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56)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56화(156/326)
“앞으로 저놈 봉록은 네가 주어야 한다?”
“알았다니까. 거 세자 저하씩이나 되어서 쫀쫀하게.”
그렇게 말하면서 세 사람은 지친 듯 차를 마시고 있었다.
단란한 오누이라는 건 대충 알고 있었다만 대체 뭘 하는 건지.
이런 천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건지 옹주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오라버니 오늘 한가해 보이네?”
“너와 저 녀석 덕분에 무예 시간을 뺐다. 대신 익위사 녀석들은 앞으로 더 단련을 시켜야지 안 되겠구나. 어린 녀석 하나 못 잡아서야 원.”
세자의 말을 들은 천호는 오늘 옹주 자가의 옆에 남기로 한 선택이 훌륭한 선택이었음을 가슴에 새겼다.
“참, 아까 천호 뭐 전할 게 있어서 온 거였지?”
“예, 옹주 자가.”
굳이 옹주 처소로 다시 돌아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실 그대로 퇴궐했어도 지쳤나 보다 싶어서 그러려니 해 주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오늘 안에 전해 주었으면 한다는 서신들이 있어서다.
아직까지 품에 넣어 둔 것들을 꺼내 옹주에게 건네니 옹주는 찻잔을 잠시 밀어 두고 서신들을 펼쳤다.
“아, 이거 베껴 쓰는 것도 완료되었나 보구나.”
“무얼 말이냐?”
“응. 시영원 아이들 중에 지방에 보냈던 아이들이 일종의 박물지(博物志) 같은 것을 써 오는데 그걸 정리하면서 한 권씩 더 만들어서 보관하려고 생각 중이거든…… 아.”
거기까지 말한 옹주가 무언가 생각난 듯 탄성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그 지역에 자생하는 나무나 약초에 대해서도 그림과 함께 기록해 놨던데. 내가 읽어 본 바로는 처음 보는 것도 많았거든. 세화가 찾는 거랑 비슷한…… 약초도 있으려나?”
“…….”
“…….”
세자와 세화 의관의 시선이 옹주를 향했다.
“그 약초는 추운 지역에서 자생하는 종류이니 지역에 따라 확인하면 좋을 듯합니다.”
“그러게, 그것도 가져다 확인해야겠다.”
“넌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냐.”
“내가 시킨 거 아니야. 아이들이 자체적으로 하는 일이라고.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생각났는데 오라버니.”
“?”
“혹시 지역 간 우편 전달 체계를 만들 생각 없어?”
“우편(郵便)? 갑자기? 왜?”
“음. 멀리 있는 애들 편지 받는 게 좀 힘들어서…… 어차피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 서신을 주고받는데 이거 은근히 위험하고 낭비 같잖아? 오히려 같은 지방으로 가는 사람들은 같이 가면 더 안전한 법이니까. 무예가 뛰어난 사람 몇 명을 국가에서 고용해서 편지나 가벼운 짐을 전달하게 하는 거지. 개인적으로 보내는 것보다는 믿을 만하지 않겠어? 워낙에 산길도 위험하고.”
“흐음.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구나. 각 지방에서 올라온 선비들이 과거를 보고 서울에 정착하는 법이니 다들 본가는 지방에 있어서 종종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고…….”
“여러 사람에게서 비용을 받으면 오히려 여비를 절약할 수 있지. 국가에서 한다면 신뢰도도 높으니 사람들도 믿고 맡길 수 있고.”
“그래. 다음에 본격적으로 논의해 보아야겠다.”
“서신도 그렇고 너무 크지 않은 물건도 함께 보낼 수 있으면 좋을 거야. 물론 요금에 대해서도 좀 더 세분화해야 하고. 기왕이면 도로도 조금이라도 정비하면 좋을 텐데.”
“거리에 비례해서 요금을 정해야겠구나. 큰 고을일수록 길이 잘 닦여 있어 오가기가 편하니 그 점도 고려해야 할 거고.”
진지하게 논의를 시작하는 오누이를 보며 세화와 천호는 생각했다.
‘이렇게 갑자기 정책 논의를 하네. 정말 이상한 오누이야.’
얼마 후, 확인한 결과 시영원 아이들이 만들어 온 문서 중에 세화가 찾던 약초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작에서는 어떻게 찾았더라.’
뭔가 세화가 알게 된 인맥이 어찌어찌 닿아 소문을 듣고 달려갔던 것 같은데.
여기서도 가만 놔뒀으면 어떻게든 연결이 되지 않았을까?
‘전개가 많이 바뀌니 이게 문제네.’
결과적으로는 다 잘됐기는 하다만.
아직 부족한 감이 있어 책으로 제대로 엮은 것은 아니었다만 세화가 찾던 약초가 어느 지역에서 나오는지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도감을 직접 작성한 아이가 아직 그 지역에 남아 있다면서요. 그럼 찾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으니 이제 괜찮지 않을까요?”
“하지만 여기 적힌 바로는 본인이 직접 따 온 것도 아니고 그저 비슷한 풀에 다른 특징이 있는 약초가 있다는 것 정도이니까요.”
세화가 찾는 약초는 특히 겨울에 나는 것을 캐 와서 상하기 전에 바로 약으로 만들어야 효험이 있다는 특이하고 성가신 약초였다.
“정말 성가시네.”
“송구합니다.”
“세화 탓이 아니잖아.”
“하오나…… 약초에 대해 제대로 점검하지 못한 것은 저의 잘못입니다.”
“그것도 됐어. 당장 중요한 일도 아니고.”
“예에…….”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그 약초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 강원도의 어느 산속이라는 사실이었다.
‘날도 추워지는데.’
아무리 겨울에 채취해야 하는 물건이라지만 잘 쓰이지도 않는 풀을 찾는 것이 쉬울 거 같지는 않았다.
물론 세화는 의욕이 넘쳤다.
“제가 직접 가서 구해 오겠습니다!”
“으음. 마음만은 고맙지만 위험할 것 같은데.”
겨울, 강원도에 안 좋은 기억이 있는 나와 세자는 사실 키워드만으로도 아까부터 절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날이 추워지는데 어쩌려고.”
“초겨울 한철에만 찾을 수 있는 약초입니다. 지금이 딱 적기이옵니다.”
약초는 약초인데 워낙에 쓸모가 애매한 풀이라 딱히 심마니들도 모를 거라나. 정작 세화는 스승에게서 의술을 배울 때 직접 캐 온 적도 있다고 했다.
‘음…… 그러고 보니 분명 원작 소설에서 둘이 썸 타는 것도 겨울 산골이었지.’
그건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원래 거기서 첫 만남이어야 했는데 정말 뭐가 많이 뒤틀렸다.
이래저래 못 만났을 수도 있었지 않을까 생각하면 좀 무섭기도 했다.
나는 일단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무슨 산을 타려고 그래.”
“제가 의술을 배운 것도 산속이었는 걸요. 산속은 익숙합니다.”
“호랑이 나와.”
“그…….”
세화의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내 말에 갑자기 방 안이 조용해졌다.
앗, 안 돼.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모두의 PTSD가…….
그리고 조용히 듣고 있던 세자는 아예 다른 규모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아예 군사들과 함께 가면 되겠지.”
“오라버니.”
“강무(講武)가…… 곧 있지 않겠느냐. 아바마마께 고하여 보겠다.”
“…….”
강무(講武)라.
성원 세자의 일이 있고 몇 년간은 다들 강무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피했지만 군사훈련의 일환이기도 한 것이니 강무를 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지금의 세자가 세자 자리에 오른 후로는 강원도 쪽에는 가지 않았던 거 같다.
내 치료 상황에 대해 듣기 위해 찾아왔던 세자는 그렇게 제 할 말을 다 하고는 사라졌다.
세자가 사라지고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는 걸 모를 수가 없는 천호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괜찮으십니까?”
“음. 내가 안 괜찮을 거야 없지. 다만 아무래도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나.”
“안 좋은 기억이요?”
“아.”
맞다. 당시 궁에 있던 사람이 아니면 무슨 얘기를 나는지 알 리가 없나.
천호는 어리기도 하고.
내가 별말을 하지 않자 오히려 천호가 입을 열었다.
“금상 전하께서 한때 대대적으로 호랑이 사냥을 명하셨다는 얘기는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
“예에…… 강무 도중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든가 하는 소문은 있었으니까요.”
천호가 약간 눈치를 보며 말했다.
“뭘 그리 눈치를 봐.”
“아니 괜히 심기를 어지럽힐까 싶어서요.”
“이미 오래 지난 일이야. 그 일로 뭐 심기씩이나.”
하지만 아까 반응을 봐도 뭐…… 현재 진행형으로 신경을 안 쓸 수는 없는 일이긴 하지.
강원도도 넓으니 그 사고가 있었던 곳으로 가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아이들이 있는 곳이 어디였더라.
‘음…… 생각해 보니 원작에서 세자가 강무 때문에 간 산에서 여주랑 만난 셈이니까 강무를 하기에 적합한…… 지역이라는 뜻인가.’
그리고 내 생각은 적중했다.
얼마 후 세자는 강무의 일정이 잡혔다며 내게 전했다.
“겸사겸사 강무를 이곳으로 가기로 했다.”
“아니, 뭐가 겸사겸사야.”
“어차피 전하와 내가 가면 어의들도 따라와야 하니까 그때 같이 가는 게 낫겠지.”
원래 동물들은 쇳소리가 나는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때가 워낙에 이상한 일이었지.
가물어서 산짐승이 별로 없었던 해였다고 들었다. 사냥을 위해 일부러 짐승을 풀어놓았던 것이 호랑이를 불러들였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찾아온 호랑이가 사람을 해친 것이지.
“지금은 그때와는 많은 것이 다르니 괜찮을 거다. 걱정하지 말거라.”
그렇기에 세자도 그렇게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별로 안심이 되지는 않았다.
“……그럼 나도 같이 갈래.”
“……놀러 가는 것이 아니다.”
“이제 안전한 곳이라며. 그러니까 아바마마랑 오라버니는 일해. 나는 놀러 가는 거야.”
내 말에 세자가 잠시 심각한 얼굴을 했으나 곧 풀었다.
사실 내가 같이 간다고 강무를 하는 산속까지 같이 들어가겠다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굳이 나를 데리고 가고 싶지는 않은지 나를 애써 달랬다.
“너까지 없으면 어마마마께서 허전해하시지 않겠느냐.”
“심심하시지 않게 일거리를 드리고 가려고.”
내가 하는 일들 중에 따지고 보면 중전마마가 하셔야 하는 일이 꽤 되는데.
“아니, 그러지 말고.”
“나도 갈 거야!”
“고집부리지 말거라!”
사실 약초를 구하는 시기가 늦어져 세화랑 떨어지기 애매한 시기였다.
탕약은 몰라도 시침은 계속 받아야 하고, 세화가 성지에게 의술을 전수한다고는 해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치료법이었으니 가능한 한 세화에게 받는 것이 맞았다.
“어차피 전직 착호갑사라든가 많이 데려갈 거잖아.”
“그야…… 그렇지.”
성원 세자가 호위로 들였던 것과 비슷하게 능력만 보고 뽑는 경우는 원래도 있었지만 그 사건 이후로 세자의 호위나, 궁궐 위사로도 현장직들을 많이 채용하고 있다고 들었다.
당시 세자익위사를 비롯한 세자의 시위들이 대부분 현장과는 관계없는 사람들이어서, 세자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이 세자의 사망 원인 중 하나가 아닌가 싶어 그 뒤로 현장직들의 승차가 많아졌다.
능력 위주로 사람을 뽑게 되었으니 이걸 잘됐다고 해야 할지…….
덕분에 지금 세자의 주변을 지키는 이들도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 많았다.
‘생각해 보니 성 겸사복이나 저기 있는 천호 같은 경우도 비슷한 케이스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서 얼마 전 익위사 관원들이 은근히 천호를 데려가려고 탐냈던 것도 있었다.
“맞다. 천호도 호랑이 사냥꾼이라잖아. 데려가면 되지.”
“아니, 그래도 천호는 아직 어리고.”
“천호의 숙부도 착호군이랬잖아.”
“그건 그렇지만.”
“본인도 잡은 적이 있다고 했고.”
“아니, 그래도 그건 좀.”
내가 계속 떼를 쓰자 난감해하던 세자에게 나는 다른 딜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