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57)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57화(157/326)
“내가 가는 김에 강원도 쪽에도 종두법 좀 전파해 볼까 하고.”
“어?”
“두창은 원래 추울 때 잘 퍼지는 병이잖아?”
인력 부족으로 아직까지는 도성 안팎까지만 전파 중이었지만 다른 지역에도 전파할 필요성이 있었다.
“공노비들에게는 강제로 접종할 수 있으니까.”
“그야, 그렇지.”
“그렇게 되면 당연히 기녀들에게도 접종할 거고, 어차피 다른 지역에도 시월각 같은 거 하나 정도는 만들어 보도록 추진해야 할 테니까 이번에 가는 김에 실행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고.”
“그건…….”
겨울에 어차피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사람들도 많은데 건물 하나 세워 봐?
‘게다가 이미 강원도 쪽에도 시영원 출신 아이들이 여기저기 있는걸.’
종두법에 대한 신뢰 문제도, 기녀들에 대한 관리 감독 문제도 그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위임할 수 있었다.
내 딜이 마음에 들었는지 세자도 조금 더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후우. 일단 아바마마께 말씀은 드리겠지만 기대는 하지 말거라.”
“진짜지?”
“그래.”
세자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
“세자 저하께서는 옹주 자가께 약하시군요.”
옹주의 진맥을 마치고 함께 나온 세화의 말에 세자도 겸연쩍은 얼굴을 했다.
“저 어린 것이 저렇게 매달리는 경우가 흔하지가 않네. 아마 궁에서 기다리는 것이 불안한 것이겠지.”
“저어, 저는 정말 혼자서도 괜찮사옵니다.”
꼭 자신 때문에 사이좋은 오누이가 싸우는 거 같아 썩 마음이 좋질 않았다.
하지만 세자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어찌 자네 혼자 보낼 수 있겠나. 자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간 큰일이 아닌가.”
“예에…….”
“아니,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시아의 병을 고쳐 줄 사람이 달리 없으니까.”
“예. 심려 마십시오. 성지 의원에게도 꼭 전해 두고 갈 것이옵니다.”
만약 옹주가 따라온다고 해도 옹주 곁에 한 사람은 붙어 있어야 할 테니 어느 쪽이든 성지가 옹주의 곁에 붙어 있게 될 예정이었다.
성지는 성실하고 능력도 있는 의원이었다.
지금도, 사실 약초만 제때 구한다면 세화 자신이 없어도 성지에게 남긴 치료법만으로도 옹주 자가는 치료할 수 있을 거다.
‘옹주 자가께서도 신뢰하시는 인물이니까.’
그러한 벗을 만난 것은 세화 자신에게도 큰 복이었다.
하지만 세화의 말을 들은 세자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의미도 아닐세.”
“예?”
“자네 걱정도 하는 걸세. 모처럼 나온 이름난 여의가 아닌가. 자네들이 있어야…… 나도 안심하지 않겠나.”
“예. 저하.”
어떤 의미이든, 그것이 자신을 걱정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에 세화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동시에 걱정도 함께 했다.
“세자 저하.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본래 국본의 자리가 그런 것이지. 걱정 말게.”
아무래도 또 옹주 자가께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세화는 조용히 마음먹었다.
그리고 얼마 후, 뜻밖에도 옹주 자가 역시 강원도에 함께 가게 되었다는 소식이 세화에게 전해졌다.
“갑자기 강원도라니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렇게 됐다.”
갑작스러운 출장 근무 소식을 들은 천호는 말의 내용과는 달리 덤덤한 얼굴이었다.
“가 본 적이 있어?”
“글쎄요. 있다고 해야 할지. 어릴 적에 여기저기 끌려다닌 적이 있어서요. 거기가 아마 철원 쪽이었나.”
“음. 추웠겠다.”
전생에서도 한 번도 못 가 본 지역이네.
“겨울에 진짜 춥긴 합니다. 설마 그렇게 추운 곳까지는 안 가시겠죠?”
“안 가지 않을까…….”
내가 일정 정하는 게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데. 일단 나는 안 갈 거야.
“하지만 일단 가는 길이 옹주 자가께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글쎄, 그런 말을 하면 가마 타고 가는 수가 있어.”
“…….”
원래 가마 타는 거 아닌가? 하는 얼굴을 하고 있군.
“말 타고 갈까 하고. 적아가 너무 심심해하잖아.”
“갑자기 그렇게 장시간은 힘드실 겁니다.”
하긴 장시간 말을 타 볼 일이 없었으니 어떨지 모르겠지만, 역시 힘들겠지?
나름 푹신한 시트가 있는 현대의 대중교통도 오래 타면 피곤한데, 말을 타고 가는 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기차 타고 싶다…….’
잃고 나서 깨달은 소중한 현대 문명…… 나 돌아갈래.
하지만 돌아갈 방법 따윈 없으니 현실에 적응하는 수밖에.
“그래서 가마도 탈까 하고.”
“옹주 자가께선 작고 가벼우시니 가마꾼들도 그리 힘들진 않을 겁니다.”
“크흠.”
작다는 말에 옆에 있던 가이가 눈치를 주자 천호가 소심하게 입을 다물었다.
원작 가이와는 달리 무서운 일도 안 했는데 다들 가이를 무서워하더라. 왜일까.
‘좀 엄격해 보이지만 정도 많고 좋은 사람인데.’
돈도 많고.
“그러고 보니 천호는 정말 호랑이를 잡아 본 적이 있어?”
분위기를 바꿔 볼 겸 예전에 천호가 했던 발언에 대해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당연히 허풍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본인은 그렇다고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물론 혼자서는 아니지만요.”
“으음. 역시 혼자서는 무리겠지?”
“혼자는 위험하죠. 사실 덫을 놓아서 잡는 게 제일 안전하고요.”
굳이 위험하게 혼자 잡을 이유가 없다며 천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나는 오래전 들었던, 이제는 은퇴한 연선오 좌세마의 활약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니 호랑이를 혼자 잡았다던 좌세마는 대체 무슨 괴물이지…….’
부왕이 성현 세자를 지키지 못한 것을 처벌하지 않고 넘어갈 만도 했다.
“표범 정도라면 혼자서도 잡아 봤습니다만.”
“표범을?”
“예.”
“아니, 어쩌다가…….”
“그게 어쩌다 보니…….”
아직 열다섯밖에 안된 애가 어쩌다 그런 위험한 일을 하게 된 거죠!
그야 물론 한반도에 서식하는 호랑이(*시베리안 호랑이. 수컷은 몸길이 약 270~330㎝, 몸무게는 약 180~370㎏. 암컷은 그보다 작다. 조선범은 시베리안 호랑이와 유전적으로는 동일하나 체구가 조금 왜소하고 흉포했다고 한다. 역시 혹독한 한반도.)와 비교하면 표범(*아무르 표범. 몸길이 약 150~200㎝, 몸무게 약 30~50㎏)은 비교적 귀여운 수준이긴 하다. 일단 체급이 다르니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교적이지.
나 같은 일반인 기준으로는 표범이나 늑대도 목숨을 위협하는 맹수라고!
“말도 마세요. 어릴 적부터 얼마나 두들겨 맞아 가며 단련 받았는데요.”
뭐지, 이 재능충……?
“으음. 내가 붙잡고 있는 게 천호의 재능을 썩히는 거 아닐까?”
“아니, 썩혀도 좋으니까 쫓아낼 생각하지 마시고요. 이대로 쫓겨나면 저는 다시 산으로 가서 표범 사냥해야 합니다?”
보호받지 못하는 조선의 어린 청소년(15세)을 보호하기 위해 나는 천호를 계속 곁에 두기로 했다.
아동 보호법이라도 건의해 볼까. 물론 법이 있어도 안 지켜질 거 같지만.
‘애초에 세자의 교육 커리큘럼만 봐도 아동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왕실도 그런데 민간에서야 말할 것도 없었다.
워낙에 먹고사는 게 우선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천호, 요새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있는데 갑자기 강원도로 가게 돼서 미안하네.”
“네? 누구…… 아, 그 남매 말씀이십니까?”
가끔 보니 천호가 예전에 시월각 오픈 때 영천군과 얽혔던 오누이와 계속 교류가 있는 듯했다.
“사이 좋아 보이던데?”
“아아. 동생 때문에 힘들어 보여서요.”
흠. 연상연하 커플인가…….
“괜찮아. 연애는 나쁜 게 아니지.”
“네? 아니거든요?”
누나 생각나서 그런 거라고 꽥꽥거리는 천호를 내버려 두고 나는 천호가 들고 온 일거리…… 아니, 서신들을 확인했다.
“으음, 떠나기 전에 사저에도 한번 들러야겠는데.”
내 사저는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잘 관리하고 있었다.
나도 좀 살고 싶다, 내 집.
아무튼 내가 다른 일로 바쁜 사이에도 내 컬렉션들은 여전히 영선이가 잘 관리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안정적으로 한둘씩 늘고 있기까지 했다.
‘안목이 좋아 만족스럽지.’
그리고 사실 사람도 약간 늘었는데, 예전에 내가 납치당했을 때 함께 감금되어 있던 사람들 중에서 일부가 지금 내 사저에서 지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시영원 근처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 사람들을 찾아와서 소란을 피우는 경우가 많아 아예 시영원 내에서 보호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지 지속적 난동을 피우는 놈들이 있어서 다른 데로 보냈다고 해 두고 그냥 내 사저에 넣었다.
‘그때 내가 맞을 뻔한 걸 대신 맞아 준 아줌마라든가.’
다짜고짜 옮기게 해서 영문도 모르고 따라왔던 이들은 도착하고 나서야 옹주의 사저라는 사실을 알고 다들 기절할 듯 놀랐다던가.
뭔가 좀 이상하지만 내 사저에는 다들 노비들만 있었던지라,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들이 오히려 양인이라 조금 복잡한 기분이었다.
아마 나만 그렇지는 않겠지.
어쨌든 덕분에 거기도 사람이 늘어서 복작복작해졌더라.
정작 집주인은 거기 없지만.
‘이래저래 관리할 게 많아서 복잡하네.’
이렇게 복잡하게 살 예정은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안 그래도 아직까지도 시월각 맡을 책임자가 마땅치가 않아 골치 아픈데.
‘역시 종친이 가장 무난하고 좋은데. 남자들에게 맡기자니 인성 테스트부터 시작해야 될 거 같아 성가시고.’
기녀들이나 광대들 등 다들 신분이 낮고 기댈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이라, 착취하거나 못살게 굴지 않을 사람이 맡아야 하는데.
“요즘 시월각 분위기는 어때?”
“고려 시대 복식 입어 보는 행사가 꽤 성황입니다. 날이 추워지면 좀 뜸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음. 그렇겠지?”
사람이 없으면 내가 신경 쓸 일도 줄어드니 나쁘지 않았다.
추위를 뚫고 굳이 오겠다는 사람들이야 뭐…… 알아서 하겠지.
이번에 떠날 때는 데려가야 할 사람이 많았다.
일단 건물을 사야 할지도 몰라서 가이를 데려갈 거고, 소이도 가야 하고.
천호도 데려가야 하고, 성 겸사복도 따라올 거 같고.
성 겸사복은 나를 따라오는 게 아니라 세자 호위로 편성될 거 같지만.
거기에 세화와 성지도 따라와야 한다.
우두 접종 때문에라도 데려가야 하거든.
그리고 또 데려가야 할까 고민되는 사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