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s The Daughter of a Lowly Concubine RAW novel - Chapter (166)
말단 후궁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66화(166/326)
안정적으로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아직도 난리를 피우고 있는 자신의 말을 보고 한숨을 내쉬던 때였다.
“-!”
어디선가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음을 삼키며 몸을 일으킨 세자는 조심스레 바닥에 귀를 대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세자라니 누군가 보면 비웃겠군.’
하지만 지금 들리는 소리가 혹시 세화의 목소리라면.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꼴사나워도 괜찮았다. 누구 보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그런 세자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점차 소리는 또렷해졌다.
“누구, 거기 누구 없어요?”
“?!”
세화의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하니 어느 바위 뒤, 덤불과 낙엽 사이에 교묘하게 가려져 있는 구덩이에 떨어져 있는 세화의 모습이 보였다.
“세화?”
“……세자 저하?”
“잠시만…….”
히히힝!
세자가 사람을 불러오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이었다.
다행히 절벽에서 떨어지기 직전에 멈춘 듯했지만 아직까지 멀리서 난동을 부리고 있던 세자의 말이, 갑작스레 단말마와 함께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뭐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말은 분명 무언가에 맞아 놀라 몸부림치다 그대로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그리고 얼굴을 가린 누군가가 둔기를 들고 말이 있던 곳으로 다가가는 것을 본 세자는 다시 몸을 낮췄다. 그리고, 그대로 낙엽을 밟고 미끄러졌다.
“!!”
“?!”
세자는 그렇게 속절없이 세화가 있는 구덩이 속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크윽.”
세화와 부딪치지 않으려고 애써 다리부터 떨어진 탓에 발과 다리가 얼얼했다.
흙먼지와 낙엽 부스러기들이 가라앉고 겨우 몸을 일으킨 세자는 서둘러 세화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은가?”
“저는 괜찮사온데 세자 저하께서는…….”
“쉿.”
세자는 세화의 입을 막고 귀를 기울였다.
세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여 세화도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확실하진 않지만…….”
밖에서, 세자를 부르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저하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글쎄.”
세자는 그들이 자신의 안전을 바라는 이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자신이 타고 있던 말이 그들이 던진 무언가에 맞아 절벽으로 떨어졌으니까.
‘내가 타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절대 그리할 수 없어. 나까지…… 함께 죽이려 했던 거지.’
세자가 타고 있지 않았다 해도 말은 진정시킬 수 없다면 그저 그대로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말도 시간이 지나면 진정될 터이고, 아니라면 혼자 어딘가에서 다치거나 넘어지거나 둘 중 하나이니 그런 과격한 수단을 쓸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왕세자가 타고 다닐 정도의 말이면 다른 건 제쳐 두고 그 물질적 가치만 생각해도 쉬이 해칠 수 없는 존재였다.
‘저들이 이곳을 눈치챈다면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신세로군.’
하지만 묘하게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니 오히려 찾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도 바닥에서 우연히 들은 세화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이곳을 찾기는 어려웠을 테니까.
얼마 후 주변이 조용해지자, 두 사람은 어두운 구덩이 속에서 작은 목소리로 상황을 정리했다.
“이건…… 수상하기 짝이 없군.”
“제 생각에도 그렇사옵니다.”
모든 일이 너무 공교롭다. 그나마 우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이 같은 구덩이에 떨어진 것 정도.
“이곳에서 나가면 관련자들을 엄히 문초할 것이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자네를 따로 불러냈다는 의관도 수상쩍고.”
“말들이 갑자기 날뛰게 되었다는 것도 수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내 말이 갑자기 혼자 날뛴 것은 뭔가에 찔렸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왜 막사에 있던 말들이 날뛴 것이지?”
세자의 의문에 뜻밖에 세화가 답을 내놓았다.
“……여물에 찻잎을 섞었다면 가능할 겁니다.”
“찻잎을?”
“예. 사람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찻잎의 각성 작용(*카페인 성분) 때문에 말들이 흥분하도록 만드는 것은 가능할 겁니다.”
말들은 섬세한 생물이니까요.
‘너무 섬세해서 흥분하면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는 길로 돌진하기도 하지만.’
세자는 유명(幽明)을 달리한 자신의 말을 떠올리며 한숨은 내쉬었다.
시아가 적아를 아끼는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아끼던 말이었는데 그렇게 되다니.
“밖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 일단은 기다려 보는 것이 나을 듯하옵니다.”
“하지만 이래서야 우리를 구하러 오는 사람도 의심해야 할 판이군.”
그렇게 말하면서 세자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나저나 여긴 대체 뭐지. 이렇게 큰 구덩이를 잘도 파놓았군.”
“아마 호랑이 사냥용 덫이 아닐까 싶습니다. 근방에 예전부터 호환이 자주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아아…….”
“어찌 그러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시아에게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지만, 8년 전 형님이 호환을 당했다는 곳도 이 산 너머였다.
사람에게는 먼 거리이지만 호랑이들에게는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닐 테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형님…….’
***
“저, 저는 억울합니다!”
술에서 깬 놈은 자신이 한 말을 부정했지만 목격자가 너무 많았다.
본인이 부정해 봤자 뭐 해. 심지어는 내가 보고 있을 때도 옹주 욕을 하고 있었는걸…….
게다가 나에게 위해를 가하려 하기까지 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저야말로 억울합니다!”
그리고 칠칠치 못한 주둥이의 소유자와 어울린 죄로 평소 저 선비와 어울리던 자들도 관아에 끌려와 있었다.
술자리에서 기녀들에게 뻐기느라 자기 신분에 대해서도 말해 주곤 했으므로 그들의 신분은 기녀에게 노출된 상태였다.
물론 허위 신분을 댄 놈들도 있었는지 일부는 잡히지 않았다.
‘그놈들이 제일 수상한데.’
잡혀 온 놈들은 자신들에 대한 정보가 유출된 경로를 알고 원인 제공자를 원망했다.
“이, 이 미친 자가 미쳤으면 곱게 미칠 것이지 왜 우리까지 끌어들여?!”
“나, 나는 그저 자네들이 하던 말을 따라 했을 뿐일세!”
“누가 무슨 말을 했다는 거야!!”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죄를 전가하는 아름다운 장면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놈들은 뭐 제대로 아는 게 없을 거 같은데.’
협조는 했을지 몰라도.
나는 그들이 문초당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여기 있는 것은 시간 낭비 같았다.
“옹주 자가. 어딜 가시옵니까.”
“천호가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 오질 않아서.”
“문초 결과를 듣지 않으셔도 되겠사옵니까?”
“세자 저하를 노렸다면 반역죄야. 내가 감시 안 해도 승진에 목마르신 어느 분께서 열성적으로 문초해 줄걸?”
왕도 와 있는데 이런 일이 발생했고, 옹주가 직접 들었다?
뿌리 뽑지 않으면 목이 달아날 일이고(생물학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게 아님), 잘만 잡는다면 역모를 적발해 냈다는 치하를 들을 수 있었다.
적아가 없었으므로 할 수 없이 다른 말을 내오도록 했다.
성 겸사복이 나를 만류했으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옹주 자가께서는 이곳에서 기다리시지요.”
“아니, 내가 가는 게 빨라.”
역시 직접 확인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하늘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말을 타고 세자를 찾아간 내게 전해진 소식들은 무척 혼란했다.
“실종된 세화를 찾으러 산으로 들어간 세자 저하까지 실종되었다고?”
“그렇사옵니다.”
“대체 뭐가 어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으음.”
나는 침음을 삼켰다. 이거 세자의 실책이긴 하지만 어엄청 수상한데.
“세화와 세자 저하께서 실종된 곳은 비슷한 위치인가?”
“확신할 수는 없사옵니다.”
으음.
‘혹시 같이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 소설에서 보면 꼭 남녀 주인공은 자객이나 기상이변들을 이유로 둘이 어디 고립되어 있고 그러던데.
그리고 그런 상황에 청춘남녀가 붙어 있으면 높은 확률로 정분이 나게 되어 있지.
나는 묘하게 냉정하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곧 현실적인 걱정으로 돌아왔다.
“날이 너무 흐린 것 같은데 이대로 괜찮을까?”
“그, 그게…….”
여기서만 봐도 날씨가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천호는?”
“아, 옹주 자가께서 전하신 말씀을…… 전하께서 직접 들으시겠다고 하시어 어전에 잠시 불려 갔사옵니다.”
“아…… 음, 조금 미안하네.”
“영광인 일이 아니옵니까?”
“그거야 무슨 공을 세웠을 때의 얘기고.”
세자 밑으로도 안 가겠다는 애가 왕이랑 대면이라니 못할 짓이었다.
어쨌든 천호는 곧 돌아올 듯했기에 나는 괜찮으니 할 일을 하라며 관원을 돌려보냈다.
지금 나에게 일의 경위를 설명해 준 낯익은 익위사 관원은 말하자면 명문가 출신의 현장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였다. 별 도움이 되지 않으니 후방으로 배치된 셈이었다.
“옹주 자가?”
“천호. 어라 뭔가 복장이 바뀐 것 같은데.”
익숙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아까보다 두꺼운 방한복을 챙겨 입은 천호의 모습이 보였다.
“아. 저도 세자 저하와 세화 의원을 찾는 데 동참하기로 하였습니다. 산속은 추울 테니 방한복을 빌렸습니다.”
“……괜찮겠어?”
“괜찮습니다. 저는 산길도 익숙하고, 숙부에게 배운 것도 많으니까요.”
천호는 몸을 낮춰 나와 시선을 맞추며 안심하라는 듯 웃었다.
“걱정 마세요. 세자 저하도 세화 의원도 무사하실 겁니다.”
“응…….”
“……옹주 자가 탓이 아닙니다.”
“…….”
내 속을 꿰뚫어 본 듯한 뜻밖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