 친근한 감이 있었지만 동궁전 나인들이 이럴 이유는 뭘까.
옹주 자가께서 인망이 있으신 덕분일까.
시아가 들었다면 응 그거 아냐, 라고 단박에 반박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시아는 세자와 술래잡기를 하느라 바빠 이 자리에 없었다.
“옹주 자가. 저는 대체 왜 이렇게 뛰어야 하는 걸까요.”
“하하하. 운동?”
결국 익위사 관원들의 포위망까지 뚫고 나온 천호가 후원에 도착해 겨우 한숨을 돌리며 천천히 걸었다.
“흐음. 그냥 적당히 붙잡혀 주지 그랬어. 세자 저하를 거슬러서 나중에 어쩌려고.”
“아니, 옹주 자가께서 시키신 일이 아닙니까.”
“그렇게 필사적으로 탈주할 줄은 몰랐지이. 이래서야 어디 출세하겠어?”
“출세할 생각 없다니까요.”
“익위사 관원들의 원한까지 샀고.”
“아, 그건 좀 곤란하네요.”
세자의 측근인 만큼 장래 확실한 출세 루트 밟고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천호의 얼굴에도 약간 아쉬움이 흘렀지만 그뿐이었다.
툴툴거리며 천호도 겨우 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직 선선한 날씨인데도 한참을 달린 덕인지 땀이 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도망치신 겁니까? 세자 저하는 뭘 그리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하시고.”
“뭐, 괜히 찔리는 게 있는 모양이지.”
딱히 정말 중전마마에게 둘이 껴안고 있었다고 미주알고주알 고할 생각은 없는데 저렇게 필사적으로 막을 줄이야.
‘괜히 소문이라도 났다가 둘이 어색해지면 그게 더 곤란하다고.’
내가 세자의 연애 사정을 막아서 뭐 하냐. 탈주…… 아니, 독립만 멀어지지.
“그런데 여기는 대체 어디입니까?”
“원래 궁이 좀 넓으니까 이런 곳들이 좀 있어. 나도 여기까지는 잘 안 오지만…….”
가끔은 괜찮겠지.
나는 느긋하게 걸으며 천호를 안내했다.
“흐음. 오라버니가 여기까지 오면 슬슬 붙잡혀 주도록 할까.”
“두 분은 정말 사이가 좋으십니다.”
“뭐, 궁 안에 워낙에 사람이 없으니 말이지. 그러니 밉보였다고 너무 걱정할 거 없어.”
“안 한다니까요. 거기 너무 빡빡해 보여서.”
“너는 애가 참 출세할 생각이 없어.”
“그러면 아니 됩니까?”
“너 한문도 읽을 줄 알지? 전에 보니까 알아보는 눈치던데.”
“아…… 조금 배웠습니다.”
“글도 읽을 수 있고, 무예도 출중하고. 나 같은 권력자와 연까지 있지. 다른 사람이라면 출세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너는 뭘 하고 싶은데? 하고 싶은 게 있을 거 아냐?”
물론 이 시대에 자아실현이니 하는 거창한 생각을 품는 사람이 드물지도 모르지만 다들 꿈 정도는 꾸는 법 아닌가.
게다가 천호는 아직 어린 나이에 비해 제법 능력도 나쁘지 않아서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높은 자리로 갈 가능성이 있었다.
“저는 그냥…… 누님만 찾을 수 있으면 그 외에는 크게 바라는 건 없어요.”
“누님?”
“예. 어릴 적에 헤어졌거든요.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알 수 없고. 너무 어릴 적 헤어져서 지금 본다고 서로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네요.”
이산가족이었군.
“왜 헤어졌는데?”
“저도 아주 어릴 적이라.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 그저 집안 사정이 뭔가 있었겠거니 할 뿐이죠.”
하긴 부모님이 안 계시고 숙부와 사는 걸 보면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그런데, 그럼 더 출세해야 하는 거 아냐? 출세해서 이름을 알리면 누나가 찾아올지도 모르잖아.”
“이름을 알릴 정도로 출세하려면 과거 급제 정도는 해야 가능하지 않겠어요?”
“음. 그것도 그렇네.”
그리고 무과든 문과든 급제는 만만치 않지.
“그럼 과거 볼래?”
“아니, 그거 그렇게 가볍게 결정할 일이 아니잖아요.”
“하긴.”
돈도 시간도 충분한 집안이 아니면 어려운 것이 과거 준비였다.
‘나를 구해준 공도 있겠다, 사실 그 정도 편의는 봐줄 수 있지만.’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공시 생활에 매달리라고 하기도 좀 그렇지.
나는 과거 얘기는 그만두고 적당히 위로의 말을 건넸다.
“누나 빨리 찾으면 좋겠네.”
“예.”
어쩌면 소식이 끊긴 상태인 게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을 수 있어 더 희망적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 그 외에는? 보통 어릴 적에는 장군이 되고 싶다는 꿈같은 거 꾸지 않나?”
“글쎄요…….”
천호가 말을 흐리기에 그냥 더 캐묻지 않기로 했다.
마침,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기도 했고.
“옹주 자가가 아니십니까?”
“아, 오랜만입니다. 정 숙의.”
후궁 중 한 명인 정 숙의는 내가 어릴 적부터 궁 안에서 자주 마주쳤기에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럭저럭 무난한 사람이기도 하고.’
듣기로는 이 사람도 갓난아기를 잃은 적이 있다고 하던데 그 때문인지 나에게 유독 살가웠다.
물론 대부분의 후궁들은 나에게 살가웠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노후를 맡길 자식이 없어서 나를 맡고 싶어 한 후궁들도 있었겠지만…….
‘다들 태생이 좋은 집안 딸들이라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괜히 세자나 나와 안 좋게 지낼 이유도 없었다.
나도 그럭저럭 가끔 안부나 전하고 간식 보내 주며 챙겨 주고 있었고.
“옹주 자가께서 일전에 보내 주신 간식은 맛있게 먹었사옵니다.”
“입맛에 맞다니 다행입니다. 근래에 건강이 좋지 않다는 말은 들었는데 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심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히 이리 산책 다닐 정도는 되옵니다.”
“날이 추워지니 조심하세요.”
안부 인사는 좀 귀찮아.
“예. 옹주 자가께서도 건강을 조심하시어요. 후궁에만 있는 저도 옹주 자가께서 늘 바쁘시다는 건 알고 있사옵니다. 여전히 재미있는 일들을 하고 계시다지요.”
“하하.”
“특히 그 놀이 기구라는 것은 저희도 한번 보고 싶다는 얘기를 한답니다. 하지만 궁 밖으로 나갈 수는 없는 처지라 소문만 듣고 있지요.”
아…… 뭐지 왜 갑자기 분위기 민원…….
“그, 궁에도 비슷한 걸 하나 만들어 볼까요.”
“그래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 나이 먹어도 놀이 기구는 타고 싶지.
안 그래도 궁 안에서 할 일도 없고. 왕은 바쁘고, 후궁은 심심해.
‘다만 내관들의 노동이 늘어나겠는데.’
후궁 마마님들이 타는 걸 달리 누가 돌리리.
남 일이지만.
“그럼 일단 아바마마께도 한번 여쭙고 만들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옹주 자가.”
내 대답에 활짝 웃으며 답한 숙의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후후 웃었다.
“어찌 그리 쳐다보십니까?”
“후후. 옹주 자가를 뵙고 있으면 참으로 많이 닮으셨다는 생각이 들어 자꾸 옛 생각이 나옵니다.”
“?”
내 기억에 별로 내 생모랑 친했던 것 같지는 않은데.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조금 아련한 얼굴을 했던 숙의가 다른 곳을 바라보며 또다시 호호 웃었다.
“어찌 이런 곳에 궁녀들도 없이 계신가 했더니 세자 저하와 숨바꼭질 중이셨나 봅니다. 여전히 우애가 좋으십니다.”
“앗?”
정 숙의가 바라보는 곳을 보니 못마땅한 표정의 세자가 뒤에 익위사 관원들까지 끌고 와 있었다.
“에고. 결국 들켜 버렸네.”
“이런, 제가 방해를 한 모양입니다.”
“아닙니다. 슬슬 질려서 잡혀 줄까 하고 있던 참이거든요. 날이 추우니 밖에 너무 오래 계시진 마세요.”
나는 그렇게 적당히 사회생활을 마치곤 자진해서 세자를 향해 갔다.
“어휴, 오라버니. 이렇게 느려서야 어떻게 해?”
“넌 대체 어디서 저런 녀석을 데리고 온 것이냐. 아무튼 이리 좀 오너라.”
“으응.”
적당히 숙의와도 작별 인사를 하고 세자에게 끌려가면서 나는 갑자기 떨어진 퀘스트에 대한 고민에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궁중에 놀이 기구가 없었지. 여기다 만들 거면 안전장치 좀 더 생각해야 하나.’
높으신 분들이 타야 하는 거니 좀 더 이것저것 신경을 써야 할 거 같고.
만들면 완전…… 고급품 하나 나올 거 같은데.
***
“마마님. 그만 들어가시지요.”
“그래.”
“무슨 생각을 그리하시옵니까.”
“……아무래도 옹주 자가를 보고 있으면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벌써 수년간을 함께해 온 지밀상궁에게 그리 말하며 정 숙의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