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62)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62화(162/326)
혹시 내가 자라면 나도 안 태워 주는 건 아니겠지?
“천호도 할 일 없으면 같이 가자.”
“예, 아기씨.”
그러고 보니 기녀들 쪽은 오늘 뭐 하고 있으려나.
어제 연회도 끝나고 오늘 남은 인원들 종두 접종하기로 했었지.
사람들 많은 곳은 얘깃거리도 많으니 좀 구경이나 해 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말을 타고 걷고 있는데 뜻밖에 소란이 귓가에 들려왔다.
“이거 놔! 이런 제기랄! 옹주고 뭐고 이상한 소리로 기생들 다 독차지하고 데려가려는 거 아냐? 가만 안 둘 거야, 내가! 해월아아! 해월아아아!”
“?”
누가 들어도 술주정 중인 취객의 목소리는 기방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 기방에서 추태 부리는 취객은 지역을 가리지 않는군.
“어머, 오셨습니까?”
“음. 저건 무슨 일인가?”
“전부터 소인을 쫓아다니는 술주정뱅이이지요. 어휴, 근방에서는 권세깨나 있는 집 자제라 거부하기도 힘들고 징그러워서, 원.”
나를 알아본 해월이 사내를 보고 몸서리치면서도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어제부터 종두 접종을 시작했으니 이미 소문이 퍼져 방해하러 온 모양이옵니다.”
“힘들겠네.”
기방 하인들이 막고 있었지만 그래도 양반이라 험하게 대하지는 못하고 힘들게 붙들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사내가 이쪽 대화를 들었는지 홱 고개를 돌렸다.
“해, 해월!!”
그러고는 무슨 기운이 났는지 붙들고 있던 하인들을 뿌리치고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아.”
“꺄악-”
당황한 해월이 내 앞을 막아섰지만 나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쿵-
“악!!”
“옹주 자가, 무탈하십니까?”
“응.”
성 겸사복은 일단 세자 편에 보냈지만 천호는 남아 있었으니까.
천호에게 간단하게 제압당한 사내는 몇 번 부들부들 떨었지만 움직이질 못했다.
“……죽었어?”
“아닙니다. 술 취해서 정상도 아닌 모양이고 그냥 충격으로 잠깐 기절할 것 같습니다. 뭐 묶을 거 있으면…….”
“여, 여기 있습니다!”
사내를 단번에 제압한 게 충격적이었는지 하인들이 저자세로 천호에게 새끼줄을 내밀었다.
“전부터 이상한 사내였습니다만…… 오늘따라 무모하기 짝이 없군요.”
“아까 옹주 자가를 욕하는 듯했습니다만?”
해월이의 말에 사내를 묶던 천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도 굳이 못 들은 척할 필요도 없고 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럼 왕족 모독죄네. 상해미수도 있고? 보고 있던 증인도 많겠다, 묶어서 관아에 넘기자.”
“예. 옹주 자가.”
“!”
내 가벼운 목소리에 뭔가 감동받은 듯한 해월이 주변을 살피더니 나를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당연히 소이와 천호도 함께였고, 소란통에 달려왔는지 어느새 다가온 매향이도 따라 들어왔다.
“실은…… 얼마 전부터 술자리에서 옹주 자가를 음해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나를? 왜?”
“옹주 자가께서 기녀들을 다 쓸어 갈 거라는 소문이 돌았사옵니다.”
아, 그래서 해월이도 다짜고짜 매향이에게 장갑 던진 건가?
“여의 따위가 말이 되냐고 하면서 종두법에 대해서도 악담을 퍼붓기도 했지요. 덕분에 저희는 도리어 종두법도 나쁘지 않겠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
“술에 취해서는 세자 저하와 옹주 자가에 대한 불측한 소리를 하곤 했습니다. 자신들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많으니 걱정할 거 없다고요.”
“왜 불만을 품었다고 해?”
“그게, 옹주 자가와 세자 저하 때문에 노비들이 면천되어 손해를 봤다고요.”
“아아.”
생각보다 더 현실적인 원한이었군. 그리고 현실적으로 위험하기도 하고.
‘이건 그냥 넘어가기에는 조금 신경이 쓰이는데.’
원래 현실적인 재산 위협이 사람을 극단적으로 만드는 법이었다.
“천호, 네가 세자 저하께 가서 이 이야기를 전하도록 해.”
“제가 말입니까?”
“응. 적아를 빌려줄게.”
사실 적아의 말 장식만으로도 프리패스다. 군사들은 천호가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세자 익위사들이 알 테니 괜찮을 테고.
“어서 가 봐.”
“예.”
음, 그리고 나는 일단 여기 행정 책임자부터 불러야겠다.
“……그러고 보니 자네가 또 증언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는가?”
“아마 이곳에서는 더 이상 기생 노릇이 어렵지 않겠사옵니까.”
“음. 그럼 내가 서울로 데려가서 보호해야겠는데.”
내 말에 해월이의 얼굴이 화색이 되었다.
“그럼 소인, 서울로 가는 것이옵니까? 옹주 자가께서 보호해 주시는 것이지요?”
“그게 그렇게 되네…….”
옆에 같이 있던 매향이의 눈매가 매섭다.
‘첩 하나 더 들여서 눈치받는 남편이 된 기분이 드는 건 왜지.’
억울하다! 본처(?)도 없는데!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세화는 새벽같이 세자가 지시해 둔 호위들과 함께 약초를 찾기 위해 떠났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연락을 받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약초꾼들과 함께 젊은 여인 한 명이 세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화 의원님이시지요?”
“그렇습니다만…… 혹시 시영원 선생님이신가요?”
“예. 성희라고 합니다.”
성희는 공손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세화의 예상대로 성희는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도 몇 번인가 만난 적이 있는 시영원 출신의 선생님들 중 하나였다.
“저는 이쪽 지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요. 아기씨께서 제가 보낸 자료에서 그 약초를 발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아. 그럼 그 자료를 만드신 분이시겠군요.”
수영 옹주가 만들고 있던 도감의 자료 제공자들 중 하나라는 뜻이었다.
“예, 그림은 다른 친구가 그렸지만 그 약초를 기록한 건 접니다. 덕분에 소식을 들은 날부터 그 약초를 찾고 있답니다.”
그리고 그런 성희의 뒤에는 지인이라는 약초꾼들도 함께했다.
미리 섭외해 둔 이 근방 약초꾼들과는 다른 사람들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이쪽 약초꾼들의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이번 일을 핑계로 남의 산을 기웃거리는 거 아니야?”
“아니, 왜. 산삼이라도 캘까 봐? 뭘 찾든 산신님이 주시는 것이지, 자네들 것이 아니지.”
“크흠.”
묘하게 신경전이 느껴졌지만 세화의 뒤쪽에 있는 호위들이 헛기침을 하자 약초꾼들은 더는 말 섞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우리 선생님들께서 애타게 찾으시는데 어떻게 안 돕고 모른 척할 수가 있겠어.”
“거기 자네들도 그러는 거 아니야. 자식들이 다들 선생님한테 글을 배우고 있는데 저런저런…….”
“흥. 그까짓 글 배워서 뭐에 쓴다고.”
“하하. 자, 어서 올라들 가시지요.”
여기서 말싸움을 해 봤자 끝이 나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했으므로 마음이 급한 세화와 성희가 먼저 일행을 이끌었다.
어느 정도까지는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안까지 들어가면 다리로 움직여야 했다.
물론 목적한 것을 찾으려면 더 깊은 산속까지 들어가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아무래도 찾기가 쉽지 않을 모양입니다.”
“흔히 보이는 것은 아니고 가끔 약초들 사이에 잘못 섞여 들어온다고 들었습니다.”
세화의 말에 성희가 바위 위로 오르며 답했다.
“저희도 실은 연락을 받은 날부터 계속 찾고 있었습니다. 다만 워낙에 흔하게 보이는 게 아니라서요.”
“흔한 것도 찾으려고 하면 더 안 보이는 법이니 흔하지 않은 것은 오죽하겠습니까.”
“하하. 어제까지는 이쪽 능선을 조사했으니까, 오늘은 저쪽으로 가 보려고 합니다.”
“그럼 도중까지 함께하다 갈라지면 되겠군요.”
“예.”
위에서 명령해서 따르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현지에 적극적인 협조자가 있으니 아무래도 편했다.
‘약초를 찾는 사람은 분명 큰 상을 받을 텐데 그보다 귀찮음이 더 큰 걸까. 이쪽 사람들은 왜 저렇게 시큰둥하지.’
반면에 성희를 따라온 약초꾼들은 척 보기에도 적극적으로 약초를 찾고 있었다. 이건 아마 저 시영원 선생님의 덕일 듯했다.
‘옹주 자가의 사람이 여기저기에 퍼져 있구나.’
사실 오는 도중에도 옹주 자가를 뵙고 싶다고 찾아온 시영원 출신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종두법 때문에 함께 온 시영원 출신 아이들 중 알아보는 이가 있어 옹주 자가를 뵙기도 했고.
세화는 산을 오르며 성희에게도 오면서 만난 이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했다.
“파견된 아이들 숫자가 적지 않을 겁니다. 같은 강원도라도 지역마다 떨어져 있으니 전체 숫자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다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비교적 가까운 지역에 있으면 마음에 의지가 되곤 합니다. 연락도 자주는 힘들어도 가끔씩은 하고 있고요.”
“멀지 않은 곳에 가족이 살고 있는 셈이군요.”
“그렇죠.”
세화의 말에 성희가 기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처럼 대화하며 걸을 시간이 있었기에 세화는 약초에 대한 감사 인사도 전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도움은요. 우연히 제가 수집한 것들 중에 있었던 거죠. 애초에 자료 모으기는 지아가 하자고 했던 일이고, 저는 그냥 눈에 들어온 걸 그려서 보냈을 뿐인걸요.”
성희는 그렇게 말하며 조금 씁쓸한 얼굴로 덧붙였다.
“정작 아직 찾지도 못했는걸요. 아기씨의 병환을 고치는 데에 필요한 약재라는 걸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진작에 찾아 둘걸.”
“하하. 그다지 쓰이는 일이 없는 물건이니까요. 독성도 강하고요.”
“독이요?”
“예에. 원래 같은 약초도 쓰임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지요. 저 약초는 그래서 그런가, 좀처럼 쓰이는 일이 없어요.”
“괜찮은 건가요? 아기씨에게 그런 약을 써도.”
“필요한 거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세화는 성희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옹주 자가와 많이 가까우신가 봐요? 이렇게 직접 약초도 캐러 오시고”
“글쎄요. 지아나 아영이만큼 친밀하지는 않으니 가깝다고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영원에서 지내면서 그분에게 과자를 받아먹지 않고 자란 아이는 없지요. 애초에 우리 의식주는 거의 옹주 자가께서 지원해 주신 셈이고.”
“그렇습니까?”
“예, 게다가 제 이름도 아기씨께서 지어 주신걸요.”
옹주 자가께서 시영원에 있는 이름 없는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이야기는 성지에게서도 들은 바가 있기에 세화는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기씨의 병환은 모두 마음에 걸려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고칠 수 있다는 말에 다들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부디 아기씨를 잘 부탁드립니다.”
“예, 꼭 낫게 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세화의 말에 성희도 기쁜 듯 웃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대화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에서 세화는 약간 환상이 깨질 수밖에 없었다.
“모두 옹주 자가를 많이 좋아하시는군요.”
“그럼요. 하지만, 원망하는 사람도 가끔 있지요.”
“원망이요? 왜요?”
“너무 잘해 주면 사람은 오히려 은혜를 잊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법이거든요.”
“…….”
침묵하는 세화 앞에서 성희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